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한이 최고인민회의를 계기로 코로나19, 즉 신형 코로나바이러스(비루스) 감염증 사태로 인한 경제목표 하향조정을 시사한 것과 관련해 북한 내 감염병 여파가 크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됐습니다.
서울에서 홍승욱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 11일 노동당 정치국 회의에 이어 다음 날 예고보다 이틀 늦게 최고인민회의까지 개최한 북한.
한국의 전문가들은 북한이 회의 내용을 통해 북한 내 코로나19, 즉 신형 코로나바이러스(비루스) 감염증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보여줬다고 분석했습니다.
임수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이 잇달아 열린 두 회의를 통해 언급한 북한의 경제 상황에 주목했습니다.
먼저 열린 정치국 회의에서 신형 코로나 사태로 인한 어려움을 언급한 뒤, 이른바 '일부 정책적 과업'에 대한 조정·변경을 논의했다고 밝히며 기존에 제시한 경제 목표에 대한 하향 조정을 시사했다는 것입니다.
임수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북한연구실장: 정치국 회의 공동결정서를 보면 현 상황에 맞게 경제·국방·건설 사업을 조정하겠다는 말이 나옵니다. 여기엔 구체적인 내용이 나와 있지 않지만, 최고인민회의 결과를 보면 이와 관련한 몇 가지 내용이 있습니다.
임 실장은 이 같은 경제목표 조정이 잇달아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 구체화됐다며, 먼저 건설사업 추진 우선순위를 바꾼 점을 언급했습니다.
최고인민회의에서 내세운 중요 대상건설 강조점이 기존의 원산·갈마 관광지구나 삼지연군 개발 등에서 보건 부문의 평양종합병원 건설과 에너지 절약을 위한 김책제철소 산소분리기 설치로 이전됐는데, 이는 신형 코로나로 관광 수요 감소가 예상되자 당장 급한 보건과 에너지 절약 사업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란 설명입니다.
또 북한이 지난해 당 전원회의에서 언급한 이른바 '10대 전망 목표'가 이번 최고인민회의에서 구체화될 것으로 예상된 것과 달리 아무런 언급이 없었던 것도 올해로 마무리될 예정인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조차 달성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새로운 목표를 논의할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 드러난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이어 자금과 자원의 효율적 사용을 위한 중앙집권적 통제를 계속 강조하는 것도 부족 현상 해결을 위해 기업과 지방에 분산시켰던 자금과 자원을 중앙에 재집중시키려는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임수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북한연구실장: 북한이 경제계획, 중앙집권화를 자꾸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경제개혁 조치의 후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방이나 기업 단위에서 자율적으로 하려는 것을 막고 부족한 자원을 중앙에 집중시켜야 하는 상황입니다. 경제개혁의 핵심은 분권화인데 자꾸 후퇴하는 조짐이 보이는 것입니다.
임 실장은 이 같은 현상의 원인으로 대북제재 지속으로 인한 기존의 경제난에 신형 코로나 사태가 겹쳐 상황이 크게 악화된 점을 들었습니다.
특히 기존에 외화획득 목적으로 추진해오던 관광개발 사업이 신형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는 만큼 계획을 불가피하게 재고했을 것이란 설명입니다.
임 실장은 그러면서 비상시국에서 열린 이번 최고인민회의에서 나온 결정이 신형 코로나 사태가 극복될 때까지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이번에 열린 회의들이 북한 내 신형 코로나 사태의 심각성을 보여줬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습니다.
11일 열린 정치국 회의에서 신형 코로나를 제1안건으로 다뤘고, 회의결과 보도문의 절반 이상을 신형 코로나 사태 대응 관련 내용에 할애한 점을 그 근거로 들었습니다.
조 선임연구위원은 지난해엔 최고인민회의에서 시정연설까지 했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번에는 불참한 것도 신형 코로나 우려 때문으로 추정했습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정은 위원장이 이번 최고위원회의에 나와 시정연설을 했어야 합니다. 뚜렷한 성과도 없는 가운데 자신의 위상을 강화하려는 행보를 보이고 있는데 회의에 안 나올 이유가 없습니다. 최고인민회의에서 체제 내외에 위상 강화와 내부 결속을 도모했어야 하는데 안 나왔단 것은 신형 코로나 사태를 우려해 실내 행사에 불참한 것으로 보입니다.
조 선임연구위원은 이번 회의들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확인된 북한 내 인사이동과 관련해 가장 눈에 띄는 점으로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의 위상 강화를 들었습니다.
김여정이 지난해 당 전원회의 이후 당 제1부부장에 임명됐고, 이번에는 정치국 후보위원에 복귀하면서 정치적 위상과 영향력을 재확대했다는 것입니다.
지난달 한국 정부를 비난하는 내용의 담화를 낸 직후 다시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등장했다는 점에서 이전보다 그 위상이 훨씬 강화됐을 가능성도 제기했습니다.
여기에 김여정과 함께 정치국 후보위원에 진입한 데 이어 최고인민회의에서는 국무위원으로도 선출된 리선권, 이틀 연속 모습을 드러내며 건재함을 보인 김영철까지 지난해 하노이회담 결렬 이전 미북·남북 관계를 책임졌던 인사들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는 설명입니다.
한국 정부도 이날 북한이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신형 코로나 대응과 대북제재 '정면돌파전'을 위한 법령 처리와 예산확충에 초점을 맞췄다고 분석했습니다.
한국 통일부는 이날 배포한 북한 최고인민회의 관련 참고자료에서 북한이 재자원화법, 원격교육법, 제대 군관 생활조건 보장법 등 현 상황 대응에 필요하고 주민생활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법령들을 일괄처리 했다며 이 같이 평가했습니다.
통일부는 이날 기자설명회에서도 북한이 신형 코로나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른 많은 나라들과 같이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며 대북 인도적 협력과 보건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한국 정부의 기본 입장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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