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한이 개성공단 설비를 무단으로 사용해 전기밥솥 등을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생산된 밥솥은 평양 백화점과 상점에서 판매된다는 겁니다. 북한 내부 소식, 손혜민 기자가 보도합니다.
남북 경제협력사업의 하나로 조성돼 2004년 첫 생산품 반출을 시작으로 운영돼왔던 개성공단은 지난 2016년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로 중단됐습니다. 한국 기업들은 생산설비 등을 개성공단에 그대로 두고 철수했는데, 북한이 그것을 무단 가동하면서 ‘개성공업지구법’을 위반하고 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평양시의 한 소식통은 11일“개성공단에서 (북한이) 전기밥가마(전기밥솥)를 생산한 지는 몇 년 됐다”며“평양에서도 개성공단 (전기)밥가마가 판매된다”고 자유아시아방송에 전했습니다.
소식통은 “전기밥가마는 (한국)쿠쿠전자기업이 개성공단에 두고 간 설비와 원자재를 이용해 생산하는 것”이라며“생산인력은 개성공단이 운영될 때 남조선의 쿠쿠전자기업에서 근무하던 개성주민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소식통은 또 “개성공단에서 만든 전기밥가마는‘비음성 압력밥가마’라는 상표를 붙이고, 화물트럭에 실려 평양백화점과 상점 등으로 유통돼 외화로 (가격이 표기돼) 판매된다”고 덧붙였습니다.
현재 평양백화점에서 ‘비음성 압력밥가마’판매가격은 6인분 압력밥가마는 50달러(북한돈 41만원), 10인분 압력밥가마는 80달러(북한돈 65만6천원)로 알려졌습니다. 평양에는 해외에서 수입된 명품을 외화로 전문 판매하는 대성백화점과 북한에서 생산되거나 해외에서 수입된 대중 생필품을 외화나 내화로 판매하고 있는 평양제1백화점, 광복백화점 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같은 날 평안북도의 또 다른 소식통은 “개성공단 중단 이후 3년 정도는 남조선기업들이 두고 간 생산설비와 원자재 등이 현장에 그대로 보관되어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대북제재 강도가 높아지며 외화벌이 창구였던 개성공단 재개가 희망이 안 보이자 북한 당국은 한국기업들이 개성공단에 두고 간 완제품들을 전부 빼돌려 국내외 시장에 판매했는데, 당시 대표적인 물품이 바로 쿠쿠밥솥이었다는 게 소식통의 전언입니다.
지난 2018년 8월 RFA 자유아시아방송은 북한의 한 군부 무역회사가 개성공단에 한국기업이 두고 간 전기밥솥 완제품 수천 여대를 중국 단둥으로 밀수출한 소식을 서류와 함께 보도한 바 있습니다. (기사링크: https://www.rfa.org/korean/in_focus/food_international_org/20180808_3-08082018082439.html)
소식통은 “코로나 사태로 국경이 막히며 경제난이 시작되자 중앙에서는 개성공단에 남아있던 생산설비와 버스, 원자재 등을 활용하도록 허용했다”고 언급했습니다.
북한 당국이 공식적으로 개성공단 설비와 원자재는 물론 버스까지도 활용하도록 허용하면서 개성공단 근로자들의 출퇴근에 이용되던 대형버스는 현재 평양시 공장기업소 근로자들의 출퇴근버스로 이용된다는 설명입니다.
소식통은 “특히 전기밥가마는 평양시 가정마다 사용하고 있는 주방제품이어서 수요가 많다”면서“이에 당국은 개성공단에 남조선기업이 두고 간 전기밥가마 생산설비와 원자재를 이용해 전기밥가마를 생산하고, 이를 평양상업망으로 유통해 판매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이 개성공단 설비 등을 무단 사용하는 것은 남북 간 합의는 물론, ‘개성공업지구법’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투자자의 권리와 이익 보호 규정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입니다.
앞서 지난 11일 한국 통일부 권영세 장관은 북한이 여러 차례에 걸친 우리 정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개성공단 내 우리 기업들의 설비를 무단으로 사용하여 재산권을 침해하고 있는 것은‘남북사이의 투자보장에 관한 합의서’와 북한의‘개성공업지구법’을 위반한 것으로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북한에 있음을 밝힌다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2016년 한국 정부의 결정으로 폐쇄된 개성공단은 이후 대폭 강화된 유엔 대북제재와 미국의 독자제재에 따라 제재해제가 먼저 이뤄진 후에라야 재가동이 가능하다는 지적입니다.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응해 2016년 3월 채택된 유엔 안보리 결의 (2270) 이후 5차례의 대북제재 결의와 미국의 대북 독자제재는 식량 등 인도적 지원 물품을 제외한 남북 간 물자 반입과 반출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자 손혜민,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