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지난해부터 더욱 강화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 국제기구들의 대북지원 감소로 최근 북한의 의료 환경이 더 열악해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나마 사정이 나은 평양 지역에서도 주사기를 재사용하는 실정입니다. 김소영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보건 및 의료 환경을 주제로 한 전문가 토론회가 29일 미국 워싱턴 DC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한 국제기구 대표들과 지원 관계자들은 대북제재와 대북 지원금 삭감으로 의료 물품, 인력 공급에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의료 기술 전수와 치료 등을 위해 그 동안 20차례 가까이 북한을 방문했던 키 박(Kee Park) 미국 하버드대학 의대 교수는 농촌 지역보다 그나마 시설이 좋은 평양의 대학병원에서조차 의료 물품을 재사용한다고 털어놨습니다.
박 교수 : 평양 의대 병원에서 환자들이 사용한 주사기, 의료 장갑을 다시 세척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평양이 이 정도 수준이라면 시골 지역은 어떨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박 교수는 의료 자원 봉사자들이 비자문제 등으로 북한 입국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상황은 더욱 어려워졌다고 덧붙였습니다.
오랫동안 북한을 지원해 온 국제기구들도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의료기구나 물품들의 북한 반입 자체가 어려워지면서 지금은 기본적인 식료품 지원에 주력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유니세프(UNICEF) 즉, 유엔 아동기금의 샤넬 마리 홀 사무총장에 따르면 지난 주 처음으로 유엔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로부터 북한에 보낼 의료 물품에 대한 승인을 거절 당했고, 그나마도 최종 승인까지 평균 6~8개월이 소요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북한 구호단체 ‘조선의 그리스도인 벗들’은 당시 최신 의료기기를 구매했지만 승인 후 발송까지 18개월이나 기다리면서 제때 사용하지 못했다고 토로했습니다.
국제기구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은 비핵화 협상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결국 미국이 정책적으로 대북 인도주의 지원을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유엔 산하 세계식량계획(WFP)의 존 브라우스(Jon Brause) 국장은 북한 내 각종 질병과 전염병에 대한 예방과 치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이 국제사회에 개방된다면 이는 국제적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의 수미 테리 선임 연구원은 미북 협상이 정체된 상황에서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 지원은 미국의 큰 양보없이 대화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전략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식량과 의료 부문 지원이 절실한 북한으로서는 국제사회의 도움을 반길 것이고, 미국 입장에서도 대북제재 완화나 평화협정 등 북한이 원하는 댓가를 주지 않는 대신 북한과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게 테리 연구원의 설명입니다.
테리 연구원 : 북한이 많은 압박을 받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미국 정부도 북한과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고 있습니다. 제한적 범위에서 인도주의 지원을 넓혀가는 것은 대북제재 완화나 해제 없이 미국 정부가 취할 수 있는 현실적인 해결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이날 전문가 토론회는 최근 북한의 열악한 보건 및 의료제도를 알리는 기록영상물(The Gathering Health Storm Inside North Korea) 상영회와 함께 열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