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북 당국의 비판에 월남한 세계적 시인

0:00 / 0:00

MC: 서울의 탈북 소설가 도명학 작가와 함께 남북한 문학세계를 들여다보는 '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입니다. 저는 미국 워싱턴의 홍알벗입니다. 도명학 선생님 함께 하십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도명학: 네, 안녕하십니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MC: 지난 주부터 월남작가에 대해 알아보고 있는데요. 이번 주에는 어떤 작가를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도명학: 오늘은 월남 작가인 구상 시인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MC: 이름이 독특합니다. 본명인가요?

도명학: 본명은 구상준입니다. 그런데 본명 석 자 중 왜 구상이라는 두 자만 따내 사용했는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만 구상이란 이름 외에도 요한이라는 이름을 또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은 그가 독실한 천주교 신자여서 성당에서 받은 세례명입니다.

MC: 시인 구상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그의 일생을 간단히 설명해 주시죠.

도명학: 네, 구상 시인은 한국 문단에 큰 족적을 남긴 유명 시인인 동시에 언론인이기도 했습니다. 동시에 구상 시인은 프랑스에서 선정한 세계 200대 문인의 반열에 올랐을 만큼 참 대단한 인재였습니다.

구상 시인은 1919년 서울 종로에서 태어났지만, 유년 시절은 함경남도 원산, 현재의 북한 강원도 원산과 함경남도 함흥에서 지냈습니다. 그런데 구상 시인은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이는데 어머니는 한문 고전과 평민 소설, 시조를 두루 섭렵한 고전적인 인텔리로, 구상 시인이 4살이 되자 천자문을 가르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동몽선습, 명심보감, 고시조, 옥루몽, 삼국지연의 등을 가르쳤고 구상 시인은 그 영향으로 보통학교 시절부터 어문학 쪽에 특별히 흥미를 느꼈다고 합니다.

한편 종교적 분위기에 젖어 살아온 구상 시인은 열다섯 살에 신학교에 들어갔으나 3년 만에 중도 포기했습니다. 이후 일본 도쿄로 밀항해 니혼대학 종교과에 입학했는데 졸업에 필요한 학점을 받기 위해 불교에 대해서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그가 천주교 신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기 습득한 불교 지식이 평생 마음 속 자양분이 되었다고 합니다.

구상 시인은 해방 직 후 1946년 원산문학가동맹에서 펴낸 시집 “응향”에 발표한 “길”, “여명도” “밤” 3 작품이 공산당의 비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당시 북한은 언론매체를 통해 구상의 시를 규탄하는 기사를 실었고, 이를 계기로 각 지방 문학가동맹으로 검열이 확대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구상 시인은 1947년 2월 원산을 떠나 월남하였습니다. 월남 후 구상 시인은 잡지 “해동공론”에 “북조선 문학 여담”으로 북에서 당한 작품 사건을 발표했고, “발길에 채운 돌멩이와 어리석은 사나이와”라는 제목의 시를 발표하면서 창작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이어 1949년에는 대한민국 육군정보국의 “북한특보” 편집 책임을 맡았으며, 북한으로 비밀리에 보내는 책자 “봉화”를 제작하였습니다. 그러다 1950년 6.25가 발발하자 정훈국으로 옮겨 국내외 상황과 전투 전과를 알리는 인쇄물 “승리”를 제작하였는데 이는 훗날 국방부 기관지 “승리일보”의 전신이었습니다.

1952년 “승리일보”가 폐간된 후에는 영남일보사 주필 겸 편집국장이 되었는데 독재를 반대하는 논설을 펴 압수당하는 사건도 몇 차례 발생했습니다. 이로 인해 반공법 위반으로 15년이 구형되었다가 무죄를 인정받았는데. 이후 구상 시인은 정치와 일체 거리를 두게 되고, 효성여대, 서울대, 서강대, 하와이대, 카톨릭대, 중앙대 등에서 교수 생활을 하면서 문학창작과 교육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구상 시인은 1955년 금성화랑 무공훈장, 1957년 서울시 문화상, 1970년 국민훈장 동백장, 1980년 대한민국 문학상 본상, 1993년 대한민국 예술원상, 2004년 금관문화훈장을 받았습니다. 구상 시인은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시를 쓰다 2004년 5월 11일 향년 86세로 별세했습니다.

AKR20240412044300005_01_i_P4.jpg
이중섭의 시인 구상의 가족 /연합, 케이옥션

MC: 구상 시인은 어떤 시를 주로 썼나요?''

도명학: 구상 시인의 대표작으로 평가되는 작품들은 시집으로 1951년에 출간된 "구상시집", 1956년에 발표된 "초토의 시", 1981년에 나온 "까마귀", 19985년에 출간된 "구상 연작 시집", 1989년에 나온 "유치찬란" 등입니다. 구상 시인의 시 세계는 기독교적 신앙을 바탕으로 하는 한편 단군신화, 한자 문화권의 전통 교양, 불교적 요소까지 포괄하는 범위의 정신세계를 보여줍니다. 구상 시인은 스스로 말하기를 "나의 시를 존재론적이고, 형이상학적이라고들 하는데, 오늘의 현상학을 영원 속에서 조명코자 한다고 할까, 오늘과 영원을 조응시켜, 존재 자체 안의 신비로운 것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 나의 문학관이라면 문학관이지"라며 자신의 시 세계를 정리한 바 있습니다.

한편 구상 시인의 시어는 뜻이 명료합니다. 표현이 좀 직설적인데, 그래서 구상의 시학에 밝지 못한 독자들은 그의 시를 단순한 관념시로 보고 지나치기 쉽습니다. 사실 구상 시인의 시는 현란한 수식어로 요란한 말 잔치를 벌이지 않습니다. 수사적 기교를 최소화하고 의미의 정곡을 조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의미와는 상관없이 교묘하게 겉만 꾸미는 표현을 피하려는 것이 그의 언어관이고, 시의 표상과 진리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시학적 견해입니다.

MC: 얼마 전 저희가 소개해 드린 소설가 김동리 작가 등 민족진영의 문학인들과 갈등을 빚었다고 하는데 어떤 내용인가요?

도명학: 그건 제가 앞에서 한마디로만 언급하고 그에 대한 설명이 없어 잘 못 이해하신 것 같은데, 민족진영 문인들이 구상 작가와 갈등을 빚은 것은 아니라 민족진영 문인들이 작가의 작품을 난도질 한 공산당의 비판에 대해 반론을 제기했던 것으로 압니다.

MC: 그 갈등을 빚게 된 계기가, 남쪽 문학가 동맹 기관지에 '응향' 사건이 다뤄졌기 때문이라는데요. 그 응향 사건이 뭔가요?

도명학: 아 그것도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구상 작가가 월남하자 북한 공산당과 궤를 같이하는 남로당 영향 하에 있는 문학가동맹 기관지가 북한 당국의 처사를 역성 드니까 민족진영 문인들이 참지 못하고 맞섰고 구상 시인도 "해동공론"에 응향 사건의 전모를 까밝히는 내용의 글을 발표했던 것입니다. "응향" 사건은 1946년 원산 문학가동맹이 펴낸 해방기념시집 『응향』에 실린 구상 시인의 작 「여명도」, 「길」, 「밤」 등 세 편의 작품이 필화를 겪은 사건입니다.

MC: 구상 작가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사람들은 그를 예술지상주의적이다, 퇴폐주의적이다, 심지어 악마주의적이라고 비판했는데 무엇 때문에 그랬던 건가요?

도명학: 당시 북한의 백인준 시인이 구상의 시에 대해 예술지상주의적, 퇴폐주의적, 악마주의적, 부르주아적, 반인민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저는 그 시를 읽어 보지 못해 모르긴 해도 분명 공산주의 선전과 거리가 먼 순수 예술적 측면과 기교에 그친 무정치적 무이념적 작품이라면 당연히 공산당과 사회주의 문학을 지향하는 문인들에게 그런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MC: 구상 작가는 북한 당국에 반동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월남을 한 뒤, 그 다음에는 이승만 정권을 반대하닥 옥고를 치루기도 했는데 말이죠. 구상 작가는 어떤 삶의 철학을 갖고 있었던 걸까요?

도명학: 구상 시인은 어려서부터 너무나 종교적인 가족의 분위기에서 자란 관계로 문학은 항상 그의 인생에서 부차적인 것이었고 주된 것은 신앙 생활이었습니다. 일본에 가서 대학에 입학할 때도 명치대학 문예과와 일본대학 종교과에 모두 합격하자 둘 중 종교과를 선택했습니다. 기독교 복음 묵상서인 "나사렛예수"와 신앙 시선 "말씀의 실상"을 펴냈을 정도로 신앙심이 매우 깊었던 것만큼 그의 인생철학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기독교적 인생관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AKR20190401141600053_01_i_P4.jpg
고모역에 들어선 구상 시인 시비. /연합

MC: 선생님께서는 구상 작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도명학: 구상 작가는 2004년에 별세 하신 만큼 제가 아직 탈북하기 전이었고, 그러니 개인적으로 만날 기회도 없고,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관심과 호감이 가는 이유는 첫째는 표현의 자유가 억제받는 북한을 겪어본 문인이라는 점이 저와 공통되는 점에 있고, 두 번째로는 그의 작품이 마음이 들어서입니다.

MC: 구상 작가의 작품 가운데 선생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것 하나 소개해 주시죠.

도명학: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히는 연작 시 "초토의 시" 중 8번째 편 "적군 묘지 앞에서"를 소개하면, 이 시는 6.25 전쟁 때 전사한 인민군 유골이 국군 유해 발굴 과정에 발견된 것을 북한 당국에 넘겨주려고 했음에도 아무 응답이 없기에 한국 정부가 인도적 차원에서 통일 된 후라도 북측 유가족들이 시신을 찾을 수 있도록 유전자까지 채취해 보관하고 시신을 안장하고 있는데, 경기도 파주시에 묘역이 있습니다. 이곳을 일명 적군 묘지라고 부르는데 그 묘지에 대한 시적 감정을 토로한 시입니다. 시간상 시를 인용하지는 못하지만 누구나 한번쯤은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은 감동 깊은 시입니다.

MC: 네, 오늘은 월남 작가 시인 구상에 대해 알아 봤습니다. 저희가 이번 주에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이구요, 다음 주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선생님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도명학: 네, 수고하셨습니다.

MC: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에디터: 박정우, 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