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축산, 현장이 답이다] 북한에 정말 농민은행이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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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농축산, 현장이 답이다>, 진행에 이승재입니다. 농업과 축산업은 세상 모든 국가와 시민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산업이죠. 특히나 자력갱생을 강조하는 북한의 경우 자신의 먹거리는 자신이 책임져야 하기에 더욱 강조되는 현실입니다. 이 시간엔 남과 북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농축산 전문가와 함께, 북한 농축산업의 현실을 진단하고 적용 가능한 개선방법도 함께 찾아봅니다. <농축산, 현장이 답이다>는 농축산 전문가, 사단법인 굿파머스연구소의 조현 소장과 함께 합니다.

MC: 조현 소장님 안녕하십니까?

조현: 네. 안녕하세요.

MC: 한국에선 서울은 물론 지방 곳곳에도 '농협'이란 글자가 붙은 기관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농업협동조합의 줄임말인데요. 이게 바로, 각 지역의 농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기금을 모아놓고 농민들에게 대출도 해주는 은행입니다. 알고 보니까 북한에도 이런 농민은행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북한에도 농협과 비슷한 농민은행이 있었다?

조현: 네. 지금은 없어졌지만 해방 후에 북한에서 농민이 농사를 지을 때 필요한 비용을 대출해주던 농민은행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못 가서 북한이 은행 단일화 정책을 펴면서 사라졌습니다. 아마 그때가 협동농장이 본격적으로 운영되던 60년대초 쯤 될 겁니다. 이때 북한 정부는 앞으로 농업 자재, 비료 등 농사에 필요한 물품은 농촌경영위원회를 통해서 전부, 일괄적으로 공급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고는 모든 물품을 돈이 아닌 현물로 공급하기 시작하면서 돈을 융통해야 하는 농민은행의 역할은 상당히 축소되었고 그러다가 없어진 겁니다.

MC: 반면에 한국은 워낙 다양한 목적을 가진 은행들이 많습니다. 농협뿐 아니라 수산업의 발전을 위한 수협은행도 따로 있습니다. 소장님이 보셨을 때 이런 모습이 남다르게 느껴지셨을 것도 같아요.

조현: 북한에 있을 때 가장 속상했던 건 농민들에게 자신의 편이 없다는 거였습니다. 한국에 와 보니 은행이 농민의 입장에 서서 편이 되어주더라고요. 물론 은행제도가 다 좋은 것만은 아니죠. 하지만 농협이 농민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는 않잖아요? 한국에선 농민은행을 농협이라고 부르는데 이 은행에선 가진 돈으로 농업 성장을 돕고, 정기적으로 농업인의 교육도 시켜주고, 농업의 생산유〮통가〮공소〮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경제사업을 지원해줍니다. 이러니까 각 지방마다 읍, 면, 리에 대부분 농협이 다 있어요. 필요하니 만들어졌다는 뜻이겠죠.

지금이 바로 농민은행이 부활되어야 할 때

MC: 그렇습니다. 반대로 북한은 오랜 시간 단일은행을 고수하고 있었는데요. 정부가 농업생산에 필요한 자재들을 잘 공급했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사실상 농민들이 지금 자력갱생을 하다 보니 발달된 게 장마당이라고 볼 수 있죠. 하지만 문제는 농민들이 장마당을 통해 농업 자재를 구매하고 싶어도 돈이 없다는 겁니다. 이런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게 농민은행의 부활 아닐까요?

조현: 그렇죠. 어차피 국가 공급 없이, 농민들이 시장 수입을 통해서 농사를 지으려면 재원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뿐만이 아니라 많은 전문가들이 북한에도 농민은행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우리 민족 속담에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한국의 농협처럼 북한에서도 농민은행이 농민들에게 필요한 돈도 빌려주고, 예금한 돈도 보호해주고, 농업기술을 가르쳐도 주고, 농산물을 판매도 해주면 농민에게 힘이 되겠죠.

MC: 말씀하신 대로 한국 농협은 농민들을 위한 농산물 판매도 대신 해주거든요. 저는 지방 곳곳을 여행할 때마다 각 지역 특산물을 농협에 가서 사는데, 신선하고 가격도 저렴해서 좋더라고요. 국가가 크게 개입하는 북한에서도 이게 가능한 일일까요?

조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이미 비슷한 형태를 가진 상점도 운영이 되고 있어요. 북한 각 지역에 83소비품상점이라고 있는데 여긴 국가가 가격을 정하는 게 아니라 1990년대 이전부터 생산자와 판매자가 합의한 가격으로 팔고 있었습니다. 또 평양에만 있지만 각도에서 생산한 특산물 상점도 있어요. 이런 특산물 상점을 각 지방 시, 군에서도 만들어 자기지역 제품을 팔 수 있게 해주면 됩니다. 최근 최고인민회의에서 김정은은 지역의 균형발전을 강조했는데 바로 이런 정책이 이법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말로만 지역발전 시키겠다고 하지 말고 이런 정책을 펴면 지방 도시에 여행자도 불러 모을 수 있고 지역간 교류하는 방안이 되기도 하겠죠. 또 다른 은행의 역할이 있습니다. 말씀드렸듯 농민의 농사가 잘 되어야 은행도 이득이니까, 한국의 은행을 보면 농사에 도움되는 인재 즉 명석한 농업전문가도 채용하더라고요. 이들은 최근 몇 년간 국제 생산의 흐름을 파악해서 농민들에게 작물의 배치도 도와줍니다. 예를 들어 "배추를 심어라", "무를 심어라" 이런 것을 알려주죠. 해당 작물을 심는 농가에는 더 저렴한 이자로 돈을 빌려주기도 합니다.

농민은행 제대로 운영되려면

땅에 등급을 매기는 것부터 시작해야

MC: 네. 그렇습니다. 만약 북한에도 이런 제도가 필요하다면 현 상황에서 농민은행은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져야 할까요?

조현: 은행이 운영되기 위해선 투자자들을 통해 돈을 모아야 하는데요. 투자자란 외국이 될 수도 있고 북한 정부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돈이 많은 국내외의 개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에 농민은행이 만들어진다면 사람들은 뭘 믿고 투자를 할까 고민하게 될 겁니다. 그래서 가장 처음으론 북한 전체 토지에 가격을 매겨야 합니다. 북한은 이 땅이 얼마, 저 땅이 얼마, 그런 기준이 전혀 없거든요. 그래서 땅의 등급을 어서 정해놓아야 합니다.

MC: 땅에 등급을 매기는 것과 농민은행이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조현: 솔직하게 지금 북한이 가진 거라곤 땅밖에 없어요. 토지 가격이 매겨지고 그것을 담보로 내어놓아야 투자자들이 농민은행에 투자할 수 있습니다. 생산된 양, 땅의 위치, 관개 상태, 농업 기반 등등 토지의 등급을 따지는 국제적인 지표가 있습니다. 그렇게 투자를 받으면 은행의 기반이 세워질 겁니다. 또 북한엔 똑똑한 젊은이들이 많은데요.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해외를 통해 농민은행 운영방식을 좀 배우게 하고, 이렇게 젊은 경제전문가들을 양성해서 농민은행을 준비한다면 비단 농민은행의 설립뿐 아니라 앞으로 북한 경제를 발전시키는 초석이 될 것입니다. 이후 인민들에게 예금도 받고 농민들에게 돈을 빌려주면 농민들이 맘놓고 농사지을 수 있습니다. 또 철저하게 중앙은행과는 분리해서 농업생산을 위해서만 돈을 빌려주는 관리도 필요하겠죠. 이렇게만 하더라도… 최고지도자가 농업생산 안 됐다고 말했다고 관련 농업인들 목 뗐다 붙였다 하는 일은 없어질 겁니다.

MC: 땅에 등급을 매기고 투자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사유지 원리에서 출발하는 것 아닌가요? 북한당국이 이걸 인정할 리가 없을 것 같은데요?

북한 토지는 전 인민의 소유

조현: 네. 쉽지는 않겠죠. 하지만 땅 자체가 협동농장의 재산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북한정부의 땅이기도 하고 또 아니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북한당국도 토지를 전 인민적 소유라고 말하잖아요. 비록 농민 개인이 온전히 소유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토지의 가격이 제대로 매겨질 때 그 가치를 농민이 제대로 알 수 있고요. 혹시 북한 당국이 땅을 온전한 국가의 소유로 넘기는 법안을 세우려고 할 때 농민이 대항할 여지를 남길 수도 있습니다. 또 북한 사람들은 지금 은행을 믿지 못해서 예금도 안 하는데요. 그렇지만 북한에도 땅이 담보되고 믿을만한 외국인 투자자가 좀 붙는다면 농민들도 신뢰를 갖게 될 겁니다. 한국은 은행이 망하더라도 국가가 개인 예금의 5,000만원, 약 4만 달러 정도는 보장해주고 있습니다.. 또 한국도 중앙농협이 있고 지방농협이 있지 않습니까? 지금 조선중앙은행은 각 군마다 한 개 즉 전국에 200여 지점이 있는데 농민은행도 이렇게 만들어 놓으면 너무 적어요. 농민들이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몇 개 리를 합쳐 하나 씩… 먼 데 가지 않고 자기 지역에서 금융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이렇듯 제 생각은 북한에서 농민은행이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MC: 네. 오늘도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누가 농민의 편에 설 수 있을까요? 농민은행은 북한 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안이 될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나의 나라, 우리 농민을 귀하게 여길 수 있는 국가의 시선 그리고 농민의 필요를 인정할 줄 아는 국가의 자세가 더 시급해보입니다. 지금까지 <농축산, 현장이 답이다>였습니다.

기자 이승재,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