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대지주 아들서 ‘동심치유자’된 월남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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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안녕하십니까. '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의 진행을 맡은 미국 워싱턴의 홍알벗입니다. 오늘도 탈북 소설가 도명학 작가와 함께 합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도명학: 안녕하십니까.

MC: 오늘 소개해 주실 작가는 누구인가요?

도명학: 네, 오늘도 월남 문인을 소개하려 합니다. 함경남도 출신으로 6.25 전쟁 시기 월남한 강소천 아동문학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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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천 작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MC: 아동문학가는 지난번에 한정동 작가에 이어 두번째인데요. 강소천 작가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도명학: 네, 강소천 작가는 1915년 함경남도 고원군에서 출생하였고, 본명은 강용률이고, 아명은 강용진인데, 소천이라는 아호를 썼습니다.

작가는 함경남도 함흥 영생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청진여자고급중학교와 청진제일고급중학 등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가 월남하였습니다.

작가는 1930년 <아이생활>, <신소년>에 동요 〈버드나무 열매〉 등을 발표하고, 조선일보 현상문예에 동요 〈민들레와 울 아기〉가 당선되었으며, 그 뒤 〈닭〉을 비롯한 동요·동시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장하였습니다.

1939년을 전후해서는 동요 동시뿐 아니라 동화와 아동소설도 쓰기 시작하여 동아일보에 〈돌멩이〉 〈토끼 삼형제〉, 매일신보에 〈전등불 이야기〉 등 많은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해방 이후 그의 출신성분은 북한 정권하에서는 아주 좋지 않은 성분이었습니다. 기독교인에 대지주 집안이었습니다. 작가는 국군과 UN군이 북진했다가 후퇴할 때 필사적으로 노래 가사에도 있듯 ‘눈보라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서 기적적으로 미군 군함에 올라탔던 피난민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미군 군함을 타고 가 상륙한 것은 거제도였습니다.

지주의 아들로 커서 분필만 잡고 살았던 작가는 살기 위해서 무엇이든 해야 했습니다. 그 절박한 생존의 위기에서도 그는 보고 싶은 것이 있었으니, 밝게 뛰어노는 아이들과 그 해맑은 미소를 가까이에서 보려고 학교에 찾아갔는데, 교장 선생한테 뒷덜미를 잡힌 적 있습니다. 그때 어영부영 이름을 밝히게 됐을 때 교장 선생이 깜짝 놀라 “강소천 선생님이십니까?” 하고 알아보았습니다. 놀란 것은 강소천 작가 본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기서도 나를 아는구나! 하고 작가는 다시 힘을 얻고 다시 글을 쓰게 됐습니다.

작가는 부산에서 독서 지도와 글짓기지도 등 아동문학의 보급을 위하여 힘쓰는 한편, 정기간행물 <새벗>·<어린이 다이제스트> , <아동문학> 편집위원으로 일했습니다.

머릿속에는 오직 '어린이'

강소천 작가의 관심은 늘 어린이들을 위한 노래와 동화였습니다. 그의 일생을 관통하는 단어는 ‘어린이’였습니다. 어른들이 벌인 전쟁통에 산산조각 난 동심들을 어루만지고 다독이고 어깨를 두드리고자 하는 것이 그의 작품 활동의 목표였습니다.

어린이의 자유스런 성장과 발전을 돕기 위해서 아동문학가는 좋은 작품으로 꿈을 일깨워주고 용기를 북돋워 주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습니다.

작가는 항상 어린이들의 생활과 심리를 연구했다고 합니다. 함께 얘기하고 글짓기 작품을 열심히 읽고 아동 심리 관련 도서를 읽고 아동 전문가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읽힌 뒤 비평을 요구했습니다. 또 어린이들이 읽을 수 있는 쉬운 글과 표현에 '병적일 만큼‘ 집착했다니 그야말로 어린이를 위한 동화와 노래를 위해 자신을 끊임없이 다듬어 나갔습니다.

그는 “도대체 아이들에게 왜 어려운 한자를 가르치는가. 우리 글처럼 쉽고 아름다운 글이 어디에 있다고!”하며 한글을 전용으로 사용하자는 주장에 찬성하였습니다.

전쟁과 복구, 가난과 시련의 1950년대 전국에는 고아들이 넘쳐났고 시장바닥에 떨어진 시레기 한 줄기를 가지고도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강소천은 어린이 헌장을 작성하게 되는데 마치 정교한 작품을 쓰듯 꼼꼼하게, 정성스럽게 문항들을 작성했습니다. 그가 작성한 헌장은 1957년 5월 5일 한국동화작가협의회의 이름으로 발표되었습니다.

강소천 작가는 한국보육대학, 이화여자대학교, 연세대학교 강사, 한국아동문학연구회 회장, 한국문인협회 이사 등을 역임했고, 1963년 문예상을 수상한 후 간경화로 사망하였습니다. 사후 1965년에 '소천문학상'이 제정되었습니다.

MC: 강소천 작가는 시인이자 소설가였으며, 아동문학가였기도 했는데요. 주로 어떤 작품을 썼었나요?

도명학: 대표작으로 〈꿈을 찍는 사진관〉, <호박꽃 초롱>, <꽃신> <금강산> <스승의 은헤> <산토끼> <꼬마 눈사람> <코끼리 아저씨> 외 많은 작품들을 꼽을 수 있습니다. 2천여 편의 동요 동시, 동화, 아동소설을 써냈습니다.

MC: 그의 작품들에서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도명학: 강소천 작가의 작품 속에는 아름답고 무한한 동심의 세계와 착하고 고운 소년 소녀들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한편 작가의 기독교 의식, 모성 의식, 전쟁과 월남 의식이 그의 작품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데, 기독교 의식은 그의 작품에서 줄곧 사랑과 희생, 화합으로 승화되고 있으며, 모성 의식은 어머니와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동경이 서정적 기법을 통하여 승화되고 있고, 전쟁과 월남 의식은 현실적 상실의 아픔으로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문학적 기법을 통하여 화해를 지향하는 의식으로 승화되고 있습니다.

강소천 작품에서 나타나는 서정적 특성은 자아의 인식과 각성을 표현하는 자아 반영적인 특징을 핵심으로 합니다. 그런가 하면 순간적인 고조된 감정 상태를 포착하여 표현하거나 시적 요소를 부각시킵니다. 또한 이러한 미학적 태도는 서정의 본질적 근원에 대한 동경과 탐구를 지향합니다. 여기서 근원은 유년 시절 고향을 의미하고, 신화적 세계를 추구하는 것으로 동심의 세계와 소통하는 것인데, 이것이 곧 강소천 문학에서 드러나는 서정적 특징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강소천 작가는 한국 아동문학의 한 축에서 동요․동시와 동화, 아동소설의 미적, 예술적 수준을 한 단계 끌어 올린 작가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아동문학은 곧 동심구현

MC: 보통 어른이 되면 아이들의 마음, 또는 생각을 공감하기란 쉽지 않은데 말이죠. 아동문학가가 되려면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할까요?

도명학: 아동문학을 하려면 첫째도 둘째도, 동심 구현이 중요합니다. 아동문학 작품에 동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아동문학 작품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어른인 아동문학 작가가 아이들의 동심을 제대로 헤아릴 수 있어야 하는데 상당히 어려운 점이 이 점입니다. 유일한 방법은 강소천 작가가 그랬듯 항상 어린이들의 심리를 연구하고 어린이들과 어울릴 기회를 될수록 많이 갖고, 무엇보다 아동문학 작가는 나이를 잊어버린 어린이들의 친구가 되고 어린이를 끔찍이 사랑하는 마음을 지녀야 할 것입니다.

MC: 하지만, 북한은 남한과 조금 다를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북한에서는 아동문학가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을 밟아야 하나요?

도명학: 아동문학 작가가 갖춰야 할 품성과 자질은 남북이 따로 없습니다. 동심을 잘 담아내야 합니다. 북한 아동문학 작가들 중에 교사 생활을 하면서 창작하는 경우가 꽤 있는데, 아동문학을 하는데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북한 아동문학 작품이 남한 아동문학 작품에 비해 동심이 부족해 보이는 작품이 많은 것은 아이들이 보는 작품에까지 이념 선전, 체제 선전을 넣다 보니 그렇습니다. 북한에서 아동문학 작가가 되는 과정은 다른 장르 작가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아동문학 작가들은 어려서부터 동요, 동시, 동화, 우화를 쓰며 성장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성인이 되고 나서 새로 아동문학을 시작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 소학교 중학교 교사나 유치원 교사들이 아동문학에 매력을 느끼고 시작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동요든 동시든 누구나 쓸 자격이 있기에 원고를 써서 작가동맹에 보내면 아동문학분과나 신인지도부 작품 심의원을 통해 작품이 발표될 수 있는 수준으로 완성될 수 있도록 지도하고 출판 절차를 밟습니다. 또 남한의 신춘문예와 비슷한 군중문학작품현상모집에 출품해 당선돼도 아동문학 작가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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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천 동화집.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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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남한과 북한에서, 아동문학가는 어른들을 위한 작품을 쓰는 작가들과 비교할 때 사회적 지위라고나 할까요, 인지도나 대우가 어떤 것 같습니까?

도명학: 남북한 모두 아동문학작가는 아무래도 어른들 작품을 쓰는 작가에 비해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낮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굉장히 유명해진 극소수 아동문학작가는 다르지만요. 원래 아동문학이 어린이만 대상으로 창작되는 것이고 더욱이 남북한 모두 출산율 저하로 아동 인구가 계속 줄어드는 영향도 없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남북한 아동문학 작가들이 가진 공통점은 어떤 명예나 지위, 대우 같은 것보다는 그냥 아이들을 좋아하고 아이들을 위한 글을 쓰는 것 자체를 즐기는 성품입니다. 북한에 있을 때부터 봐왔지만 아동문학작가들 누구나 순수하고 욕심 없고 진실했습니다.

MC: 아동문학 작품에 대한 남북한 어린이들의 관심이나 인기가 얼마나 있는지도 궁금한데요.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도명학: 남한이나 북한이나 아동문학 작품에 대한 아이들의 관심과 인기가 높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동화 우화 만화 같은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은 어른들도 재밌어할 정도입니다. 북한에 문자로 쓰여진 작품은 아니지만 아동영화라고 불리는 만화영화들은 어른들도 즐겨봅니다. 특히 고구려 시기를 배경으로 한 "소년장수" 시리즈나 "다람쥐와 고슴도치", "영리한 너구리" 같은 아동 영화 시리즈들은 어른들이 직장에서 일을 하다가도 멈추고 텔레비전 앞에 모일 정도였습니다. 남한도 아이들이 만화방에 자주 찾아가고 그림동화 같은 것도 많이 보던데, 다만 남한은 너무 볼거리가 많아서 그런지 북한만큼은 아닌 것 같더군요. 반면 북한은 볼거리가 워낙 부족해 아동문학 잡지나 만화책 한권 때문에도 아이들이 싸움이 날 정도죠.

MC: '아동문학은 몇 살부터 몇 살까지 보는 거다'라는 어떤 규정 같은 게 있나요? 남북한이 이런 면에서 서로 같은지 또는 다른지도 궁금합니다.

도명학: 글쎄요 남한에는 있는지 모르겠지만 북한에는 딱히 몇 살까지 보는 거라고 규정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 규정이 없어도 아이들이 점점 크면서 때가 되면 덜 보게 되는 것이고 어른이 돼도 아동문학 작품을 보고 싶으면 봅니다. 다만 북한에는 소설이든 영화든 19세 미만 금지라고 정해진 작품이 없습니다. 작가들이 아무리 어른을 위한 작품이라 해도 아이들이 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서 창작하라는 것이 당국의 원칙입니다.

MC: 오늘은 월남작가 강소천에 대해 알아 봤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도명학: 수고하셨습니다.

MC: 네, 함께 해 주신 청취자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에디터 이진서, 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