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김일성 우상화 위해 안중근 항일기 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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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북한에 계신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입니다. 저는 미국 워싱턴의 홍알벗입니다. 오늘도 한국 서울의 탈북소설가 도명학 작가와 함께 합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도명학: 네, 안녕하십니까.

MC: 선생님,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갖고 오셨나요?

도명학: 네, 오늘은 남한과 북한에서 공통적으로 소재가 되고 있는 인물이나 사건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가령 안중근 의사, 이준 열사 등 남북한 모두가 인정하는 독립운동가들, 또는 홍길동전, 임꺽정, 춘향전, 심청전, 흥부전, 등은 소설, 영화, 연극, 뮤지컬, 만화 등 다양한 문학예술작품들로 각색됩니다. 다만 이것이 남북한의 다른 이념과 제도의 영향 때문에 같으면서도 다른 양상을 띠고 있는 데, 이런 점들을 두루 살펴 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MC: 말씀 들어 보니까 재밌을 거 같은데 말이죠. 오늘 첫번째 시간에는 어떤 이야기를 나눠 볼까요?

도명학: 네, 오늘은 안중근 의사를 그린 영화가 남한과 북한에 다 있는데 이에 대한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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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하얼빈' 속 한 장면. / 연합뉴스, CJ ENM

남한의 안중근 영화 ‘하얼빈’

MC: 먼저 남한에서는 어떤 작품을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도명학: 남한에는 얼마 전 개봉된 "하얼빈"이라는 영화가 현재 영화관들에서 상영 중에 있는데 누적 관객수가 현재 490만명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당초 예상은 천만 관객을 달성할 것으로 봤는데 요즘은 어려워 보입니다. 제 생각에는 안중근 의사에 대한 영화가 처음이 아니고 앞서 이미 "영웅"이라는 영화가 나왔었고, 뮤지컬로로 나와 성황리에 공연된 바 있어 같은 소재를 다룬 작품이 번복된데 따른 영향이 크지 않을까싶기도 하고, 한편으론 스토리 전개에 대한 관객들의 평이 호불호로 나뉘고 있는 점이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영화 “하얼빈”의 간단한 줄거리를 보면 1908년, 함경북도 신아산에서 안중근이 이끄는 독립군이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둡니다. 이때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은 만국공법에 따라 일본인 전쟁 포로들을 석방하는데, 이로 인해 독립군 내부에서는 의심과 갈등이 생깁니다.

1년 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안중근과 그의 동지들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다시 모이고, 이등박문, 즉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와의 협상을 위해 하얼빈으로 향한다는 소식을 접한 그들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일본군의 추격을 받으며 하얼빈으로 향합니다. 그러나 사전에 비밀이 새어 나가면서 차질이 빚어져 애먹다가 마침내 하얼빈 역에서 안중근에 의해 거사가 성공합니다. 물론 이러한 줄거리가 사실에 기초하면서도 허구가 들어간 것입니다만 이 부분에서 관객들이 호불호가 갈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북한에선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 인기

MC: 남한영화 '하얼빈'과 비교해 볼 북한영화로는 어떤게 있을까요? 내용은 어떨가요?

도명학 : 북한에서 만든 안중근에 대한 영화는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는데,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선전되기로는 이 작품은 김일성이 항일빨치산 활동을 시작하기 전 초기혁명활동시기로 분류되는 시기 민중계몽을 위해 직접 대본을 창작하고 공연을 지도했다고 하여 불후의 고전적 명작으로 일컬어지는 연극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를 각색한 영화라고 소개됩니다. 이 영화 줄거리는 을사늑약이 체결되던 당시 상황을 시작으로 안중근이 의병활동을 전개하다 거듭되는 패배로 승산이 없게 되자 고심 끝에 찾은 투쟁 방법이 일본놈을 한놈이라도 부지런히 죽이느라면 조선이 독립되겠지하는 좀 우습깡스러운 생각을 하게 되고 몇몇 동지들과 손가락을 잘라 혈서를 쓰며 단지동맹을 결성하고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할 계획으로 할빈으로 향하고 마침내 거사에 성공하는 이야기로 짜여졌습니다.

MC: 선생님께서는 남한에서 영화 '하얼빈'을 보시고 어떤 느낌을 받으셨나요?

도명학: 영화를 본 저의 느낌은 감동과 함께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안중근의 높은 애국충정과 역경에 굴하지 않는 기개, 그리고 독립과 동양 평화에 대한 불타는 열망과 의지 등에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럼에도 아쉬웠던 점은 걸출한 인물을 형상한 영화인데 좀 더 스케일이 크게 만들었으면 좋았을 것 같고, 유머적인 허구들은 내용의 무게감을 가볍게 하는 것 같아 이 영화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람평들을 봐도 대개 이 부분에서 호불호가 갈리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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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26일 오전 서울 중구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열린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제115주년 기념식’에서 육군 1군단 이우진 대령이 의거 이유 낭독에 앞서 경례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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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줄거리나 내용 면에서 남북한 영화 사이에 많은 차이가 있던가요, 어떻습니까?

도명학: 역사적 사실의 흐름을 따라가며 스토리를 전개한 것은 북한 영화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의 특징이고 허구들도 역사적 사실과 크게 어긋나지 않고 스케일도 큽니다. 다만 그것을 안중근을 답답한 인물로 비하하고 김일성이라는 이름은 나오지 않지만 은유적으로 김일성 우상화를 메시지로 던지고 있는 것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에 비해 "하얼빈"은 안중근의 애국충정과 거사를 진심으로 기리는 내용으로 되어 있고, 촬영 기술과 화면구성, 배우들의 연기력, 배경음악 등 영화적 수단과 수법들이 높은 수준입니다. 다만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좀 가벼워보이는 씬들과 적절해 보이지 않는 유머 등은 개인적으로 아쉽게 생각됩니다.

MC: 북한에서 만든 영화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를 접한 북한 주민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도명학: 네, 그 영화를 본 북한주민들의 반응은 남한에서 안중근에 대해 보는 시각에 비해 좀 달랐습니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이토가 총에 맞고 쓰러지자 안중근은 드디어 거사에 성공했다는 희열에 넘쳐 소리내어 크게 웃으며 "조선 만세"를 외칩니다. 총에 맞은 이토는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누가 쐈냐고 묻고 조선 청년이라는 대답을 듣고는 '바보 같은 자식'하고 숨을 거둡니다. 그런데 이토가 마지막에 내뱉은 "바보 같은 자식"이라는 표현은 북한 관객들에게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왜냐면 영화에서 그려진 안중근은 높은 애국심은 인정되나 일본놈을 한놈이라도 더 부지런히 죽이다보면 독립이 될 것이라거나 이등박문만 죽이면 독립을 성취할 줄로 생각한 어리석은 인물이라는 인식을 주기 때문입니다.

영화로 인해 북한에 각인된 안중근 의사는 테러로 독립을 성취할 수 있다고 믿는, 애국심은 높으나 답답한 인물입니다. 이토를 쏘고 나서 "이제야 비로소 독립을 이루게 됐다"며 크게 웃으며 "조선 만세"를 목청껏 외치는 장면은 감동적이기보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정도였습니다. 특히 교수형 집행을 앞둔 안중근의 독백은 지금도 제 기억에 생생합니다. "나를 올바로 이끌어 줄 그런 위인, 그런 영웅은 없었구나. 5천 년 역사를 가졌으나 짓밟히고 천대받는 우리 민족을 구원해 주고 세계에 당당히 내세워줄 그런 절세의 위인을 한번 만나보았으면, 아 그런 영웅은 언제면 나타나려는지"하고 통탄합니다. 그 절세의 위인이 김일성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관객은 없었습니다. 결국 영화를 만든 목적이 안중근 의사의 항일 독립정신과 의거를 보여주기보다, 인민들이 김일성이라는 위인을 수령으로 만난 것을 큰 행운과 영광으로 간직하라는 선전이었습니다.

영화에서처럼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로 비하한 건 당시 일제였다. 오늘날에도 과거사를 제대로 반성하지 않는 일부 일본인들의 생각이기도 합니다. 2년 전 한국에서 안중근에 대한 내용의 뮤지컬을 영화화한 ‘영웅’이 나왔을 때도 ‘안중근은 영웅이 아니라 테러리스트’ ‘테러리스트를 영화화한 한국’ ‘이 영화를 근거로 한국과 국교를 단절’해야 한다는 일본 네티즌들 글이 온라인을 도배했습니다. 또 ‘이란이 오사마 빈 라덴을 영웅시해 9·11 테러 예찬 영화를 만든 것과 같은 것’이라느니 ‘비무장인 상대를 기습적으로 총격 살해하는 행위가 영웅이냐?’ 등 별 반응이 다 있었습니다. 2014년 중국에 안중근 기념관을 개관했을 때 일본 전 총리 스가 요시히데는 ‘일본의 초대 총리를 살해해 사형 판결을 받은 안중근은 테러리스트’라고 말해 일본 우익 세력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결국 북한 영화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는 항일투쟁을 김일성의 가장 큰 업적으로 선전하기 위해 일본에서나 들을 법한 소리로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로 모독한 것이다. 이는 김씨 왕조가 저들을 우상화 하기 위해서는 무슨 소리든 서슴없이 하는 반민족 집단임을 자인한 꼴입니다.

MC: 그런데, 북한주민들이 남한의 영화 '하얼빈'을 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도명학: 솔직히 제 생각엔 "하얼빈"이 북한에 들어간다면 남한 영화라는 점 때문에 호기심을 자극해 많이 보긴 하겠지만 북한에도 안중근에 대한 영화가 있는 만큼 그것에 비해 재미나 감흥은 덜 느끼지 않을까 싶습니다. 거기다 이미 전에 안중근에 대해 용기는 좋았으나 비범한 인물은 결코 아니라는 인식으로 세뇌되어 있기에 남한 영화 한편으로 그 인식을 깨는 데는 역부족이 아닐까싶습니다. 물론 청소년 세대는 다를 수도 있겠지만 나이가 좀 있는 세대는 그럴 것 같습니다. 왜냐면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가 1979년에 나왔습니다. 그런데도 요즘 유트브를 통해 다시 보니 그렇게 오래 전에 나왔음에도 당시로선 상당히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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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哈爾濱) 기차역. /연합

MC: 이렇게 동일한 인물을 앞에 두고,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도명학: 저는 이것 또한 분단이 빚어낸 비극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단되지 않았더라면 같은 인물을 두고 남과 북이 다르게 해석할 리 없죠. 남북이 같은 인물, 같은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각각 다르게 해석하고 또 이데올로기에 활용하는 것을 선조들이 안다면 피눈물을 흘릴 일입니다. 빨리 통일이 되어야 조국광복에 생명을 바친 영혼들이 편히 잠들 수 있을 것입니다.

MC: 저희가 오늘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선생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도명학: 네, 수고하셨습니다.

MC: 함께 해주신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에디터 이진수, 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