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청진 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청진에서 초급 여맹위원장을 하다가 남한에 간 여성이 새로운 가정을 꾸려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좌충우돌 실수도 많았지만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며 산다고 하는데요. 오늘은 또 어떤 이야기를 전해줄지 한 번 만나봅니다.
기자 : 노우주 씨 안녕하세요.
노우주 : 네, 안녕하세요.
기자 : 이 시간에는 어떤 이야기를 준비하셨나요?
노우주 : 네, 날씨가 쌀쌀해지고 단풍잎이 떨어지니 그리운 고향 어머님가 생각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기자 : 어머니란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노우주 : 네, 자식이라면 누구나 다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나 싶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여섯 남매를 오롯이 혼자 키우시느라 고생도 많이 하셨죠.
새벽에 일하러 나가시고 또 늦게 들어오셔서 아궁이에 불을 지펴 저녁을 지어주시던 어머니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밤에는 다 해진 남동생들의 옷을 바느질하느라 언제 잠자리에 드는지도 몰랐습니다.
노랗고 빨간 단풍잎이 가을 바람에 하나둘 떨어지고 서늘한 기온에 옷깃을 꽁꽁 여미는 계절엔 더욱 어머니 생각에 가슴이 아픕니다.
기자 :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고 마음에 여유가 생겨서 그런지 다른 계절보다는 감성이 풍부해지는 것 같지 않습니까?
노우주 : 맞습니다. 가을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히고 선선한 바람따라 그리운 내 마음도 싣고 고향으로 떠나고 싶네요. 등산한다고 산에 오르면 간벌해 놓은 통나무들을 군데군데 쌓아놓았지만 아무도 손대지 않네요.
기찻길이라도 열렸으면 저 수많은 통나무들을 실어 고향으로 보내주고 싶습니다. 이 맘때 부터는 북한에 눈이 오고 땔감이 없어 집안에서도 솜옷을 입고 창가에는 허연 성에가 끼고 숨 쉴 때 입에서는 입김이 서리고 추웠던 기억이 생각납니다.
기자 : 북에 있는 가족들은 어떻게 지내고 계실까요?
노우주 : 지금은 어떻게 보내고 계시는지 코로나 때문에 소식조차 알 수 없으니 더 막막합니다. 자랄 때는 미처 몰랐는데요. 자식들을 위해 한평생을 묵묵히 살아내시며 좋은 음식만 자식들에게 주시고 당신은 누릉지가 구수하다며 드시는 마음, 내가 엄마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죠.
생일이 돌아오면 어머니의 사랑이 가득 담긴 햅쌀밥에 절구에 갖쳐낸 인절미가 오늘 따라 눈물겹게 먹고 싶어집니다. 거북등같은 사랑의 손으로 만들어 주신 음식을 우리 6남매가 옹기종기 밥상에 모여앉아 행복으로 배를 채우던 철없던 그 시절이 너무도 그립고 사무칩니다.
기자 : 얘기를 듣다보니 그때 어땠을지 모습이 그려지는데요. 가족하고는 연락이 전혀 안되는 겁니까?
노우주 : 3년전에 인편으로 소식을 보냈더니 죽은 줄 알았던 이 못난 자식의 소식을 들으시고 어머니가 손수 한글자 한글자 쓰셔서 보내주신 손편지와 사진들을 보며 눈물로 몇 밤을 보냈는지 모릅니다.
사진 속의 어머니를 가슴에 꼭 껴안고 너무도 울어서 앞이 보이지 않았어요. 남편이 실컷 울라며 저를 꼭 안아주며 위로해주는데 너무 북받쳐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죠.
너무도 힘든 삶 속에서 무겁고 버거운 짐을 끝내 내려놓지 않으시고 지금까지 살아내신 우리 어머니의 작은 어깨는 무너져 내렸고 그 곱던 얼굴은 세월이 할퀴고 간 자국만이 훈장처럼 새겨졌 더라구요. 그런데 코로나가 있고는 연락이 끊겼습니다.
기자 : 어머니 하면 어떤 모습이 제일 먼저 떠오르세요?
노우주 : 궂은일, 마른일 다 하시느라 허리 펼새 없이 일만 하셨던 어머니는 사진을 보니까 허리도 굽으셔서 지팡이에 의지해 걸으시는 그 모습 눈에 안겨 옵니다. 잠시 쉬는 것도 사치라며 호미와 낫을 들고 들에 사셨던 어머니가 생각 납니다.
거칠어진 보배 손으로 정안수 한사발 장독대에 정히 떠놓으시고 새벽마다 자식들 잘되게 해달라고 빌고 비시던 어머니 덕분에 오늘날 이 딸자식은 남들의 부러움을 받으며 잘살고 있습니다. 제가 아플 때도 꿈에도 보고 싶은 어머님을 만나 뵙기 위해 이를 악물고 병과의 싸움에서 이겼어요.
며칠 전 제가 도라산 통일전망대에 다녀왔어요. 손에 잡힐 듯 한눈에 안겨 오는 고향의 산과 들을 바라보니 미치도록 그리움이 밀려오는 거예요. 힘들게 낫을 들고 추수하는 군인들과 농민들을 바라보니 가슴이 미워지고 엄마 생각에 눈앞이 흐려지는데 어쩔 수 없더라구요.
기자 : 북녘땅이 바라다 보이는 전망대에 다녀오셨군요.
누우주: 네, 불과 2km만 가면 고향인데 우리는 어째서 그리움과 몸부림에 사무쳐 살아야 하는지 안타까웠어요. 고향과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은 잊혀지지도 않고 왜 낙엽처럼 더 쌓여만 갈까요.
어머니 생신일이 돌아오면 흰쌀밥 한 그릇 떠드리지 못하는 이 심정 누를길 없어 가까운 복지관에 매일 같이 나가 어르신들에게 밥과 반찬을 해드리는 봉사를 13년 넘게 해왔지만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는 늘 죄책감이 무겁게 짓누릅니다.
어머니 하면 지금 열무김치, 대파 김치, 된장찌개, 청국장찌개, 오빠가 밤새 잡아 온 참게로 시원한 참게탕을 끓여 주셨던 어머니의 사랑이 가득 담긴 음식들이 이맘때면 더욱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기자: 어머니가 이 방송을 듣고 계신다고 생각하시고 어머니께 인사말 전하면서 마무리 하죠.
노우주 : 네, 어머니가 저의 소식을 들으시고 이제 눈감아도 여한이 없으시다는 편지를 보니 가슴이 덜컥 내려 않았습니다. 어머니, 조금만 조금만 버텨주세요. 어떻게든 살아만 계셔주세요. 어머님 제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여기서 저는 진수성찬 다 차려놓고 음식을 마주할 때마다 어머니에게 고맙다고 정말 감사하다고 기도드립니다. 세상에서 나를 안아 줄 제일 큰 품은 우리 어머님 품속입니다. 기다리고 계셨다가 저를 꼭 안아 주세요.
심지 곧기가 대나무 같으시고 곱기가 뒷동산에 홀로 핀 구절초 같이 맑으셨던 우리 어머니, 집 앞 배나무 가지에 까치가 울어도 먼 곳의 자식이 행여 올까 종일 대문 앞에서 서성이며 기다리시던 우리 어머니 정말 그립습니다. 보고싶습니다. 어머니, 낳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기자 : 노우주씨 환절기 건강 조심하시고요.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노우주 : 여러분 여러분 다음 시간에 뵐께요..
청진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오늘은 그리운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 방송 이진서입니다.
참여 노우주, 진행 이진서, 웹담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