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세요. <농축산, 현장이 답이다>, 진행에 이승재입니다. 농업과 축산업은 세상 모든 국가와 시민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산업이죠. 특히나 자력갱생을 강조하는 북한의 경우 자신의 먹거리는 자신이 책임져야 하기에 더욱 강조되는 현실입니다. 이 시간엔 남과 북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농축산 전문가와 함께, 북한 농축산업의 현실을 진단하고 적용 가능한 개선방법도 함께 찾아봅니다. <농축산, 현장이 답이다>는 농축산 전문가, 사단법인 굿파머스연구소의 조현 소장과 함께 합니다.
MC: 조현 소장님 안녕하십니까?
조현: 네. 안녕하세요.
MC: 지금이 김장철인데요. 한국은 집집마다 김장을 모두 하는 건 아닙니다. 특히나 30~40대 젊은이들을 보면 오히려 김장하는 집을 손꼽을 정도인데요. 북한과는 많이 다른 풍경이지요?
조현: 그렇습니다. 한국은 이미 김치가 가정의 영역이 아닌 산업의 영역이 됐죠. 60, 70대는 여전히 김치를 왜 사 먹냐며 힘들어도 김장을 많이 합니다. 하지만 간편하게 시장이나 가게 가서 사 먹을 수 있고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집 앞까지 신선하게 가져다주니까 이젠 김장하는 집이 점점 줄어들고 있죠. 요즘은 배추를 그냥도 팔지만 아예 소금에 절여서도 판매하잖아요. 게다가 집집마다 김치냉장고라는 전자제품을 갖추고 있어서 여기 김치를 넣어두면 땅 속, 독에 묻은 김치처럼 신선한 맛이 유지됩니다. 북한에서 김장철이면 배추를 소금에 절였다가 양념해서 버무리고… 보통 한 집에서 200~300kg은 꼭 하거든요. 북한에선 "겨울 김장이 식량의 반이다"라는 말을 쓰는데 진짜로 겨울의 절반은 김치로 뱃속을 채웁니다. 하지만 작년에 비해 재료값이 너무 많이 올랐습니다. 가격이 안 좋을 때도 배추, 무가 1kg당 북한 돈 1천원을 넘기지 않았는데 지금 1,700~1,800원 나갑니다. 원래도 북한에선 김장전투라는 말을 쓰는데, 사람들이 배추 구하기가 정말 전투 같으니 "진짜 김장전투가 됐다" 이런 말을 한다고 하네요.
북, 배추 구하기 전투 같아
“올해 진짜 김장전투”
MC: 그래서 소장님께서 무, 배추 심기를 매번 강조하셨군요. 저도 김치 없으면 밥을 못 먹는 사람인데요. 북한 여성들 정말 존경스럽네요. 한국 상황을 적용해보면 도시보다 시골 밭에 직접 가서 채소를 사면 훨씬 싸게 살 수는 있습니다. 북한도 농촌은 도시보다 좀 더 구하기가 수월할까요?
조현: 꼭 그렇지만도 않아요. 농장에서 배추를 얻어도 차가 없으니 운반할 수가 없습니다. 농촌도농장과 민가의 거리가 있으니 나르기가 힘들고 개인이라면 도시까진 아예 운반할 수가 없죠. 그래서 차를 가진 유통업자들이 가격을 제 맘대로 책정하니까 시장에서 가격폭등이 일어나는 겁니다. 제가 어릴 땐 웬만한 기업소에서 차에 김장 배추 싣고 다니면서 사람들한테 나눠줬어요. 지금 북한의 젊은 세대들은 그런 걸 본 적도 없겠죠. 북한은 김장해서 겨우내 먹다가 이듬해 5~6월, 김치가 떨어질 때를 대비해서 지금 시기 배추절임도 좀 해놓는데요. 올해 소출이 없으니 김장 못하는 집이 많다네요. 원래 북한에서도 옥수수 밭은 도둑질해도 무, 배추는 도둑질하지 않았어요. 올핸 도둑질도 너무 많답니다. 도둑질이 아니라도 올해 맛있는 김치를 먹는 건 아예 불가능합니다. 좋은 배추, 속통이 잘 들어앉은 걸 만나기 힘든 형편이고요. 작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북한 통틀어 배추, 무, 고추, 마늘을 4대 채소라고 하잖아요. 지금 북한에서 마늘은 겨우내 가물어서 자라지도 못했고요. 고추는 원래도 부족해서 중국산을 유통했는데 국경 봉쇄로 들여오질 못하니 올해 김장의 특징이라면… 대부분 백김치를 만든다는군요.
올해 북한 김장,
고추가 없어 백김치 담그는 상황
MC: 올해도 많이 느끼셨겠지만 점점 더 이상기후 현상들이 발생하고 있고요. 내년 작황도 긍정적으로만 예견할 수 없는 상황이라, 지금부터 다방면에서의 변화가 꼭 필요할 것 같습니다.
조현: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제가 배추와 무를 많이 심으라는 얘긴 방송에서 충분히 강조했다고 보고요. 오늘은 고추와 마늘을 얘기하고 싶은데요. 솔직히 북한 상황으로 고추 재배면적을 더 늘리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북한은 산이 많고 경지면적이 적어서 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땅이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곡식을 심을 수 있는 땅에는 벼, 옥수수 등 1차 식량을 생산해야죠. 따라서 고추는 국제시장에서 저렴한 중국산이라도 사다가 빨리 유통시키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 중국에서 북한으로 하루에 한두 대 열차가 들어가는데 여기 고추가 좀 있지만 그건 간부들 먹을 것만 챙겨놔서 주민들 몫은 없어요. 중국 국민들이 먹는 우량한 품종을 사다가 모자라는 양을 시장에 풀어야 합니다. 지금은 세계 어느 나라나 부족하면 서로 나눠먹고, 좋은 것은 서로 바꾸고, 이렇게 유통하고 교류하는 삶이 모두를 살리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마늘은 고추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늘은 제가 재배면적을 꼭 늘려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MC: 고추와 다르게 마늘 재배면적을 늘려야 하는 이유라도 있나요?
조현: 그럼요. 북한의 마늘 사랑은 대단합니다. 한국에선 한 사람이 1년 동안 마늘을 7~8kg정도 먹는다는데요. 직접 마늘을 먹기도 하지만 보통 음식의 조미료로 더 많이 이용합니다. 북한은 없어서 그렇지 먹을 수만 있다면 같은 기간 15kg도 먹습니다. 절여서도 먹고, 장아찌로고 먹고, 마늘 대도 먹고, 봄 초기엔 술안주 한다고 뽑아 먹고요. 한국과 다르게 흙을 털지 않고 소금에 절여놨다가 먹으면 굉장히 맛있습니다. 밥에 물 말아서 된장에 마늘만 찍어 먹어도 정말 맛있잖아요. 또 약효도 뛰어납니다. 생마늘은 페니실린보다 살균 효과가 강하다고 하잖아요. 약이 변변치 않은 북한에서는 항생제 대용으로도 사용합니다. 다시 말하면 장마당에서 정말 잘 팔린다는 겁니다. 마늘은 북한 농민들의 현금 수입에서 엄청난 효자노릇을 합니다. 협동농장에서만 심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농민들 개인은 집 앞에 30~50평 정도의 땅을 공식적으로 이용할 수 있거든요. 농장에서 나오면 개인 부업도 할 수 있는데요. 마늘은 농민들의 부업 중에 돼지 키우는 것 다음으로 돈을 많이 법니다. 개인이 경작할 수 있는 땅에 반 이상 마늘을 심으면, 수확이 잘 되었을 때 농민들이 내년 1년 동안 실질적으로 삶을 유지할 현금 수입을 얻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마늘 팔아서 곡식도 사고 내년에 다가올 힘든 시기도 견뎌야죠.
북한 내년 식량,
올해보다 더 비관적
MC: 북한이 지난 주간 쏜 미사일만 해도 35발 정도입니다. 이대로라면 내년에는 더 강한 대북제재가 예상됩니다. 소장님도 내년 식량을 보장할 수 없다고 비관하시는 거죠?
조현: 정확히 맞습니다. 사실 저와 같은 농업전문가들은 내년에도 북한에 수확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전망합니다. 북한이 11월 2일 하루 미사일 쏜 것만도 5,000~7,500만 달러라잖아요. 이건 북한의 1년 치 모자라는 쌀 수입액과 맞먹습니다. 강냉이 60만 톤, 쌀 30~40만 톤을 함께 살 수 있는 금액입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북한 당국은 농민들의 삶엔 관심이 없으니까 우리가 돈 만들 방법을 생각해보자는 뜻이죠. 아마 지금이면 평안남도와 황해도는 마늘 파종을 해야 하는 시기일 겁니다. 일부 다른 지역은 이미 시작된 곳도 있겠네요. 여러분이 갖고 계신 땅에 마늘을 70%까지 심어도 나쁘지 않습니다. 충분히 그거 다 팔립니다. 꼭 기억하시고요. 자기 텃밭에 오래 심었던 거 계속 심으면 종자가 퇴화되니까, 자전거 타고 다른 마을, 10~20km 떨어진 마을 가셔서 그 지역 마늘을 한번 보세요. 보기도 좋고 만져봐서 땅땅한 거 가져다가 심으십시오. 저 같으면 빚을 내서라도 종자를 구해다가 심겠습니다. 한국 농민들은 경영활동을 하니까 올해 상황을 봐서 내년 마늘의 수요를 결정하고 사전에 종자준비를 해서 재배면적을 그때그때 늘리기도 하고 줄이기도 하거든요. 그러나 북한은 정부가 재배관리에 관여하잖아요. 그거 믿고 따라가다간 날이 갈수록 힘들어지는 상황만 옵니다. 사실 마늘이 장마당에서 잘 팔리는 걸 북한 농민들이 모르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북한 농민들은 정부에서 내려 먹이는 과제가 많아서 다른 걸 하지 못하는 게 문제죠. 이참에 이렇게 자기 면적에 내년 수요를 예상해보고 작물을 결정하는 연습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게 변화의 시작입니다.
MC: 네. 소장님 오늘도 말씀 잘 들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김치 없이 사는 한민족은 상상할 수가 없네요. 농작물이 부족한 것은 올해가 부디 마지막이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지금까지 <농축산, 현장이 답이다>였습니다.
기자 이승재, 에디터 이예진,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