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세요. <농축산, 현장이 답이다>, 진행에 이승재입니다. 농업과 축산업은 세상 모든 국가와 시민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산업이죠. 특히나 자력갱생을 강조하는 북한의 경우 자신의 먹거리는 자신이 책임져야 하기에 더욱 강조되는 현실입니다. 이 시간엔 남과 북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농축산 전문가와 함께, 북한 농축산업의 현실을 진단하고 적용 가능한 개선방법도 함께 찾아봅니다. <농축산, 현장이 답이다>는 농축산 전문가, 사단법인 굿파머스연구소의 조현 소장과 함께 합니다.
MC: 조현 소장님 안녕하십니까?
조현: 네. 안녕하세요.
MC: 혹독한 추위가 언제 끝나나 했는데 며칠만 지나면 3월이 되더라고요. 본격적인 봄철 농사에 접어들 때인데 제가 다 떨립니다. 봄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가 푸른 풀밭인데요. 사실 북한에선 이런 곳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들었습니다. 인터넷에 보면 국경지역에서 푸른 숲이 울창한 중국과 황폐화된 북한 사진을 비교한 것도 있고요.
조현: 맞습니다. 북한은 지금 거의 전역이 민둥산이 됐고 제대로 된 풀판이 없어요. 나무는 90년대 경제 위기를 맞은 이후 모조리 찍어냈습니다. 산이나 숲에 나무가 사라지면 폭우 피해가 크다는 건 누구나 다 알 겁니다. 북한 당국은 꾸준히 방풍림 즉 강풍을 막기 위해 나무로 조성한 숲을 만들어야 했어요. 한국은 정부처럼 각 지역자치단체에서 자유롭게 정책을 세울 수 있잖아요? 지역의 세금이나 정부에서 전달되는 자금으로 반드시 산림이나 풀밭 조성을 합니다. 지금은 더더군다나 봄철 풀판을 준비해야 하는데요. 북한이 정말 모르는 건, 여전히, 풀판에 있는 풀들을 가축이 먹으면 고기가 절로 생산되는 줄 알아요. 가축들이 거의 사라져 주민들 먹일 돼지, 소가 없는 지금도 그렇습니다. 풀판에 가축을 풀어놓기만 하면 되는 줄 아는데 이게 아니고요. 오히려 이것 때문에 자연 풀판으로 가치가 있던 곳도 사라지게 된 겁니다.
북한 농민이 모르는 봄철 풀판 관리
이렇게 시작해야 한다
MC: 아무 풀이 아니라 가축들에게 영양이 될 만한 풀을 심어야 한다, 저는 이런 뜻으로 들리는데요. 어떤 풀들을 심고 어떻게 관리를 하는 게 가장 효율적일까요?
조현: 네. 가축들이 좋아하는 풀 종류는 뻔해서 농민들이 잘 알고 계실 겁니다. 다만 더 중요한 건 그 풀들이 잘 자라나게 하기 위해서 풀씨, 종자를 관리하는 겁니다. 3월이 되면 그 풀씨를 땅에 뿌려줘야 하니까 지금은 그 종자를 소독도 하고 건조도 시켜야 합니다. 소독과 건조를 잘 시키면 풀씨의 발아율이 높아지거든요. 이 작업을 했을 때랑 안 했을 때의 발아율은 자그마치 30~40%나 차이 납니다. 어느 종자나 마찬가지지만 풀씨도 겨울 숙면 기간을 거치는데요. 풀 종자는 더더욱이나 봄이 왔다고 해서 그냥 깨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좀 도와줘야 해요.
MC: 저는 풀씨까지 소독하고 건조해야 하는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자연 그대로 놔둬도 되는 줄 알았어요.
조현: 자연 그대로도 좋지만 인간이 자연과 서로 도우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더 정확하고 멋진 표현 같습니다. 지금 2월 말이 되었잖아요? 풀 종자가 해충의 피해를 입었을 수도 있으니 먼저 소독을 해야 하는데요. 소독하는 방법 역시 농민들이 정확히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독은 화학적인 방법과 물리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화학적 방법은 포르말린을 이용해야 합니다. 북한엔 사실 농약이 부족하지만 포르말린은 북한 내 자체 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에 쉽게 구할 수 있어요. 포르말린에 풀 종자를 살짝 담갔다가 이후 증기 발생하는 기계에 넣어서 소독시키거나, 기계가 없다면 물을 끓여 증기를 만들어 소독하면 됩니다. 혹시 포르말린이 없다면 물리적 방법을 써야 합니다. 30도 정도 물에 4시간 담갔다가 50도 정도의 더운 물에 7~8분씩 잠깐 담갔다 빼주는 방법을 반복하면 약품을 안 쓰고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사료용 풀씨 중에서 소가 가장 좋아하는 건 억새, 콩풀인데요. 콩풀은 껍질이 두꺼워서 물을 잘 흡수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발아율이 더 낮아요. 이런 풀씨는 기계로 상처를 내거나 화학제로 껍질을 얇게 부드럽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 역시도 기계가 없다면 흔한 모래를 가져다가 종자와 모래를 3:1로 섞어서 손으로 8~10번 가볍게 비비는 방법을 사용해 보셔도 좋겠습니다. 소독은 이렇게 하는 거고요. 그 다음은 건조입니다. 잘 말려주면 되는 거예요. 초지에 뿌리기 20일 전부터 통풍이 잘 되는 곳에서 건조시켜 주십시오. 날씨가 안 좋다면 방 안에서도 할 수 있습니다. 종자를 바닥에 펴놓고 적어도 10~15일은 말려줘야 발아율이 올라갑니다. 풀씨까지 관리해야 한다니, 일 많은 북한 농민에겐 번거로운 작업이겠지만, 이런 방법도 알아두시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풀판 관리 잘하면 동물 번식에도 큰 도움
MC: 소들이 좋아하는 풀을 심고 관리하면 결국 땅에도 좋은 효과가 있을 것 같네요.
조현: 그렇습니다. 한국 강원도의 대관령에 가보면 해발 고도 700m쯤 되는 곳에 대규모의 풀판들이 있습니다. 녹색의 푸른 초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아름다운 목장에서 양들, 소떼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데요. 이걸 보면 자연의 신비로움, 아름다움에 감탄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여길, 마치 한국의 알프스 같다는 말을 하는데, 정작 스위스에 있는 알프스 목장에 가보면 한국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어마어마한 풀판이 있어요. 대축원의 가축 소리가 끊임없이 들리고 여기서 키우는 가축들은 최고의 풀을 먹고 자라거든요. 이런 세계적인 풀판은 결코 자연 조건이 좋아서 된 것만은 아닙니다. 해마다, 아! 지금 이 시기죠? 늦겨울과 봄철마다 땅에 필요한 거름과 비료를 주고요. 동물들이 번식하기 위해선 서로 종을 많이 교환해야 하듯 땅도 수시로 화학적 조성을 바꿔줘야 합니다. 풀씨도 일반 풀이 아니라 가축들이 좋아하는 풀을 수시로 바꿔서 심어주면서 수년, 수십 년의 세월을 거쳐 점차적으로 오늘과 같은 풀판을 만들어 놓은 겁니다. 이러면 땅도 더욱 건강해집니다. 가축들이 살기 좋은 환경이 되니 사람들 관광으로 돈을 버는 건 덤이 됐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그저 구획을 나눠주고 저기 풀이 많으니 가서 방목해도 된다… 이렇게 합니다. 물론 그 안엔 가축들이 좋아하는 풀도 있고 또 먹을 게 너무 없는 북한이기에 없는 것보단 낫겠지만 거긴 독풀도 많습니다. 가축들은 독풀에 죽고 관리하지 않는 풀판은 더욱 황폐해집니다. 그러니 풀판을 관리하는 노력이 지속되어야 합니다. 그게 중요합니다.
MC: 그렇군요. 북한이 대관령이나 알프스같은 초지를 만들려면 장기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린 당장에 농사를 시작해야 하고 어떻게든 가축을 먹일 초지를 준비해 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북한에서 지금 풀판을 관리하는 건 또 농민의 일일 텐데요.
조현: 맞습니다. 한국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관리하지만 북한은 이것마저 농민의 몫인데요. 네. 지금은 풀판 조성에 힘써야 할 때입니다. 초지 조성을 위한 토양 준비는 농사 준비 중에 손꼽히는 일이니까요. 자연초지라고 해도 소가 먹을 풀이 많아야 합니다. 그래서 씨 뿌릴 골을 째거나 구덩이를 많이 만들어야 하고요. 북한의 산지는 지금 대체로 단단한 잔디층이라 종자를 제대로 심을 수도 없고 심어도 씨 붙임이 잘 되지 않는데다 조금만 가물어도 풀씨가 말라 죽습니다. 그래서 일단 잔디층을 부서지게 해야 하고요. 당연히 그 안에는 잡풀과 독풀이 있을 테니 한번 갈아엎는 것이 좋다고 하겠습니다.
MC: 사실, 탈북민들의 증언으로는 북한 농민들이 이런 부분까지 알고 챙기기는 어렵다고 들었는데요. 아무쪼록 오늘의 조언이 농민 여러분들께 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농축산, 현장이 답이다>였습니다.
기자 이승재, 에디터 이예진,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