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축산, 현장이 답이다] 애국미 헌납운동, 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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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농축산, 현장이 답이다>, 진행에 이승재입니다. 농업과 축산업은 세상 모든 국가와 시민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산업이죠. 특히나 자력갱생을 강조하는 북한의 경우 자신의 먹거리는 자신이 책임져야 하기에 더욱 강조되는 현실입니다. 이 시간엔 남과 북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농축산 전문가와 함께, 북한 농축산업의 현실을 진단하고 적용 가능한 개선방법도 함께 찾아봅니다. <농축산, 현장이 답이다>는 농축산 전문가, 사단법인 굿파머스연구소의 조현 소장과 함께 합니다.

MC: 조현 소장님 안녕하십니까?

조현: 네. 안녕하세요.

MC: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지난 6일 북한에선 토이기라고 불리는 튀르키예에서 규모 7.8과 7.5, 두 차례의 강진이 일어났습니다. 9일 기준으로 튀르키예와, 인접한 국가 수리아(시리아)의 사망자 수가 19,300명을 넘어섰다는데요. 튀르키예는 6.25전쟁 때 5,500여 명을 파병해 한국군을 도왔는데요. 이때의 인연으로 지금은 한국과 형제의 국가로 불리고 있죠. 아마도 북한에선 적으로 배웠을 텐데 한국에선 형제라니, 종종 탈북민들이 당황해 하시기도 하더군요. 소장님도 그러셨나요?

조현: 네. 저도 처음엔 당황했습니다. 그러나 튀르키예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공산주의 적과 함께 싸워준 진짜 은인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저는 거기 가본 적이 없지만 현지에선 다른 아시아인에 비해 한국인들을 형제라며 굉장히 환대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선지 지금 한국에선 튀르키예에 각종 구호물품과 성금을 보내는 운동이 이어지는데요. 한국은 인터넷 강국이 아닙니까? 여기저기서 기부 행렬이 인터넷 소통공간 SNS를 타고 번지는 바람에 엄청난 금액이 전달되고 있습니다. 특히 배우들을 비롯한 유명인사들은 몇 백만 달러, 몇 십만 달러를 기부하고 있는데, 그래서 어떤 튀르키예 사람은 "역시 한국인들 대단하다"… 이런 말을 인터넷에 올리기도 했어요.

MC: 그렇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한국 사람들이 많이 기부한들 지금의 피해를 복구하기엔 너무나 역부족일 텐데요. 아무쪼록 세계 각지에서도 도움의 손길들이 이어져 속히 튀르키예와 수리아가 평온한 일상을 찾기를 기원하겠습니다. 반대로 지금 북한에서는 애국미헌납운동이라는 일종의 기부행사가 이어지고 있잖아요. 하지만 해외의 전문가들은 이를 맹비난하고 있는 상황이네요.

조현: 이게 노동당의 조직적 지시이고 거부하는 농민들은 반역자처럼 취급해서 그렇습니다. 어떤 농장에선 매달 1인당 1kg씩 내라고 지정하기도 하고, 어떤 농장은 농민들에게 줄 분배몫을 자르고 공급하고 있대요. 안 내면 노동당의 보복이 이어지니 내긴 내야 하는데, 없는 사람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답니다. 이건 한국에서 자발적으로 남을 돕기 위해 하는 기부운동과는 차원이 다르죠. 애국미가 아니라 마른 나무에서 물을 짜내려는 강제이자 탄압입니다. 한 달 뒤면 농사가 시작되는데 지금 북한 농민들 대부분이 영양실조에 걸려있거든요. 약품, 식품으로 농촌을 지원하지 못할망정 애국미를 빨아다가 어디다 쓰려는지요.

MC: 애국미헌납운동은 해방 후 무너진 나라를 재건하려는 북한 인민들의 자발적인 운동으로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렇게 강제로 이어가다 보면 역사가 기록하는 애국미헌납운동의 의미도 달라질 것 같아요.

조현: 맞습니다. 원래 애국미의 시초는 해방 후 김일성종합대학을 지을 때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쌀을 바친 것이었습니다. 농민들이 나보다 나라가 우선이라는 생각에 식량과 종자만 조금 남겨놓은 채 수확량을 저축하지 않았어요. 그때는 100% 자발성에 기초된 행동이었습니다. 북한 당국이 농민들의 큰 도움을 얻어 성장했다는 걸 명확히 알 수 있죠.

MC: 말씀 들어보니 한국도 1990년대 후반 경제 위기로 국제통화기금 IMF의 구제 금융을 받을 적에, 국민들이 나라의 빚을 갚느라 대대적으로 금 모으기 운동을 벌였던 것이 기억납니다. 너도 나도 자발적으로 집에 있는 금을 내놓는 분위기였어요.

조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북한 분들도 잘 아실 거예요. 국채보상운동이라고, 일본이 한국을 경제적으로 예속시키기 위해 강압적으로 이뤄진 차관을 한민족이 힘을 모아 청산하려던 운동이 있었죠. 담배, 여인들의 비녀와 가락지, 심지어 머리털까지 잘라서 팔았던 사실은 한민족의 역사에 자랑스런 기록으로 남지 않았습니까? 북한 역사에서 애국미헌납운동도 그렇게 자랑스러운 기록으로 남을 수 있었는데 노동당이 망쳐놓았어요. 노동당은 어려울 때마다 겨우 배급 받아 사는 주민들에게 헌납하라고 강요했습니다. 북한 경제가 성장하던 60~70년대에 농민들은 1년에 쌀 200kg정도의 배급을 탔는데요. 배급이라는 건 생존을 유지할 정도의 양만 주는 겁니다. 당시도 농민들은 유족하지 못했어요. 노동당은 이럴 때도, 어떤 공사를 할 때마다 각종 명목으로 농민들의 혈세를 빨아갔습니다. 육체적 지원은 물론이고 쌀 500g, 강냉이 1kg, 심지어 돼지고기, 옥수수, 야채, 마늘, 고춧가루, 조미료까지 걷어갔습니다. 더욱 이해가 안 되었던 건 공사 물자까지 지원하라고 했어요. 한국이나 외국의 노동구호물자는 기본적으로 노동을 시키는 기관에서 준비해서 공급하는 겁니다. 군대에서 공사하면 군대에서 준비하는 거고요. 건설 공사하면 건설 회사에서 준비하는 겁니다. 여기 한국에 와 보니 곳곳에 건설공사 천지인데요. 작업복이나 소모품, 노동구호물자, 누가 지원을 해요? 단 한 번도 그런 적 없었습니다.

MC: 그런 상황에 대해서 북한 국민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부당하다거나 혹은 억울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는지요?

조현: 그런 마음이 당연히 있는데 그래도 국가가 배급을 주니까, 다들 그걸 국가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북한 국민들은 정말 나라를 위해서 아무 말도 없이, 혁명사적지 건설 같은 여러 지원 사업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바로 고난의 행군이었던 겁니다. 김정일이 "강성대국의 문이 코앞에 있다"고 주민들을 달랬지만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어서 수백만이 굶어죽었음에도 북한은 그 책임을 김씨 부자에게 묻지 않았어요. 그럼 그들이 잘 했어야죠. 하지만 김정은이 집권 시작하면서 다시는 인민들 허리띠 졸라매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면서도 지금 집권 초기보다 쌀값이 2배가 올랐습니다. 1kg에 3000원 하던 것이 지금 6000원 합니다. 그나마, 주민들이 알아서 벌어먹던 걸 국경까지 막아놔서 다들 굶고 있고… 약품도 다 동나서 버드나무 약초, 고려약, 아편의 진… 그런 걸로 치료받을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놨어요. 이런데도 작년에 70여 발 이상의 미사일을 만들어 쐈고, 그렇게 100만 톤 이상의 식량 구입비용을 하늘로 날려버렸으니… 오늘의 위기가 누구 때문인가를 북한 국민들은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MC: 네. 국제사회에선 이와 같은 북한 정권의 민낯, 그래서 경제 위기를 애국미헌납운동으로 해결하려는 속뜻을 잘 알고 있는데요. 결코 그것이 답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시는 소장님, 그렇다면 작금에 닥친 북한의 경제적 위기를 해결할 방법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조현: 북한에 출구전략이 없는 게 아닙니다. 북한이 아무것도 안 하고 국경연선만 열어 놔도 국민들은 당장 알아서 살아갑니다. 30년 동안 시장이 만들어지면서 적응할 만큼 다 적응했어요. 북한 농민들 강합니다. 북한 당국자들이 8기 7차 전원회의에서 농업을 강조한다고 했는데 세간의 관심은 북한이 어떤 방식으로 농업문제를 풀지 주목하고 있는데요. 문제 푼다고 전원회의 할 것도 없어요. 국경 열고 시장 활성화 하면 사람들이 알아서 중국에서 쌀 가져다가 공급하고, 돈이 없는 사람들에겐 알아서 후불방식으로 잘 공급할 겁니다. 국경 열렸다고 하면 국제사회의 후원도 들어갈 거고요. 없는 사람들한테 애국미 헌납하라고 하고, 북한 살려야 할 젊은이들 탄광으로 보내서 미래를 막아버리면 그게 바로 북한당국의 미래가 되는 겁니다. 이제 다음 달, 본격적인 농사철입니다. 농사가 시작됩니다. 국경이라도 열어야 올해 농사의 출구가 열린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기자 이승재,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