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우리 생활] 북한 농민들 ‘농촌 신분제도’ 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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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한의 현실과 앞으로 잘살아 보는 방법을 함께 고민해보는 RFA 주간 프로그램 ‘경제와 우리생활’ 진행을 맡은 정영 입니다. 오늘 시간에는 북한의 도시와 농촌의 차이에 대해 남한의 통일연구원 정은이 연구위원과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기자 : 안녕하셨습니까?

정 연구위원 : 네 안녕하세요.

기자 : 북한에서 시장화가 진척되면서 도시 사람들은 달러나 위안화를 사용하는 등 생활수준이 많이 향상되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농촌 사람들은 생활이 매우 어렵다는 보도도 잇따라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도시와 농촌간 차이를 좀 짚어보는 게 어떻습니까,

정은이 연구위원 : 네, 최근 코로나 탓도 있지만, 국내외 안팎으로 부쩍 북한의 식량 문제에 많은 관심이 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언론이나 학계에서는 북한 식량 문제를 이야기할 때 배급제 또는 북한 주민 전체를 대상으로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보다도 저는 '격차'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식량문제도 도시와 농촌 간 격차의 측면에서 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기자 :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정은이 연구위원 : 왜냐하면 북한도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느리지만 '시장화',가 진행되었습니다. 바꿔 말하면 '도시화가 진행되었다는 의미인데요. 문제는 이 도시화의 혜택을 상대적으로 도시 주민은 향유하고 있지만, 농촌 주민들은 도시화의 혜택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의식주 등 모든 면에서도 차이가 큰데요. 식량 문제 또한 마찬가지인데요.

기자 : 어떻게 차이가 나나요?

정은이 연구위원 : 북한이탈주민 조사를 해 보면, 최근 도시 사람들은 시장의 발달로 인해 배급에 의존하지 않고도 구매력이 생긴 계층이 생겨났고, 또한 돈이 있으면 식량을 사 먹을 수 있는 시장이라는 공간도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도시 주민 중에는 육류나 수산물 등 부식물, 그리고 사탕 과자 등 간식의 섭취량이 많아지면서 오히려 곡물 섭취량이 줄고, 또한 아침에는 빵이나 우유를 먹는 사람들도 생겨났습니다. 동시에 외식 문화도 생겨났는데요. 북한에 기관 명의를 건 실질적으로 개인이 운영하는 식당이 최근 우후죽순 많이 생겨났다는 사실 또한 이러한 상황을 뒷받침하는데요. 물론 이것은 코로나-19 직전까지의 상황입니다. 그 이후는 아직은 잘 모르니까요.

기자 : 도시화로 인해서 도시 주민의 식생활이 전반적으로 향상되고, 또한 새로운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의미인데요. 그렇다면 농촌은 어떤가요?

정은이 연구위원 : 반면에 농촌은 더 빈곤해지고 식생활만 보아도 쌀은 커녕 이제는 옥수수 죽조차도 먹기 힘든 가정들의 비중이 도시에 비해 훨씬 많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식수나 전력 등의 측면에서도 노동 간 격차가 매우 크고요. 농촌은 아예 전기가 없는 지역도 많다고 합니다.

기자 : 농촌에 전기공급과 수도화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인데요. 김정은 위원장도 지방균형 발전에 대해 언급을 자주하는데, 왜 이런 차이가 극복되지 않는 걸까요?

정은이 연구위원 : 무엇보다 제도적인 측면이 크다고 생각이 됩니다. 농민들은 협동농장에 얽매여 있어야 하고, 즉, 매일같이 출근해야 하고, 신분제처럼 농장원들은 농촌을 벗어날 수도 없고, 그렇다 보면 현금 수입을 마련할 원천과 기회가 도시 주민에 비해 상당히 적다는 것입니다. 특히, 2010년 화폐교환 이후 격차가 더 확대되었는데요. 그 이유는 도시는 무역이나 해외 파견 노동자를 통해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인프라가 어느 정도 조성이 되어 있지만, 농촌은 외화를 마련할 원천이 미비해서 화폐교환 이후 북한에서 외화가 통용된다고 해도 여전히 달러가 뭔지, 위안화가 뭔지 모르는 농장원들이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농민들이 도시로 상품을 팔려올 때 10원이라고 하면, 북한돈 10원인줄 알고 "왜 이렇게 싸냐?"고 했다가, 도시 사람들이 보기에 "말도 않되는 소리를 한다"고 눈쌀을 찌프리곤 하는데, 이것이야말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도시와 농촌 간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자 : 그렇다면 외부사회에 사는 특히 젊은 계층은 농촌에 살기를 매우 꺼려하는데요. 북한은 우리보다 더할 수 있겠네요?

정은이 연구위원: 네 맞습니다. 실제로 북한 농촌 인구도 감소하는 추세인데요. 그 이유가 과거와 달리 지금은 많이 낳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구요. 즉, 최근에는 농촌에서 조차 자녀를 1명만 낳는 게 추세가 되었고요. 그렇지만, 농촌 인구가 감소하는 또 다른 이유는 제도가 아무리 엄격해도 농촌에 거주하는 것을 기피해서 어떻게든 뇌물을 써서라도 비농민 신분으로 바꾸는 사례가 늘어난 것도 하나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자 : 이와 관련해서 어떤 사례들이 실제 있습니까?

정은이 연구위원 : 예를 들면, 농장원들이 군대에 가면, 매우 어렵지만 비농민으로 전환할 기회가 생깁니다. 물론 비농민으로 전환한다고 해도 탄광이나 광산으로 가는 정도지만, 그래도 농민 입장에서는 훨씬 더 나은 조치지요. 왜냐하면 농장원 신분이라면, 우선 자식들에게까지 세습이 되니까요. 그러면 힘들게 자식들도 농촌에서 생활해야 하니 얼마나 힘들겠어요. 반면에 비농민으로 신분을 전환하면 직장에 8.3입금(돈을 바치고 출근 면제받는 편법)을 받치고서 시장 활동도 할 수 있고, 또 부부가 둘 다 농장원이면 매일같이 농장에 나가야 하는데, 비농민으로 신분이 전환이 되면 여성같은 경우 결혼을 하면 부양가족으로 되어서 직장에 나가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면 8.3입금을 직장에 받치지 않고도 비공식 부문에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차려지는 것이지요.

기자 : 북한 주민들의 생활이 대부분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또 그 와중에도 더 어려운 계층이 바로 농장원들이군요.

정은이 연구위원: 네. 농장원의 입장에서 보면 도시 주민의 생활은 그나마 더 나은 것이고, 불공정하다고 생각이 들겠지요. 이것이 단지 노력의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제도적인 측면에서 비롯된 것들이 많으니 어떻게 해서든 자식들 만큼은 농장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하는 것이지요. 문제는 그것도 뇌물을 받칠 수 있는 돈이 있거나 혹은 의식이 깨어 있어야 하는데, 농장원들의 경우, 문화적인 혜택도, 정보력도 도시 주민들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니 세상의 변화를 읽을 수 있는 힘이 농민들에는 한계가 있다고 할 수 있지요.

기자 : 네 북한에서 농민들은 말로는 사회주의 근로자라고 하지만, 자녀들은 대대로 농장원으로 살아야 하는 그런 세습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고 있는 현상은 변함이 없네요. 농민 자녀들도 도시 사람들처럼, 또 간부 자녀들처럼 기회를 균등하게 가질 권리가 있지 않겠습니까.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정 연구위원 : 감사합니다.

‘경제와 우리생활’ 지금까지 도움 말씀에는 남한의 통일연구원 정은이 연구위원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워싱턴에서 자유아시아방송 정영입니다. 안녕히계십시오.

에디터 이진서,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