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대혁명' 다룬 넷플릭스 '삼체' 장면 논란
- 중 네티즌 "지나치게 폭력적" vs "역사적 사실"
- 문화혁명 시기는 북한에도 악몽의 시간
- 중국-인도 국경선 인근 영유권 분쟁 갈등 재점화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의 중국 진행에 김명성입니다. 최근 공개된 미국의 인터넷 기반 동영상 서비스 업체 ‘넷플릭스’사가 제작한 드라마 ‘삼체’가 중국 인터넷 사용자들의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유명 소설을 각색한 작품으로 문화 혁명을 다루고 있는데요. 왜 중국 사람들은 반발할까요, 오늘의 첫 번째 소식으로 전합니다.
22일 CNN은 ‘삼체’ 공개 후 중국 인터넷 사회관계망에서는 분노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애국주의 성향 중국 인터넷 사용자들은 “이 작품이 다분히 정치적”이라며 미국 기업인 ‘넷플릭스’가 의도적으로 중국을 부정적으로 표현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삼체’가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비판할 부분이 아니라는 반대 의견도 존재합니다. 게다가 이 드라마는 중국에서는 아직 공식적으로 서비스되지 않고 있습니다.
삼체의 원작 소설, ‘삼체문제’는 당연히 북한에선 볼 수 없지만 굉장히 유명한 작품입니다. 중국 작가 류츠신의 소설로 공상과학 소설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휴고상을 수상하고 900만 부 이상 팔린 소설입니다.
먼저 드라마의 간단한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1960년대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겪으며 인간의 자정 능력에 대해 희망을 버린 한 중국 과학자는 외계로 메시지를 보내게 되는데 3개의 태양 때문에 멸망 위기에 놓인 외계 종족 ‘삼체’가 이 ‘초대’를 받고 지구로 향한다는 내용입니다.
문제의 장면은 1960년대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재현한 드라마의 시작 장면인데요, 중국의 한 대학교 물리학 교수가 상대성 이론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제자와 가족들에게 배신당하고 잔인하게 맞아 사망하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INS- '삼체' 예고 중 : 상대성 이론은 물리학의 기초 이론인데 입문 수업에서 안 다루겠는가? 헛소리! 아인슈타인은 미국 제국주의로 가서 원자폭탄 만드는 걸 도왔다!
청취자 여러분도 익숙하신 중국의 문화대혁명은 마오쩌둥(毛澤東)에 의해 주도된 사회 운동으로 앞서 대약진 운동의 실패로 정치적 위기에 몰리게 된 마오쩌둥이 중국 공산당 내부의 정치적 입지를 회복하고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해 중국 사회를 동란으로 몰아넣은 대사변(사건)입니다.
당시 마오쩌둥은 부르주아 세력과 자본주의 타파를 명분으로 어린 학생들로 조직된 홍위병을 동원해 6.25 전쟁 때 중국 지원군 사령관으로 활동했던 펑더화이를 비롯해 약 300만 명의 당원과 지식인을 숙청했습니다. 문화혁명으로 사망한 중국인의 숫자는 수십만에서 2천만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며 중국을 20년 이상 퇴보시킨 비극으로 기억됩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가족도 문화대혁명 시기 큰 피해를 입었는데요, 아버지 시중쉰은 홍위병들에게 끌려와 반당분자 시중쉰이란 팻말을 목에 건채 조리돌림을 당하고 8년간 연금 조치당했습니다. 어머니 치신은 500인 반당분자 목록에 올라 7년간 강제노동을 했습니다. 시진핑의 이복누나 시허핑은 홍위병들에게 두들겨 맞다가 견디지 못하고 스무 살 꽃다운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합니다. 시진핑도 중국 산시성 량자허라는 산골로 쫓겨가 강제노동을 했습니다. 즉 중국 사람 중 문화혁명으로 피해를 입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볼 수 있고 이 때문에 중국인들은 문화대혁명 시기를 언급하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그러나 애국주의 경향이 강해지는 시진핑 시대에서 문화혁명은 일종의 금기처럼 되고 있으며 중국 역사 교과서에도 분량이 점점 줄고 비판의 강도가 여실히 흐려지고 있습니다.
중국에 재앙을 가져다준 문화대혁명은 북한에도 악몽 같은 시기였습니다. 중국과 소련의 갈등 속에서 소련 편에 선 북한을 향해 중국 홍위병들이 압록강, 두만강 변 북중 국경에 ‘수정주의 반동 김일성 타도’ 등의 구호를 붙이고 북한을 비난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후계 과정에 있던 김정일이 북중 국경을 방문했다가 중국의 김일성 비난 구호를 보고 놀랐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화대혁명 기간 대한민국은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경제발전을 이뤄냈고, 해방 이후 남한 경제를 앞섰던 북한 경제가 뒤떨어지게 된 것도 이 시기입니다. 핵우선주의와 한국의 문화를 말살하려는 반동사상문화배격법 등 김정은 총비서가 추진하는 정책들은 문화대혁명에 버금가는 극좌 노선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넷플릭스 영화 ‘삼채’가 문화대혁명의 망령이 되살아난 중국과 북한에 주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인류의 미래는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고 구속하는 독재체제가 아니라 자유민주 체제에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두번째 소식은 중국과 인도 간의 영토 분쟁 소식입니다.
최근 인도 매체에 따르면,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지난 8일 아루나찰프라데시주를 찾아 터널 등 기반 시설의 완공을 축하하는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이에 중국이 반발하고 나섰는데요,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1일, 인도는 해당 지역을 개발할 권리가 없고 인도의 행동은 양국 간의 국경분쟁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 것이라 주장했습니다. 당연히 인도 정부도 강력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아루나찰프라데시주는 인도 동북쪽 끝에 위치한 지역으로 북쪽은 중국 티베트 자치구, 서쪽은 부탄, 남쪽은 미얀마와 접한 지역입니다. 인도가 실효 지배 중이지만 중국은 이 지역을 남티베트로 부르며 인도 인사들의 방문을 반대해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미국이 인도의 입장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는데요. 베탄트 파텔 미국 국무부 수석 부대변인은 “미국은 아루나찰프라데시 지역을 인도의 영토로 인정하고 있으며 군사적이든 민간이든 실질 통제선을 넘어 침략이나 침법으로 영유권을 주장하려는 일방적 시도에 강력하게 반대한다”고 밝혔습니다.
중국 외교부는 발끈했고 국수주의 매체로 악명 높은 중국 관영 환구시보도 22일 논평 기사에서 “최근 미국 국무부의 발언은 겉으로는 인도를 돕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독주”라고 논평했습니다.
약 3,500㎞ 길이의 경계를 맞댄 인도와 중국은 국경 문제로 1962년 전쟁까지 치렀지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실질통제선을 사실상 국경으로 삼은 채 대치하고 있는데요, 국경선에서 양국 군인들 간 물리적 충돌도 자주 발생하고 있습니다.
지난 2022년 12월에도 아루나찰프라데시주에서 중국군 수백명이 국경선 역할을 하는 실질통제선을 넘어 침범하자 인도군이 이를 저지하면서 양국 군인들이 충돌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또 2017년엔 중국이 중국·인도·부탄 세 나라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도카라(중국명 둥랑, 부탄명 도클람) 지역에 도로를 건설하면서 중국군과 인도군이 73일간 무력 대치했고 2020년 6월엔 양국 군대가 인도 북부 분쟁지인 라다크 국경지대에서 몽둥이를 들고 몸싸움을 벌이다가 인도군 20명과 중국군 4명이 숨지기도 했습니다.
당시 양국 군인들이 총 대신 쇠 파이프와 돌멩이를 들고 육탄전을 치르는 희한한 장면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는 양국 간 확전을 피하고자 국경지대 최전방 병사들은 총기나 폭발물을 휴대치 않기로 합의했기 때문입니다. 이후 양국 군대는 지난 9월 히말라야산맥 서부 분쟁지역에서 철수하기로 합의하면서 갈등 해소에 나섰지만, 인도 측은 중국이 합의를 지키지 않았다고 비난했습니다.
현재 분쟁지역인 중국과 인도의 국경선은 1914년 당시 인도를 식민 지배하던 영국이 그어 놓은 것입니다. 중국은 아루나찰프라데시주의 편입은 티베트와 영국 간에 체결됐기에 무효라 주장해 왔습니다. 따라서 이 같은 양국 간 국경분쟁이 쉽사리 해결되긴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모디 총리가 이끄는 인도의 힌두민족주의와, 중화제일주의를 표방하는 시진핑 주석의 강경민족주의정책이 지속되면서 양국 간 국경분쟁은 지지 세력 결집이 필요할 때마다 계속해서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최근 한국에서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업적을 그린 기록영화 ‘건국 전쟁’이 개봉해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승만 대통령을 언급하는 것은 중국과 인도처럼 영유권 분쟁을 겪고 있는 독도를 대한민국의 영토로 확실히 하고 실효 지배할 수 있도록 한 업적 때문입니다.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1월 18일 이승만 대통령은 이승만 라인으로 불리는 ‘대한민국과 주변국가 간의 수역 구분과 자원 및 주권 보호를 위한 경계선’을 선포했습니다. 이 덕분에 독도가 대한민국의 땅이라는 것이 명확해졌습니다.
미국의 지원 속에 전쟁을 치르는 와중에도 해양 영토와 주권을 지켜낸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은 한때 그늘에 가려졌지만 신냉전이라는 국제질서의 변화 속에서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오늘 시간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김명성이었습니다.
제작: 이현주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