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세요. <농축산, 현장이 답이다>, 진행에 이승재입니다. 농업과 축산업은 세상 모든 국가와 시민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산업이죠. 특히나 자력갱생을 강조하는 북한의 경우 자신의 먹거리는 자신이 책임져야 하기에 더욱 강조되는 현실입니다. 이 시간엔 남과 북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농축산 전문가와 함께, 북한 농축산업의 현실을 진단하고 적용 가능한 개선방법도 함께 찾아봅니다. <농축산, 현장이 답이다>는 농축산 전문가, 사단법인 굿파머스연구소의 조현 소장과 함께 합니다.
MC: 조현 소장님 안녕하십니까?
조현: 네. 안녕하세요.
MC: 현재 사회주의를 유지하는 국가들도 대부분 협동농장은 해체한 상황인데요. 이 제도를 고수하는 국가는 전 세계에서 북한이 유일합니다. 북한의 농업 개선을 위해선 협동농장 제도를 해체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많은데요. 어쨌든 해체에 앞서서 변화라도 필요해 보이네요. 어떻습니까?
협동농장경영위원회가 바뀌지 않으면 농민이 죽는다
조현: 더 이상 굶어죽지 않으려면 이젠 변해야지요. 협동농장의 변화를 이끌어 내야 하는 조직이 바로 협동농장경영위원회입니다. 경영위원회는 협동농장을 지도하는 체계인데요. 1960년 12월, 김일성이 평안남도 숙천에 가서 10여 일 동안 묵으면서 이 체계를 만들었다고 하죠. 당시는 전쟁 후라 그때 농민들 수준으로는 협동농장을 운영하는데 문제가 많았습니다. 기본적으로 물질, 기술적 토대가 약했고요. 농민들이 가진 종자도 별로 없었고 또 거기 관리하는 사람들이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물론 농사를 짓던 사람들이긴 했어요. 옛날에 머슴을 살았다거나 전쟁에서 열심히 싸웠다거나… 하지만 농장의 작업반장, 관리위원장을 수행할 역량은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전문가들로 꾸려 당시 경영위원회를 조직한 겁니다.
MC: 전쟁 후엔 모든 게 황폐했겠죠. 변변한 농자재도 없었을 테고요. 그렇게 보면 1960년대 실정에서 그리 나쁜 제도는 아니었을 것도 같네요.
조현: 맞습니다. 국가가 가진 자원으로 협동농장을 도와줬던 기능은 농업 현장에 일정한 정도로 도움이 됐죠. 그때 경영위원회에서 생산, 축산, 과수, 산림, 관개, 농업자재, 노동, 재정 등 농업의 전반적인 부분을 지도하는 부서들이 만들어졌던 겁니다. 하지만 당시에도 경영위원회는 꼭 농민들을 위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북한은 토지를 전 인민적 소유라고 주장하면서 생산 전반을 사회주의적으로 개조하려는 목적이 있었죠. 지금까지 남아있는 전국 200여 개의 협동농장경영위원회는 그렇게 시작된 겁니다.
MC: 그렇군요. 그래서 그런지 요즘 탈북민들 얘기를 들어보면 경영위원회에 대한 불만이 많더라고요. 아무래도 시대에 따른 변화가 없었던 게 큰 문제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협동농장경영위원회는 고인 물
조현: 네. 맞습니다. 물도 흐르지 않고 고이면 썩는 겁니다. 협동농장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농산물의 생산, 판매, 유통을 모두 장악했고요. 바로 이것이 북한의 농업을 발전시키는데 브레이크, 제동장치가 되고 있습니다. 농사라는 건 자기 지역 특성에 맞게 지어야 합니다. 경영위원회는 그걸 가장 잘 아는 농민이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고 국가의 계획적인 지시만 따라야 하는 존재로 만들어버렸죠. 60년 전에 농업을 발전시켰던 전문가들은 이제 대부분 세상을 다 떠났고요. 그 60년 동안 농민들의 지식이나 협동농장의 기술수준도 그때 전문가들만큼은 다 성장했습니다. 이젠 농민들이 알아서 제 발로 걸어갈 수 있는 수준의 기초는 마련되었다고 봐요. 경영위원회라면 현재의 상황을 잘 파악하고 지도를 해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MC: 소장님도 경영위원회에서 일하셨잖아요. 더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가 혹시 조직 내에서 새로운 방식을 제안하고 이끌어갈 전문성이 부족해서일까요?
조현: 그렇지는 않아요. 일단 농장에 지시를 내리는 경영위원회 관리들은 북한에서 나름 농축산을 공부한 지식인이 맞긴 합니다. 각 도엔 농업대학이 있는데요. 북한의 농산, 육종, 채소, 과수 부문의 기술자들이 다 거기서 나오고 이들이 경영위원회를 들어갑니다. 기초지식이라면 다 가지고 나온 전문가들인데 김정은의 정책 관철을 위한 도구로만 쓰이는 게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북한이 정말 협동농장제도를 쭉 이어가고 싶다면 경영위원회 조직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MC: 네. 좋습니다. 지금의 협동농장경영위원회는 어떤 방식의 개선이 필요하겠습니까?
조현: 방법을 제시함에 앞서서 제가 수차례, 북한 농업은 농장과 농가의 소득을 올리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를 위해 경영위원회에선 먼저 세계적인 농업의 흐름을 이해하고 있어야 해요. 최근 추세는 농업생산이 환경을 제대로 보전하고 또 지구 온난화에 대처하기 위해 농작물을 바꾸는 경향이 있습니다. 품종의 변화가 필요하고요. 또 북한은 여전히 소가 농사를 짓거든요. 외부세계는 이미 기계화의 시대마저 지나, 이젠 스마트 농법이라고 해서 사람이 사무실 컴퓨터 앞에 앉으면 농장에선 무인 기계가 알아서 농사를 짓는 방법이 일반화 되고 있습니다. 작물도 요샌 유전자 조합을 많이 합니다. 유전자 조합 농산물에 대해 거부감이 있는 사람도 많지만 그래서 연구자들은 사람의 건강에 효과적인 품종을 만들어 내기 위해 개발에 엄청난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경영위원회는 이런 흐름을 잘 파악하고 이 흐름 안에서 북한 농업의 정책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북한 농업도 성장하고 수출도 잘 되겠지요.
경영위원회 기능 축소가 먼저
MC: 소장님 말씀을 제가 이해한 바로는 경영위원회에서 지금까지 생산, 판매, 유통 등 모든 것을 관할했던 기능을 줄이고 농업의 방향이나 목표를 제시하는 기관 정도로만 남는 게 좋다는 건가요?
조현: 네. 맞는 말씀이고요. 정확히 말하면 농업을 위한 봉사기관으로 남아야 한다는 겁니다. 목표를 정하고 목표를 위해 필요한 조건을 책임지는 기관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죠. 예를 들면 경영위원회에서 각 지역의 토양과 기후조건을 잘 연구해서 특산 품종을 안내해주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러면 농민들은 그 지역 특산품을 생산해서 지역경제를 성장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겁니다. 경영위원회에서 더러 유럽의 발전된 기술을 배워 와서 해당 작물 재배에 필요한 기술도 전수해주고, 중국에서 비료를 사다 준다든지, 농민이 직접 할 수 없는 관개시설을 정비해 준다든지… 이런 농업 봉사기관으로 탈바꿈하면 훨씬 농민에게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MC: 말씀대로라면 현장에 있는 경영위원회의 관리들의 역할도 많이 달라져야 하겠네요. 새로운 것들을 더 많이 배워야 할 거고요. 경영위원회 관리들이 그런 변화를 반가워할까요?
조현: 담배 물고 뒷짐 지면서 지시하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관료들도 교육을 새로 받아 전문화된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경영위원회에서 듣는 분들이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한편으로 여러분들이 사는 길이기도 합니다. 한국은 농사는 농민에게 맡기고, 농민을 돕기 위한 봉사기관을 조직하면서 수많은 일자리 창출이 가능했습니다. 누군가 배워 오고 가르쳐줘야 하고요. 필요한 자재나 비료를 구하기 위해 구매를 전문으로 담당하는 일꾼도 필요했죠. 이런 일들 공짜 아닙니다. 농민들이 잘 살면 다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으며 살 수 있는, 하나의 직업이 됩니다. 저도 경영위원회에 있었지만 국가가 주는 생활비는 한 달에 5~6천원이었는데요. 그거 가지곤 지금도 쌀 1kg밖에 못 삽니다. 이런 생활에서 벗어나려면 관리 여러분들도 스스로의 기술적 능력과 재능을 팔아서 농민이 돈을 벌 수 있게 해주면 돼요. 이렇게만 된다면 북한 농업은 물론 경영위원회 관리들도 잘 먹고 잘 살 겁니다. 김일성은 살아생전, "말하는 사람보다 삽질하는 사람이 더 많아야 한다"고 말했어요. 북한이 툭하면 김일성의 유훈을 관철하라고 하는데 경영위원회에서 말만 하지 말고 북한 농업이 성장하도록 진짜 변화를 시도하는 것, 이게 진짜 김일성의 유훈을 관철하는 게 아닐까요?
MC: 네 소장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청취자 여러분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지금까지 <농축산, 현장이 답이다>였습니다.
기자 이승재,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