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우리 생활] 경제와 서비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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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함께 잘살아 보는 방법을 고민해보는 RFA 주간 프로그램 ‘경제와 우리생활’ 시간 입니다. 이 시간에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세계 경제 지식을 알아보고 그것을 북한 현실에 효과적으로 응용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찾아 봅니다. 도움 말씀에는 경제 전문가로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객원 연구원 김중호 박사, 진행에는 정영 입니다.

기자 :김 박사님 안녕하십니까?

김중호 박사 :네 안녕하십니까?

기자 :오늘은 경제와 우리생활 37번째 순서로 북한의 서비스 실태에 관해 알아보겠습니다. 북한에 존재하는 봉사소의 종류나 숫자가 점점 많아지는 추세입니다. 그런 게 북한 경제에 좋은 건가요?

김 박사 : 계획경제체제가 마비된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 이후로 시장의 역할이 확대되는 현상이 나타났는데요, 그 중 특이한 것이 바로 서비스 활동이 많아졌다는 거죠. 서비스의 생산과 소비가 많아진다는 것은 당연히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만, 북한의 경우엔 경제체제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가운데 인민들이 자발적으로 생존을 위해 만들어낸 경제활동이기 때문에 그것이 경제변화를 어떻게 추동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개인 주도로 진행되는 서비스 활동과 국가 주도로 진행되는 서비스 활동에는 좀 차이가 있겠는데요. 우선 인민 주도의 서비스 활동에 대해 살펴보면, 인민들은 먹고 살기 위해 필요한 서비스를 스스로 만들어 내야 하기 때문에 품질이나 방식이 거친 측면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멀리서 물건을 실어 오기 위해 트럭을 빌리거나, 물건 값을 치르기 위해 타지에 있는 사람에게 돈을 보내거나, 국수를 만들어 시장에서 팔거나 하는 행위들은 모두 인민들의 자발적 서비스 행위들이죠. 그러기 때문에 서비스가 안정되지 못하고 서비스의 품질이 낮은 상태를 보이게 되는 겁니다. 정 기자님도 북한에 있을 때 다양한 서비스를 목격하거나 들어서 아실 텐데 그 실태에 대해 말씀해주시죠.

기자 :네, 북한에서는 서비스란 말이 1990년대 중반부터 생겨나기 시작했는데요. 자본주의 상업적 서비스 형태가 중국이나 남한에서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서비스란 말이 고착되기 시작했습니다. 자동차의 경우, 사람을 태우거나 짐을 나를 때 '서비차'라고 부릅니다. 서비차는 '서비스와 차'가 서로 합성된 단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김 박사 :서비스란 말은 노예라는 단어에서 파생되었다고 하지요. 노예가 주인을 충성스럽게 섬긴다는 의미가 서비스의 어원에 담긴 것인데요. 물론, 현대에 와서 서비스가 노예 봉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만큼 고객들을 존중하고 고객의 만족을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는 의미가 들어가있는 것 같습니다.

기자 :제가 북한에 있을 때는 자본주의 상업적 서비스가 유입되기 시작할 때였습니다. 그때가 2000년 초였으니까요. 그러나 최근 나온 탈북민들의 말에 따르면 북한도 많이 변했습니다. 중국에서 각종 서비스 형태들이 북한에 생겨나기 시작했는데요. 우선 목욕탕과 마사지, 합의제 식당 등이 평양과 큰 도시에 집중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경험한 것을 말한다면 우선 1980년대에는 인민봉사망이 크게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국영식당 이라고 해봐야 국수집, 1식당, 2식당 이렇게 도시에 한 두 개씩 있었거든요. 그때는 ‘량권’이라는 식량배급표를 내야 식당에서도 밥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량권’이 없는 사람들은 식당에서 밥을 먹기도 어려웠습니다. 왜냐면 길거리에서 음식을 팔면 그게 자본주의 요소라고 안전원들이 쫓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이 식당에서 밥을 얻어먹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백화점, 상점 판매원들의 봉사태도도 쌀쌀맞았습니다. 왜냐면 국가 물건을 파는 것이기 때문에 판매원들이 열심히 팔지 않아도 되고, 그냥 배급 받고 월급 받고 일하는 한마디로 말해서 ‘판매 노동자’였기 때문에 열심히 팔지 않았죠. 그리고 국영 식당 서비스 하는 사람의 경우, 10그릇 파나 100그릇 파나 월급은 똑 같았기 때문에 별로 열심히 음식을 팔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국영 봉사망이 거의 폐업 되다시피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개인들이 돈을 투자해서 장사를 하고, 또 물건을 팔기 시작하자, 북한당국도 자본주의 상공업이 발전되는 것 같으니까, “국가에 소속되어 하라”하고 지시를 했습니다. 그래서 개인 상인들은 ‘수매 상점’이나 공장기업소가 운영하는 상점에 적을 두고 수익활동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김 박사 :북한과 같은 계획경제체제 내에서 서비스 사업이 등장했다, 그리고 확장되는 것 자체는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북한의 서비스 사업들 대부분이 국가 주도로 만들어졌고 평양과 같은 대도시에서 시범적으로 운행되고 있고, 일부 권력층 위주로 소비되고 있다는 특징을 보이고 있죠. 아무튼 새로운 상업활동이 서비스 영역으로까지 확대되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기자 :북한정부가 평양에서 벌이는 서비스 사업들을 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는 것들과 매우 유사한 게 많은데요. 지난 10년간 김정은 정권이 식당이나 카페, 미용실, 사우나, 물놀이장, 스키장, 그리고 백화점, 편의점 등 여러 서비스 시설들을 계속 지어왔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스위스에서 유학하지 않았습니까,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진면모를 다 경험했다고 볼 수 있거든요.

김 박사 :김정은 위원장이 권력을 승계하던 시점인 2012년에 평양 릉라인민유원지 준공식에 참석해 고모 김경희와 함께 놀이기구를 타는 모습이 전세계에 방송되었습니다. 그래서 외부세계에 매우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북한도 놀이기구나 서비스 시설들을 만드는 것에 관심이 있구나 하는 메시지가 나오는 것 같아서 많은 사람들이 주목을 했었지요.

기자 :그런데 북한 정부가 주도하는 서비스 사업이 시장주도적인 성격의 사업이 아닌 데, 이것이 정치경제적으로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김 박사 :우선 정치적으로 보면, 영도자의 탁월한 지도력 덕분에 평양 시민들이 그런 혜택을 누린다는 메시지를 던지기 때문에 정치 도구로 활용되는 측면이 있는 것 같고요. 그리고 경제적으로 보면, 계획경제체제가 인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가운데 특정 계층만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북한경제 활성화에 당장 기여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이런 평가를 하게 된 것 같습니다.

단지, 장기적인 면에서 보면, 인민들이 서비스를 직접 경험하거나 간접적으로 들어서 알게 된다면 점점 서비스의 확대를 요구하게 될 텐데요, 만약 정부가 그게 수익창출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게 되면 서비스 산업 투자에 더 관심을 보이게 될 겁니다. 즉, 정치적 과업으로 추진하는 게 아니라 경제적 효과를 위해 서비스 산업을 육성 발전시킨다면 향후 북한경제의 성장과 변화를 촉발하는 요소가 될 수 있겠지요. 당연히 북한 인민들 모두가 그런 서비스를 누릴 기회를 공평하게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기자 :오늘은 북한의 서비스 실태에 관해 살펴봤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북한 서비스 산업 발달에 필요한 구체적 방안들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기자 정영, 에디터 이진서,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