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축산, 현장이 답이다] 장리쌀도 부족한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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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농축산, 현장이 답이다>, 진행에 이승재입니다. 농업과 축산업은 세상 모든 국가와 시민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산업이죠. 특히나 자력갱생을 강조하는 북한의 경우 자신의 먹거리는 자신이 책임져야 하기에 더욱 강조되는 현실입니다. 이 시간엔 남과 북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농축산 전문가와 함께, 북한 농축산업의 현실을 진단하고 적용 가능한 개선방법도 함께 찾아봅니다. <농축산, 현장이 답이다>는 농축산 전문가, 사단법인 굿파머스연구소의 조현 소장과 함께 합니다.

MC: 조현 소장님 안녕하십니까?

조현: 네. 안녕하세요.

MC: 북한 시장에서 곡물가격이 나날이 치솟고 있다고 하죠?

전례 없는 풍년이라더니

곡물 빌릴 곳도 없어

조현: 네. 맞습니다. 지난해 '전례 없는 풍년'이라더니 현재 평양에선 쌀 1kg이 5,500원, 혜산은 6,000원을 넘었고요. 현지 주민들은 곧 7,000원($0.8)을 예견하고 있습니다. 더 문제인 것은 올핸 농민들이 꾸어다 먹으려고 해도 곡물을 꾸어주는 데가 없어 더 난리라고 하네요. 2023년도 작황은 워낙 심각했던 2022년보다는 좀 나았던 것뿐이지 진짜 풍작은 아니었고요. 또한 코로나와 맞물려서 평소 북한이 중국이나 러시아 쪽에서 수입하던 곡물도 엄청 감소됐거든요. 그래서 결국 전체적인 양이 부족하게 된 것입니다.

MC: 수급 안정화를 내세우며 북한 당국이 독점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양곡판매소 사정도 좋지 않은 겁니까?

조현: 네. 제 소식통의 말로는 동사무소, 인민반, 시장관리소 등에서 "3,4월에 양곡판매소 문이 열린다"고 알려줬다는데 아직까진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고 합니다. 양곡판매소에선 쌀 1kg당 시장가격보다 200~300원 싸게 받고 있는데 올해 대부분 1, 2월에 5일 정도씩 팔다가 3월엔 운영을 아예 안 했고요. 더구나 양곡판매소 쌀은 돌과 검불 등 이물질도 많았다고 합니다. 쌀 1kg을 재건조하면 양이 10% 정도 감소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양강도 지역의 삼수, 대흥단 산지농장은 다른 곳보다 식량사정이 더 어렵다고 합니다. 4월 초 현지로부터 받은 연락에 의하면 "양강도 삼수포성협동농장의 1개 작업반엔 40가호가 있는데 10가호가 식량이 없어 고리대금으로 강냉이를 꾸러 다니지만 꿔주겠다는 사람이 없어 그냥 굶고 있다"고 합니다. 이 소식을 보내온 주민은 북부 산지 농민들이 코로나 이전엔 국경을 넘어 중국 농장에서 품팔이라도 해서 가족을 살렸는데 지금은 통제가 심해져서 이제나저제나 국경이 열리기만 기다린다고 하네요. 북한 당국은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무료로 곡물을 나눠주는 적은 없으니까요.

MC: 한국에선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기, 재난지원금이라고 해서 살림살이 팍팍해진 국민들에게 일정 금액을 나눠준 적도 있었는데요. 국경까지 봉쇄했던 북한이야말로 인민들에게 곡물을 나눠줬다면 아사자가 발생하는 일은 줄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자력갱생해야만 하는 북한 농민들은 이럴 때 대체로 장리쌀을 이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사실 이자가 굉장히 높잖아요?

조현: 맞습니다. 요즘 한국 젊은 사람들은 잘 모르는 단어지만 북한은 '장리쌀'이 익숙합니다. 춘궁기에 곡식을 빌려주고 추수기에 돌려받는 것, 이건 조선시대 구휼제인 환곡에서 비롯됐는데요. 처음엔 농민을 구제하기 위한 제도였지만 부패한 관리들이 빌려준 곡식의 절반 이상을 이자로 받으면서 문제가 커졌어요. 지금 북한도 똑같습니다. 빌린 금액의 6개월 이자가 50%를 넘길 때 '장리(長利)'라고 부르는데요. 북한에선 강냉이와 밀, 여러 종자, 비료, 농약, 연료 등 뭘 빌려도 쌀로 갚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장리쌀'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요즘은 기본적으로 이자가 100%입니다. 그걸로 봄에 농사짓고 가을에 2배 쳐서 받는 관행이 일반적이죠.

MC: 추수기에 분배를 제대로 받아야 갚을 수 있는 거잖아요? 점점 분배 몫이 적어지는데 갚지 못하는 분들이 태반 아닙니까? 농민들이 내 놓을 게 없을 텐데요.

조현: 그렇습니다. 장리쌀을 빌려주는 사람은 도시에서 열심히 장사해서 돈을 모아 장리쌀을 꿔주는 사람도 있고 열심히 돈을 모은 농민들이 꿔주기도 하지만, 대부분 여유 있는 농장 간부나 도시의 돈주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북한에서 돈주는 사실상 권력자거든요. 그들 중엔 2호관리소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이 창고 같은 데에 저축해 놓은 쌀 빼돌려서 장리쌀로 빌려주고, 농민이 되갚지 못하면 자기 권력 이용해서 농민을 감옥에 보내는 일도 있습니다. 매 맞는 건 뭐 일반적이고요. 맞아서 장애인 되는 사람도 많습니다. 90년대 고난의 행군 때나 최근 코로나 시기에도 그 이자를 감당 못해서 농민들이 쥐약을 먹고 집단 자살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농민들이 빚쟁이 피해 야반도주해서 산 속에 땅굴 파고 반토굴 집 만들어 살기도 합니다.

MC: 가슴 아픈 얘기네요. 어쨌든 빌려준 쪽에서도 못 받을 확률이 있다는 건데, 부농이나 돈주들은 뭘 믿고 빌려주는 건가요?

과거 중국의 수천만 아사자 해결 방안은

제도 개선과 시장 개방

조현: 북한 사회에서 신용을 정하는 기준은 따로 없는데 보통 가을에 300kg 분배 받으니까 그때 받을 것을 생각해서 봄철에 100kg, 150kg씩 꾸어 먹는 겁니다. 그러나 올해 같은 경우는 농사도 잘 안 됐고 또 받은 걸 이런 저런 명목으로 국가에서 가져가다 보니 꿔주는 사람도 못 받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러니 안 꿔주는 거죠. 그런데 이건 내년에도 나아지지 않을 겁니다. 추수철엔 간부들이 책임지지 않으려고 농장 경리들한테 계획 수행을 못했어도 수행했다고 보고하게 만들어요. 100개를 생산하고 30개를 국가에 바쳐야 하는데 생산을 70개밖에 못했어도 보고는 100개 생산했다고 들어갑니다. 이 말을 하는 이유는 돈이나 현물을 꾸어주고 받는 행위는 제도적으로나 규범상으로나 신뢰할 수 있어야 하잖아요.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 1헥타르의 땅이 있다면 그가 1년 농사를 할 경우 5톤 정도는 생산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죠. 그런 담보가 있다면 상호 믿음이 생길 겁니다. 이런 식으로 농장원들과 농민들에게 땅을 준다면 빌리는 사람에게나 곡식을 꿔주는 돈주, 권력층도 권력층에게도 안전하겠죠.

MC: 그렇군요. 결국 실질적인 생산량에 상관 없이 국가에 바쳐야 할 게 많다 보니 이런 악순환이 계속될 수 밖에 없다는 거네요. 고질적인 장리쌀 문제가 해결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조현: 이런 상황은 오직, 노동당이 만들고 유지하는 지금의 경직된 제도가 바뀔 때만 해결 가능합니다. 농민이 피땀 흘려 지은 곡물은 자신이 시장에 팔든 농업 기자재와 교환을 하든 마음대로 할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농사가 아무리 잘되어도 곡물 처리할 때에 자율성이 없다면 언제 가도 장리쌀이 없어지지 않을 겁니다. 중국은 과거에 식량문제를 해결 못해서 수천만 명이 굶어 죽었는데, 그걸 벗어난 이유는 자체 생산량이 증가한 것이 아니라 제도를 개선하고 시장을 개방했기 때문이거든요. 그리고 도시에서 부족한 곡물은 농촌에서 가져가지 말고 수입으로 해결해야 해요. 북한의 경우, 만약 국가에 돈이 없을 때는 농민들이 해외 시장 교류를 자유롭게 하도록 풀어주면 자동적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될 겁니다.

MC: 그렇군요. 말씀대로 국가의 변화가 있지 않는 한 이 장리쌀 문제는 농민이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농민들이 자괴감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이네요.

장리쌀이 주는 교훈

조현: 결코 농민의 잘못이 아니니까 자괴감에 빠질 필요는 없는데 농민들께서도 잘 생각은 하셔야 합니다. 일단은 자기 생존부터 먼저 생각하라고 말씀드립니다. 북한 분들은 체제가 잘못됐다는 건 이미 아시는데 자율성이 없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게 너무 오래되다 보니, 착각이 습관이 되어 아무 의문도 제기하지 않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게 자기 생명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일단 살기 위해선 텃밭에서 돈이 되는 작물을 심을 수도 있고, 농장에서 시키는 일만 하지 말고 도시에 나가서 장사를 할 수도 있습니다. 이젠 나와 가족을 위해서 생존 방법을 반드시 변화시켜야 할 때입니다. 당국의 말을 믿지 말라는 뜻입니다.

MC: 네. 소장님, 오늘도 유익한 말씀 감사합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농축산, 현장이 답이다>였습니다.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