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6월 15일,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공동선언에 합의했습니다.
양측은 북한 측이 주장해왔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과 남한 측이 주장해왔던 연합제 안에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이 길로 갈 것에 합의했습니다. 또한 양측은 이런저런 정치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예를 들면 당시에 남한은 비전향장기수들을 북한으로 보냈습니다. 북한은 비전향장기수들이 귀환한 대신 국군포로를 남측으로 보내지 않았지만 이와 같은 비대칭은 남북 관계에서는 흔한 일이었습니다.
북한은 오랫동안 6.15선언을 극찬했고 이날을 기념해 여러가지 행사를 했지만 최근 6.15 선언은 언급하는 것조차 금지됐습니다. 북한은 하루 아침에 통일에 대한 태도를 바꾸고 공식적으로 평화 통일에 대해 관심이 없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북한의 태도, 보다 엄밀하게 말하면 김정은의 태도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좋든 싫든 평화 통일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부터 현실성이 없는 환상에 불과했습니다.
물론 북측은 평화 통일을 파괴한 세력이 남한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한반도 상황을 감안하면 지난 수십 년 동안 양측 모두, 특히 북한 측은 평화통일을 위해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습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평화통일이 두려웠을 지도 모릅니다.
소수의 북한 정책 결정자들은 북한이 경제적 기반도, 정치적 기반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의 상태로 통일이 되면 북한 경제는 남한의 50분 1에 불과합니다. 바꿔 말해 통일 이후 노동당 간부나 보위원들이 북한의 경제를 계속 장악한다 해도 그들의 경제력은 추락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남한이 얼마나 잘 사는지 알게 된 주민들은 나라의 경제를 발전시키지 못한 북한 세습 특권 계층에 대해 큰 불만을 갖게 될 것이고 이런 불만은 특권 계층의 정치 권력을 약화시킬 것입니다. 결국 북한 집권층의 입장에서 평화 통일은 다분히 모험적인 행동입니다.
하지만 남측도 통일에 대한 관심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남한 사람들은 유치원 때부터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 교육을 받지만, 이를 공감하는 사람들은 갈수록 적어지고 있습니다. 기본 이유는 경제입니다. 남북한 경제 격차를 감안하면, 낙후한 북한의 재건 사업은 모두 남한 기업과 남한의 납세자들의 몫이 될 겁니다.
경제 전문가 대부분은 통일될 경우 북한 재건 비용이 남한 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것이라고 주장하고 남한 주민들도 거의 본능적으로 같은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세월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남북의 경제 격차를 보며 남한 사람들의 통일 열망은 점점 사라져왔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6.15 선언과 같은 합의는 진정성 있게 체결됐다고 볼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월이 갈수록 그 의미는 퇴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평화통일 구상을 헛된 꿈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남북한이 서로 미워하고 대립한다는 걸 의미하지 않습니다. 역사를 보면 이웃 나라들이 정치와 사상이 판이하게 달라도 평화롭게 살아간 예가 많습니다. 현 단계에서 기본 목적은 바로 평화 공존입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