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서울의 탈북소설가 도명학 작가와 함께 남한과 북한의 문학세계를 들여다 보는 '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입니다. 저는 미국 워싱턴의 홍알벗입니다. 도명학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도명학: 네 안녕하십니까.
MC: 지난 주에 이어 오늘도 북한 출신인데 남한에서 더 활발한 창작활동을 했던 월남작가들을 만나볼 텐데요. 선생님, 오늘 만날 월남작가는 누구인가요?
도명학: 네, 오늘은 평양 출신의 월남 문인 김이석 작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MC: 김이석 작가는 시인이었나요, 아니면? 소개 좀 해 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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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명학: 네 김이석 작가는 소설가이고요, 1914년 7월 평양에서 출생해 1964년까지 활동한, 사실 작가로선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아까운 인재였습니다.
김이석 작가는 1938년 평양 종로보통학교와 광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1936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였으나 1938년 중퇴하였고, 조선곡산주식회사에 다니다가, 평양 명륜여상교사, 평양미술전문학교 강사, 등을 역임하였습니다. 1937년에 김조규ㆍ유항림ㆍ김화청 등과 함께 평양에서 동인지 [단층]을 발간하면서 여기에 단편소설 <감정세포의 전복> <환등> 등을 발표하고, 1938년에 단편소설 <부어>가 동아일보에 당선되면서 문단에 데뷔하여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6.25 전쟁 시기인 1951년 1.4 후퇴 때 북한에 가족을 두고 월남하여 대구에서 생활하며 중부 전선에서 종군작가로 활약했는데 1952년 전란 속에서 <실비명>과 <소녀 태숙의 이야기>를 발표했습니다. 1953년에는 문학예술 편집위원, 성동고등학교 교사직에 있으면서 <악수> <분별> <춘한> 등 일련의 작품을 발표했으며, 1956년 단편집 <실비명>을 발간하여 제4회 아세아자유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1957년부터는 <아름다운 행렬>을 조선일보에 연재했는데 이때 가장 왕성한 창작 의욕을 보였으나, 자취생활로 곳곳을 전전하는 등 생활의 안정을 얻지 못해 창작에 전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1958년 6월 소설가 박순녀와 재혼한 후 안정된 생활을 하면서 민국일보에 장편소설 <흑하>를 연재하고, <지게 부대> <흐름 속에서> 등 의욕적인 단편소설들을 계속 발표했습니다.
후기 작품 활동은 주로 신문 연재 소설에 주력하여 1962년 한국일보에 장편소설 <난세비화>를 연재했고, 1964년 대한일보에 장편소설 <신홍길동전>을 일부 연재하다가 고혈압 증세를 일으켜 사망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사후, 그의 문학 업적을 기려 제14회 서울시문화상을 추서하였습니다. 작품집으로는 단편집 <실비명> 외에 <동면>, 아동소설 <해와 달은 누구를 위해>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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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김이석 작가의 대표작은 어떤 게 있나요?
도명학: 김이석 작가가 남긴 좋은 작품들이 많기에 딱히 어느 작품을 대표작이라고 하기가 좀 애매하긴 한데, 그럼에도 1954년 3월에 발표된 단편소설 <실비명>을 많이 꼽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여 홀아비 인력거꾼인 덕구와 그의 외동딸인 도화의 삶을 그린 작품입니다. 소설은 딸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아버지와 그러한 아버지의 기대를 따르지 못하는 딸의 삶이 엇갈리며 전개됩니다. 제목 '실비명'은 비석에 쓴 글을 잃어버렸다는 뜻으로서, 아버지의 소망을 저버린 딸의 뉘우침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아버지의 꿈과 딸의 소양에 비극적 인간성을 설정해 놓고서, 일제시대 불우했던 민족적 현실을 휴머니티의 힘으로 초극해 보려는 의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독특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단편소설로서의 긴장감이나 응축미가 결여되어 다소 추상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줄거리를 소개하면, 인력거를 끄는 덕구의 소망은 도화를 공부시켜 의사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인력거의 단골손님인 기생들 대신 의사인 자기 딸을 태워 마음껏 달리고 싶다는 것이 덕구의 꿈입니다. 반면에 도화는 학교에서 주위 환경에 부딪치면서 덕구의 기대와는 다른 삶을 꿈꿉니다. 이 과정에 도화는 아마추어 여배우가 되어 무대에 오르기도 하지만, 이것이 화근이 되어 결국 퇴학을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아버지의 요구에 못이겨 의사가 되기 위한 과정으로 간호사 일을 하게 되나 병원 일을 어려워하고, 결국 그만두게 되는데, 바로 이날 병원을 나와서 집으로 가는 도중 싫다는 도화를 억지로 인력거에 태우고 달리던 덕구가 교통사고를 당합니다. 덕구가 죽은 후 도화는 기생학교에 들어가고, 이듬해 추석날 덕구의 묘를 찾아가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서러움에 겨운 춤을 한껏 춥니다. 그리고 기생이 된 후 다시는 인력거를 타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MC: 김이석 작가의 작품만이 갖고 있는 특징, 특색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도명학: 김이석 작가의 작품은 대표작 <실비명> <외뿔소> <학춤>에서와 같이 사적 체험과는 거리가 있는 주인공의 꿈의 상실에 대한 좌절과 상심을 통해 인생의 비애를 기록하기도 했으나, 대체로 <관앞골 기억> <교련과 나> 등의 1920년대 식민지사회의 단면을 제시한 소년 시절의 회상이나, <뻐꾸기> <동면> <지게부대>〉<허민선생> <재회> 등의 사소설적 접근으로, 한 지식인의 내면세계를 통해 조명한 1ㆍ4후퇴 때 월남한 지식인들의 비참한 삶의 모습의 기록과 같이 사적 체험을 위주로 서술하였습니다. 이 작품들에는 일제 식민지 시대로부터 6ㆍ25 전쟁 전후까지 피동적이고 소극적인 자세의 한국 지식인의 초상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의 문체는 치밀한 구성과 간결한 표현으로 한국적 정과 한의 세계를 관조하는 인생의 담담한 심경으로 형상된 호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MC: 김이석 작가가 세상을 떠난 지 오래고, 또 세대가 다르기에 시간상으로 봤을 때, 선생님께서 김이석 작가를 직접 만나보실 순 없지만 혹시 만난다고 가정한다면 문학과 관련해 김이석 작가와 어떤 대화를 나눠보고 싶으신지요?
도명학: 저로선 김이석 작가가 월남 이전부터 북한에서 문학 활동을 한 만큼 해방 후 북한 지역에서 활동한 작가들에 대해서와 남쪽에서 올라간 카프 출신 월북작가들과의 관계는 어떠했으며 당시의 문단 실태, 특히 북한당국으로부터 받은 문학에 대한 간섭이 실지로 어떠했는지 디테일하게 듣고 싶습니다. 1960년대 중반에 태어나 제가 문학을 알기 시작했던 시기엔 이미 북한 문학이 완전히 노동당에 장악된 상태여서 제가 알게 된 것들 중에는 왜곡되고 와전된 것들이 많을 수밖에 없기때문에 저로선 정확한 사실과 진실들이 몹시 궁금합니다.
또 월남한 이후 김이석 작가의 시각에서 본 남한 문단은 어땠는지, 본인은 어떤 시행착오들을 겪었는지 등을 듣고 싶고, 저는 김이석 작가에서 6.25 전쟁 후 현재까지의 북한 문단의 변화 과정에 대해 전해드리는 대화를 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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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보니까, 김이석 작가는 평양에서 고등보통학교까지 다녔는데요. 북한은 학교에서 글쓰기를 많이 강조하는 편인가요? 선생님 다니실 때는 어땠나요?
도명학: 제가 본바로는 북한 초중고 국어, 문학 과목 교육 수준이 남한에 비해 상당히 낮은 편입니다. 수학, 물리, 화학 등 기초과학 과목들은 오히려 남한 초중고 수준보다 북한 학교 수준이 더 높으면 높았지 낮지 않은데 북한은 국어 과목이 대학 입시 과목임에도 좀 만만한 과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글짓기 과목이 따로 있긴 한데 대학 입시 과목은 아니어서 작가를 꿈꾸는 학생이 아니면 열심히 하지 않아도 별 탈 없는 과목입니다. 북한당국이 어려서부터 글쓰기를 많이 해야 한다고 강조하긴 해도 실지 교육 현장은 대학 입시 과목에 열을 올리지 글쓰기 능력 키우는 일에 품을 들이지 않습니다. 독재자에겐 행동하는 손발이 필요하지 사고하는 두뇌는 필요 없다는 말이 있죠. 기자나 작가가 아닌 일반인들이 글을 잘 쓰는 걸 반기는 체제가 아닙니다. 괜히 글 잘 쓰면 정치범이 되기 쉽고, 글은 좀 못써도 일을 잘하면 훈장도 타고 영웅도 되고, 정치범이 될 확률도 낮습니다. 다만 그래도 작가는 체제선전을 위해 중요하기 때문에 재능을 보이는 소수 학생에 한해서는 작가 후비 확보를 위해 큰 관심을 돌리고 배려하는데, 창작 실력 한 가지만 특출해도 다른 입시 과목들은 잘할 필요도 없이 특혜로 최고 대학인 김일성종합대학 어문학부에 입학시킬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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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북한은 출신성분을 많이 따지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문학작품을 창작해야 하는 작가들도 성분 좋은 평양 출신이 지방 출신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을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도명학: 북한은 어느 부문이든 좋은 직업과 승진을 위해선 출신성분이 중요합니다. 다만 작가에 한해서는 크게 작용하지 않습니다. 물론 옛날에는 많이 따졌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워낙 작가가 배출되기 어려운 사회여서 성분을 너무 따지다 보니 재능 있는 작가를 발굴하기 어렵고 예비작가 양성 자체가 어렵게 되면서 점차 완화되어 현재는 재능과 실적이 기본입니다. 탄광노동자든, 농민이든, 상관없습니다. 글만 잘 쓰면 되는,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작가가 되려는 사람이 없어 북한 문단 자체가 고사 직전입니다. 제가 북한에 있을 때 벌써 작가들이 조선문학은 이제 끝났다고 한숨지었습니다. 작가가 적어도 너무 적어 북한당국도 착잡해 하는 상황입니다.
MC: 북한에도 학생들이 글쓰기 솜씨를 겨루는 '백일장' 같은 행사가 있나요? 남한에서 혹시 그런 행사에 참여해 보신 적이 있다면 남과 북의 백일장을 좀 비교해 봐도 좋을것 같습니다.
도명학: 북한에도 백일장이라는 말은 쓰지 않지만 글짓기경연대회, 학생문예작품공모전들이 있습니다. 가장 치열한 것이 글짓기경연대회인데 마치 올림픽이나 월드컵 경기처럼 승자전의 방법으로 전국적으로 승부를 가립니다. 학급에서 우승하면 전교 우승에 도전하고 전교 우승이면 시,군 경연에 도전하고, 시, 군 경연에서 우승하면 시도경연에 도전하고 시도에서 우승하면 전국 경연에 나가 1등 2등 3등을 가리는 그야말로 학교와 지방과 본인의 실력과 명예를 건 일대 격전이 벌어지는데, 작가 양성을 위한 인재 발굴 차원에서 1980년대 초 김정일에 의해 시작된 것입니다. 한편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 금성청년출판사 등에서 주관하는 학생문예작품 공모전들도 있는 데 이것은 학생이 원고를 우편으로 제출하여 심사받는 남한의 신춘문예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제 느낌엔 남한의 백일장이 북한의 글짓기경연이나 학생문예공모전만큼은 치열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MC: 네, 오늘은 평양출신 소설가 김이석 작가와 그의 작품에 대해 알아 봤습니다. 선생님,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도명학: 네, 수고하셨습니다.
MC: 함께 해 주신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에디터 이진서, 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