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세요. <농축산, 현장이 답이다>, 진행에 이승재입니다. 농업과 축산업은 세상 모든 국가와 시민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산업이죠. 특히나 자력갱생을 강조하는 북한의 경우 자신의 먹거리는 자신이 책임져야 하기에 더욱 강조되는 현실입니다. 이 시간엔 남과 북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농축산 전문가와 함께, 북한 농축산업의 현실을 진단하고 적용 가능한 개선방법도 함께 찾아봅니다. <농축산, 현장이 답이다>는 농축산 전문가, 사단법인 굿파머스연구소의 조현 소장과 함께 합니다.
MC: 조현 소장님 안녕하십니까?
조현: 네. 안녕하세요.
MC: 자고로 "농사 짓는 사람들은 허리 펼 날이 없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나 다른 한국분들도 항상 농민들의 수고에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는데요. 아닌 게 아니라 지금 무더위, 태풍, 장마를 수습하는 것만 해도 농민들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벌써 채소 파종 시기가 왔죠?
조현: 맞습니다. 7월 말까지 남새 파종을 마쳐야 가을에 수확할 수 있습니다. 그걸로 겨울 김장을 하는데요. 북한에선 "김장이 식량의 반이다"라고 할 만큼 김장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사실 어떻게 채소가 곡물을 대체하겠냐마는 북한엔 워낙 곡물양이 적으니, 김치 가지고라도 배를 채우자는 분위기인 거죠.
코로나 봉쇄 이후
북부 산악지역 농가의 약 30% 식량위기
최근 소식 들어보니 6월엔 쌀 1kg에 북한돈 5500~5600원 하던 것이 7월엔 6200~6300원으로 올랐다고 합니다. 이런 속도면 벌써 북부 산악지역 농가의 1/3은 굶고 있을 겁니다. 코로나 봉쇄로 어떤 지역은 고난의 행군 때보다 더 심각한 식량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따라서 올해처럼 농사가 안 되는 조건에선 남새에 전력 집중해야 합니다. 각 협동농장 간부들은 남새 파종 면적을 반드시 늘리길 바랍니다.
MC: 북한은 수많은 다른 국가들과 달리 주민 전체가 위에서 지시한대로 움직이는 사회잖아요. 협동농장 간부들이 이번에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올해 먹거리 양이 결정되고 여기에 북한 인민들의 생사까지 달렸다고 볼 수 있겠네요.
조현: 사실 협동농장 간부들도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지만 이들이 조금이라도 판단을 지혜롭게 하면 정말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습니다. 북한은 협동농장 내에 전문 채소작업반이 있어서 거기서 종자 선택, 구입, 파종 면적, 생산물 처리 등을 전담하는데요. 지금 북한은 전문 채소반과 농산반을 나누는 것이 무의미합니다. 빨리 너나할 것 없이 모두 남새 파종에 뛰어들어야죠. 모든 농산작업반 분조들에서 채소의 파종 면적을 두 배 이상 늘려야 된다고 제가 외치고 싶습니다. 그리고 가을 채소를 어디에 심을 것인가 적지를 잘 결정해야 하는데요. 지난 시기 파종했던 그 땅에 하는 것보다 오히려 옥수수 밭이나 밀, 보리를 심었던 밭 중 토양이 좋은 곳을 선택하세요. 비료나 농약이 없는 북한 조건 하에선 그나마 영양분이 있는 곳이 거기거든요. 채소가 생각보다 영양분을 많이 빨아들입니다. 원래 심던 땅에 또 심으면 잘 안 자라기 때문입니다.
MC: 아, 저는 같은 땅에 심어야 하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한국에선 벼나 옥수수 같은 다른 작물 밭에 채소를 심는 건 잘 못 봤거든요. 더더군다나 한국에서 채소는 온실 재배가 지배적이고요.
조현: 한국은 다르죠. 온실재배가 안전하고 남새의 상품성도 높으니까 한국은 대부분 온실재배로 전환하는 중인데요. 물론 아직도 땅에서 재배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선 비료나 농약이 충분하니까 굳이 북한처럼 옮겨 심을 필요는 없어요. 그리고 남북의 다른 점 중 하나는 남한에선 남새 파종할 때 영양단지(모종)를 사용한다는 겁니다. 한국이나 발전된 나라는 플라스틱 모판을 이용해서 영양단지를 미리 만들어 놨다가 땅에 옮겨 심습니다. 하지만 북한에선 그것을 만들 기술과 설비가 일단 농민이 해야 할 과제가 너무 많으니까 영양단지까지 만들기엔 감당이 안 될 겁니다. 현재 상황에선 되는 대로 계속 심어야 하는데요. 남한처럼 종자를 준비해서 거기 퇴비를 좀 섞어서 영양단지를 먼저 만들었다가 싹이 나오면 바로 땅에 옮겨 심는 방법을 해보십시오. 이러면 파종이 훨씬 쉽습니다. 만약 상황이 안 되어 평소처럼 땅에 직파할 경우엔, 남새들이 씨가 작으니까 한 군데 집중해서 떨어질 수가 있어요. 씨들을 모래나 흙 사이에 섞어서 살짝 손으로 비벼서 땅에 흩어주면 더 골고루 뿌려집니다. 이렇게 하면 남새가 자랄 때 가지나 잎을 솎아내는, 번거로운 작업을 적게할 수도 있고요.
MC: 네. 좋은 방법이네요. 그런가 하면 요즘 한국엔 제가 처음 보는 채소들도 정말 많더라고요. 상추도 입상추, 적상추, 해외 종자인 로메인, 버터헤드, 이렇게 다양한데요. 북한에선 채소의 종자 연구나 혹은 수입이 이뤄지고 있나요?
유명무실한 북한 종자관리소
올해는 종자 밀수조차 어려워
조현: 아니오. 거의 없습니다. 김정은이 맨날 회의만 하고 실질적인 대책을 안 세워주니 농민들이 고통스럽죠. 그나마 밀수해오는 종자 가지고 버팁니다. 정부에는 종자관리소가 있는데 거기서 추천하고 선택해주는 건 늘 좋지 않아요. 그 이유는 현지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연구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북한 당국에선 이런데 좀 더 투자했으면 좋겠어요. 한국은 정부에서 남새를 잘 재배하도록 농민에게 얼마간의 지원금도 주고, 그 이상이 필요한 농민들에겐 농업은행에서 개인 대출도 해줍니다. 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 유럽은 농민의 농가소득을 올려주기 위해서 정부 농업관계 기관이나 농업은행에서 매년 좋은 종자를 추천해줍니다. 어떤 지역에서 어떤 종자가 잘 자란다는 것을 알려주고 돈이 없는 농민들에게는 먼저 종자를 주고 나중에 수확하면 시세대로 생산물 구매조건도 마련해 줍니다. 또 이자 없이 돈을 대출해줬다가 후에 본전만 받는 제도도 있죠. 농가가 잘 되어야 나라 전체의 먹거리도 풍성해진다는 것을 모두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이런 종자에서 나온 수확물을 잘 구입해 주는데요. 종자를 도입시켜 구매계약까지 해주니 농민들이 마음 놓고 안전하게 새 종자를 파종할 수 있는 거죠. 북한 정부도 올해 농사 안 된다고 그냥 손 놓지 말고 이런 제도를 좀 고민해보면 좋겠어요. 현재로선 농민이 직접 종자를 구해야 하는데, 어쩌겠습니까? 작년에 재배가 잘 된 지역에 가서 종자를 구입해 와야지요. 대도시엔 규모가 큰 채소전문재배농장이 한두 개씩 있거든요. 거기 가면 잘 키워진 종자를 구할 수 있을 겁니다.
MC: 코로나 때문에 지역 이동이 더욱 어려워졌을 텐데 이거 가능한 방법인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빚을 내서라도
메밀과 들깨 종자 들여와야 할 때
조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죠. 북한 분들은 이렇게 말하면 다 아실 겁니다. 국경연선에 있는 분들은 밀수도 하거든요. 이렇게라도 해야 사람들이 먹고 사니까요. 제가 올해, 채소 파종 면적을 늘리라고 말씀드렸는데요. 그 중에서도 무가 식량 대용으로 좋으니 무를 많이 파종하는 게 좋겠습니다. 만약 제가 북한에 있다면 빚을 내서라도 메밀과 들깨 종자를 들여다 심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북한이 시기적으로 풀베기, 풀거름 만드는 시기인데요. 품이 어마어마하게 들 텐데 여기만 치중하지 말고 이럴 때 들깨, 메밀을 심어보세요. 특히나 들깨는 한국에서 1kg당 $40 정도 받습니다. 들깨 1kg을 팔면 강냉이 10kg을 살 수 있으니 곡물 농사로 벌 수 없는 돈을 메밀이나 들깨로 더 많이 채울 수 있습니다. 한국, 중국, 북한 다 들깨로 만든 기름을 좋아하잖아요. 비록 북한엔 기름 짜는 설비가 없다지만 들깨를 날 것 그대로 팔아도 국제시장에서 꽤 많은 돈을 벌 수 있습니다. 이런 건 대북제재도 관계없습니다. 개인적으로 농사짓는 분들도 꼭 생각해보시고요. 각 분조 단위의 땅에 심어 봐도 훨씬 효과적일 겁니다.
MC: 생산량과 품질이 나의 생계와 직결되어 있는 한국 농민들은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더 나은 방법을 찾아갑니다. 비록 협동농장체제의 북한에서 누군가 앞장서 이런 변화를 시도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겠죠. 하지만 용기를 내어 본다면 생각지도 못한 좋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올 겨울 집집마다 김장독이 가득했으면 좋겠네요. 지금까지 <농축산, 현장이 답이다>였습니다.
기자 이승재,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