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아주메의 남한 이야기] 북한서 몰랐던 라면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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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청진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박수영입니다. 북한에서는 대학 출판사에서 일하던 여성이 남한에서는 간호조무사가 되어 생명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남한에 정착한 지는 어느덧 10년이 넘었는데요. 이순희 씨가 남한에서 겪은 생활밀착형 일화들 함께 들어봅니다.

기자: 이순희 씨 안녕하세요.

이순희: 네, 안녕하세요.

기자: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실 건가요?

이순희: 오늘은 남한의 대표 간식인 라면에 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해요. 라면은 북한말로는 즉석 국수라고 하는데요. 남한 사람들에게 라면은 없어서는 안 될 음식 중 하나예요. 북한 고향 분들도 남한 사람들만큼 라면을 좋아하는데요. 남한만큼 흔하게 찾아볼 수는 없어서 라면을 자주 먹지는 못했어요. 라면 가격도 2~3달러 정도인데 북한에서 이 돈이면 쌀 2kg은 살 수 있고 또 당시 어떤 사람들에게는 한 달 월급 수준이었어요. 그러니까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은 사 먹기 힘들었죠. 그에 비해 남한 라면 가격은 정말 저렴해요. 봉지라면 1개에 1천 원 정도니까 최저시급 200만 원이면 라면 2천 개는 사 먹을 수 있거든요.

기자: 남한 사람들의 라면 소비량은 전 세계적으로 2위를 차지할 만큼 높은 수준이라고 해요. 인당 연간 라면 소비량이 77개에 달한다고 하죠. 남한에서 라면 인기를 실제로 체감하시나요?

이순희: 그럼요. 대형 상점이나 소형상점을 가도 라면을 안 파는 곳이 없어요. 남한 사람들은 밤에 출출할 때, 밥해 먹기 귀찮을 때, 학생들이 방과 후에 편의점에서 (사 먹는) 등 정말 자주 먹어요. 심지어 남한 라면은 전 세계적으로도 굉장히 많이 수출되는데요. 전 세계에서 부는 한류열풍에 힘입어서 한식 자체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이 나날이 커지고 있거든요. 그중에서도 라면에 대한 인기가 대단해요. 남한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이 라면 먹는 모습 때문에 유명해지기도 했고, 또 남한 라면이 전 세계적으로 알아줄 만큼 맛있기도 해요.

기자: 북한에도 국산 라면이 있는데 그 라면도 드셔보셨나요?

이순희: 제가 북한에 있을 때까지는 국산 라면을 찾아보기 힘들었어요. 오히려 중국 라면이 나진·선봉을 통해서 일부 수입돼서 들어왔거든요. 그래서 북한 살 때 그 중국 봉지라면을 먹어봤던 기억이 나는데요.

기자: 그럼 그때 처음 먹었던 라면의 맛은 어땠나요?

이순희: 그때 먹어봤던 중국 라면은 맛있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제가 탈북해서 중국에 잠깐 살았을 때도 중국 봉지라면을 몇번 사 먹어봤거든요. 중국 라면은 양념과 향신료가 강해서 제 입맛에는 안 맞더라고요. 그다음부터는 라면을 전혀 안 먹었어요.

기자: 라면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았으면 남한에 와서도 라면을 또 먹기가 꺼려졌을 것 같아요. 그런데도 라면을 시도해 보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이순희: 네, 있었어요. 제가 남한에 와서도 "라면은 맛없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라면을 안 먹었었는데요. 제가 간호학원을 졸업하고 병원에 입사해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였어요. 그 병원에서 3교대 근무를 섰는데, 야간 근무 직원들에게 간식으로 컵라면을 제공해 주더라고요. 한 달에 야간 근무일이 8일 정도 되니 밤에 근무를 설 때마다 받은 컵라면이 한 박스가 되는 거예요. 그때까지만 해도 라면이면 다 똑같이 맛없는 줄 알고 집에다가 쌓아두곤 했어요.

그러다가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야간 근무 도중 환자가 좀 위급한 상황이어서 바쁘게 돌아다니다가 보니 좀 출출한 거예요. 그래서 ‘어휴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하고 컵라면을 뜯어 정수기 물을 부어서 기다렸다가 먹어봤어요.

기자: 그때 먹은 라면 맛은 어땠나요?

이순희: 그 맛은 정말 처음 느껴보는 맛이었어요. 라면 맛은 다 똑같은 줄 알았는데 세상에 이렇게 맛있을 줄이야. 쫄깃한 면발과 매콤하면서도 구수한 국물 그리고 육류를 가공해서 말린 것과 바다식물을 가공해서 말린 것이 국물에 퍼져 다양한 맛을 내는 것이야말로 정말 처음 맛보는 신세계였어요. '이 맛있는 걸 왜 안 먹었지' 하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고 어이가 없더라고요. 그다음부터는 라면에 빠져서 밥은 제쳐놓고 라면만 먹기 시작했어요.

기자: 이순희 씨께서 북한에 계실 때 북한 라면을 찾아보기 힘들었기는 하지만, 요즘 북한에서는 자체적으로 라면을 생산하고 있잖아요. 북한 청취자분들이나 남한 청취자분들이나 북한과 남한 라면 맛은 무엇이 다를지 궁금해하실 것 같은데요. 그럼, 이순희 씨께서 이를 비교하자면 어떤 것 같은가요?

이순희: 북한과 중국 라면이 비슷해요. 면 크기가 작고 면발은 금방 불었어요. 그런데 남한 라면은 시간이 꽤 지나도 면발이 금방 물에 풀어지지 않고 쫄깃쫄깃하더라고요. 또 라면 국물도 남한 라면을 따라오긴 힘든 것 같아요. 남한에는 라면을 파는 업체가 많으니까 서로 더 맛있는 라면을 출시하려고 경쟁하거든요. 그래서 라면만 연구하는 연구원들이 따로 있어요. 아주 얼큰하고 눈물 콧물 쏙 빼는 맛부터 순하고 깊은 맛이 우러나는 라면이 있고요. 또 하얗고 말간 사골국물 맛 라면 등 종류가 다양해요.

기자: 말씀하신 대로 남한 라면 종류가 굉장히 많은데요. 예를 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이순희: 우선 남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빨간 국물의 얼큰한 기본 라면이 있고, 하얗고 말간 사골국물이라면, 짜장면과 맛이 비슷하면서도 특유의 맛이 나는 짜장라면, 또 얼얼하고 매운 볶음라면 등이 있어요. 심지어 서양식 스파게티 맛 라면, 치즈 맛 라면, 참치통조림을 통째로 넣은 듯한 라면, 시원한 메밀국수 라면, 칼국수 라면, 미역국 라면 등 상상 그 이상으로 정말 많아요. 심지어 냉면을 라면 끓이듯이 즉석에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것도 있어요. 라면 종류가 너무 많아서 죽을 때까지 다 먹어보지도 못할 것 같아요. 또 봉지라면에서 찾아볼 수 없는 컵라면만의 맛도 있거든요. 특히 컵라면은 더운물만 붓고 3분 기다렸다 바로 먹으면 되니 많이 찾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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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저도 해외여행을 갈 때 꼭 챙겨가는 물건 중 하나가 남한의 컵라면인데요. 외국에서 얼큰한 게 당길 때 간단히 해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컵라면이 최고거든요. 그런데 남한 라면이 세계에도 많이 수출되고 있죠?

이순희: 맞아요. 남한 라면의 해외수출량이 해마다 늘고 있는데요. 그중에서도 중국, 미국, 일본에 많이 수출돼요. 라면 수출액이 10억 달러, 남한 돈으로 1조 원이 넘어요. 북한의 매운 닭고기 맛 볶음국수 라면의 원조 격이라고 볼 수 있는 남한의 매운 볶음 라면이 있거든요. 그 라면이 굉장히 매운데 맛있어서 외국인들 사이에서 남한 매운 라면 먹기 열풍이 불 정도였어요. 이렇게 인기가 좋으니, 외국인들도 남한에 와서 많이 사 가는 것이 남한 라면이에요. 심지에 제가 동남아 여행 갔을 때도 그 나라 마트에 남한 라면이 쫙 진열돼 있는 걸 보고 반갑던 기억이 나요. 가까운 나라뿐 아니라 저 멀리 아프리카나 유럽에도 남한 라면이 수출되지 않는 곳이 없더라고요.

기자: 예전에 남한 정부에서 북한 지원 물품으로 라면을 제공하기도 했고, 현재도 대북 풍선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라면을 보내고 있긴 한데요. 남한 라면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어떤가요?

이순희: 남한 라면은 가히 세계 일등 맛이라고 할 수 있는 남한의 대표 간식이죠. 남한에 갑자기 라면이 사라진다면 정말 큰 일일 거예요. 이렇게 맛있고, 간편하고, 저렴한 남한 라면을 제일 가까운 북한 땅에는 못 가고 있는 게 가장 아쉬워요. 북한 고향 분들도 언젠가 남한 라면 맛을 볼 그날을 그려봅니다.

기자: 네, 이순희 씨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이순희: 여러분 다음 시간에 뵐게요.

기자: 청진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오늘은 한국 대구에 있는 이순희 씨를 전화로 연결해 남한의 대표 간식 라면에 대해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워싱턴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수영입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