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세요. <농축산, 현장이 답이다>, 진행에 이승재입니다. 농업과 축산업은 세상 모든 국가와 시민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산업이죠. 특히나 자력갱생을 강조하는 북한의 경우 자신의 먹거리는 자신이 책임져야 하기에 더욱 강조되는 현실입니다. 이 시간엔 남과 북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농축산 전문가와 함께, 북한 농축산업의 현실을 진단하고 적용 가능한 개선방법도 함께 찾아봅니다. <농축산, 현장이 답이다>는 농축산 전문가, 사단법인 굿파머스연구소의 조현 소장과 함께 합니다.
MC: 조현 소장님 안녕하십니까?
조현: 네. 안녕하세요.
MC: 한국인의 밥상에서 김치 다음으로 자주 볼 수 있는 것이 제 생각엔 달걀, 북한말로 닭알 같은데요. 한국에서 생산되는 모든 달걀에는 껍데기에 고유번호가 찍혀 있습니다. 이거 알고 계셨어요?
조현: 당연하죠. 그걸 난각번호라고 합니다. 일단 산란 날짜가 찍혀 있고요. 그 옆엔 생산자가 누구인지 표시하는 기호가 찍혀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숫자 1~4 중 하나가 적혀 있는데 이게 재미있어요. 이 숫자는 달걀의 생산 환경을 의미합니다. 1번은 푸른 초지에서 방목해서 키운 달걀, 2번은 평평하고 넓은 땅에서 사육한 달걀, 3번은 닭장 안의 닭인데 한 개 닭장 당 10마리 이하 환경에서 키운 달걀, 마지막 4번은 한 개 닭장에 15마리 이상 사육하는 곳에서 생산하는 달걀입니다. 제일 비싼 1번은 한 알에 0.7 달러, 제일 저렴한 4번 달걀은 0.2 달러 정도 됩니다.
MC: 저는 3, 4번 계란을 주로 사 먹는데요. 그래도 품질은 훌륭하더라고요.
북한에서도 장마당 활성화 이후
돈만 있으면 달걀 먹을 수 있어
조현: 그럼요. 4번도 신선도와 품질관리가 잘 지켜지고 있는 제품입니다. 이런 현실이 북한과 너무도 대비되네요. 북한에서 장마당이 생기기 이전엔 닭알 공급이 지금의 1/10밖엔 안 됐습니다. 국영농장과 협동농장에서만 공급했으니 정말 닭알 보기 힘들었죠. 하지만 90년대 후반, 시장이 만들어지면서 개인들도 나와 팔고 또 국영 닭공장에서도 닭알 생산량의 일부를 시장에 팔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서 얻은 수익으로 그들은 닭 사료를 구매하죠. 돈만 있으면 얼마든 닭알을 사먹을 수 있는 환경 정도는 됐습니다. 하지만 한국처럼 매일 달걀 1~2개씩, 얼마든지 먹을 상황은 전혀 못 됩니다.
MC: 네. 북한에서 달걀이 아주 귀한 음식이라고는 들었어요. 한국에선 달걀을 완전식품으로 꼽고 있는데요. 그 작은 한 알에 단백질과 지방, 탄수화물과 뼈를 튼튼하게 하는 칼슘까지 모두 들어있거든요. 북한에서 달걀 섭취를 늘리려면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할까요?
조현: 달걀의 문제는 닭에 있죠. 북한엔 일단 우량품종이 없어요. 지금 북한에 남은 만경닭, 장수닭은 1960년대 러시아나 쿠바에서 들여와 북한에 맞게 개량된 건데요. 순종 유지를 잘 하면서 지속적으로 품종 개량을 하지 않으면 퇴화되어 버리거든요. 북한은 육종기술이 떨어지기 때문에 꾸준히 해외에 나가서 배워야 하는데 항상 문을 닫고 있으니 품종 유지와 개량을 망쳐버린 겁니다. 한국 닭은 1년에 350알을 낳지만, 북한 닭은 230알 정도를 낳습니다. 곡물사료가 모자라는 것도 큰 이유고요. 2000년대 초반, 남북교류가 활발할 땐 한국에서도 닭이 좀 들어갔어요. 로먼, 리그혼, 하이라인 브라운 등 아주 훌륭한 품종들이었는데 그때 이거 일반인은 구경도 못했습니다. 군부대목장으로 들어갔는데 지금 다 없어졌을 겁니다. 한국에선 알 낳은 지 1, 2년이 지나 폐기되는 닭들도 1년에 300알을 낳습니다. 그래도 한국 가금업자들은 새 닭 구매해서 더 많이 생산하는 게 이익이니까 이런 닭들 돈도 안 받고 처리해 버립니다. 그런 게 해마다 수천, 수만 마리예요. 그거 보면서, 할 수만 있다면 철책선 아래 구멍이라도 내서 북한에 보내고 싶더군요. '그렇게 보내주면 군대부터 먹고 남으면 민간에라도 줄 수 있겠지…' 그런 상상 참 많이 했습니다.
사람 먹을 것도 부족한데
닭 먹일 게 어디 있나…
MC: 많은 분들이 비슷한 생각 하실 겁니다. 북한의 핵 개발로 전 세계의 대북제재가 더욱 심각해지면서 북한 주민들의 삶이 고달파지고 있는 건 가슴 아픈 일이죠. 식량난이 심각한 북한의 현 상황에서 '사람 먹을 것도 부족한데 닭 먹일 게 어딨나', 이런 생각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조현: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제가 꼭 말씀드리고 싶은 건,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선 사고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북한 닭이 하루 달걀 1개를 내기 위해선 하루에 옥수수 150g정도 먹어야 해요. 사람이 그걸 먹는 것보단 닭에게 먹여서 매일 달걀 하나를 먹는 게 낫지 않아요? 단백질, 칼슘, 탄수화물이 다 보충되는데… 다행히 북한도 닭 정도는 자유롭게 키울 수 있습니다. 능력 되면 100 마리, 1,000마리도 가능하죠. 경제적 이윤은 말할 것도 없네요. 장마당에서 지금 닭알 하나가 0.2 달러 정도 되는데 한 사람이 100 마리 정도 키운다고 가정하고 닭들의 산란율이 85% 정도 된다면 한 달에 500 달러 정도 벌 수 있거든요. 거기에 사료값 300달러 정도 제하면 한 달에 200달러는 순이익으로 남길 수 있잖아요. 200 달러면 쌀이 140kg입니다. 그래서인지 북한에서 너도나도 닭을 키우긴 하는데 그렇다 해도 닭 키우는 농가 비율이 한국보다 훨씬 적고, 여전히 닭알이 비싸고 부족한 이유는 사실 닭의 품종 때문입니다. 북한 정부에서 품종만이라도 잘 도입시켜주면 인민들 닭알 정도야 그게 문제겠습니까?
북한에서 닭알 부족한 이유
닭의 품종 때문?
MC: 그게 아쉽네요. 그런데 북한은 오랫동안 중국이나 러시아와는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잖아요. 거기로부터 좋은 품종을 얻을 수는 없었나요?
조현: 중국하고 러시아도 닭이 부족해요. 거기 좋은 닭 없습니다. 중국은 개방경제를 채택하고 닭 사육을 자율적으로 하면서 생산량이 어마어마하게 늘긴 했지만, 자체 인구가 엄청나서 내부 수요량을 채우기도 힘들고요. 러시아는 지역이 방대하고 기후가 추워서 닭 사육이 쉬운 편은 아닙니다. 옛날 사회주의 땐 러시아 국영상점에서 달걀 하나 사려면 얼마나 오래 줄 서야 했는지 아마 그때 가보신 분은 잘 아실 겁니다. 제가 늘 방송에서 한국의 도움을 받으라고 하는 이유는 물론 다른 자유국가도 훌륭하지만 한국은 일단 위치가 가까워서 뭐든지 바로 받기 좋고요. 한국 사람들도 북한 인민에 대해 우리 민족이란 의식이 있어서, 길이 열리면 언제든 도울 생각하는 사람이 정말 많더라고요. 그런데 북한 정권이 고집 부려 안 받으니 그게 얼마나 답답한지 모릅니다.
MC: 그렇군요. 먹거리의 혁신을 이뤄내려면 일단 시도가 중요하잖아요. 앞서 북한에서 닭 키우는 농가가 늘고 있다고는 하셨는데요. 아직 시작하지 않은 분들이라면 적게, 10 마리 정도부터 해보면 어떨까 싶네요. 개인이라도 잘 키우는 방법이 없겠습니까? 달걀이 많이 생산되면 좋겠는데요.
조현: 지금처럼 열악한 사료조건이면 굳이 현지에서 우량품종이라고 말하는 만경닭이나 장수닭을 키울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토종닭이 현지에 잘 적응되어 있고 구하기도 훨씬 쉬워요. 대부분 닭알만 생각하느라 수컷 병아리를 버리시는데 죽이지 마시고 그것까지 잘 키워내어 고기까지 생산할 생각을 가져 보셔도 좋아요. 키울 땐 힘들지만 이윤이 남을 겁니다. 제일 중요한 게 결국 정성이더라고요. 아침저녁으로 유심히 보다가 까딱까딱 졸거나 먹이를 잘 안 먹는 아이들은 병에 걸린 것이니 빨리 처리하시고요. 북한에 전기가 없어서 말씀드리기 조심스러운데 사실 알 낳는 닭은 하루에 16~18시간 꼭 빛을 봐야 합니다. 닭들이 빛을 안 보면 환경이 달라지는 줄 알고 알을 안 낳고 털갈이를 하거든요. 전등이 아니라 배터리를 이용해 조명만 쓸 수 있는 작은 전구는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 그거라도 해주시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역할이 가장 중요합니다. 국영 축산시설, 예를 들어 평양에 있는 만경대닭공장은 1년에 1억개 닭알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은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말씀드렸듯 퇴화된 품종, 사료의 부족 그리고 구시대적인 방역이 문제라 절반도 생산이 안 되는 겁니다. 정부는 이런 문제를 잘 해결해야 하고요. 축산 당국자들은 눈 딱 감고 국제사회로부터 무료로 준다는 우량품종 정란 1,000 개만 들여와서 1년만 정성껏 부화시켜 보세요. 그럼 충분히 전국에 퍼지거든요. 이어서 2~3년만 잘 번식 시키면 한국처럼 닭알 공급이 정상화 될 겁니다. 북한에서도 한국처럼 한 상에 닭알 두 개씩 올려놓고 좀 먹어봅시다.
MC: 네 소장님, 오늘도 유익한 말씀 감사합니다. 청취자 여러분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지금까지 <농축산, 현장이 답이다>였습니다.
기자 이승재, 에디터 이예진,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