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세요. <농축산, 현장이 답이다>, 진행에 이승재입니다. 농업과 축산업은 세상 모든 국가와 시민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산업이죠. 특히나 자력갱생을 강조하는 북한의 경우 자신의 먹거리는 자신이 책임져야 하기에 더욱 강조되는 현실입니다. 이 시간엔 남과 북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농축산 전문가와 함께, 북한 농축산업의 현실을 진단하고 적용 가능한 개선방법도 함께 찾아봅니다. <농축산, 현장이 답이다>는 농축산 전문가, 사단법인 굿파머스연구소의 조현 소장과 함께 합니다.
MC: 조현 소장님 안녕하십니까?
조현: 네. 안녕하세요.
MC: 김정은 정권이 들어서면서 농업부문에서 가장 두드러졌던 변화가 바로 '포전담당책임제'를 실시했던 건데요. 올해로 10년이 넘었는데 현장에선 이 제도가 긍정적인 효과를 보이고 있는지요?
조현: 당연히 이 제도는 실패한 제도입니다. 이 제도가 시작될 때, 북한 정권은 아마 협동농장에서 일하던 많은 농민들이 포전담당책임제 쪽으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한 모양입니다. 기존 농민들이 열심히 농사를 짓고도 자기 식량을 못 받으니까 자연스레 책임감이 떨어지게 됐는데요. 그런 폐단을 북한 당국이 잘 아니까 농민이 소출한 만큼 가져갈 수 있게 하는 제도를 만들었던 게 포전담당책임제였어요. 소출의 30%는 국가에 바치고 70%는 자신이 갖는 제도인데요.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농민이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포전담당책임제가 실패한 진짜 이유
MC: 왜 그랬을까요? 그때 북한 외부에서도 농민들이 수확을 한 만큼 스스로 가질 수 있는 제도가 생겼다면서 북한의 변화를 내다 본 사람들도 있었거든요.
조현: 그건 외부에서나 그랬을 겁니다. 만약 북한 내부에서 누군가 앞으로 북한에서 자신의 능력만으로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농민은 바보입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북한에서 아무리 포전담당책임제가 있다 한들 개인이 혼자 농사 지을 여건은 안 되어 있어요. 협동농장에서 분조원들이 다 달라붙어도 안 될 일인데 개인이 하는 게 되겠나요? 게다가 가족 중 누군가는 장마당에 나가야 하는 형편인데, 개인이 아침부터 밤까지 논판에 달라붙을 수 없는 형편입니다. 그래서 그 제도에 동참했던 사람들도 얼마 못 가 포전담당책임제를 떠난 겁니다. 또 물과 기계가 접근하기 좋은 땅, 자연재해가 일어날 때 침수 피해 없는 땅, 이런 땅을 자기 맘대로 고를 수가 없습니다. 협동농장이나 작업반에서 선택해서 개인에게 떼어 주는 건데 누가 좋은 땅 주려고 할까요?
MC: 이 제도가 특별했던 건 개인 혹은 가족끼리도 농장을 운영할 수 있는 자율성이 있다는 거잖아요. 자유라는 말을 쓰기조차 힘든 북한에서는 이것 하나만큼은 그래도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요?
조현: 그건 절대적 자율성이 아니라, 협동농장에서 포전담당제도에 참여하지 않은 농장원과 비교할 때의 상대적 자율성입니다. 최소한 자기 땅에서 벼를 심을 지 강냉이를 심을 지는 선택할 수 있어야 하잖아요. 또 물 공급과 농기계 사용도 문제입니다. 어렵사리 배수로로 끌어온 물은 협동농장에서 모두 사용하는데 포전 담당자는 자기가 스스로 양동이에 물 퍼다 농사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농사를 지으려면 이런 문제 외에도 비료, 농약, 노력 등의 문제가 해결되야 하는데 그러려면 세계 어디서나, 어느 농사꾼이나 목돈이 필요해요. 그런데 북한에선 한국처럼 은행에서 돈을 꾸는 행위, 대출을 할 수도 없죠. 그래도 아주 가끔 노동신문을 보면 포전담당책임제를 통해 부를 이룬 농민들 기사가 나오는 데 정말 몇 명 안됩니다. 모범 농민, 영웅 농민, 이런 사례를 북한에선 신문에다가 얼마나 많이 싣고 싶겠어요. 그러나 지어내는 것조차도 제대로 못 하고 있는 형편이지요.
MC: 소장님 말씀을 들어보니 포전담당책임제가 성과를 거두지 못한 이유는 제도 자체가 아니라 북한의 체제나 국가 운영 방식 자체에 기인한다는 뜻으로 들리네요. 농민을 향한 국가의 시선이 아예 바뀌지 않는 이상, 성공할 수 없는 제도였군요.
국가 상납,
국가가 정한 수확량의 30%가 아니라
소출의 30%로 바꿔야
조현: 경제난 이후 농업생산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데 북한 정권은 이에 대한 이유를 농민들의 책임성 부족에서 찾습니다. 노동당의 시선이라면 이겁니다. 아예 틀렸죠. 포전담당책임제는 꽤 괜찮은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거짓뿐이죠. 저는 남한이나 북한이나 이런 애매한 거짓에 속지 말아야 할 만큼 우리가 똑똑해져야 할 것 같아요. 대부분 포전담당책임제는 소출의 30%를 국가에 바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국가가 정한 수확량의 30%를 바치는 겁니다. 자신의 수확량이 국가계획에 미치지 못했다면 국가에 다 바쳐야 하는 거였어요. 농사는 한 사람이 순전히 육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땅, 기후조건, 좋은 품종, 농기계와 물과 전기, 비료, 농약까지 다 보장이 되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특히 북한 땅은 수십 년간 화학비료 생산에만 매달렸기 때문에 이미 산성화되어 있으니 더더욱 힘든 일이죠.
MC: 농민들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조금 열렸는데, 효과가 없으니 다시 협동농장 분조원으로 들어가 예전처럼 희망 없는 생활을 한다는 것, 그게 안타깝네요. 북한 외의 사회주의 국가들은 이런 문제를 어떻게 극복했나요?
조현: 당장 중국은 지금 식량 걱정 안 하지 않습니까? 중국 베트남, 라오스 등은 여전히 사회주의 국가지만 과거 협동농장을 발전적으로 바꾸기 위해 그 제도를 모두 해산시키고 농민들에게 땅을 나눠주었습니다. 라오스는 농민들에게 땅을 나눠주고 국가는 일정부분 세금으로 거두는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물론 시작할 때는 농민들이 경영의 경험이 전혀 없었으니까 당연히 첫 해에 빚지고 거리에 나앉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국가에서는 선진국의 도움을 받아서 농업기술, 품종, 종자, 이런 것들을 좋은 것을 들여와 공급하는 제도를 만들어놓고 생산되는 농업 생산물에 대해 농민들에게 자체적으로 알아서 판매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줬습니다. 그 결과 중국은 1980~1990년대부터 생산량이 쭉쭉 올라가서 부족한 식량을 다 해결했습니다. 북한은 이걸 눈 앞에서 보면서도 적용하지 않아요. 포전담당책임제를 하려면 제대로 하고 안 하려면 안 해야지, 김정은은 농민들에게 자율성을 주다 말다 하니 이건 죽도 아니고 밥도 아닙니다. 그러니 농민들이 국가를 신뢰하지 않는 거죠.
MC: 어쩌면 북한 정권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그것 아닌가 싶습니다. 농민이 국가를 신뢰하지 않는 일… 북한 정권이 농민으로부터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무엇부터 바꿔야 할까요?
북한에서도 농민 위한 대출제도 생겨야
조현: 농민이 농사짓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건 농업자재를 구입하기 위한 돈인데요. 한국의 농협은행처럼 북한의 상업은행에서 자금 대출제도를 만드는 건 어떨까요? 협동농장이 비료, 농기계, 종자 등등 아무것도 공급을 못하고 알아서 하라고 하니 안 되는 겁니다. 대출제도만 만들어도 포전담당책임제는 성공할 겁니다. 돈으로 꿨으니 돈으로 갚는 것이 좋지만 북한 사회가 그렇게 현물을 좋아한다면 현물로 갚는다는 것을 계약서에 명시하면 돼요. 그리고 담당할 포전을 준다면,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확실하게 땅 확인을 해야 합니다. 각 지역 협동농장에 토양분석실이 있는데 땅의 시료를 채취해서 이 땅의 산도, 토양미생물 상태를 확실하게 알고 이 상황을 계약서에 적는 것이 서로에게 좋습니다. 한국은 국가와 개인, 업체 간의 어떤 계약을 맺을 때 정확하게 약속하고 약속한 모든 사항을 확실하게 적도록 합니다. 하지만 북한에서 정부의 약속은 허울 뿐이고 그 안에 농민을 위한 건 하나도 없습니다. 요즘 같은 기후엔 북한 정권이 협동농장에 내려 먹인 생산량은 절대로 못 뽑아내거든요. 그러니 계약서에 "농작물을 국가에 바칠 땐 목표량이 아니라 생산량의 30%다", 혹은 "내가 농사지으면서 비료와 농약은 협동농장에서 선 공급 받고 가을에 농작물로 갚겠다", 이렇게 명확히 적는 습관을 가져보는 게 좋습니다. 물론, 현재로선 말도 안 되는 북한 사회에서 이게 통하지는 않을 거예요. 하지만 안 되는 제도라고 하더라도 최소한 내가 뭘 얻고 뭘 잃는지 이해하는 습관은 꼭 필요합니다. 우리는 확실하게 하고 넘어가는 법을 배우고 거기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MC: 네. 소장님 오늘도 말씀 잘 들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지금까지 <농축산, 현장이 답이다>였습니다.
기자 이승재,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