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분단의 비극이 빚어낸 ‘전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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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북한에 계신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시간입니다. 진행에 홍알벗입니다. 이 시간 탈북 소설가 도명학 선생님과 함께 남북한의 문학작품에 대해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도명학: 네, 안녕하십니까.

MC: 문학작품이, 시나 소설 말고도 영화나 연극, 그리고 가요나 드라마 등 여러 형태로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을 청취자 여러분도 잘 아실 겁니다. 특히 일반 대중가요 중에서도 여느 시 못지않게 그 가사가 문학적 작품성을 인정받는 경우도 상당히 있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오늘은, 전쟁 때 지어지거나 불려졌던 남북한 작품을 듣고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전시가요'가 뭔가요?

도명학: 문자 그대로 전쟁 시기에 창작된 가요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전쟁이 아닌 시긴에도 전쟁을 내용으로 한 노래가 만들어지지만 그것까지도 포함되는지는 저도 확신이 안섭니다.

MC: 그렇다면, 전시가요가 일반가요와 크게 다른 점은 뭔가요?

도명학: 전쟁과 관련된 내용으로 지어졌다는 것이 일반가요와 다르죠. 물론 전쟁 시기에도 전쟁과 무관한 노래가 만들어지겠지만 그것까지 전시가요라고 할 수는 없다고 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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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한 부대 장병이 묘역정리를 하고 있다. /연합

MC: 그럼 먼저 오늘 갖고 나오신 남한의 전시가요 '아내의 노래'를 듣고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님께서 가신 길은 빛나는 길이옵기에

이 몸은 돌아서서 눈물을 감추었소

가신 뒤에 내 갈 곳도 님의 길이요

바람 불고 비오는 어두운 밤길에도

홀로 가는 이 가슴엔 눈물이 넘칩니다

(출처: 유투브 채널 ‘chwongunclub’)

MC: 이 노래의 주제는 무엇이고 무엇을 표현하려 한 건가요?

도명학: 이 노래는 참 의미 깊고 생각이 깊어지게 하는 노래입니다. 남편이 떠난 애국의 길이 아내인 나도 가야 할 길이라는 표현이 이 노래의 주제라고 봅니다. 또 목숨을 바쳐 싸우는 전선에 간 남편의 안녕을 바라는 마음, 그의 뜻을 받드는 마음으로 태극기를 흔드는 여인의 절절한 애국심과 남편에 대한 숭고한 사랑을 아주 예술적으로 잘 담아내고 있습니다.

MC: 다음으로 남한 전시가요 '님 계신 전선'을 들어보시겠습니다.

태극기 흔들며

님이 떠난 새벽 정거장

기적이 울었소

만세소리 하늘 높이

들려오누나

지금은 어느 전선 어느 곳에서

지금은 어느 전선 어느 곳에서

용감하게 싸우시나

님이여 건강 하소서

(출처: 유투브 채널 ‘루트리스’)

MC:아무래도 전쟁 상황을 배경으로 하다보니 가사 자체가 굉장히 구슬픈데요. 이 노래의 특징은 뭘까요?

도명학: 이 노래 역시 전선에서 싸우는 님을 그리는 내용으로 아내의 노래와 비슷한 맥락입니다. 남편에 대한 단순한 그리움과 사랑이 아닌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우는 헌신에 대한 아내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MC: 북한에도 전시가요가 있죠?. 이번에 도명학 선생님이 소개해 주실 북한 전시가요는 '전차병과 처녀'라는 노래인데, 함께 들어 보시겠습니다.

푸른 들 넓은 벌판에 전차 한 대 달리다가

전차 한 대 달리다가 문득 서더니

웃뚜껑 벌컥 열고 전차병 내려와서

물 한 그릇 푸려는데 물 한 그릇 푸려는데

지평선 아득한 벌판 전차 한 대 달리는데

분홍손수건 분홍손수건 펄펄펄 오래 나붓겨

해질녘 샘터에서

인민군가 들려와라 인민군가를 들려와라

(출처: 북한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 웹사이트)

MC: 제목도 그렇고 노래를 들어봐도 그렇고 전시가요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데요. 이 노래는 어떤 작품인가요?

도명학: 이 노래의 유래를 정확히 모르겠는데 6.25전쟁 시기에 나왔다는 말도 있고, 아니라는 말도 있고, 소련노래를 리메이크 한 노래라는 말도 있습니다. 노래를 가만히 들어보면 북한의 전형적인 가요와 좀 다른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소련노래를 번역한 노래라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실지로 언젠가 어느 소련영화에서 이 노래와 비슷한 노래가 나오는 것을 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소련노래를 리메이크 한 노래라는 설이 가장 그럴듯해 보입니다. 노래의 내용은 들어보셔서 느끼셨겠지만 전차병과 시골 처녀의 우연한 만남, 그런데 뜻밖에도 서로가 어릴 적 친구입니다. 전차는 다시 가던 길을 떠납니다. 전선으로 가는 거겠죠. 전차는 지평선 아늑한 벌판을 달리고 그를 배웅하는 처녀의 분홍손수건이 날리고 어릴 적 친구인 전차병을 만나고 난 감정이 짙게 배인 샘물터에서 들려오는 처녀의 인민군가 노래 소리.

가만히 들어보면 눈앞에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이 노래에는 용감히 싸우자느니 나라에 충성을 다하자느니 하는 선동적인 구절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정서적인 노래가 오히려 공개적인 선동 노래보다 군인들에겐 더 힘이 된다고 생각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노래 가사는 상당히 문학적으로 기교가 있는 가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MC: 남북한 전시가요의 공통점은 무엇이고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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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평양에 선전물들이 세워져 있다. /AFP

도명학: 방금 남북한 전시가요를 다 들어봤지만 전쟁 시기에 드러나는 인간의 감정은 이념과 진영을 떠나 보편적인 감정입니다. 상대가 적이지만 자기 편에선 각자 애국심과 전선에 있는 님에 대한 그리움과 안녕, 응원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표현이나 곡의 색깔, 가수의 창법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리고 덧붙여 말씀드리면 전시가요를 평화시기에 어느 쪽에서 더 널리 불려지는 지가 차이납니다. 전시가요는 남한에 비해 북한에서 더 많이 불려지는 것 같습니다. 아니 일반인들이 많이 부른다기보다 방송이나 공연에서 많이 한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MC: 저희 같이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들도 이런 노래를 들으면 일반 가요를 들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 슬픔 같은 게 느껴지는데요. 노래의 무엇이 저희를 이렇게 만드는 걸까요?

도명학: 그만큼 전시가요가 인간 보편의 감정을 진실하게 담아 잘 만들어졌기 때문이 아닐까요. 전쟁은 한 국가의 모든 역량이 총동원되는 결사전인만큼 문학예술작품 창작도 자연스레 그 환경에 영향을 받아 잘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MC: 노래를 듣다 보면 '전쟁은 정말 일어나서는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러한 전시가요를 통해 북한에 계신 북한 주민들은 어떤 생각을, 또 어쩐 느낌을 가질 수 있을까요?

도명학: 북한 주민들은 남한에도 이런 애국적인 노래들이 있었구나 할 것입니다. 북한에서는 자본주의 나라 사람들은 애국심과 희생정신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자기 안위밖에 생각할 줄 모를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당연하게 국군을 비롯한 자본주의 군대는 전투에 억지로 끌려 나와 등뒤에서 총구를 겨누고 내몰기에 어쩔 수 없이 총알받이가 되어 개죽음을 당하는 신세라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당국이 그런 인식을 주입 시켰기 때문입니다.

MC: 선생님께서는 남한의 전시가요를 처음 들으셨을 때 어떤 느낌을 받으셨나요?

도명학: 저의 경우엔 몰래 남한 방송을 많이 들어서 남한에 대한 사전 학습이 어느 정도 되어 있는 상태로 남한에 왔기 때문에 북한 당국이 선전하는 것과 다르다는 정도는 알았습니다. 하지만 남한에서 전시가요와 군가들을 많이 들게 되면서 북한과 이념이 다를 뿐이지 노래가 주는 애국심과 헌신성의 농도는 다를 바 없구나 하는 느낌을 받게 되었습니다. 다만 슬픈 것은 남북이 서로 동족인 상대방을 쳐부수기 위한 내용의 전시가요를 부르고 있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남북한의 전시가요 그 자체가 분단의 비극이 빚어낸 산물이라는 생각을 금할 수 없습니다. 외적이 아닌 동족을 겨냥한 전쟁 노래를 부를 필요가 없는 통일의 그날이 한시바삐 왔으면 좋겠습니다.

MC: 네, 지금까지 탈북소설가 도명학 선생님과 함께 남북한의 전시가요에 대해 이야기 나눴습니다.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도명학: 네, 수고하셨습니다.

MC: 저희는 다음 주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함께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기자: 홍알벗, 에디터: 이진서, 웹담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