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우 종전 협상 후 미북 대화 재개?

앵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주도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전 협상이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 문제가 공식 의제로 다뤄질지도 관심입니다.

하지만 북한과 러시아가 파병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고, 트럼프 대통령도 전쟁의 ‘책임’보다는 ‘조기 종전’에 초점을 맞추면서 이 문제가 협상 테이블에 오를 가능성은 작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데요. 앞으로 종전 협상은 북러 관계와 미북 관계에도 변수가 될 전망입니다.

종전 협상 과정에서 미국과 러시아, 북한, 중국의 역할과 이해관계는 어떻게 달라질지 천소람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 약 3년 만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주도로 종전 협상에 가속도가 붙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4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한 회담에서 “몇 주 안에 전쟁을 끝낼 수 있다”라며, 이르면 이번 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미국 워싱턴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젤렌스키 대통령은 오는 28일 워싱턴에서 광물 협정에 서명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몇 주 안에 전쟁을 끝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는 게 현명한 일입니다. 우리가 현명하지 못하면 전쟁은 이어질 것이고 계속해서 젊은이들을 잃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 협상 과정에서 북한 문제, 특히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이 공식적으로 다뤄질지는 불확실한 상황입니다.

북한군 파병, 종전 협상에 포함될까?

지난해 9월, 북한군이 러시아에 파병된 이후에도 양국은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조한범 한국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25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추가 파병이 없다면 북한군 문제가 종전 협상에서 핵심 의제로 다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라고 분석했습니다.

북한과 러시아가 파병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데다, 협상을 주도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에 대한 책임’보다는 ‘조기 종료’에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에 북한군 파병 문제가 배제될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또 협상 과정에서 북한군 파병 문제를 다룰 경우 러시아와 북한이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셈이 되기 때문에, 결국 이 사안에 대해서는 전략적 모호성이 유지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조한범] 북한과 러시아가 참전 사실을 인정하고 있지 않으니, 전쟁에 대한 책임 등을 묻기가 어렵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가능한 빠른 종전, 휴전을 위해 상당 부분 러시아 측의 요구를 수용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북한 측 책임이나, 러시아 측 책임 등은 일반적인 경우와 다르게 중시되지 않을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우 전쟁이 누가 유리한지, 어느 가치가 실현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가장 빠른 시간 내에 종전, 휴전을 시켜 미국의 부담을 더 이상 지지 않고, 그동안 줬던 부담에 대한 대가를 받겠다’라는 입장이기 때문에….

실제로 지난 24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신속한 종전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미국이 제출한 이 결의안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는 표현이 빠지면서 전쟁에 대한 책임을 러시아에 묻지 않고 있습니다.

브루스 클링너 미국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25일 RFA에 “북한군의 러시아 지원이 종전 협상에서 직접적이고 공개적으로 논의될 가능성은 작다”라며 대신 합의문에서 러시아군 (또는 그 대리군)의 이동 제한이 명시될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반면, RFA의 주간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김성렬 부산외국어대학교 교수는 26일 “종전 협상에서 북한군 파병 문제가 다뤄질 가능성이 크다”라고 내다봤습니다.

러시아가 병력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북한군을 적극 활용하고 있고, 이에 따라 협상에서 북한군 철수 문제가 논의될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김성렬] 저는 다뤄진다고 보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지금 병력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전쟁에서 부상 당한 자국의 병사들을 치료받기도 전에 다시 전장으로 내보내고 있거든요. 그만큼 병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고, 여기에 북한군이 더 필요한 상황입니다. 미국과 종전 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그만큼 북한군의 역할이 러시아 입장에서는 큰 거죠. 협상 과정에서 북한군 철수의 문제, 우크라이나에 잡혀 있는 북한군 포로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진행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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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19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총비서가 북한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 참석하고 있다.
2024년 6월 19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총비서가 북한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 참석하고 있다. 2024년 6월 19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총비서가 북한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 참석하고 있다. (REUTERS)

“미북 대화 재개에 러시아 역할 커질 듯”

이런 가운데 전문가들은 종전 협상이 진전되면 미북 대화의 재개 가능성도 커질 것으로 전망합니다.

북한군이 참전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미북 대화 재개의 걸림돌이었던 데다, 이미 전쟁에 대한 러시아의 책임을 묻지 않은 미국이, 북한에 대해서도 면죄부를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개인적 친분을 활용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를 협상장으로 끌어낼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북한 문제는 잘 풀렸다고 생각합니다. 김정은과 우호적으로 지냈고 김정은도 나를 좋아했습니다. 나도 김정은을 좋아했고 매우 잘 지냈습니다. 북한은 핵을 보유(nuclear power)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잘 지냈고, 내가 돌아온 것을 김정은이 반길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처럼 취임식 때부터 김 총비서를 여러 차례 언급한 트럼프 대통령에 북한이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가운데, 러시아가 이 상황에 변화를 줄 열쇠가 될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김성렬]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 직전, 직후 계속 김정은을 언급하고 있죠. 김정은의 입장에서는 아직 아무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김정은 입장에서는 사실 하노이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고, 미국이 어떤 협상 카드를 들고나올지를 지켜봤던 것인데요. 그동안 자신의 경제 문제를 러시아와 해결하고 있기 때문에 협상의 전략적 가치를 높이려고 노력했던 거죠. 지난 2018년을 돌이켜볼 때 한국이 중재자 역할을 했다면, 지금은 러시아가 그 역할을 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에) 김정은이 반응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푸틴을 이용해서 김정은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낼 방안을 강구하고 있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키노 요시히로 일본 아사히신문 외교 전문기자도 지난 19일 RFA에, 러시아가 종전에 응하는 대가로 북한에 대한 제재 완화를 제시할 가능성도 언급했습니다.

[마키노 요시히로] 파병된 북한군 사이에서 실제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러시아는 이런 국제무대에서 북한을 위한 요구를 할 필요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혹시라도 종전 협상에서 북한과 관련한 요구를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러시아는 전후 복구를 위해 북한 노동자 파견을 받아들일 수 있는 정당성을 주장할 가능성도 예상할 수 있습니다. 또한, 북한에 대한 제재 완화를 목표로, 미북 간의 협의를 러시아가 중재하려 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 개인적 친분을 자주 언급했지만, 산적한 국내외 문제 때문에 북한과 협상 재개를 우선시할 지 불분명한 데다, 북한도 이미 조건 없이 러시아로부터 광범위한 혜택을 받고 있어서, 굳이 미국과 협상에 나설 필요성을 못 느낄 수 있다고 관측했습니다.

RFA의 주간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북한 노동당 39호실 고위 관리 출신인 리정호 대표는 지난 25일,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의 중재 없이 바로 미북 대화를 추진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리정호] 내 생각에는 푸틴이 중재한다거나, 이런 것을 트럼프 대통령이 안 좋아한단 말입니다. 직접 김정은과 하잖아요. 편지도 오가고 하기 때문에, 만약 (미북 대화를) 한다면 아마 특사가 직접 갈 거예요.

또 리 대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도 북러 간의 밀착 행보는 계속될 것이라며, 이미 중국보다 러시아를 택한 북한의 외교 전략을 하루아침에 뒤짚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2018년 6월 1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이 싱가포르 센토사 섬에서 김정은 총비서(왼)와 만나고 있다.
2018년 6월 1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이 싱가포르 센토사 섬에서 김정은 총비서(왼)와 만나고 있다. 2018년 6월 1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이 싱가포르 센토사 섬에서 김정은 총비서(왼)와 만나고 있다. (AP)

미북 대화 재개시 한국과 중국은?

이런 가운데 전문가들은 한국과 중국의 입지가 크게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김성렬 교수는 “만약 러시아가 (미북 대화의) 중재자로 나설 경우 중국이 설 자리를 잃을 가능성이 크다”고 관측했습니다.

[김성렬] 북한과 러시아가 가까워지면 중국이 소외되는 경향이 있고, 북한과 중국이 가까워지면 러시아가 소외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러시아가 중재자 역할을 본격화한다면, 중국이 들어와서 할 수 있는 역할이 많이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 미국의 외교 안보 인사 중 대부분이 반중국 인사들이기 때문에,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중국에 대한 강경 정책을 계속 추진할 것으로 보고 있고요. 북한과 미국의 관계 개선 과정에서 사실 중국이 할 수 있는 역할은 크게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한범 석좌연구위원도 “북러 밀착으로 중국의 영향력이 감소한 상황이고, 여기에 미북 대화까지 진행된다면 시진핑 주석으로서는 안 좋은 그림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한국 사정도 크게 다를 것 같지 않아 보입니다.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이미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 관계를 형성한 만큼, 한국의 중재자 역할이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라고 설명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과 직접 종전을 논의하면서 우크라이나를 배제한 것처럼, 한반도의 안보 문제도 한국 없이 직접 (북한과) 협상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한국의 정치적 상황이 불안정한 데다 대통령 탄핵 국면으로 인해 외교적 영향력까지 제한적인 상황이기 때문에 미북 대화의 중재자 역할을 수행하기는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습니다.

[김성렬] 지금 상황에서 한국은 미북 대화 과정에서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외교적 자산이 다 멈춰있는 상태입니다. 대화 과정에서 패싱(배제)될 가능성이 있습니다만, (대화 과정에서 미북 간에) 어느 정도 교환 요소가 논의 될 경우 한국과 일본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경제적 지원 등 북한이 만족할 만한 요소가 있을 경우 한국과 일본의 협력이 미국의 입장에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조한범] 한국 패싱은 상당히 가능성이 높습니다. 김정은이 이미 남북 관계를 주적으로 선언했고 따라서 한국의 중재자 역할을 인정 안 할 거예요. 트럼프 역시 문재인 정부 때 한국 정부의 한계를 봤기 때문에 직접 미북 대화를 선호할 겁니다. 따라서 한국의 역할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시기보다 상당 부분 축소될 수밖에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북한군이 참전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전 협상이 진전할수록, 이를 통한 미국, 러시아, 북한, 중국 등의 전략적 행보도 분주해질 전망입니다.

또 종전 이후 밀착한 북러 관계에 어떠한 변화가 있을지, 미북 관계에는 새로운 움직임이 있을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천소람입니다.

에디터 노정민,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