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축산, 현장이 답이다] 농기계 없는 농기계 출동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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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농축산, 현장이 답이다>, 진행에 이승재입니다. 농업과 축산업은 세상 모든 국가와 시민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산업이죠. 특히나 자력갱생을 강조하는 북한의 경우 자신의 먹거리는 자신이 책임져야 하기에 더욱 강조되는 현실입니다. 이 시간엔 남과 북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농축산 전문가와 함께, 북한 농축산업의 현실을 진단하고 적용 가능한 개선방법도 함께 찾아봅니다. <농축산, 현장이 답이다>는 농축산 전문가, 사단법인 굿파머스연구소의 조현 소장과 함께 합니다.

MC: 조현 소장님 안녕하십니까?

조현: 네. 안녕하세요.

MC: 아직도 날이 춥지만 한 달만 지나면 3월이네요. 다시 시작될 농사 준비를 위해 박차를 가해야 하겠습니다. 이 시기쯤 되면 농기계 출동식이 열린다고 들었습니다. 이건 뭐죠?

조현: 네. 3월 5일은 과거 북한에서 토지개혁을 한 날인 동시에 '농업절'입니다. 농민들의 명절인 셈이죠. 때마침 그때가 새해 농사 시작 시기니까 그날을 위해 미리 준비 점검을 하자는 차원에서 지금 시기엔 '농기계 출동식', 다른 말로 '농기구 전시회'라고도 합니다. 이 행사를 군 규모로 열곤 합니다. 보통 한 개 군에 15~25개 협동농장이 있는데요. 여기서 다 참여하게 되는 거죠. 자신들이 쓸 농기구를 열심히 다듬고 고쳐서 "이제 다 됐습니다" 이렇게 보여주는 행사입니다.

MC: 보통 이런 농기구 전시회가 열리는 이유는 전 세계 새로운 농기계를 소개하고 발전을 도모하기 위함이잖아요. 대부분 호미나 낫 같은 소농기구로 농사를 짓는 북한에서 이 전시회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하네요.

조현: 바로 그겁니다. 일단 이 행사는 상부의 강요에 의해 진행되는 형식적인 일인데요. 하지만 협동농장은 이 필요 없는 행사 준비를 굉장히 착실하게 해야 합니다. 말씀대로 작년에 썼던 소농기구들은 이미 다 부러지고 마모됐어요. 또 좀 큰 농기계들은 겨울엔 가동시키지 않아서 보통 다 녹슬죠. 그런데 녹 벗겨진 것들이나 도색, 기름칠 등은 북한의 수리공들도 정말 잘 합니다. 소농기구들은 대부분 집에서 망치로 두들겨서 만들고 고치고 하거든요. 사람 손으로 할 수 있는 거야 다 하고도 남는데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부품이 없다는 거잖아요? 베어링, 피데, 타이어, 각종 나사 등등 그건 농민들이 만들지 못하니까 정부가 보장해줘야 합니다. 이런 것 하나 보장 못하면서 농기계 출동식 같은 행사를 연다는 게 말이 안 되죠. 계속 이런 문제들을 자력갱생하라고 농장들에게 떠밀지만 말고요. 이제 중국과의 교류도 시작되었다고 하니 이 시기에 부족한 농기계 부품들을 파악하고 채워줘서 올해 농사 잘 짓도록 돕는 것이 당국이 바로 지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 농기구 전시회, 훔친 부품들로 채워진다?

MC: 그렇군요. 지금 그런 상황이라면 농민들이 전시회에 내놓을 농기구조차 없을 것 같습니다. 농민들은 이런 경우에 어떻게 행사를 준비하나요?

조현: 개인들이 바쳐야 하는 소농기구 준비하는 것도 여력이 부족할 텐데 지금 들려오는 소식으론 농장마다 젊은이들을 시켜 다른 농장들 농기계 부품도 도둑질 시킨다고 하네요. 개인들 입장에선 소농기구를 준비해야 하는데 협동농장 입장에선 뭐라도 더 큰 걸 내놓아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처벌이거든요. 일례로 트랙터에 박힌 타이어 있잖아요? 북한 농촌에선 제일 부족한 게 타이어거든요. 트랙터들 중에 타이어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아 멈춰 서있는 것이 다반사예요. 그래서 지금 트랙터를 세워놓기만 해도 타이어 도둑질하는 사람들이 많답니다. 이게 사회적으로도 큰 문제가 되고 있다네요. 한국 같으면 타이어 훔쳐다 팔아 봤자 얼마 나오지도 않아요. 그만큼 흔한 것이 타이어인데 북한은 트랙터의 소형 앞바퀴, 대형 뒷바퀴… 다 부족합니다.

MC: 말씀 들어보니 북한은 농기구들을 주로 개인의 대장간이나 집에서 만드는 것 같은데요. 요즘 한국 풍경과 차이가 있습니다. 한국에선 대부분 소농기구들은 공장에서 만들어지고요. 일부 전통방식을 고수하는 장인이 개인의 대장간에서 만든 것이 많이 팔리기도 하는데 이건, 사람 손 많이 간 제품이라 부르는 게 값이죠. 북한도 차라리 공장에서 제대로 된 다량의 제품을 만들어서 농장에 공급하는 것이 훨씬 더 쉬운 방법일 텐데요.

조현: 비전문가도 다 아는 일을 북한 정권만 모르네요. 네. 북한 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게 호미죠. 예로부터 북한도 사람이 농사짓는 게 아니라 도구가 농사를 짓는다고 했어요. 호미, 삽, 곡괭이.. 사실 이젠 한국에선 자그마한 텃밭이나 일굴 때나 쓰는 기구들이죠. 북한에선 이걸 농기구라고 전시회 때 대장간에서 두들겨서 정비하고 나오는데요. 남북관계가 좋을 때 제가 북한에서 한국제 삽을 본 적이 있어요. 그때 너무 평이 좋았습니다. 한국산 삽이랑 호미는 철이 좋아서 오래오래 쓸 수 있습니다. 북한 정권이 정말 농기구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이젠 농기계 출동식 같은 쓸데없는 행사 그만하고 북한도 공장에서 좋은 호미와 삽을 생산 해야 합니다. 공장기업소에서 이런 거 잘 만들어서 농장에 공급하면 훨씬 작업도 빨라지고 생산량도 늘어나거든요. 1945년 해방 이후에 쌀이 부족했을 때 북한의 노동자들이 공장을 통해 소농기구 만들어서 농촌에 가서 전달하고 농촌에선 남은 쌀로 바꿔주고 그랬는데요. 지금도 그런 방식으로 하면 됩니다. 사실 다시 과거로 회귀하자는 게 결코 좋은 건 아니지만 최소한 지금보단 나아요. 지금 북한에선 식량이 부족하다며 농민들 식량까지 뺏으려고 애국미헌납운동 이런 거 강제로 시키는데 북한 정권은 더 이상 너절한 일 벌이지 말고 식량생산 높일 방법을 찾아봅시다. 농민들이 더 이상 농기계 출동식 같은 걸 할 힘이 없어 보입니다.

농기계 못 쓰는 북한 농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비닐박막

MC: 농민들의 생존이 곧 북한 당국의 생존으로 직결된다는 것, 북한 지도부가 지금 꼭 기억해야 할 일 같네요. 그런가 하면 지금은 한국 농기계 판매업자들에게도 중요한 시기입니다. 봄철 준비를 해야 하는 건 남북이 매한가지니까요.

조현: 네. 남한도 요새 농기구 전람회, 농기구 박람회 이런 행사들을 많이 합니다. 전시회, 전람회… 비슷한 말이긴 한데 남북이 완전 다른 양상을 띱니다. 남한 농부들은 경제생활을 하잖아요. 농사를 지어서 돈을 법니다. 그래서 농기구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농부는 자기 물건을 팔아주는 사람, 그러니까 잘 보여야 하는 대상입니다. 한국에서 농기구 전람회를 하는 목적은 더 발전되고 기능과 성능이 좋은, 신상품을 농부에게 소개하려는 데에 목적이 있어요. 이런 행사는 대형 강당이나 전시장에 여러 농기구 판매업체가 나와서 설명하고 팔고 또 할인도 해주는 행사입니다. 한국은 농기계 하면 북한 같은 소농기구가 아니라 엄청난 규모의 대형 기계들을 말하거든요. 어떨 땐 두세 달 빌려 썼다가 맘에 안 들면 무상으로 반납해도 되는 조건도 있고요. 엄청 비싼 기계들이니 이걸 사고 잘 쓰면서 매달 작은 값에 나눠 내는 할부제도를 이용합니다.

MC: 그렇습니다. 한국엔 이런 방식의 전람회가 많이 있는데요. 사람들이 가면 돈을 많이 쓰지만 또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투자이니 또 기분 좋게 구경들 하고 그런 모습이 그려지네요. 혹시 올해 농사 준비를 위해 농기계 말고, 꼭 준비해야 할 또 다른 것이 있을까요?

조현: 네. 비닐박막이 있습니다. 북한 공장에서 생산하는 비닐박막은 북한 내부에 폴리에틸렌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에 수량이 많지 않습니다. 지금 들어보니 전체 협동농장에서 필요한 부분의 50%도 못 채우고 있다고 들리네요. 작년 농사 중 제일 아쉬웠던 부분이 비닐박막의 부족이었습니다. 당장 3월에 비닐이 부족하면 파종이 늦어지고 그럼 생산이 어렵거든요. 저는 노동당 윗분들이 현장의 일을 잘 모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고급 농업 간부들이 지금 이 말씀을 듣고 놀라셨다면, 네. 보이는게 다가 아닙니다. 군수물자, 미사일 개발에 돈 탕진하지 말고 당장 농장에 비닐박막이라도 철저하게 공급해 주면 좋겠습니다.

MC: 오늘도 꼭 필요한 말씀 감사합니다. 북한의 농업발전을 간절히 기원하면서 오늘 방송 마칩니다. 지금까지 <농축산, 현장이 답이다>였습니다.

기자 이승재,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