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함께 잘살아 보는 방법을 고민해보는 RFA 주간 프로그램 ‘경제와 우리생활’ 진행을 맡은 정영 입니다. 오늘 시간에는 북한 건설자재와 마감제에 대해서 북한 경제 전문가 남한의 통일연구원 정은희 연구위원님과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기자 :정 연구원님 안녕하십니까?
정 연구위원 :네 안녕하세요.
기자 :네 북한에서 살림집을 건설하는 데 있어서 대표적으로 쓰이는 건설 마감재로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정 연구위원 :북한은 과거와 달리 국가 또는 부동산 개발업자가 골조만 완성하고 나머지 내부 인테리어는 개인들이 집을 입주한 후에 하는 추세로 변화했습니다. 따라서 건설 마감재 라고 하면 아무래도 유리나 탈 등이 중요한 마감재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자 :제가 있을 때는 중국에서 다 들여 왔거든요. 지금 북한 내부에서도 생산된다니까 그러면 유리나 타일 같은 건설 마감제는 국내산으로 충당이 가능합니까?
정 연구위원 :네 원래 유리는 남포 유리 공장에서 생산을 했고요 타일은 각 지방의 도자기 공장에서 조금씩 생산을 했습니다. 즉 타일 공장은 특별히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90년대 경제난으로 인해서 기존 공장들이 기능을 하지 못하자 중국산을 들여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2000년대 중반쯤에 남포특별시 대안 친선유리공장에서 유리를, 그리고 천리마 타일 공장에서 타일을셍산할 수 있도록 건설을 하게 되었습니다.
기자 :북한에서 생산된 제품이라면 또 품질이 제일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어떻습니까,
정 연구위원 :네 사실 1990년대 이전만 해도 말씀드린 대로 타일은 각 지역의 도자기 공장에서 생산이 되었지만 종류도 다양하지 못하고 아주 무겁고 색깔도 굉장히 투박해서 좋지 못한 그런 수준이었습니다. 바꿔 말하면 굉장히 수준이 낙후했다는 거죠. 유리 또한 마찬가지인데요. 남포 유리공장에서 생산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색깔도 투명하지 못하고 상당히 무거웠고 또 평평하지 못하고 울퉁불퉁했습니다. 그래서 색깔도 보면 푸르스름한 그런 유리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중국산을 들여다 쓰다가, 이러한 마감제 공장이 세워지면서 국산을 사용하기 시작했는데요. 이러한 제품들의 실제 품질을 조사해 보면 현재는 일부 수입 제품을 제외하고는 모래나 진흙 등 많은 국산으로 충당이 되고 있고 또 여기에 대해 값싼 노동력을 결합한다면 가격 측면에서는 국내산이 오히려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여전히 수입산에 비해서 다양성의 측면에서 부족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주목할 점은 이러한 제품이 최근에는 역으로 중국에 수출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바꿔 말하면 경쟁력이 또 충분히 확보되었다, 이런 것들을 뒷받침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자 :대안 친선유리공장은 2천년대 중반 중국에서 북한에 선물해준 걸로 그렇게 알고 있는데요. 천리마 타일 공장 등 남포시에 집중되어 있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정은이 연구위원 :북한에서 오신 탈북자분들이라든지 위성 지도를 통해서 함께 확인을 해봤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입지가 상당히 좋더라고요 그래서 첫 번째는 입지를 고려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이 두 공장은 당국의 정책적인 판단에 의해서 남포특별시 강선지구에 세워졌는데요. 그 이유는 무엇보다 입지를 고려한 것이 엿보입니다. 왜냐하면 먼저 원료의 수급이라든지 모래라든지 진흙이라든지 이런 게 상당히 중요하잖아요. 그리고 운반의 측면에서 남포 특별시가 유리했기 때문에 북한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는데요. 모래가 바로 혹시 몽금포라고 들어보셨나요. 몽금포에서 채취되고 있었습니다. 유리 제조를 위해서 중요한 성분이 규소인데 몽금포의 모래는 오염도 덜하고 또 규소 순도가 가장 높은데 있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생산이 된다고 해도 운반 조건이 좋아야 됩니다. 그런데 이 모래를 실어오는데 남포특별시가 조건이 가장 좋은 입지에 있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평양시의 같은 경우는 사실 건설이 굉장히 많잖아요. 그래서 몽금포에서 모래를 채취해서 평양시까지 가져오는데 큰 배로 들어가야 되는데 사실 몽금포가 해저하고 가깝잖아요. 그런데 해주 같은 경우는 모래를 배에서 한 번 더 자동차로 실어 달라야 합니다. 추가로 운반비가 듭니다. 두 번째는 아무래도 원료만 있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잖아요. 산업 기반이 있어야 되는데요. 물론 몽금포는 아까 말씀드린 대로 오히려 항해남도 그리고 해주와 상당히 가깝습니다. 그렇지만 이곳은 일대가 대부분 농촌 지역이거든 산업 기반이 조성되어 있지 않습니다. 유리나 타일 공장을 위해서 별도로 산업 설치를 시설을 설치해야 할 그런 상황이었고 노동자들도 많이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저희가 농촌 지역이다보니까 기술자들 노동력들이 상당히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남포 특별시 같은 경우는 거대 특급 기업수가 또 위치해 있잖아요. 그래서 특히 이런 사업들은 전기 공급이 굉장히 많이 필요한데 전기 공급을 하기에 상당히 유리한 조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세 번째는요. 소비자 특히 평양과도 이쪽은 가깝습니다. 그 외에도 또 이쪽 같은 경우는 교통도 편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왜 대안에 친선 유리 공장이라든지 천리마 지역에 천리마 타일 공장들이 다 이쪽에 입주할 수밖에 없는가라고 보면 이런 자연적인 조건이라든지 산업적인 기반 그리고 소비지와 얼마나 가깝냐, 우리 자본주의 국가에서 당연히 생산의 효율성이라든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고려할 수밖에 없는 그런 조건들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기자 :예, 기업주 자본가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하면 원료가 잘 공급이 되고 그리고 또 그것을 생산하면 어떻게 하면 빨리 팔아서본전을 회수할 수 있는 지 그런 것을 많이 따지는데 대안구역 그리고 이제 강서지구가 굉장히 입지가 좋은 지역이다. 이렇게 분석을 하셨네요. 저도 이 지역을 가봤는데요. 한쪽에는 남포항이 가깝고 그리고 또 맞은편에는 황해북도가 있죠. 그러면 이렇게 품질이 개선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어떤 비결이 있습니까?
정 연구위원 :네 대안친선유리공장 같은 경우는 2000 년대 중반에 중국의 무상 원조에 의해서 모든 설비와 기술들을 들여왔기 때문에 나름대로 품질이 좋은 제품을 생산할 수가 있었고요. 또 천리마 타일 공장 같은 경우는 이름이 계속 많이 바뀌었습니다. 첫 번째 이름이 로마타일 공장인데요. 혹시 아실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처음에 불렸는데요. 그 이유가 천리마 타일 공장은 국가 주도라기보다는 북한 군부가 외화벌이 목적으로 이걸 차렸는데 바로 이탈리아에서 기술과 설비들을 일체 들여왔기 때문에 처음에는 로마 타일 공장이다. 이렇게 불렀다고 합니다. 이쪽에 종사하신 북한 탈북자분께서 이런 증언들을 해 주셨습니다.
기자 :예 그렇군요. 제가 북한에 있을 때는 타일과 벽지 그리고 레자라고 하는 비닐 장판 그런 것들을 다 중국에서 들여왔거든요. 그런데 이제 말씀을 들어보니까 북한에서 시멘트, 타일 벽지 장판 이런 것들은 다 국산화를 실현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렇다면 왜 북한은 2000년대 중반에 들어와서야 마감재에 대한 국산화를 실현할 수 있었는지 그게 궁금합니다.
정은이 연구위원 : 사실 건설을 어느 시기에도 북한 같은 경우는 중요했습니다. 왜냐하면 건설 같은 경우는 대외적으로 과시하기 위해서도 상당히 쉽잖아요. 대내적으로는 주민들을 위한다는 명목 쌓기에도 좋은 대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산업에 투자를 한다면 그만큼 비용도 많이 들고 또 투자 대비 효과를 나타내는 데도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리잖아요. 그런데 건설 같은 경우는 바로바로 시각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따라서 김정은 시기에도 미래 과학자 거리, 여명거리, 그리고 위성 과학자 거리 등 한 해 거의 한 거리씩 조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특히 주택 건설이 굉장히 많이 진행이 되었습니다.
기자 :오늘은 북한의 마감재와 장식 재료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다음 시간에 또 재미있는 주제로 찾아뵙겠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정 연구위원 :네 고맙습니다.
경제와 우리 생활 지금까지 도움 말씀에는 남한의 통일연구원 정은희 연구위원이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참여자 정은이 연구위원, 기사작성 정영기자, 에디터 이진서,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