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경제건설총력 집중노선, 사실상 실행 불능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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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 북한 당국이 내건 경제건설총력 집중노선이 비핵화 협상의 부진과 대북제재로 인해 사실상 실행 불능 상태가 됐다는 분석이 제기됐습니다.

서울에서 홍승욱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해 4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전격 선언한 경제건설총력 집중노선.

하지만 이 같은 경제총력 선언이 비핵화 협상 부진과 대북제재의 지속으로 인해 사실상 실행불능 상태가 됐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한국 국가정보원 차장을 지낸 한기범 북한연구소 석좌연구위원은 한국의 국책연구기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8일 발간한 ‘북한경제리뷰 11월호’에 실은 논문을 통해 이같이 진단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 내에서 대북제재와 압박에 맞대응한다는 정치 논리가 중시됨에 따라 경제가 다시 심각한 모순에 빠지며 급격한 하강국면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습니다.

한기범 석좌연구위원은 북한이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경제 개선조치를 취했지만 오히려 이러한 조치를 실행할 여건은 선대 김정일 국방위원장 집권기보다 악화됐다고 분석했습니다.

대북제재가 심화돼 북한 경제에 대한 외부수혈이 막힘에 따라 경제난이 심화됐고 원자재와 연료, 외화가 부족해졌다는 겁니다.

한기범 석좌연구위원은 북한이 처한 이러한 현실을 ‘새로 도입한 기계에 연료를 넣지 못해 쓸모가 없게 된 상황’에 비유했습니다.

또 이 같은 위기의 반작용으로써 다시 개혁을 모색하는 상황으로 언제 반전될 것인지는 전적으로 북한의 지도자와 지도층, 그리고 주민의 역량에 달렸다고 진단했습니다.

이와 함께 이른바 ‘달러라이제이션(dollarization)’이 북한 내에서 확산되고 있고 이런 추세가 계속될 경우 북한 체제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습니다.

‘달러라이제이션’이란 외국화폐가 자국 내 통화의 기능을 완전히 대체하거나 함께 사용되는 현상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종규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경제리뷰’에 실린 ‘북한경제 달러라이제이션의 원인과 영향’을 주제로 한 대담에서 지금까지는 북한 당국이 외화 확보를 위해 중국 위안화와 미국 달러화 등의 유통을 묵인해 왔지만 이는 결국 북한 체제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 연구위원은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이후 북한 당국이 무리한 자국 화폐 발행을 자제하고 주민들의 외화 사용을 사실상 묵인하는 방법으로 ‘달러라이제이션’에 대응해 왔다고 분석했습니다.

또 주민들의 장마당 활동 등 시장경제 활동을 통제하지 않고 오히려 외화를 더 확보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한국개발연구원이 지난 2016년 탈북민 1천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2002년 이전 탈북한 응답자들 가운데 93%는 북한 원화를 주로 사용했지만 2013년 이후에 탈북한 응답자들의 절반 이상은 중국 위안화를 사용했습니다.

이 연구위원은 이렇게 ‘달러라이제이션’을 용인하는 것이 중장기적으로는 북한 체제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외화 의존도가 커질 경우 물가와 환율 변동성 때문에 북한 사회를 떠받치는 여러 체계가 갑자기 불안해질 수 있고 북한 경제의 주체성까지 훼손할 수 있다는 겁니다.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물가와 환율이 비교적 안정세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외화 의존도는 더 심화됐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과거에는 북한 주민들이 외화로 자산을 보유하는 데 그쳤지만 2009년 화폐개혁 이후에는 생활필수품과 식품 구입 등 일반적인 소액 거래에서도 외화를 선호하는 추세가 강해졌다는 설명입니다.

그러면서 사실상 외화가 원화를 대체하는 이 같은 현상이 거꾸로 물가와 환율 안정에 기여했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놓았습니다.

이어 북한 경제가 외화에 크게 의존하는 이 같은 국면에서는 갑작스럽게 위안화 등 외화가 변동하면 북한 경제가 불안해질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또 북한 주민들 간에 외화가 통용되는 현상이 장마당 등 비공식 부문을 기반으로 하는 만큼 북한 정권의 통치기반 약화와 북한 체제에 대한 위협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고 내다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