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우리 생활] 북한 시장화 음식 종류 다양해져

0:00 / 0:00

MC: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한의 현실과 앞으로 미래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는 RFA 주간프로그램 경제와 우리 생활 진행을 맡은 정영입니다. 오늘은 북한에서 빠르게 변하고 있는 음식문화에 대해 남한의 통일연구원 정은이 연구위원과 알아보겠습니다.

기자 : 안녕하세요?

정은이 연구위원 : 네 안녕하세요.

기자 : 북한에서는 지방에 따라 차이가 좀 있지만, 웬만한 도시에서는 음식의 가지수도 다양해지고, 샌드위치나 라면 등 즉석 음식도 있다고 합니다. 그동안 변화되어온 북한의 음식의 다양성을 좀 짚어보면 좋겠습니다.

정은이 연구위원: 혹시 기자님이 북한에 있을 때 어떤 음식이 떠오릅니까?

기자 : 네, 저는 북한의 장마당에 의존했던 세대이니까, 당시 장마당에 나가면 순대, 떡, 인조고기 등 재래식 시장에서 파는 음식이 전부였습니다. 술도 '농태기'라고 하는 개인들이 만든 밀주가 많았는데요. 물론 공장에서 만든 술도 있었지만 개인들이 만든 밀주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뭐 라면, 햄버거 같은 것도 판매된다고 최근 탈북한 이탈주민들은 이야기 하는데, 어떻습니까?

북한 식품 매대에 순대 , 떡볶이, 김밥, 짜장면, 카레 등장

정은이 연구위원 : 네 그런 것 같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북한이 식단이 많이 변한 것 같냐면 아마도 2010년을 기점으로 많이 변한 것 같습니다. 최근에 온 북한이탈주민들을 인터뷰해보면 최근에는 많이 바뀌었더라구요. 특히, 1990년대 장마당이 확산되면서 생긴 두부밥이나 인조고기 이외에도 순대나 떡볶이, 김밥, 심지어 자장면이나 카레 등 새로운 메뉴가 등장을 했더라구요. 이러한 음식들은 또 장마당보다는 새로 생긴 식당이나 상점 들에서 아주 인기가 있더라구요. 장마당은 좀 오래된, 한마디로 재래식 장터라는 이미지가 상대적으로 강하더라구요.

기자 : 얼핏 말을 들어보면 남한의 편의점이나 대형 쇼핑몰에서 파는 음식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혹시 남한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올법한 장면 같은데요.

정은이 연구위원 : 네 그런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요즘 북한 젊은이들 같은 경우에는 더 남한의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거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남한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많이 모방하는데 단순히 옷이나 액세서리, 신발 같은 것 뿐만 아니라 이제는 식생활 까지도 비슷하게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런지 또 하나 신기한 게도 북한에서도 요즘에는 아침에 빵, 특히, 샌드위치를 먹는다고 해요. 새로운 식사 양식이 등장을 하고 있더라구요. 기자님 북한에 계실 때 이런 메뉴 혹시 들어 보신 적이 있나요?

기자 : 저는 이제 그 샌드위치라는 말은 한국에 나와서야 알게 되었거든요. 저는 지방에 살았기 때문에 평양에서 1990년대 당시 샌드위치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한국에 나오니까 24시간 하는 편의점 같은데 이렇게 조그만 비닐박스에 포장된 샌드위치를 보았습니다. 샌드위치가 빵 사이에 햄이나 계란 등을 넣고 거기에 마요네즈 같은 걸 곁들이고요. 그리고 채소를 그 사이에 넣어서 먹는 건강식이다 이런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관련기사

[경제와 우리 생활] 북한 농촌, 비닐하우스 농사 인기Opens in new window ]

[경제와 우리 생활] 북한 지방에도 매점 확장Opens in new window ]

비닐 하우스에서 야채 생산해 샌드위치 만들어

정은이 연구위원 : 네 맞아요. 그 샌드위치 하면 빵 사이에 오이나 토마토 그리고 양배추 같은 채소를 넣잖아요. 그래서 좀 건강스럽다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그리고 또 그것뿐만 아니라 단백질 같은 계란이나 햄 이런 것도 있고, 또 여기서 빠질 수 없는 거는 바로 마요네즈와 같은 소스 이런 것도 있고 그런데 "북한에서도 이런 재료를 넣고 샌드위치를 만들어요?"라고 물어보니까 그렇대요. 그래서 제가 좀 깜짝 놀랐어요. 왜냐하면 토마토나 오이나 이런 것들은 제가 얘기를 많이 들어봤지만 북한에서도 재배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중산층 이상이라면 계란도 먹고 특히 햄이나 마요네즈 이런 것들도 사용한다고 해서 좀 놀랐는데요. 북한도 이제는 비닐하우스를 키우는 개인 농가들이 많이 증가 했잖아요. 그래서 이런 양배추와 같은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소비자들이 원하는 그런 채소들을 재배하기 시작했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고 그뿐만 아니라 마요네즈 같은 경우는 북한에서 워낙 이제는 식재료들을 많이 수입을 하니까 마요네즈 같은 것도 중국에서 수입하다보니까 북한에서는 과거 배급제와 달리 새로운 식생활 문화가 생기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자 : 예 방금 말씀하신 중에 비닐하우스라고 하면 북한 청취자분들은 아마 잘 모를 거예요.북한에서는 온실이라고 말하거든요. 그러니까 비닐 박막으로 된 온실이라고 하지요. 샌드위치를 만들려면 아무래도 채소가 신선해야 되거든요. 그런데 북한에서는 저희가 있을 때만 해도 비닐 온실이라는 것은 협동농장에 1개 작업반씩 있었는데 뭐 연료가 부족하고 그리고 또 비닐박막이 없어서 야채 생산을 못 했거든요. 그래서 결혼식이나 환갑상이나 이런 오이나 토마토 그리고 사과 같은 난방 과일을 놓는 것이 굉장히 드물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온실 농가가 늘어나면서 그런 야채가 시장에 나오고 또 그 채소로 여러 가지 다양한 식품들을 만들 수 있는 그런 조건이 생겼다 이렇게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자 이것은 과거 배급제 시대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그런 음식들인데요. 그렇지만 남한 사람들에겐 샌드위치가 대중적인 그런 식품이지 않습니까?

정은이 연구위원 : 네 맞습니다. 그러니까 도시의 중산층 들에게는 Breakfast라고 아침 식사가 되는데요. 사실 이 샌드위치가 원래 남한에 있었던 게 아니라 서양 문화가 도입이 되면서 대중화가 된 식품 중에 하나입니다. 처음에는 누구나가 먹을 수 있는 그런 대중 식품이 아니었어요. 왜냐하면 서양에서 들어온 식품 문화다 보니까 초기에는 어떤 호텔이나 고급 레스토랑에서만 맛볼 수 있는 고급 서양 음식이었죠. 제가 어렸을 때도 보면은 샌드위치뿐만 아니라 빵 자체가 좀 많지 않았어요. 지금은 막 곳곳에 제과점이 많잖아요? 그런데 그때 당시만 해도 제과점이 흔치가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굉장히 다양한 브랜드들이 막 생겨났고, 또 대기업들도 진출하고 있잖아요. 그때만 해도 제과점은 흔하지 않았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빵들이 보급이 되면서 또 다양한 종류의 샌드위치가 만들어지면서 이 샌드위치가 하나의 대중 음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죠. 혹시 기자님 샌드위치의 기원이 어떻게 되시는지 아시나요?

기자 : 네, 저는 잘 몰라요. 그냥 "샌드위치 신세다" 그러면 누구와 누구 사이에 끼운 난처한 상황을 얘기할 때 "샌드위치 신세"라는 얘기를 하는데요. 아무래도 북한 청취자분들도 샌드위치 방송을 들으면서도 이 유래가 어떻게 됐는지 좀 궁금해하실 것 같아요.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좀 더 자세히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정은이 연구위원 : 네 이 샌드위치는 얇게 썬 빵 조각 사이에 육류나 채소 등을 넣어 먹는 빵을 말하는데 이 샌드위치는 18세기 영국의 4대 백작 샌드위치라는 사람의 이름을 따서 오늘의 샌드위치라고 부르게 됐다라고 전해 옵니다.

기자 : 이 샌드위치가 결국엔 사람의 이름이었네요. 먼저 발명을 했기 때문에 그 사람이 이름을 붙인 것 같아요. 참 재미있습니다.

정은이 연구위원 : 네 전설에 따르면 이 백작이 한동안 카드 게임(도박)에 정신이 팔려서 방을 떠날 수도 없고 밥도 먹지 않자 그의 하녀가 도박을 하면서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고안해 냈는데, 고기 두 조각을 빵 사이에 끼워 손으로 먹을 수 있는 간편한 음식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즉 바꿔 말하면 빵 사이에 고기도 들어 있고 채소도 들어 있고 또 때로는 치즈, 베이컨 이런 것들을 다 넣었으니까요. 그래서 친구들이 어떻게 하면 이 음식 이름을 지을까라고 고심을 하다가 그 친구의 이름을 따서 '샌드위치'라는 이름을 붙게 되었는데 바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샌드위치의 형태로 발전했다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기자 : 예 그렇군요. 오늘은 여기까지 이야기를 나누고요. 다음 시간에 또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자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정 연구위원: 네 고맙습니다.

경제와 우리 생활 지금까지 도움 말씀에는 남한의 통일연구원 정은이 연구위원이었습니다. 지금까지 RFA 자유아시아 방송 정영입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