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함께 잘살아 보는 방법을 고민해보는 RFA 주간 프로그램 '경제와 우리생활' 시간 입니다.
이 시간에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세계 경제 지식을 알아보고 그것을 북한 현실에 효과적으로 응용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찾아 봅니다. 도움 말씀에는 경제 전문가로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객원 연구원 김중호 박사, 진행에는 정영 입니다
기자: 김 박사님 안녕하십니까?
김중호 박사: 네 안녕하십니까?
기자: 오늘은 경제와 우리생활 22번째 순서로 북한 나선경제특구가 왜 좌절되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1998년 초에 나진선봉자유무역경제지대 명칭에서 자유가 삭제되고 나진선봉경제무역지대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김중호 박사: 아마 정권 차원에서는 정치적 논의를 통해 무역지대 관리 방향을 조정한 것 같습니다. 무조건 개방된 자유 특구가 아니라 통제 가능한 제한된 특구를 원했던 것 같아요. 아마 내부 토론을 통해 그런 조율을 했을 텐데요. 이런 에피소드가 있어요. 연변과학기술대학을 설립했던 재미동포 김진경 총장이 1998년 9월 나진선봉에도 과학기술대학을 설립해달라는 북한측 요청을 받고 북한을 방문했는데 가자마자 그만 북한 당국이 김진경 총장을 '간첩' 혐의로 억류해 버렸어요. 얼마 후에 풀려나긴 했습니다만 이 때문에 당시 남한 기업인들이 나진선봉 방문을 계획했다가 취소해버린 그런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기자: 네, 북한이 자유를 뺀 것은 아무래도 내부를 좀 더 의식한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면 나진선봉경제특구에 자유를 넣으면 북한 주민들에게 중국식 개혁개방을 한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거든요.
김중호 박사: 네 '고난의 행군' 시기 북한 경제가 처절하게 망가졌는데요. 그런데 북한경제가 어떻게 다시 회생할 수 있었는가 그 전환점을 찾는다면 첫째는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이었고 또 하나는 2010년 중국의 국가경제개발계획을 발표한 시점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북한이 남한과 중국 등 외부로부터 경제지원을 받으면서 경제가 다시 살아났는데요. 그것의 주된 동력이 바로 경제특구였지요. 2005년부터는 남북경제협력 차원에서 개성공단이 가동되었고 2009년부터는 북중경제협력 차원에서 나선경제특구 등 다양한 특구 활용 방안이 다시 조명을 받았습니다.
기자: 김대중 정부가 2000년 남북정상회담 대가로 5억 달러를 (북한에)지불했다는 재판 판결 소식도 나오지 않았습니까? 그때 북한 주민들은 그 돈을 받았는지는 몰랐는데 북한 열차에 유리 창문이 거의 없고 안장도 없었는데 그 돈이 수혈이 되면서 열차에 유리창도 끼우고 없어졌던 좌석도 다시 생기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경제가 다시 차츰 회복되는 기미를 보였습니다. 그때 북한 주민들은 어디서 자원이 생겨서 경제가 돌아가는가 하는 궁금증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말씀하신대로 북한 경제가 회생할 수 있었던 전환점은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이었고 중국의 국가경제개발계획 발표 등과 맞물리면서 탄력을 받았네요. 그리고 나선경제특구가 다시 탄력을 받은 것은 2009년 중국의 동북 3성 물류가 나진선봉쪽으로 향하는 대대적인 국가프로젝트가 진행되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김중호 박사: 중국이 동북3성의 창지투(장춘-길림-도문) 개발계획을 발표하고 추진했는데요. 그게 결국은 북한의 나진-선봉항 개발과 연계하여 추진했던 것이죠. 왜냐면 중국이 동북 3성 경제개발을 위해서는 동해 쪽으로 진출할 필요성이 아주 강했기 때문에 나진선봉항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중국은 동북지방의 지하자원과 농산물을 나진항을 통해 중국 남부지방이나 해외로 수출할 해양물류망을 확보하는 데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나진선봉 지역의 도로, 항구 등 인프라 개선에 중국이 기꺼이 투자할 이유가 있었던 거죠. 이처럼 동북3성과 북한 나선특구의 연계개발 차원에서 보면 북한 정부도 1995년에 직할시로 승격된 나선시를 2010년 1월에 나선특별시로 승격했고 『나선경제무역지대법』을 개정해서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준비했던 것입니다.
기자: 제가 2005년부터 2010년 사이에 취재 때문에 중국 출장을 자주 다녔는데요. 중국 길림성 도문, 연길, 훈춘 지방으로 다녔는데 그때 창지투 고속도로가 한창 건설되고 있었습니다.
정말 고속도로가 너무 컸습니다. 그래서 중국의 사업가들에게 문의를 해보았더니 중국이 장춘(중국 길림성 소재지)에서부터 도문까지 나가는 고속도로를 닦는 이유가 중국 동북 3성 지방 물류를동해로 운반하는 통로라고 하더라구요. 그러면서 중국 사업가들이 가장 강조했던 것은 무엇인가 하면 모택동 주석과 김일성 주석이 영토를 논의할 때 중국이 나진선봉까지 나가는 육로를 확보 했어야 했는데 그것을 하지 못했다고 후회했습니다.
만약 중국이 나진선봉까지 나가는 해양 통로를 확보했더라면 엄청난 개발이 있었을 것이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훈춘을 보면 러시아쪽과 북한 그리고 중국 이렇게 만나는 3각지대입니다. 거기서부터 약 100리 정도 되는 물류를 바다로 운반할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중국 동북 3성이 발전을 못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중국은 북한 나진항 선봉항을 자기들이 좀 쓰려고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을 접촉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2011년에는 장성택 당 행정부장이 앞장서서 중국정부와 '공동개발 공동관리' 방식의 경제특구방안을 추진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김정은 정권이 등장한 이후에는 2013년에는 장성택 부장이 '매국노'로 처형되면서 막을 내렸습니다.
김중호 박사: 네, 북한에 새로운 정권이 등장하면서 피바람이 부니까, 경제사업이 다 중단되었는데요. 2015년에 들어서는 김정은 정권이 '나선(나진·선봉) 경제무역지대 종합개발계획'을 발표하면서 다시 특구사업에 불을 붙였습니다. 물론 세금정책도 소개했고요. 외국 기업과의 합작 또는 합영이 가능한 북한의 8개 기업의 명단도 공개했고요. 산업구 개발 대상과 관광지 개발대상, 투자항목, 기업창설 절차 등에 대해서도 포괄적이고 구체적 내용을 담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당시 김정은 정권의 의도를 추측해보면 아마 2016년 7차 당대회를 계획하면서 경제비전을 제시하거나 경제성과를 만들기 위해 특구사업을 가다듬어 다시 내놓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기자: 그 이후 북한 무역에 종사하는 중국 사업가들의 말을 들어보면 특히 팬데믹 기간에는 나진선봉은 텅 비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 오늘은 시간관계상 여기서 마무리 하겠습니다. 북한의 경제특구 역사가 주는 교훈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김중호 박사: 간단히 두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북한의 경제특구 정책이 그 목적을 경제발전에 두지 않고 정치적 성과 만들기에 두었다는 것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태 경제특구나 경제개발구 어느 하나도 성공한 게 없는 데요. 경제는 정치적 논리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점이 북한 경제특구 개발의 역사적 교훈 같습니다.
둘째, 북한의 경제특구는 한국과 중국이라는 큰 시장 옆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성공의 요건을 갖추고 있습니다만 북한 정부의 자원과 인력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오히려 실패를 '창조'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외부세계와 군사 외교적 갈등을 빚고 있는 한 한반도 주변에 마련된 경제적 기회를 잡을 수 없다는 것 또한 북한의 경제특구를 통한 역사적 교훈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기자: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김중호 박사: 네 감사합니다.
기사작성 정영, 에디터 이진서,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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