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세요. <농축산, 현장이 답이다>, 진행에 이승재입니다. 농업과 축산업은 세상 모든 국가와 시민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산업이죠. 특히나 자력갱생을 강조하는 북한의 경우 자신의 먹거리는 자신이 책임져야 하기에 더욱 강조되는 현실입니다. 이 시간엔 남과 북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농축산 전문가와 함께, 북한 농축산업의 현실을 진단하고 적용 가능한 개선방법도 함께 찾아봅니다. <농축산, 현장이 답이다>는 농축산 전문가, 사단법인 굿파머스연구소의 조현 소장과 함께 합니다.
MC: 조현 소장님 안녕하십니까?
조현: 네. 안녕하세요.
MC: 2023년 새해를 맞았습니다. 올해도 청취자 여러분, 또한 북한 농민 여러분들로부터 "이제는 살만해졌다"… 이런 좋은 소식들이 많이 들리기를 바라는데요. 오늘은 새해 들어 바뀐 북한 농업 정책에 대해 짚어보죠. 당장 지난 달 최고인민회의에서도 농업관련 법안들이 좀 바뀌었죠?
조현: 네. 최고인민회의에서 식료품위생법, 품질인증법, 농장법, 양정법 등 먹거리와 관련된 여러 법안의 변화가 있었는데요. 그중 우리가 주목해봐야 할 것이 양정법입니다. 겉으로는 양곡 수매 등 식량 유통과정에서 비리가 많이 일어나니까 그걸 단속하려는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그러나 농민에겐 최악이 될 법안입니다. 농민이 생산한 식량을 앞으로 시장에다 직접 팔지 못하고 국가가 정한 식량판매소에 일괄적으로 넘겨야 한다는 뜻입니다. 식량판매소는 그걸 또 일괄 수매하고 다시 인민들에게 판매하겠다는 겁니다. 쉽게 말하면 시장에서의 거래를 제한하겠다는 뜻입니다.
북한 농민들에게 최악이 될 양정법
MC: 아니 원래도 농업생산량 중에 30% 정도를 국가가 가져갔잖아요? 상당히 저렴한 가격에 수매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조현: 네. 그건 저렴한 가격이 아니라 헐값입니다. 지금 시장에서 쌀 1kg이 6,000원인데요. 원래 농산물 100을 생산했다고 하면 의무수매량 즉 군인, 노동당 간부, 교원들에게 줄 양으로, 말씀하신 30%를 국가가 수매합니다. 그런데 가격을 쌀 1kg에 46원, 강냉이 1kg에 23원씩 쳐줍니다.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가져갔어요. 그런데 이번 법안은 그렇게 가져가고도 남은 70%의 식량 중에서 종곡과 농민 식량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를 식량판매소에서 사가겠다는 겁니다. 종곡은 총생산량의 5%밖에 안 되니 큰 영향이 없다지만 농민식량은 1인당 매일 쌀 800g밖에 안 주거든요. 게다가 식량판매소에선 시장에서 6000원 하는 가격을 4000원에 사가겠다고 하는 거고요.
MC: 그럼 뭐, 농민들의 손해가 크겠네요. 솔직히 말하면 북한이 다시 뒤로 돌아간다는 생각도 듭니다. 몇십 년 동안 북한은 양곡수매법을 지켜왔고 그 결과가 고난의 행군이라는 혹독한 시련 아니었습니까? 국제사회에서는 북한에 그나마 시장이 생겨서 다행이라고 보고 있거든요.
조현: 맞습니다. 1950년대부터 이어진 기존의 수매법은 개인에 의해 식량가격이 오르내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배급제를 실시하겠다는 의미였습니다. 국가가 농민과 합의도 없이 일절 다 수매해서 주민들에게 배급해주는 형태였죠. 그러다 중간에 한번 달라졌습니다. 고난의 행군을 겪은 뒤 2005~2006년에 협동농장법이 바뀌면서 국가가 수매를 하긴 하지만 전체를 다 수매하지 않고 종곡과 농민식량, 협동농장 경영에 필요한 일부 곡물들을 시장에 팔아 다음 농사에 이용할 수 있게끔 하는 약간의 자율성을 부여했던 겁니다.
새 양정법은 시장 말살 정책?
MC: 이게 바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점이었습니다.
조현: 그랬죠. 정말 그나마 그랬습니다. 그렇게 이어진 북한의 시장형성으로 주민들은 시장의 덕을 톡톡히 봤습니다. 옛날엔 모든 생필품을 국가가 공급해줬다지만 그건 일부 지역과 일부 시기에만 그랬거든요. 국가가 인민의 모든 필요를 해결해 주려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죠. 결국 못했기 때문에 수백만의 사람들이 굶어죽었던 거고요. 그런데 시장 때문에 사람들이 배급제 시기보다 생활이 괜찮고 살만해졌습니다. 농민이 농산물 가격을 좀 더 받아 비료, 농약들을 사는 것도 가능해졌고요. 집에 비닐장판도 깔고 TV, 가전제품도 살 수 있게 됐습니다. 주민들의 소득도 올랐고 중국에서 들어오는 남방과일까지 먹을 수 있었죠. 주민 뿐 아니라 노동당도 시장의 덕을 봤습니다. 국가도 주민들을 먹여 살리는 책임에서 벗어났거든요. 결국은 현재까지 북한 역사에서 시장만큼 자원의 배분을 잘 해주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국가가 농민에게 30%를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뺏어가고도 나머지 수매가격을 내려서 농민들의 소출을 가져가도 됩니까? 아니에요. 북한은 완전히 거꾸로 가는 정책을 썼습니다. 북한은 생존, 안전의 질, 시장에 맡겨놓는 것이 중요합니다. 북한 당국이 제발 이러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되면 농민들은 1년간 농사를 지어놓고 가져가는 게 없습니다. 농민들에게 죽으라는 소리나 같아요.
MC: 농민들 역시, 자신들을 위하는 법안이 아닌 것을 알 텐데 현장의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조현: 다들 희망만 잃고 있지요. 이 수매법을 내놓은 의도가 주민들을 잘 살게 해주기 위한 의도가 아니란 걸 당연히 압니다. 최근 들려오는 소식은 식량판매소에서 쌀을 파는데 이번에도 현물이 없으니 한 가구당 5일분만 사가게 했답니다. 한 달 중 5일을 제외한 나머지 식량은 현재까지 장마당에 남아있는 식량분을 1kg 당 6000원을 주고 사먹어야 되는 거죠. 식량판매소가 좀 더 싸기는 한데 현물이 없으니까 새벽부터 나가서 기다려 봐도 쌀 없다고 문 닫고 나가버린답니다. 식량판매소에서 말로는 다음 달에 꼭 준다고… 이번에 5일분도 못 받는다면 다음 달에 5일분을 준다고 한다지만 다음 달에도 쌀이 없을 확률이 더 높습니다. 그러니 농민들의 불신만 커져갑니다. 권력기관에서는 줄 안 서도 다 가져가거든요. 반대로 인민들은 종일 줄을 서도 못 가져갑니다.
북한 농민들,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 심각한 각자도생의 해
MC: 새해 시작부터 북한 주민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정책만 나오는 거 같아 안타깝네요. 요즘 국제사회 뉴스를 보면 식량위기, 식량안보, 식량전쟁이라는 단어들이 많이 나옵니다. 이상기후와, 국제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들 때문에 지구 전체적으로 식량이 부족해지고 있습니다. 올해도 각 나라마다 식량을 확보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정책일 거예요.
조현: 그렇습니다. 물론 북한 인민들이 정권에 대항해 할 수 있는 게 없지만 국제사회의 흐름이라도 잘 알고 계시면 좋겠습니다. 이상기후 현상이나, 코로나19, 전쟁으로 인해서 세계의 알곡생산량은 계속 감소되고 있습니다. 이전에 알곡을 많이 수출하던 나라들이 있었는데요. 미국의 수출량이 대단했지만 현재는 미국도 감소했고, 우크라이나는 지금 전쟁 중이라 수출이 어렵습니다. 또 동아시아에서 알곡 수출을 하던 베트남(윁남), 라오스도 생산량이 줄었습니다. 북한은 단호하게 말하면 지금 제한된 면적에서 더 식량을 늘릴 수는 없어 보여요. 빨리빨리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 다른 나라들과 교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70년 동안 좁은 땅에서 계속 배급으로 살다가 굶어죽기만 했는데 앞으로 더 큰 위기가 닥쳐오면 북한 인민은 제대로 한번 잘 살아보지도 못하고 고생만 하게 됩니다. 그러다 죽을 수는 없잖아요. 여전히 콩알 반쪽이라도 나눠먹자는 말은 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잘못된 데서 길을 찾지 말고 세상을 바로 알길 바랍니다.
MC: 네. 오늘도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날이갈수록 절망스러운 상황인데요. 올 한해 저희 방송에선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이 더욱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서 여러분께 전해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농축산, 현장이 답이다>였습니다.
기자 이승재, 에디터 이예진, 웹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