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북 여성, 성차별 해소 꿈도 못 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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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북한에 계신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시간입니다. 진행에 홍알벗입니다. 오늘도 탈북 소설가 도명학 선생님과 함께 남북한의 문학작품에 대해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도명학: 네, 안녕하십니까.

MC: 오늘 소개해 주실 작품은 어떤 건가요?

도명학: 오늘은 한국은 물론이고 해외에서 더 많이 팔린 작품으로 유명한 조남주 소설가의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작품에 대해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MC: 어떤 작품인지 먼저 간략하게 말씀해 주시죠.

도명학:이 소설은 일명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평가됩니다. 페미니즘이라면 북한에서 이 방송을 듣는 청취자들은 생소한 용어이겠기에 페미니즘에 대한 정의를 먼저 소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페미니즘이란 사전적 의미로는 사회·문화·정치·경제적 성차별과 불평등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종식시키려는 이론, 사상, 신념, 분석 모형, 교육, 운동 등을 포괄하는 용어입니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는 19세기 프랑스의 사회주의 사상가 샤를 푸리에에 의해 처음 쓰였으며 이는 '여성'이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래선지 한국에서는 여성주의로도 많이 번역되며, 과거에는 여성해방론, 여성해방주의, 여권주의, 여권론이라는 단어로도 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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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국제부녀절' 맞아 축하장 발행 북한이 3월 8일 국제부녀절(세계 여성의 날)을 하루 앞두고 평양미술대학과 중앙미술창작사, 문학예술출판사에서 특색 있는 축하장들을 발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7일 보도했다. (권오균/YNA)

이에 공감하고 실천하는 사람을 페미니스트라고 부릅니다. '여성도 인간'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여성 집단이 남성 집단보다 낮은 지위에 놓이고 불합리한 처우를 받아온 역사에 질문을 던지고 성별 고정관념을 해체할 방법을 모색하고 실현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러한 페미니스트의 활동은 여성의 사회적·문화적·경제적 지위를 상승시키고 성차별을 해소하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만 너무 과도한 주장과 행동을 종종 보여 극단적 페미니즘이 오히려 불필요한 남녀갈등을 낳는다는 부정적 인식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평가받는 이유도 소설 내용이 남녀평등, 특히 여성 차별 문제를 적나라하게 꼬집고 있기 때문입니다.

MC: 작가 또한 남한에서는 유명하지만, 아직 잘 모르시는 북한 청취자들을 위해 이 소설을 쓴 조남주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도명학: 네, 개인적으로 조남주 작가와 만난 적이 없습니다. "82년생 김지영"을 통해 처음 어떤 작가인지 궁금해 알아봤습니다. 언젠가는 한번 만날 기회가 있겠죠.

조남주 작가는 1978년 서울에서 태어났고, 이화여자대학교를 나왔는데, 여성주의적인 시각이 강한 본교 특성상 자연스레 그러한 걸 인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졸업 후에는 텔레비전방송의 PD수첩, 불만제로, 생방송 오늘아침 등의 시사교양 프로그램 작가로 10년 동안 일하다가 소설가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그는 자신이 결혼 후 사회생활과 시집살이를 겪으면서 페미니스트가 되었다고 고백했는데, 2015년 대중매체에서 여성문제 이슈를 보고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다 성차별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2011년 '귀를 기울이면'을 시작으로, 2016년 4월 '고마네치를 위하여', 2016년 10월 '82년생 김지영'을 써냈고, 출간한 소설 3권이 모두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그 중에 '82년생 김지영'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명성을 크게 얻게 된 거죠.

MC: 그럼, 본격적인 이야기로 들어가기 전에 이 소설의 줄거리를 좀 말씀해 주시죠.

도명학: '82년생 김지영'은 30대 나이에 육아로 인해 일을 중단하게 되면서 업무 경력이 끊긴 주부 김지영이 주인공의 일화들로 묶어진 작품으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소설 줄거리와는 상당히 다릅니다. 이거 소설이 맞긴 맞나 할 정도의 느낌이 들 만큼 기승전결도 분명치 않아 줄거리를 이야기 하기가 좀 곤혹스럽습니다.

그럼에도 굳이 줄거리를 꿰맞춰 얘기한다면 이렇습니다. 슬하에 딸을 두고 있는 서른네 살 김지영 씨가 어느 날 갑자기 이상 증세를 보입니다. 시댁 식구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친정엄마로 빙의해 속말을 뱉어내고, 남편의 결혼 전 애인으로 빙의해 그를 식겁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남편이 김지영의 정신건강 상담을 주선하고, 지영은 정기적으로 의사를 찾아가 자신의 삶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김지영의 이야기를 들은 담당 의사가 그의 인생을 재구성해 기록한 형식입니다. 기록된 김지영의 기억은 ‘여성’이라는 젠더적 기준으로 선별된 에피소드들로 구성됩니다. 아, 여기서 또 북한 청취자들에게 생소한 젠더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젠더는 사전적 의미로 생물학적 성별에 따라 부과된 사회적 특성들 혹은 사람들에게 그런 특성을 부과하는 분류 체계를 일컫는 말입니다. 젠더에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우선 좁은 의미로는 ‘사회적인 성별, 성역할, 성정체성 등 생물학적 성별 내지는 지정성별에 따라 사회가 부과한 특성들’ 사회문화적인 차원에서의 여성, 남성, 나아가 여성성, 남성성까지를 의미합니다.

MC: 혹시 선생님께서 북한에 계실 때 페미니즘 작품을 접하실 기회가 있었는지요? 있었다면 북한의 문학작품에도 페미니즘적 요소가 들어가는 경우가 있나요?

도명학: 제가 북한에 있을 땐 페미니즘이란 용어 자체를 몰랐거니와 페미니즘 작품이 없다고 하는 것이 맞을 듯 합니다. 물론 북한에도 여성의 사회적 역할을 독려하는 작품들이 있습니다만 여성의 목소리로 차별의 부당함을 호소하기보다 사회적 분위기 조성 측면에서 강조합니다. 소설도 영화도 아니지만 만담이 하나 있긴 했습니다. 제목이 "여성은 꽃이라네"라는 만담이었는데 아내가 집안에서 손가락 하나 까닥 안하고 아내만 집안 일을 시키고 직장에 나가면 여자들에게 컬레질을 해라, 재떨이를 털어오라, 시켜먹으면서 들놀이 갈 때만 여자들이 있어야 재밌다고 말하는 남편과 입씨름을 하는 내용이었는데 재밌게 봤던 생각이 납니다. 아 현실비판 영화도 있긴 한데 며느리를 시어머니와 시누이 등 시집 식구들이 못살게 굴어 직장일에도 지장을 주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주려는 메시지는 여성 존중 차원에서라기보다 여성들도 혁명과업 수행을 하는 입장인데 집에서 남편이나 시댁 식구들이 못살게 굴면 혁명과 건설이 피해를 입게 되니 잘못된 행위라는 비판입니다.

MC: 한국에 와서 페미니즘 작품을 접하시고 어떤 느낌을 받으셨는지요?

도명학: 작품을 볼 때는 공감이 가는데 현실은 다르게 보입니다. 오히려 한국은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더 살기 좋은 것 같은데요. 여성상위 시대라는 말이 있을 정도고, 오히려 "매 맞는 남편"이란 말까지 있는걸요. 그래서 솔직히 페미니즘 작품을 보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습니다. "82년생 김지영"을 보게 된 것도 실은 제가 존경하는 어떤 분이 책을 제 책상에 놓아주면서 어디 한번 읽어보고 감상을 좀 얘기해보라고 하기에 봤습니다. 그것도 굉장히 많이 팔린 책이라기에 읽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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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82년생 김지영' 표지(왼쪽)와 영화 '82년생 김지영' 포스터. /민음사·롯데엔터테인먼트

MC: 이 작품 속에서 여성, 그러니까 주인공인 김지영이 받은 불이익은 어떤 것이고, 또 그 문제들이 잘 해결되지 않는 이유가 뭐라고 보십니까?

도명학: 네, 소설 "82년생 김지영"에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이러저러한 일화들 예컨대 어렸을 때 식사 시간이면 어머니가 밥을 아버지와 아들 그릇에 먼저 퍼담고 나서야 딸 밥그릇에 퍼담았다는 이야기, 여동생은 여자아이라서 낙태를 당하고 초등학교 때부터 남학생이 출석 번호, 식사순서 등 앞 순번을 배정받는 차별 등의 이야기, 중학교 때 여학생의 복장 규제가 더 심했고 대학교 때 남자 선배에게 성희롱을 당하고 남자친구와 사귀다 헤어졌지만 여자에게만 '씹다 버린 껌'이라는 표현을 들어야만했다는 이야기. 아이를 데리고 산책하는데 뒤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리기를 "남편이 돈 버느라 고생하는데 집에서 그 돈으로 별 하는 일 없이 아이와 놀기만 하는 맘충"이라고 하기에 자존심 상하고 기분이 상했다는 얘기, 직장에서 여성이라고 차별받은 일 등 다양한 사연들을 마치 비망록처럼 고발합니다.

MC:남한에 오셔서 본 남한 여성들의 특징은 무엇이고 북한 여성과는 어떻게 다르던가요?

도명학: 남한 여성들은 북한여성들에 비해 상당히 활달하고 상냥하면서도 당당한 것 같습니다. 우선 똑똑합니다. 특히 젊은 여성들은 거의 다 대학공부를 해서 그런지 지적인 것 같습니다. 다만 북한 여성들에 비하면 남자들이 여성을 당연히 배려해야 한다는 인식이 너무 강한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특별한 여성들이 좀 있더군요. 북한 여성들은 남자는 존중받고 대접받아야 하고 여성은 사랑받고 보호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강한 편입니다. 물론 거기도 다 그런 건 아니고 남자를 막 대하고 거들먹거리기 좋아하는 여성은 있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이 어떻게 다 한결같겠습니까.

MC: 북한 여성들도 많은 차별과 희롱을 당한다고 하던데, 그럼, 그걸 어떻게들 극복하나요?

도명학: 차별은 가부장적 문화가 강해 암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일 뿐 사회적으로 차별이 정당화되지는 않습니다. 남녀평등권법령이 벌써 해방된 이듬해에 선포된 만큼 임금이나 직장생활 등에서 여성을 차별하는 기준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여성들이 고생은 많이 하죠. 우선 출산, 육아, 집일 등이 상당히 고된데다 사회동원, 노력동원, 정치행사에 국가경제가 파탄난 후부턴 장마당에 나가 가족들 벌어먹이는 일까지 도맡아야 하니 정말이지 2중 3중으로 부담이 큽니다. 한마디로 불쌍하기 그지 없습니다.

성희롱은 남한 기준으로 따지면 남자들이 하는 농담이 다 성희롱 수준입니다. 문제는 북한 여성들 대부분이 웬만한 것은 성희롱이라고 받아들이지 않고 웃자고 하는 소리, 농담으로 하는 행동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의 성희롱은 여성 본인이 말을 안 해도 우선 같은 남자들이 가만두지 않습니다. 심하면 청년조직, 당조직, 직맹조직에서 사상투쟁 대상이 됩니다.

MC: 이 작품이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은 뭘까요?

도명학: 저는 이 작품이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이 작품이 북한에 들어가야 더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 같습니다. 이 소설에서 나오는 여성차별과 불이익이 북한에는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에 특별히 여성들이 크게 공감할 것 같습니다. 한국보다 가부장적인 문화가 강한 일본에서 이 책이 더 인기를 누렸다고 하는 걸 봐서도 북한처럼 여성차별이 심한 나라일수록 이 작품이 주는 메시지가 무겁게 느껴질 것이라 봅니다. 해외에 더 많이 팔린 이유가 그래서라고 봅니다.

MC: 북한은 굉장히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사회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남한의 경우 사회가 서구화되면서 북한보다는 좀 더 개방적이고 자유로워진 것으로 관측되는데요.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십니까?

도명학: 네, 많이 서구화된 것 같긴 합니다. 저로선 크게 반길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인은 한국인다워야 아름답지 않을까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 라는 말이 있던데 저는 참 좋은 말이라고 봅니다. 서구의 것이든 우리 것이든 좋은 것은 살리고 지키고 발전시키고 타인이 눈살을 찌푸리는 이상한 것들에는 동화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MC: 네, 도명학 선생님과 함께 한 남북문학기행, 오늘 순서는 여기까집니다. 선생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도명학: 네, 수고하셨습니다.

MC: 저희는 다음 주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함께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끝>

기자: 홍알벗, 에디터: 이진서, 웹담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