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축산, 현장이 답이다] 변화의 기로에 선 농업근로자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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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농축산, 현장이 답이다>, 진행에 이승재입니다. 농업과 축산업은 세상 모든 국가와 시민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산업이죠. 특히나 자력갱생을 강조하는 북한의 경우 자신의 먹거리는 자신이 책임져야 하기에 더욱 강조되는 현실입니다. 이 시간엔 남과 북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농축산 전문가와 함께, 북한 농축산업의 현실을 진단하고 적용 가능한 개선방법도 함께 찾아봅니다. <농축산, 현장이 답이다>는 농축산 전문가, 사단법인 굿파머스연구소의 조현 소장과 함께 합니다.

MC: 조현 소장님 안녕하십니까?

조현: 네. 안녕하세요.

MC: 외국인들이 서울에 오면 놀라는 광경이 있습니다. 곳곳에서 정치 성향을 드러내는 집회라든지 혹은 각종 노동자 단체의 이익을 위한 집단 시위를 볼 수 있는데요. 이건 사회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거나 혹은 자신들에게 좀 더 유리한 이익을 끌어내기 위해 가두시위를 벌이는 걸 말합니다. 이런 게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건 아니지만 유독 한국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건 사실이에요.

조현: 저도 놀랐습니다. 서울엔 너무 시위가 많아서 시끄러울 때도 있어요. 시위를 통해서 제가 몰랐던 사람들의 아픔이나 힘든 점도 알게 됐고요. 반대로 살 만한 것 같은데 뭘 또 저렇게 자기 이익을 챙기려 하나, 눈살이 찌푸려지는 단체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좋은 면만 보면 누구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대놓고 외칠 수 있고 심지어 정권도 비판할 수 있다는 점은 좋아 보입니다. 제가 농축산을 전공한 사람이니 이쪽 분야의 예를 들어보면, 한국은 농민들이 생산한 쌀을 매년 정부가 비싼 값에 수매해주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고 농민조직들이 정부에 진정서도 내고 또 시위도 벌이고 국회와도 교섭을 해서 법으로 조직화시키는 일을 합니다. 정작 북한에서, 그것도 농민들이 이렇게 외칠 수 있어야 하는데요. 볼 때마다 안타깝습니다.

북한에도 농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가 있다?

MC: 북한에서 농민이 제일 차별받는 집단이란 건 전 세계가 다 아는 상황인데요. 그런 면에서 저도 북한에 농민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단체가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조현: 그런 단체가 하나 있었죠. 농업근로자동맹 바로 농근맹입니다. 과거엔 농근맹이 농민을 위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해방 이후 협동농장이 만들어질 땐 농민의 이익을 옹호한다고 정부와 지역지주, 토호들 간의 분쟁도 조정했고요. 유리한 상업구조도 만들어 농민들의 빚 청산에도 한몫을 했고, 농민들 문맹퇴치운동도 주도했습니다. 서로 다른 지역 농장이 함께 일어날 수 있도록 품앗이단도 만들었고요. 처음엔 꽤 괜찮게 활동을 했어요.

MC: 그 노력이 쭉 이어졌다면 지금 북한 농민 삶의 질이 훨씬 높아졌을 텐데요. 아쉽네요. 농근맹이 농민을 위한 역할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 이유가 뭔가요?

조현: 그건 한마디로 농근맹이 노동당의 외곽 단체로 전락됐기 때문입니다. 1960년대 말~ 1970년대당의 유일사상체계 10대노선이 발표된 이후로는 이런 농근맹의 활약을 볼 수 없었죠. 노동당 자체가 농민을 차별하는 조직 아닙니까? 이후 농민의 지위는 높아지지 않았고 농촌과 도시간의 격차는 날로 늘어났습니다. 먹고 살게만 해줘도 좋았을 텐데 농민들은 굶어죽는 상황이 됐어요. 전 북한이 다시 살아난다는 건 농근맹이 제대로 역할을 해야 가능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농근맹은 농민들의 요구가 정당한 것임을 인정하고 농민을 위한 정책 개발에 앞장서야 합니다. 농민들의 80%가 억지로 가입해야 하는 농근맹인데 종일 고생만 하는 농민들 불러다 계속 생활총화 시키고 이런 저런 부담을 주는 게 결코 옳은 일이 될 수 없죠.

21개 단체로 세밀하게 나뉘는 독일의 농민연맹

MC: 그렇군요. 북한에선 농근맹이 농민을 위한 유일한 조직이니까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농민의 권리 향상과 농업 발전을 이루는 일을 하면 좋겠습니다. 주목할 만한 해외 사례를 좀 들려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외국의 농민조직들은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조현: 과거엔 분단국가였다가 자유민주국가로 통일된 독일이 훌륭한 본보기가 될 것 같습니다. 독일엔 독일농민총연맹(DBV)가 있는데요. 그 하부엔 농민연맹, 라이파이젠협동조합, 농촌청년연맹 등 21개의 단체가 있습니다. 각 단체는 농업관련 각 분야의 전문위원회 역할을 합니다. 각각 맡은 분야의 농업현실을 분석하고 분야별 대안을 개발해서 매년 정부에 제시하고 있어요. 이들이 정부에 제출하는 농업보고서는 굉장히 구체적이고 체계적입니다. 재정, 농장경영, 조세정책, 가금, 감자, 종자, 농업구조, 지역정책, 부업과 농외소득, 공공업무, 과일과 채소, 직업교육 및 교육정책, 생태농업, 돼지, 소, 우유, 환경보호, 사회정책 등… 지금 수많은 항목을 나열했는데요. 이렇게 세밀한 분야에서 전문적인 분석이 이뤄지다 보니 정확한 현실을 파악할 수 있는 겁니다. 이 분석을 바탕으로 제일 상위에 있는 독일농민총연맹이 독일 행정부나 국회와 교섭하고 또 압력을 가함으로써 농민의 권익을 보호하고 있는 겁니다.

MC: 제가 볼 때 독일의 사례를 통해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각 분야별로 확실하게 전문지식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라고 생각되네요.

조현: 그렇습니다. 북한의 농근맹이 결국 노동당과 대등하게 농업정책을 협의하려면 독일의 21개 전문조직처럼 분야별로 확실한 전문가 조직을 먼저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같은 노동당 독재상황에서 단번에 조직을 만들긴 힘들기 때문에, 각 지역별로 지금 존재하는 농업연구원이나 각종 연구기관의 전문가들이 각자의 영역을 정해서 자신에게 맞는 특화된 연구를 시작해보면 어떨까요. 또한 농근맹 조직이 군, 리에 다 있잖아요. 작은 단위부터 농민에게 이익이 될 정책을 먼저 시도해 보고 지역별로 정착시킨 후 도시나 중앙단위로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예를 들어서 자기 지역에서 잘 생산되는 작물을 특산물로 활성화시켜서 지역 농근맹을 중심으로 해당 작물에 대한 재배, 새로운 상품으로의 가공, 판매를 시도해 보는 거죠. 이게 성공하면 나름 지방 특산물이 되는 거잖아요. 북한에도 지방발전법이란 게 있습니다. 그 법의 기준에서 생각해보면 이건 위배되는 행동이 아니에요. 이런 식으로 차근차근 농근맹의 역량 강화를 일으켜야 하는 겁니다.

중앙의 하수인이 되어선 농업이 발전할 수 없다

MC: 현장에서 전문성을 갖추는 건 가능한 일이겠지만 그렇다고 노동당의 존재 하에서 농근맹이 농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조직이 되는 건 현재 상황에서 쉽지 않을 텐데요. 이 점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조현: 맞습니다. 북한에서 중앙 농근맹의 지시를 아예 안 듣지는 못하겠죠. 그러나 소극적 반항이라고 할까요? 내부에서 실질적으로 어떤 일을 조직하고 만들어내는 게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포전담당제를 어떻게 변화시킬까' 이런 걸 고민하고 의견 제시해보는 것처럼… 지속적으로 농근맹 관계자들을 신경 쓰이게 하면서 그들의 역할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는 게 중요합니다. 정치와 농업은 분리되어야 합니다. 좋은 예로는 프랑스농업연맹을 들 수 있겠습니다. 프랑스도 농민 관련단체가 많은데요. 이 나라의 특징은 정치적 활동을 하는 단체가 따로 있고 경제적 활동을 하는 단체가 따로 있다는 겁니다. 정치적 활동을 하는 단체는 국가 권력을 상대로 농민의 이익을 높이는 일에 주력하고 경제적 활동을 하는 단체는 시장 활동을 좀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죠. 그러나 양 단체들은 유기적으로 연합하고 끊임없이 협력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에서 무시하지 못합니다. 정부와 대등한 관계에서 농업정책을 펼치고 있고요. 이런 프랑스는 좋은 예가 되어 자국뿐만 아닌 유럽 전체의 고등농업정책에도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북한의 농근맹 관계자들도 노동당에 충성하는 데만 급급해 하지 마시고 이처럼 해외의 사례를 주목해보세요. 농민들과 긴밀히 협력하며 더 좋은 방향을 향해 고민하시길 바랍니다. 저는 모두가 굶어죽는 어려운 시기인 지금, 북한의 농근맹은 변화의 기로에 섰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MC: 오늘도 유익한 말씀 들려주셨네요. 청취자 여러분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지금까지 <농축산, 현장이 답이다>였습니다.

기자 이승재, 에디터 이예진,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