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한이 수십 년간 유럽 국가들에 부채를 상환하지 못하면서, 일부 국가들의 경우 원금에 이자가 더해져 북한의 부채 규모가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향후 채무의 상당 부분을 탕감해 주지 않으면 북한이 변제 의사를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됐지만, 영국과 체코 등은 부채를 탕감해줄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지정은 기자가 보도합니다.
영국 재무부는 최근(8일) 홈페이지를 통해, 지난 8월 31일 기준 북한이 영국 수출금융청(UKEF)에 상환해야 할 부채가 총 586만 파운드(미화 약 788만 달러)에 달한다고 밝혔습니다.
해당 부채는 약 50여년 전 발생했지만 북한은 여전히 채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1972년 영국의 GKN사가 북한의 석유화학단지 사업에 786만 파운드를 투자했지만, 북한은 총액의 20%와 6개월분 할부금만 상환한 것으로 알려졌고 당시 수출금융청이 업체에 피해액을 보상하면서 해당 부채가 발생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영국 수출금융청 측은 17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지금까지 북한이 부채 탕감을 요청한 적은 없으며 수출금융청 또한 586만 파운드를 탕감해 줄 계획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So far, North Korea has not made any requests for debt relief, and UKEF does not have any plans to cancel the £5.85m debt.)
영국 정부는 과거 북한의 부채를 탕감해줄 계획을 세웠지만 남북한 통일 이후 회수 가능성을 고려해 이를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의 대외 부채 총액은 원금에 이자가 더해지면서 그 규모가 점차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체코 재무부 측은 15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현재 (북한의) 부채는 미화 약 270만 달러와 1700만 (구소련) 루블에 달한다"며 "아직까지 북한의 상환은 없었다"고 강조했습니다. (The current debt is estimated at approx. 2,7 mil. USD and 17 mil. Clearing Roubles.)
북한의 부채 총액은 미화 달러로 책정된 금액만 고려해도 그 규모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난 2017년 체코 재무부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개한 북한의 부채는 260만 달러로, 4년 사이 부채 총액은 10만 달러 증가했습니다.
해당 부채는 과거 체코슬로바키아 공산정권 시절 수송기계와 전동차 등의 수입대금을 갚지 않으면서 발생했습니다.
체코 재무부는 또 북한이 인삼이나 아연 등 현물로 상환한 적이 있느냐는 자유아시아방송(RFA) 질의에, 북한은 어떠한 형태로든 상환한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There has been no payment from North Korea yet in any currency.)
지난 2010년 한 체코 일간지는 북한이 부채의 일부를 인삼으로 갚겠다고 체코 재무부에 제안했지만, 체코 측이 인삼 대신 북한산 아연으로 상환하도록 북한을 설득했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당시 해당 현물 상환은 무산된 것으로 풀이됩니다.
체코 재무부는 이어 "최근 몇 년 동안 부채를 탕감해달라는 북한 측 요청도 없었고, 북한의 부채를 탕감해 줄 계획 역시 없다"며 "지난 2009~2010년 마지막으로 이뤄졌던 양자 협상이 성공적이지 않았고, 이후 더 이상 (북한 측과) 논의는 없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지난 2010년 북한은 체코에 채무액의 95%를 탕감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의 채무 증가와 관련해 한국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최유정 전문연구원은 17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북한이 1990년대 이후 부채를 상환하지 않으면서 신규 대출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며 대신 이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최유정 연구원: 서방 국가들에 대한 부채는 원금이 늘어나는게 아니고 대부분 이자가 늘어나는 거거든요. 일부 국가 같은 경우에는 원금보다 이자가 더 많은 경우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또 다른 유럽 국가들인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스웨덴(스웨리예)의 경우 역시, 북한이 부채를 상환하지 않으면서 그 규모가 더 커지고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재무부는 향후 원금에 이자 등이 더해져 북한의 부채 총액이 증가할 가능성을 시사했습니다.
오스트리아 재무부 측은 15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북한의 부채는 2020년 12월 31일 기준, 약 1억6천100만 유로(미화 약 1억8200만 달러)에 달한다"며 "북한의 마지막 상환은 1990년대 이뤄졌다"고 설명했습니다.
재무부는 해당 부채 액수가 연체 이자를 반영하지 않는다며 "연체 이자 금액은 향후 상환 일자가 결정되면 정해질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The amount of late interest will be determined at the point of time when the date of repayment is fixed.)
북한의 부채는 오스트리아가 앞서 1970~80년대 사회기반시설 구축을 위한 물자를 북한에 수출하는 과정에서 발생했습니다.
오스트리아 재무부 측은 이에 대해 "북한 측에 정기적으로 상환을 요청하고 있다"며 "오스트리아는 북한의 빚을 탕감해 줄 계획이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Payment requests for the overdue debt have been sent regularly to the North Korean counterparts. Austria also has no plans to write off North Koreas debt.)
스위스의 경우, 스위스 수출신용기관(SERV)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12월 31일 기준 북한의 부채는 2억1천630만 스위스 프랑(미화 약 2억3천200만 달러)에 달합니다.
북한의 부채는 2018년 12월 31일 기준, 2억 1천 260만 스위스 프랑(약 2억2천800만 달러)이었지만 2년 사이 370만 프랑(약 4백만 달러)이 증가한 것입니다.
스위스는 앞서 북한과 2011년 채무조정 협정을 맺어 북한의 채무변제를 유예했지만, 수출신용기관의 2020년 보고서에 따르면 해당 협정은 2019년 말 만료됐고 양국은 향후 조치에 대해 아직 합의하지 못했습니다. (This expired at the end of 2019 and no follow-up arrangement has yet been agreed.)
앞서 스위스 수출신용기관은 2019년 "협정 갱신에 대한 협상이 진행 중"이라고 밝혔지만 결국 합의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관련해 스위스의 연방 국가경제사무국(SECO)의 파비안 마이엔피쉬(Fabian Maienfisch) 부대변인은 16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기밀상의 이유로 공식적인 양자 채무 관련 문제에 대해서는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For confidentiality reasons we generally do not provide detailed information about official bilateral debt issues.
스웨덴 무역보험기관(EKN) 역시 연례 보고서를 통해, 북한의 부채가 2019년 12월 기준 31억7천300만 스웨덴 크로나(미화 약 3억5천800만 달러)라고 밝혔습니다. 이는 1년 새 4억 2천만 크로나(약 4천 750만 달러)가 증가한 것입니다.
2019년 보고서는 또 부채를 상환하지 않는 4개국으로 북한을 비롯해 시리아, 베네수엘라, 짐바브웨를 명시하기도 했습니다.
북한은 앞서 1974년 스웨덴으로부터 볼보 자동차 1천 대 등을 수입했지만 대금을 갚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은 또 다른 유럽 국가인 핀란드와의 채무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한국 외교부가 공개한 지난 2019년 '핀란드 개황'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의 채무액은 약 2천420만 유로(미화 약 2천740만 달러)에 달합니다.
북한은 1972년 핀란드 메텍스(Metex)사의 펄프와 판지기기를 1억 5천만 마르카(과거 핀란드 통화) 어치를 수입한 후 대금 일부를 1986년까지 상환했지만, 여전히 채무가 남아있는 상황입니다.
해당 채무와 관련해, 북한의 외무성 북유럽 담당 박윤식 부장(Head of Unit)은 지난 2017년 핀란드 국영방송(YLE)과의 인터뷰에서 협상을 통해 빚을 탕감해준다면 이를 갚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박윤식 부장: 그 문제에 대해서는 제가 알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이제 앞으로 꼭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북한의 전통적인 우방인 폴란드와 러시아 등은 2010년대 이후 북한의 부채를 상당 부분 탕감해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폴란드 당국자는 2017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2012년 북한의 채무 432만 달러 중 39%인 170만 달러만 돌려받고 남은 빚을 청산해 줬다고 전했습니다.
러시아 측 역시 지난 2012년 북한이 러시아에 진 110억 달러의 채무액 중 90%를 탕감해 주고 나머지 금액을 양국 합작 사업에 재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최유정 연구원은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북한이 비교적 최근 러시아 등과 채무 조정에 나선 것은 이들이 부채를 탕감해 주는 방식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또 북한의 부채 상환과 관련해, 북한이 현재 대북제재 등의 영향으로 외화 수급이 어려워 어떠한 국가에도 빚을 갚을 가능성은 적다며 현물 상환도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최유정 연구원: 현물이라고 하는 것은 북한이 빚을 갚을 수 있을 정도의 경쟁력 있는 자원 혹은 노동자 파견일 가능성이 큰데 지금 다 제재로 막혀 있는 상황이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사실 상환이나 협상에 나설 유인이 북한도 없고, 상대국도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최유정 연구원은 또 2016년 이후 대북 투자나 북한과의 합작 사업 역시 대부분 대북제재 영향으로 중단돼, 해당 방식으로도 북한이 채무를 상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최 연구원은 이어 북한이 중국과의 경협 사업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제재가 완화되면 대중국 차관이 증가하는 지 여부도 주목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다만 현재 북한의 대중국 부채 총액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한편, 앞서 헝가리(웽그리아) 일간 '세계경제신문(Világgazdaság)'은 지난 8일 헝가리 정부는 지금도 북한이 누적된 채무를 상환하길 원하는 입장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북한이 헝가리에 진 빚은 현 시세 기준으로 미화 약 1천9백만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북한은 또 현재 동유럽 국가 루마니아에도 30년 넘게 부채를 상환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기자 지정은,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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