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지난 2016년 북한에 억류됐다 1년 반 만에 미국으로 송환된 후 엿새만에 숨진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유족이 지난해 말에는 미국의 자금결제 업체 페이팔(PayPal)에 북한과 관련된 계좌 정보를 요청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는 북한의 숨겨진 자산을 찾기 위한 그들의 끈질긴 노력의 일환이란 지적입니다. 보도에 한덕인 기자입니다.
아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미국 연방법원에서 북한을 상대로 낸 손해 배상 소송에서 승소한 오토 웜비어의 유족이 작년 말 전 세계적으로 간편한 방법으로 온라인 결제 수단을 제공하는 미국 기업 ‘페이팔’에 북한과 연계된 계좌 관련 정보를 요청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웜비어 유족을 대리하는 맥과이어우즈 법률사무소가 지난 9일 미국 워싱턴DC 연방법원에 제출한 ‘보호 명령’ 요청서에 따르면 승소 판결의 원고인 오토 웜비어의 부모 프레드, 신디 웜비어 씨는 지난해 11월 8일, 페이팔에 ‘제3자 소환장’(third-party subpoena)을 보내 페이팔이 소유하고 있는 특정 정보(certain information in the possession of PayPal)를 요청했습니다.
또 앞서 원고와 페이팔의 변호인단 간 관련 협의가 이뤄졌고, 페이팔은 특정 정보의 보안 유지를 위해 법원 측에서 ‘보호 명령’ 승인이 내려지는 조건에서 소환장에 상응하는 정보를 원고 측에 제공하는 데 동의했다고 명시헀습니다.
현재 공개된 연방법원 기록에 따르면 지난 9일 워싱턴DC 연방법원은 해당 요청서에 대해 미비서류 등 일부 절차상 하자를 이유로 승인을 반려한 상태로 나타났습니다.
법원 측은 다만 이전에도 이번과 유사한 원고 측의 승인 요청이 거절된 경우가 있었지만 문제점을 보완해 며칠 안에 다시 승인을 받은 사례들을 참조할 것을 권했습니다.
앞서 워싱턴 소재 법률사무소의 연방정부 관련 업무를 처리해온 익명을 요청한 한 변호사는 10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웜비어 유족의 ‘보호 명령’ 신청이 최종적으로 기각된 것은 아니라며, 웜비어 유족의 법률대리인 측에서 미비 서류를 보완해 다시 제출한다면 승인 결정이 나올 여지는 충분하다고 내다봤습니다.
미국 워싱턴 한미경제연구소(KEI)의 트로이 스탠가론 선임국장도 10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페이팔이 웜비어 유족에 비협조 의사를 전하거나 아직 공개되지 않은 걸림돌이 없다면 해당 요청에 대한 법원의 재검토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고 전했습니다.
스탠가론 선임국장은 그러면서 보호명령 요청서를 읽어본 결과, 웜비어 측에서 승소 판결을 집행할 수 있도록 돕는 북한 관련 정보를 페이팔이 갖고 있을 것으로 보는 상황임을 짐작케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것이 반드시 즉시 자금 이체로 이어지지는 않겠지만, 웜비어 유족과 그들의 법적대리인에게 잠재적으로 페이팔 시스템 내에 북한 자금이 존재하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문서와 정보를 제공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스탠가론 선임국장은 페이팔을 통해 북한이 불법자금 이전 및 자금세탁 등을 추진했을 가능성에 대해선 “전부터 북한은 신분위조 등 다양한 수단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자금을 이동시킨 바 있다”며 “북한이 어느 순간부터 페이팔을 전통적인 은행 체계에서 벗어나 자금을 송금하거나 보관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했다 해도 놀라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북한이 연계된 것으로 간주되는 정보가 있다 해도 해당 거래 내역에는 위장된 신분이 사용됐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추가적인 세부 조사가 수반돼야 할 것으로 관측했습니다.
스탠가론 국장은 웜비어 유족이 최근 페이팔에 북한에 관한 정보를 요청한 것은 지난 승소 판결 이후 이어지는 “긍정적인 조치의 일환”이라고 본다면서 이는 향후 북한의 불법 자금망을 파악해 제재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스탠가론 선임국장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북한은 가짜 계좌나 다른 수단들을 활용해 그들의 활동을 감추려 해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모든 것이 합리적인 수단을 통해 북한이 오토 웜비어 씨에게 저지른 일에 대한 대가를 치루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북한의 불법 자금 유통망을 파악하고 압류하는 웜비어 유족의 노력이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달 미국 뉴욕 북부 연방지방법원은 뉴욕주가 압류해 둔 북한 조선광선은행 동결 자금 24만 달러를 유족에게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앞서 웜비어 부부는 2018년 4월 아들이 북한 당국의 고문으로 사망했다며 워싱턴DC 연방 법원에 11억 달러 규모의 배상금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고, 이에 미국 법원은 같은 해 12월 북한에 5억114만 달러를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기자 한덕인,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