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세요. <농축산, 현장이 답이다>, 진행에 이승재입니다. 농업과 축산업은 세상 모든 국가와 시민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산업이죠. 특히나 자력갱생을 강조하는 북한의 경우 자신의 먹거리는 자신이 책임져야 하기에 더욱 강조되는 현실입니다. 이 시간엔 남과 북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농축산 전문가와 함께, 북한 농축산업의 현실을 진단하고 적용 가능한 개선방법도 함께 찾아봅니다. <농축산, 현장이 답이다>는 농축산 전문가, 사단법인 굿파머스연구소의 조현 소장과 함께 합니다.
MC: 조현 소장님 안녕하십니까?
조현: 네. 안녕하세요.
MC: 북한의 농업은 협동농장, 그 안에서도 분조라는 조직을 중심으로 이뤄지지 않습니까? 이 제도는 생산성 향상을 위해 계속 개선되어 왔다고는 하는데요. 북한 외부에선 이 제도 가지고는 농업생산성을 결코 높일 수 없다고 평을 합니다. 소장님 생각은 어떠신지요?
조현: 그 말이 맞긴 맞죠. 분조의 기원이 되는 '작업반'은 1959년 북한에 협동농장이 만들어질 때 생긴 제도입니다. 1970년대 이전엔 '작업반 책임 관리제'라고 해서 파종, 김매기, 가을걷이 등 시기적으로 진행되는 농사 일의 협동 작업으로만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작업반 당 인원이 많고 관리하기가 힘드니까 북한은 개별적으로 통제하기 위해서 1970년대 '분조관리제'라는, 변화된 정책을 만들어 냈습니다. 단위당 인원도 줄였고요. 이전엔 공동 작업이 목적이었다면 이젠 작업반 내에서 분조 토지에 대한 책임을 얹어놓고 감시를 강화한 거죠. 북한은 농민이 농사의 주인이라는 말을 하는데 시작부터 거짓이었다고 봐요.
농민이 농사의 주인이라는 거짓말
MC: 농민이 농사의 주인이라면 그만큼의 자율성과 결정력을 가져야 하는 게 당연한데 북한에선 이조차도 허용이 안 된다는 거네요.
조현: 네. 그 말 지금까지 귀가 닳도록 듣는데요. 그건 결정권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육체적 노동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분조관리제는 노동당이 생각했던 결과를 거두진 못했습니다. 농민을 이런 힘 없는 존재로 만드니,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 자연재해, 경제난 등을 이겨내지 못했고 그 결과 고난의 행군을 만나게 됐잖아요? 북한 정권은 또 이 책임을 농민에게 돌렸습니다. 농민들의 애국심, 충성심, 책임감이 부족하다면서 '농사만 잘 됐다면 우리가 굶어죽을 정도는 아니지 않냐…' 이렇게 덮어버린 겁니다. 그땐 정말 1년 365일 새벽 밤낮, 아침, 저녁으로 논밭에 일하러 나가도 진짜 알곡 분배라는 건 전혀 없었습니다.
MC: 그랬군요. 고난의 행군은 북한 역사에서 뼈아픈 일로 기록되지만, 사실 세계적으로도 충격적인 사건으로 남아 있습니다. 외부 국가들에겐 오히려 북한처럼 하면 안 된다는 교훈으로 느꼈을 정도인데요. 결국 그 후로 북한 당국이 분조도급제를 내오지 않았습니까? 가장 큰 특징이라면 농사가 잘 됐을 때 농민이 더 가져갈 수 있다는 점이었는데, 나름 효과도 좀 있었을 것 같은데요?
조현: 공산주의, 사회주의엔 고질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열심히 일해도 똑같이 나눠 먹으니 책임감이 있을 수 없죠. 경제난 이후 사람들은 자신의 텃밭, 소토지, 가축 키우기, 장사 등 돈이 되는 일을 찾기 위해 농장일은 대충 대충 시간만 때우다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북한 당국이 책임성을 고취하기 위해 분조도급제를 실시하고 자기 분조에서 농사가 잘 되면 국가에 바치고 남은 분량을 개인이 가져갈 수 있게 한 건 맞습니다. 개인이 분발하는 측면은 좀 있었어요. 하지만 그때도 문제가 많았습니다. 제가 협동농장관리위원회에서 일할 때 여러 농민들이 잘 되는 분조를 시기하면서 "쟤네가 땅이 좋다. 우린 어쩔 수 없이 불리하다" 이렇게 조건에 대해 불평하는 사람도 많았고요. 이때쯤 드러난 문제는 바로 분조장의 관리 능력이었습니다. 북한의 분조장 정도 되면 당연히 농장 경영을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분조장이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그 역량까지는 안 됩니다. 결국 이 문제가 분조 농사에 영향을 미쳤고 얼마 못 가 분조도급제도 별 효과를 보지 못했죠. 결국 눈 가리고 아웅이었던 겁니다.
농민에게 자율성이 없으면 생산성도 없다
MC: 네. 결국은 농민을 근로자가 아니라 자율성을 가진 경영자로 만드는 방법만이 생산성을 높이는 가장 확실한 길이겠네요.
조현: 맞습니다. 온전한 자율성을 주지 않으면 생산성을 결코 높일 수 없습니다. 농민이 농업의 시작부터 마무리, 유통까지 다 결정을 하고 책임지는 것이 생산성을 높이는 길이죠. 지금 북한은 개인에게 땅을 주면 사회주의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이 분조도급제의 폐단을 포전담당제로 해결하려 하는데, 구식이 장식이라고 그건 큰 변화가 없는 관리방식입니다. 본질적인 개혁 없이 국가가 정한 틀 안에서 자율성의 범위를 왔다갔다 옮기는 것뿐입니다. 이게 북한 농업의 최대 결함이고요. 안타깝게도 북한 농민의 계급적 처지가 그렇습니다.
MC: 저는 북한 당국이 지난 기간의 실패 또 해외의 사례를 보면서 농민에게 자율성을 주지 않으면 농업 성장이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당국자들이 과감하게 개혁을 시도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요?
조현: 눈앞의 이익만 생각해서 그렇습니다. 북한 말엔 "손톱 곪는 줄 알면서 염통 아픈 건 모른다"는 말이 있는데 최근에 어떤 통계를 보니 현재 북한의 소득수준이 전 세계 194개 나라 중에 끝에서 서너번 째더라고요. 농민들이 실질적으로 농사도 잘 짓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국가에 더 바치는 게 많아질 텐데요.
북한의 분조제도
꼭 바꿔야 할 세 가지
MC: 네. 북한 당국이 분조관리제라는 제도를 만들었을 당시와는 기후도 농작물도 세계시장의 흐름도 달라졌으니까 변화는 확실히 필요한 상황인데요. 소장님, 지금 상황에서 60년간 지속되어온 분조제도를 어떻게 개선하는 게 가장 좋을까요?
조현: 우선은 체제가 바뀌지 않더라도 어떤 식의 변화든 변화는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해 봤는데 일단 첫째로, 분조를 가족단위로 묶어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1개 분조당 인원을 10명 이하로 줄이고 분조성원들을 부모자녀 혹은 형제로 조직하면 이야말로 생산성이 높아질 겁니다. 북한의 가족은 한국의 가족보다 더욱 끈끈한 결속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게 다 내 가족에게 돌아가는 거잖아요. 또 북한 사람들이 자기 가족 수장의 말을 잘 듣거든요. 이런 면에서 볼 때 분조장의 역할이 부족했던 게 늘 문제였잖아요. 두 번째는 그래서 분조장 교육을 제대로 실시해야 한다는 겁니다. 북한의 분조장들은 시기별로 변화되는 농사 방식이라든가 세계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농업이 발전하는지, 이런 흐름을 전혀 모릅니다.
MC: 네. 토지의 이용법, 종자의 선택, 재배 방식, 재배 기술의 보급 등의 전반적인 농업 교육을 하면 좋겠네요.
조현: 그럼요. 북한 당국은 해마다 분조장 대회를 해서 소득 잘 낸 사람을 평양으로 올려다가 밥이나 해먹이고 칭찬하고 그러는데 그건 하나도 소용 없고요. 동영상 교육을 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한국이 싫다면 중국, 베트남의 개인 농민들이 농사를 어떤 방식으로 짓는지 보여주고 따라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됩니다. 세 번째는 자율성입니다. 분조장들이 농사를 잘 짓고 경영까지 할 자유를 줘 보세요. 품종의 선택부터 수확 후 판매에 이르기까지 자율성을 주면 훨씬 생산량이 많을 겁니다. 제가 보장합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저 같으면 땅 받아서 1~3년 동안은 사료작물을 재배해서 돼지와 염소, 양들 키우겠어요. 그리고 거기서 나온 퇴비 가지고 분조 땅에다 뿌리면 다음 해엔 땅이 비옥해지겠죠. 가축 키우면서 돈도 좀 벌게 되고요. 비옥한 땅에서 소출이 많이 나오는 건 과학입니다. 그럼 수확량이 정말 많아질 테니까요. 마지막으로는 늘 제가 강조하는 건데 물질적인 조건 보장이 중요하죠. 일단 첫해는 무조건 정부나 지역이 투자를 해줘야 합니다. 돈이 아까우면 빌려주고 나중에 수확해서 다 갚게 하면 돼요. 확실히 지금보다는 소득이 많아져 잘 살게 될 거고, 잘 살면 나라에 바치는 것도 많아집니다. 북한 당국에게도 훨씬 이익입니다.
MC: 여러 차례 변화를 시도했지만 분조관리만으로는 생산성 향상에 한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북한 당국의, 좀 더 확실한 변화가 필요해 보이네요. 지금까지 <농축산, 현장이 답이다>였습니다.
기자 이승재,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