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서 다시 평가받는 서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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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김정일 정권의 희생양이 되어 처형당한 서관히 전 노동당 농업담당비서가 북한 주민들 속에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습니다. 북한 지식인들과 간부들이 과거 김일성 시대에 식량이 넉넉했던 것은 서관히 농업담당비서의 능력 때문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자세한 소식 문성휘 기자가 보도합니다.

김정일 시대에 간첩누명을 쓰고 공개 처형된 서관히 전 노동당 농업담당비서의 행적이 북한 주민들과 지식인들 속에서 새롭게 조명 받고 있습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북한의 식량난 때문에 주민들 사이에 서관히와 같이 능력 있는 일꾼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다는 판단입니다.

최근 연락이 닿은 함경북도의 한 소식통은 “원산농대 사건으로 ‘고난의 행군’시기에 처형된 서관히 농업담당 비서의 이름이 다시 거론되고 있다”며 “서관히가 농업비서로 있던 시기에 우리나라(북한)의 식량문제가 가장 여유로웠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모스크바 종합대학 출신인 서관히 전 농업담당비서는 1954년 평양시 인민위원회 농업부장으로 출발하여 1980년대 초 노동당 농업담당비서를 거쳐 북한의 농업부문에 한평생을 바친 일꾼입니다.

그는 ‘고난의 행군’이 한창 진행되던 1996년 5월, 120톤의 화학비료를 친척을 통해 빼돌렸다는 혐의로 구속되었고 이듬해인 1997년 9월에는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평양시 주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처형당했습니다.

서관히 농업담당비서는 김정일 정권이 저지른 수많은 살인행위들 가운데서 첫 희생양이라는 점에서 당시 북한 사회에 던진 충격이 컸고 그가 간첩이었다는 주장도 너무나 터무니없는 것이어서 주민들 속에서 오랫동안 음모론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이런 서관히 농업담당비서의 이름이 다시 세상에 떠오르게 된 것은 지난 6월, 북한의 유명대학인 원산농업대학에서 있은 사건 때문이라고 소식통은 주장했습니다.

원산농업대학의 제대군인 학생 3명이 서관히 농업비서 시대에 식량이 제일 넉넉했다는 점을 발견하고 과거 신문과 출판물들을 통해 서관히 비서와 관련된 자료들을 추적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수상한 행동은 곧 도 보위부에 파악됐고 불의에 대학생들의 기숙사를 수색한 보위원들이 이들 학생 3명을 모두 연행해 갔다는 전언입니다.

소식통은 “그들이 서관히 농업비서의 업적에 대해 연구했다는 소식이 대학생들을 통해 전국으로 퍼졌다”며 “그 후 평양시를 비롯한 도시 주민들은 물론이고 대학생들과 지식인, 간부들까지도 서관히를 다시 평가해야 한다는 말을 노골적으로 하고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이와 관련 함경북도의 또 다른 소식통은 “식량난이 하도 오래 지속되다보니 탁월한 농업전문가였던 서관히 비서를 다시 평가하자는 것”이라며 “사람들이 ‘지금 같은 때에 서관히와 같은 인물이 1명만 있어도 이렇게까지 식량난을 겪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