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우리생활] 남북한 도로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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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함께 잘살아 보는 방법을 고민해보는 RFA 주간 프로그램 ‘경제와 우리생활’ 시간 입니다.

이 시간에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세계 경제 지식을 알아보고 그것을 북한 현실에 효과적으로 응용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찾아 봅니다. 도움 말씀에는 경제 전문가로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객원 연구원 김중호 박사, 진행에는 정영 입니다.

기자: 김 박사님 안녕하십니까?

김중호 박사: 네 안녕하십니까?

기자: 오늘은 경제와 우리 생활 25번째 순서로 북한 도로의 문제점, 그리고 앞으로 북한 도로를 현대화하고 산업 진흥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들이 어떤 것이 있을지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먼저 북한의 도로 문제점이 어떤 것이 있을까요?

김중호 박사: 북한 도로의 문제점으로는 무엇보다 포장율이 매우 낮다는 겁니다. 북한내 도로의 10% 정도만이 제대로 포장된 상태라고 평가받고 있는데요. 고속도로와 1급 도로를 제외하면 대부분 비포장 도로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자동차 운행 속도는 시속 30~40㎞ 정도 일텐데, 이렇게 되면 도로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고 볼 수 있죠. 게다가 고속도로의 경우라 해도 포장이 되어 있긴 해도 유지보수가 제때에 되지 않기 때문에 고속도로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운 실정일 것입니다. 또한 북한에는 산악지대가 많기 때문에 터널과 교량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을 텐데요. 그것도 안전점검 보수를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낡고 부서진 것들을 제때에 보수하지 못하게 때문에 안전상의 문제가 심각한 실정입니다. 그러면 도로 관리를 어떻게 누가 하는 거죠?

기자: 웬만한 국도에서도 자동차가 시속 30~40킬로미터를 놓기가 어렵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이 웬만한 도로에서 자동차를 따라잡아 탈 수 있거든요. 그걸 따라잡기라고 하는데, 사람들이 자동차 뒤에 매달려서 올라 타거든요. 그 정도면 속도가 얼마나 뜬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북한에서 도로 관리는 누가 하는가 하면, 한국이나 미국에서는 도로공사가 있지 않습니까. 또는 도로시설공단이라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북한에서는 도로 관리는 수도와 지방마다 있는 ‘도로건설대’라는 곳에서 하고 있습니다. 이 도로 건설대는 일종의 도로시설공단과 비슷한 곳인데요. 그런데 지방의 도로건설대라는 곳에는 자동차가 한대 정도 있고, 열악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런데 북한의 도로는 거의 다 토사 도로이기 때문에 작업량이 엄청 많습니다.

그래서 봄과 가을에 ‘국토보호총동원기간’이라고 있습니다. 그 기간에 장마철에 쓸려나간 토사 도로들을 보수하는데요. 군대와 노동자, 농민, 학생들까지 동원시키고 있는데요. 한주일, 보름동안 도로를 보수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거의 매해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978년부터는 고속도로 전담기구를 설치∙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민군 산하에 ‘도로국’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 부대는 무엇을 하는가 하면 고속도로를 전문 건설하고 보수하는 일을 합니다. 즉 국가기관이 해야 할 일을 군대가 하는 형국입니다.

그리고 간선도로에는 해당 관리원들을 배치하고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도로시설대에 적을 두고 있는 사람들이지요. 그리고 각지 협동농장, 국영농장에서는 자기 관할구역에 있는 도로들을 자기들이 보수하고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도로를 전체주민들이 관리한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김중호 박사: 그러니까 도로를 각 지역별로 기관별로 관리할 수 있도록 체계는 갖추어 놓았는데, 그것을 전체적인 차원에서 관리하는 기관은 없고, 그 관리를 위해서 필요한 재원과 자재가 충분히 공급하지 못해서 충분히 관리되고 있는 실정은 아니군요.

기자: 그렇지요.

김중호 박사: 북한정부가 도로 건설 정책을 나름대로 만들어 왔을 텐데, 시기별로 정책의 특징이 좀 다를 것 같은데요.

기자: 네 1950년대에는 전쟁피해를 입었으니까 도로가 다 파괴되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도로를 복구에 집중했고요. 그리고 1960년대에는 평양을 중심으로 주변 도로를 포장하는데 집중했고, 1970년대에는 도시와 지방을 연결하는 고속도로 건설을 시도했고요. 1980년대에는 관광객 유치를 위해 관광교통망을 건설했고, 1990년대에는 관광 및 경제특구를 위한 도로 건설에 중점을 두었다고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남한과 체제 경쟁상태에 있다 보니까, 남한의 도로건설 역사와 비슷했던 것으로 저는 보고 있습니다.

김중호 박사: 네 그렇습니다. 남한에서도 전쟁 후에는 복구하는데 모든 자원을 썼던 것이고요. 1960년대부터는 산업화를 위해서 도로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생기니까, 큰 고속도로를 만들고 그것과 연결되는 국도, 지방도로, 그리고 동네마다 작은 도로들을 건설하는데 국가가 주도권을 가지고 추진했던 것이죠.

한국에서는 1960년대에는 도로가 열악해서 지방 여행은 꿈도 꾸지 못했던 시절이였고요. 산업이 제대로 발달되지 못했지만 지방간 경제 격차도 커졌고, 경제 성장을 위해서 공장과 공장, 기업과 기업을 연결하는 도로망이 없어서 상당히 불편했습니다.

그런데 1960년대 말, 1967~68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고속도로를 만들자고 제안을 했는데, 많은 관료들이 ‘아니 한국에는 자동차도 없고, 먹고 살 것도 없는데 왜 돈을 거기다 쓰냐?’고 극구 반대를 했던 거죠,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고속도로가 만들어지고 나니까 주요 대도시와 지방도시가 연결되면서 생산과 소비가 함께 증가하고 경제수준이 향상되는 효과가 나타나게 됐던거죠. 그래서 고속도로가 만들어지고 나서 지방의 작은 도로까지 함께 정비를 하고 향상시키게 되니까 전국 어디나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고 그래서 경제가 성장하는 여건이 마련되었던 시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기자: 네, 결국 지도자의 안목이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는데요. 그런 면에서는 북한도 비슷한데요. 제가 북한에 있을 때 1990년대 초에 평양-향산 고속도로가 건설되었거든요. 그런데 북한의 김씨 일가와 박정희 대통령이 달랐던 것은 무엇인가 하면 박정희 대통령은 고속도로를 산업 건설에 이용하려는 목적에서 시작했다면, 북한 김씨 일가의 고속도로 건설계획은 보여주기 식 즉 우리나라에도 현대적인 고속도로가 있다는 것을 외국인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건설했던 것 같습니다. 왜냐면 그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일반 차량들이 거기 못 올라가게 만들었거든요. 예를 들어서 남한과 미국에서는 고속도로에 4~5차선으로 된 곳이 있지 않습니까? 너비만 해도 20~30미터 되는 곳도 있는데, 그런데 북한의 경우에는 고속도에 중앙 분리대가 없기 때문에 안전에 위험하고, 차선도 없는 곳도 있고요. 얼핏 보면 넓은 운동장 같기도 하고 비행장 활주로 같기도 하고요. 군사적인 목적도 있는 것 같습니다. 결국 지도자의 안목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번 시간을 통해서 청취자 여러분들도 이해했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김중호 박사: 네 한국도 근대화 이후로 석유 정제과정에서 나오는 아스팔트나 콘크리트 등으로 도로를 만들어 왔는데요. 사실 한국도 처음에는 그런 재료가 없어서 도로를 만들고 나면 금방 도로가 깨지고, 아스팔트가 터지고 그런 일이 비일비재 했습니다. 그런데 당연히 기술도 좋아지고 재료들도 좋은 것을 사용하면서 요즘에는 한국 도로가 좋은 평을 받고 있습니다.

기자: 오늘은 시간상 관계로 여기서 줄이고요. 다음 시간에는 북한의 도로 문제점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기자: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김중호 박사: 네 감사합니다.

기사작성 정영기자, 에디터 이진서,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