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세요. <농축산, 현장이 답이다>, 진행에 이승재입니다. 농업과 축산업은 세상 모든 국가와 시민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산업이죠. 특히나 자력갱생을 강조하는 북한의 경우 자신의 먹거리는 자신이 책임져야 하기에 더욱 강조되는 현실입니다. 이 시간엔 남과 북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농축산 전문가와 함께, 북한 농축산업의 현실을 진단하고 적용 가능한 개선방법도 함께 찾아봅니다. <농축산, 현장이 답이다>는 농축산 전문가, 사단법인 굿파머스연구소의 조현 소장과 함께 합니다.
MC: 조현 소장님 안녕하십니까?
조현: 네. 안녕하세요.
MC: 북한 주민들이 정말 힘들겠습니다. 최근에도 북한 당국이 농촌 지원을 강화한다는 명목으로 도시 주민들과 여성들까지 총동원 시키고 있다고 하는데요. 이런 일이 거의 1년 내내 이어지는 거 같아요.
조현: 그 말이 맞습니다. 노력동원은 소학교 학생 이하와 나이가 아주 많은 노인들을 제외하면 웬만한 사람은 다 한다고 보면 됩니다. 최근에도 노동당은 노동신문에 전당, 전군, 전민이 목숨 걸고 참여하라고 당부했는데요. 물론 농업생산이 식량 위기 해결의 열쇠라 해도 이런 방식은 좀 아니죠.
MC: 북한 헌법에 공민은 로동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되어 있다는 걸 주민들이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농촌 동원은 그에 위배되는 것 아닙니까?
조현: 그렇죠. 이건 심각한 인권 침해, 노동권 침해입니다. 북한 헌법 제 70조가 무색할 만큼 북한 노동자들의 권리는 노동당 주도의 집단 동원, 그리고 강제로 여기저기 배치되면서 '권리'로써 전혀 존중 받지 못했고요. 자율성 역시 전혀 인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의 농촌 노력동원은 심각한 인권 침해
권리로써 존중 받지 못하는 권리
MC: 인권도 인권이지만, 사실 바쁜 농사철에 사람 말고는 도울 수 있는 농기계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해마다 농사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동원되고 있는 걸 텐데요. 이런 노력동원이 농사에 도움이 되고는 있나요?
조현: 아예 도움이 안 된다고 하면 시키지 않았겠죠. 어릴 때부터 지원을 자주 나섰던 대학생처럼 동원에 습관된 계층은 상당수 도움도 됩니다. 그러나 여러가지 폐단도 있습니다. 농민들이 자기 힘으로 농사지을 때와 인력 지원을 받아 농사지을 때, 가을에 농민 자신에게 차례지는 몫이 다르거든요. 그러다 보니 어떤 때는 어차피 많이 못 받을 바엔 농민들이 꾀를 내는 상황이 전개되기도 합니다. 또 농사를 잘 모르는 아이들이나 도시 사람들은 안 하는 게 차라리 나을 수도 있습니다. 모를 뜨거나 논두렁을 까는 일들은 어느 정도 기술을 알아야 하는데 모르면 안 하는 것만 못하거든요. 또한 간부들의 문제도 큽니다. 농사에 진심이라 어떻게든 해내려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자신의 동원 실적을 채워야 하니 필요도 없는 부분에 사람 수만 채우는 일도 많습니다. 이처럼 잘못된 제도로부터 벌어지는 다양한 폐단이 있고요.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근본적인 변화입니다. 이렇게 동원해 봐야 기계화를 하는 것보다 소득이 크게 늘어날 것도 아니고 다른 일을 해야할 사람을 억지로 끌어오는 건 국가적으로도 손실이니, 해서는 안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겁니다.
MC: 네. 그렇군요. 생각해보니 한국도 모내기, 김매기 철이라도 요즘은 논밭에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어요. 농기계가 부족하던 7,80년대엔 한국 대학생들이 바쁜 농사철이 되면 농촌에 자발적으로 일손을 도우러 갔습니다. 그때보다 지금은 그 수가 줄긴 했지만 여전히 많이 하고 있더라고요.
조현: 네. 저도 아는데요. 요즘 한국 대학생들이 하는 농촌 봉사활동은 극히 일부, 손으로 해야 하는 단순 작업들입니다. 예를 들면 수확할 때 고추, 사과, 배 따기 이런 것들입니다. 이들은 진짜 봉사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하는 거고요. 만약 농민이 일꾼이 필요해서 쓸 때는 일당도 꼭 주면서 합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사람 손으로 해야 하는, 북한의 노력 동원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입니다. 저는 한국에 와서, 북한에서 살던 때 생각하고 여긴 모내기를 어떻게 하는지 보았더니 드넓은 논판에 기계 1대가 돌아가면서 다 끝내더라고요. 발전된 국가들 보면 이미 다 기계화, 과학화가 되어있기 때문에 논밭에 사람 찾아볼 수 없습니다. 21세기에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은 콘서트나 축제, 전통시장 그리고 대형교회 정도입니다.
MC: 북한에선 지금도 과학농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만 노력동원이라는 방법이 전혀 과학적이지 않다는 게 가장 큰 문제 같아 보이네요. 북한의 농업이 제대로 바뀌려면 변화가 필요할 텐데요.
조현: 맞습니다. 과학적으로 바뀌려면야 물 관리, 종자 관리, 재배 방법의 변화… 당연히 많은 변화가 필요하겠죠. 그래서, 그러기 위해선 먼저 제도적으로 바뀌는 게 필수적이라고 봅니다. 일단, 현존하는 협동농장경영제도를 변화시키면 좋겠습니다. 현재의 협동농장경영위원회에서 생산물 관리, 노동과 재정, 경영에 대한 감독 기능을 없애고요. 기술 지원, 자재 공급, 종자 관리 정도의 기능으로 축소해야 합니다. 이렇게 현존하는 협동농장을 변화시켜서 유럽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농장 형태로 만드는 것이 북한 농업 발전에 있어 가장 빠르고 가능성 있는 길로 보입니다.
협동농장경영제도 역할의 축소 되어야
MC: 맞아요. 아예 새로운 걸 시도하기 보다는 있는 제도를 변화시키는 것이 좀더 수월하겠죠.
조현: 그럼요. 협동농장에 속한 소수의 농민들이 농지를 100~200 헥타르씩, 비교적 큰 규모로 나누어 각각 책임지는 형태로 하고요. 농장 안에 농가 주택도 짓고 살 수 있게 해주고 그 소득을 장에 내다 팔고, 해외로 수출할 수도 있게 길을 열어준다면 북한 농업도 머지않아 발전된 토대를 갖추고 세계와 경쟁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얻은 수익으로 농기계 장비를 개선하면 생산비도 대폭 감소되고 효율도 높아질 겁니다. 지금 협동농장 소속 사람들의 수를 보니까 말씀드린 방법을 적용한다면 적절한 경영규모가 될 것 같습니다. 그 정도라면 농축산물의 가격을 더 올리지 않아도 도시 주민들에게 견줄만한 소득을 창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의견을 말씀드리면 그동안 북한은 들판이나 집단화된 농지에 집중해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북한 산간지역에 위치한 농지들은 하나도 정비되지 않아서 오히려 인력, 비용 소모가 과다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산지 농장의 발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물길, 차길, 산지에 전기 연결 등을 잘 이뤄 놓으면, 그렇게만 해도 많은 농업 소득을 이룰 수 있을 겁니다.
북한의 산간지역 농지
농장의 정비와 인프라 구축 필요
MC: 결국은 농업을 발전 시키는 길은 인력을 줄이고 기계화, 과학화된 농사가 필요하다는 건데요. 북한 당국이 농업의 기틀을 바꾸지 않는다면 지금의 식량 사정도 개선되기는 어렵겠네요.
조현: 북한은 한국과 사정이 달라서 국가가 먼저 바뀌어야만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농장을 운영하는 방법 자체가 다르잖아요. 그래서 오늘은 국가가 해야할 일을 중심으로 말씀드렸는데요. 골자는 농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비록 오늘 내용 중에 농민 개인이 할 수 있는 게 없다 하더라도, 농민들이나 방송을 들으시는 분들이 이 사실 하나만 기억하시면 좋겠어요. 오늘날의 농업은 과거와 달리 아무나 경영할 수 있는 업종이 아니라는 겁니다. 첨단 장비를 통해 확보된 빅 데이터 즉 그간의 농업자료를 수치화한 것들이죠. 그걸 분석해서 경영 전반에 활용할 일도 많아서 이 분야 지식도 필수적이고요. 농산물의 품질을 최상으로 유지하기 위한 보관 및 가공에 대한 새로운 방법도 다 알아야 합니다. 나 먹을 것뿐만 아니라 시장의 흐름에 따르고 대응하는 능력도 갖춰야 하죠. 그래서 당장, 지금 농장을 운영하는 사람이라도 충분한 교육과 현장 실습이 필요하다고 할 것입니다. 아, 그런 제도도 시급하겠네요.
MC: 농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오늘 가장 기억에 남는 말씀입니다. 이젠 시대가 많이 바뀌어 농사도 전문가들의 지식과 노하우가 필수인데요. 이 같은 세계적 변화를 북한 당국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농축산, 현장이 답이다>였습니다.
기자 이승재,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