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시장화로 시민사회 일부 기반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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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한 내 시장이 확대되고, 시장을 통한 개인들의 상업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시민사회(civil society)의 일부 기반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김소영 기자가 보도합니다.

미국 평화연구소(USIP)는 23일 북한 내 시장 활동과 시민사회 구성 요소 생성의 상관성을 다룬 전미북한위원회(NCNK) 보고서에 대한 온라인 토론회를 개최했습니다.

보고서는 권위주의 사회인 북한에서 시장활동 자체가 시민사회의 형성으로 직접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시장 참여자들간 상호작용을 통해 시민사회 구성 요소들이 싹틀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보고서는 구체적으로 북한 사회에서 시장화를 통해 시민사회를 구성하는 사회자본(Social capital), 호혜성(Reciprocity), 신뢰 연결망(Trust network), 공유 규범(Shared norm)이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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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IP가 23일 개최한 온라인 화상회의에 참석한 북한 전문가들. 셀레스트 애링턴 조지워성턴대 부교수(사진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앤드류 여 카톨릭대 교수, 저스틴 헤이스팅스 교수, 백지은 하버드대 밸퍼센터 연구원, 프랭크 엄 USIP 선임 연구원. /USIP 화상회의 캡쳐


사회학에서 '사회자본'은 사회공동체 구성원 간 협동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 규범과 신뢰를 말합니다.

보고서의 공동저자인 앤드류 여(Andrew Yeo) 미 카톨릭대 교수는 시장 참여자들간 장기간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협력적 관계가 만들어진다고 설명했습니다.

상인과 구매자 또는 상인과 시장을 관리하는 당 관계자 등 시장 참여자들간 정기적인 상호작용이 오랫동안 이뤄지면서 지속적이고, 상호 이익이 되는 사회자본 형성을 통해 협력적 관계가 형성된다는 게 여 교수의 설명입니다.

여 교수는 '호혜성'과 관련해 시장 참여자들간 연결망과 손전화 보급이 확대되면서 시장화 초기 때와 달리 원거리 또는 후불결제와 같이 신용을 바탕으로 한 거래로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판매자와 구매자 간 상호작용 확대는 가격, 운송경로, 판매자나 제품의 평판 등 시장 활동을 유지시키는 정보들을 생성하고, 이러한 정보들이 신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시장 참여자들 간 연결망을 통해 공유된다고 덧붙였습니다.

여 교수는 이러한 정보가 시장활동으로만 제한되지 않고 확대될 경우 시민사회의 초석을 다질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앤드류 여 교수: 만약 시장 참여자들간 나누는 정보들이 상품 및 가격에서 나아가 정치 동향, 지역 소식, 소문들과 같은 시장 외 정보로 이어질 경우 시장 활동은 제한된 시민사회의 초기 모습을 간접적으로 형성할 수 있습니다.

보고서의 또 다른 공동저자인 저스틴 헤이스팅스(Justin Hastings) 호주 시드니대 교수는 시장 활동을 통해 참여자들이 암묵적으로 공유하는 규범도 창출된다고 말했습니다.

판매자나 구매자가 신용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 경우 평판이 훼손되거나 이에 대한 보복성 행동이 발생하면서 자연스럽게 시장 공동체를 위해 시장 참여자들간 지켜야 할 규칙으로 발전한다는 게 헤이스팅스 교수의 설명입니다.

그는 시장활동에 대한 법체계가 미흡한 북한에서 시장 참여자들 간 부정행위(cheating)를 최소화하기 위해 제3자를 관여시키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헤이스팅스 교수: 지난 몇년간 발견한 흥미로운 점은 비즈니스를 할 때 서로 알지 못하더라도 믿을 수 있는 제 3의 인물을 소개한다는 겁니다. 이들은 반복적으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부정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제3의 인물은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거나 연결망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시장화를 통한 시민사회 형성은 북한 당국의 관련 장려, 허용, 통제 정책에 따라 큰 제약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도 따랐습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백지은 미 하버드대 밸퍼센터 연구원은 북한 사회의 특성상, 시장화를 통해 발생하는 작은 변화들로 인해 성숙한 시민사회가 형성될 수 있다는 지나친 낙관론은 금물이라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