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인간 오발탄’ 월남 피난민의 고통과 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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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북한에 계신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시간입니다. 진행에 홍알벗입니다. 이 시간 탈북 소설가 도명학 선생님과 함께 남북한의 문학작품에 대해 이야기 나눕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도명학: 네, 안녕하십니까.

MC: 오늘은 남한의 소설 '오발탄'을 살펴볼 텐데요. 먼저 이 소설을 쓴 이범선 작가를 좀 소개해 주시죠.

도명학: 이범선 작가는 1920년 12월 30일생으로 평안남도 안주시에서 태어났습니다. 남한의 동국대학교에서 국어국문과 학사학위를 받았고, 은행원과 교사 등 다양한 직업을 갖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1955년, '현대문학' 4월호에 단편 「암표」, 그리고 12월호에 단편 '일요일'을 각각 투고했다가 김동리 작가의 추천을 받아 본격적으로 등단하게 되었습니다.

MC: 이범선 작가가 집필한 작품들의 시간적 배경을 보면 대부분 일제강점기 최후반기에서 6.25 전쟁 발발 전후 시기인데요. 이 작가의 작품들을 봤을 때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면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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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선의 오발탄. /교보문고 웹사이트 캡쳐사진

도명학: 이범선 작가는 동시대 다른 작가들과 다르게 리얼리즘, 즉 사실주의 문학작품으로 당시 한국의 시대상, 사회상을 그려냈습니다. 다른 작가들이 주로 모더니즘 작품 성향을 보인 것과 차이나는 모습이죠. 아마 작가 자신이 경험한 사회적 역사적 체험이 많아 사실주의 방법으로 정면으로 사회적 문제를 다루고자 했던 것 아닌가는 생각이 듭니다. 그의 작품들에 나타난 인간상은 역사나 사회의식이 확실히 박힌 상태로 이념 갈등에 대처하는 인물이 아니라 그런 것에 무지하면서도 역사적 폭력에 고통받습니다.

이범선 작가는 해방과 6.25 한국전쟁으로 비롯된 사회적 혼란과 부조리들을 직업 경험하고 보았고, 특히 월남자라는 개인적 한계로 남북의 모든 전통과 생활, 개인의 모든 세계를 포기했을 뿐 아니라 피난민으로서 엄청난 생활고까지 겪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체험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에 그의 작품들은 상당히 폭이 넓고 다양한 경향을 띄게 하였습니다. 이런 그를 두고 소재주의 작가라는 비판도 받았다고 하는데 저로선 납득이 가지 않는 비판입니다.

이범선 작가의 오발탄에서 보여지듯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고발과 증언의 비판적 사실주의적 수법, 상징기법을 통한 내면 의식의 성찰 등 형상 기법은 상당히 매력적이라고 생각됩니다.

MC: 이 소설 오발탄은 영화로도 제작이 됐는데 말이죠.. 먼저 이 소설의 특징과, 이 소설이 갖는 일반 소설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설명 부탁드립니다.

도명학: 이 소설의 제목 오발탄은 상징적인 문구입니다. 저도 처음엔 제목만 보곤 군대 이야긴 줄로 짐작했는데 아니더군요. 오발로 발사된 탄알처럼 삶의 지표를 잃고 방황하다 파멸하는 한 월남자 가족의 비극을 그리고 있습니다. 6.25 직후 문학의 특징이 대개 그러한데 이 작품 역시 참담한 고통과 절망을 통해 전쟁의 잔혹성과 인간 존엄의 가치를 생각하게 만듭니다.가난과 불행으로부터 해방되길 바라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전쟁이 남긴 아픈 산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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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칠곡군 왜관읍 낙동강 둔치에서 6·25 전쟁 낙동강지구 전투 재연행사가 열리는 모습. /연합

이 작품 속에는 중요한 문제의식이 들었는데, 특히 형제의 생각이 서로 다르게 설정된 것이 의미 심장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 한데, 사실 이런 건 단지 이 가족만의 문제만이 아니라 흔하게 볼 수 있는 현상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한솥밥을 먹고 한집에서 지내도 윤리, 도덕, 양심, 가치관, 미학관 등이 너무 다른 가족이 많죠. 다만 그 정도가 얼마나 다른지에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 소설에선 두 형제의 가치관이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형은 아무리 세상이 험악하고 뜻대로 되는 것 없고 어렵게 살아도 양심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고, 동생은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 그런 양심과 도덕, 법 같은 것이 무슨 소용 있는 가며 생존을 위해선 못할 짓이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여동생 역시 가족의 생계를 위해 뭇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일인 줄 알면서도 양공주로 매춘에 종사합니다.

한마디로 이 작품이 다른 소설들과 유다른 점이 있다면 사람들에게 전쟁이 남기는 상처가 얼마나 참혹하고 비참한 것인지에 대해 불행한 한 가족을 통해 직설적이면서도 상징적인 수법을 동반 활용해 독자로 하여금 소스라치게 느끼도록 쓰여졌다는 점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MC: 이 작품의 줄거리는 어떻게 되나요?

도명학: 소설 "오발탄"의 줄거리는 복잡하지 않고 좀 단순한 편입니다.

소설에서 주인공 철호는 월남자 가족의 가장으로 계리사 사무실 서기로 일합니다. 철호의 가족은 북한에서 지주 신분으로 풍족한 생활을 했지만 해방 직후 토지개혁으로 단행된 지주계급 청산을 피해 월남하여 서울 해방촌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여기서 해방촌이란 당시 북한에서 월남한 사람들이 서울역 근처 남산 비탈면에 판잣집을 짓고 살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동네를 말합니다. 철호의 어머니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견디다 못해 실성하였고, 동생 영호는 상이군인으로 제대한 후 일자리가 없었습니다. 동생 명숙은 가난 때문에 미군 부대에서 몸을 팔아 생계비를 버는 일명 양공주가 되었고, 만삭의 아내와 영양실조에 걸린 딸까지 철호는 많은 걱정거리를 안고 살아갑니다.

어느 날 철호는 할 일도 없이 혼자 뒤쳐졌다가 점심도 굶은 채 심한 허기를 느끼며 산비탈 해방촌 고개를 올랐습니다. 레션 상자로 지붕을 얽은 판잣집으로 가는 거죠. 집 앞에 당도하자 안에서 “가자! 가자!” 하는 어머니의 쨍쨍한 소리가 새어 나오고, 방안에 들어선 그는 털썩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어머니가 실성하고 만 것입니다. 순간 가슴에 납덩이를 얹어놓은 것 같은 심정입니다. 가자! 가자! 어머니의 외마디 소리는 계속 주기적으로 귀청을 때립니다. 고향으로 돌아가자는 건데, 사람도 알아보지 못하고 연방 “가자!” 외마디 소리만 지를 뿐이고, 철호가 아무리 38선 때문에 고향에 돌아갈 수 없노라고 말해도 막무가내입니다. 오히려 아들을 고약한 놈이라고 욕합니다. 그러던 어머니를 그는 6․25 때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철호네 집 윗방에는 영양실조로 야윈 어린 딸이 누워 잠들어 있고, 그 곁에는 누더기 담요 바지를 입은 아내가 있습니다. 어머니의 원수를 갚겠다고 군에 자원입대했다가 상이군인이 되어 돌아온 동생 영호는 2년이 넘도록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채 매일 술타령입니다. 정신 좀 차리라는 형에게 영호는 오히려 양심이라는 가시를 빼어 버리고, 윤리고 관습이고 법률이고 다 벗어 던지고 홀가분하게 살아보자고 항변합니다.

그러다 끼니를 굶고 물로 배를 채우며 일하던 중 철호는 영호가 권총 강도로 경찰서에 잡혀 있다는 연락을 받습니다. 경찰서에 다녀오자 바로 아내가 난산으로 병원에 실려갔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여동생 명숙에게 돈을 빌려 병원으로 달려갑니다. 하지만 아내는 이미 죽었습니다. 충격으로 거리를 헤매던 철호는 치과병원을 찾아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히던 벌레 먹은 이빨을 뽑아 버립니다. 그런데 이빨을 하루에 한 개밖에 뽑지 못한다고 하자 또 다른 치과에 가서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충치 하나를 더 뽑습니다. 치과에서 나온 철호는 택시를 탔지만 해방촌, 병원, 경찰서로 목적지를 바꾸며 어디로 갈지 몰라 횡설수설하다가 이빨을 한꺼번에 뽑은 것 때문에 출혈로 의식이 흐려져 잠들어가면서 어머니처럼 “가자, 가자!”만을 외치며 자신을 조물주의 오발탄에 비유합니다. 택시 운전사는 “어쩌다 오발탄 같은 손님이 걸렸어. 자기 갈 곳도 모르게”라고 중얼거리며 무작정 달리고 철호의 입에서 흘러내린 선지피가 흥건히 그의 와이셔츠를 적시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됩니다.

MC: 작품 자체가 전반적으로 굉장히 어둡고 슬프게 느껴지네요. 이 소설의 배경은 6.25 한국전쟁 이후 힘들게 살아가는 남한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건데요. 이런 모습을 탈북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도명학: 탈북자들은 이 소설 속 가족이 북한에서 온 월남자 가족이라는 점 때문에 생각이 많을 것입니다. 또 북한에서 토지개혁으로 토지를 빼앗긴 지주 출신 월남자들이 남한에서 어떤 고통을 경험해야 했는지도 새롭게 알게 되고, 그들에 비하면 탈북자들은 어떤 점이 다른지도 비교해 봅니다. 꼭 이 소설을 통해서가 아니라도 탈북자들이 만나는 실향민들 가운데 지주 출신들이 꽤 있습니다. 저도 만나봤지만 북에서 그 많은 재산과 농토를 뺏기고 빈손으로 내려와 참 고생을 많이 했더라구요. 북에서 교육받을 땐 지주계급들이 전부 악착하고 양심도 인간성도 없는 수전노, 착취자, 억압자라고, 타도해야 마땅할 악당이었는데 남한에 와 만나본 지주들이 결코 나쁜 사람들이 아니더군요. 얼마나 근면하고 예의도 있고 인정도 있고, 다 멀정한 사람들이더군요. 그들이 남한에 내려와 억세게 살아온 경험들이 탈북자들에게 도움이 됩니다.

탈북자들은 옛날에 남한에 내려온 실향민, 피난민들과 처지가 다릅니다. 옛날엔 정착지원제도라는 것도 없었지만 지금은 다양한 정착지원제도가 정립되어 있고 날이 갈수록 개선 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럼에도 실향민들에 비해 탈북자들이 더 어려운 어쩔 수 없는 조건은 있습니다. 남한 사람들과의 교육 수준 격차입니다. 실향민들 얘기를 들어보면 자기들이 내려왔을 당시엔 남한 사람들 문맹 수준이 북한에 비할 바 없이 낮아서 이름 석자도 쓰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답니다. 그래서 배우고 못 배우고 한 것을 두고 열등감을 가질 필요는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탈북자들은 거꾸로입니다. 특히 탈북청소년들 중에 한글도 깨우치지 못한 상태로 온 경우가 꽤 있습니다. 경제난으로 학교에 다니지 못하거나 제3국을 떠도느라 학력 결손이 심각한 거죠. 아무튼 소설 오발탄은 탈북자들로 하여금 남한에 정착하는 일이 실향민들이나 탈북자들이나 쉽지 않은 과정임을 생각게 하는 소설이라고 봅니다. 나무도 옮겨 심으면 삼년은 앓는다는데 사람도 낯선 타향에 자리 잡으려면 아픈 기간이 있기 마련이죠.

MC: 전쟁 직후 북한이 남한보다 잘 살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북한도 힘들긴 마찬가지였을 것 같습니다. 당시 남한과 북한의 경제 상황을 비교해 본다면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도명학: 전쟁으로 남북이 다 파괴된 만큼 전후 상황이 다 어려웠을 건 당연합니다. 오히려 남한보다 북한이 더 초토화 된 상태였죠. 전쟁 전 기간 유엔군이 북한지역 제공권, 제해권을 전부 장악하고 있었기에 폭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습니다. 6.25 때 서울 사진과 평양 사진을 비교하면 전쟁 후반에 서울은 전차가 다니는 정도지만 평양은 건물 한 채 성한 것이 없고 한마디로 잿더미 그 자체입니다. 그럼에도 전후 복구건설이 빨리 진행될 수 있은 것은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의 막대한 인적 물적 기술적 원조가 있었고, 제강소, 발전소를 비롯한 산업체 복구에 필요한 인력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남한도 미국의 원조를 받았다곤 하지만 제가 알기론 북한이 공산권에서 받은 지원에 비하면 한참 부족한 수준이었습니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북한 경제가 매우 높은 성장세를 보였던 것도 따지고 보면 원조 덕분이었습니다. 그러다 주체사상을 본격적으로 내세우면서 소련이나 중국으로부터 원조가 줄고 소련 붕괴 후 1990년대 들어선 완전히 경제가 망가져 대량 아사가 발생했을 정도가 됐죠. 북한이 자립경제니, 자력갱생이니 하고 잘난 척을 했지만 소련이 붕괴되니까 한달이 지난 후부터 공장 기업소들이 난항을 겪은 것이 확 느껴지더군요.

MC: 이 소설의 주인공인 송철호는 어떤 인물이고, 소설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해나가나요?

도명학: 앞에서 말씀 드린 소설 줄거리에서 볼 수 있듯 송철호는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궁핍한 삶으로 인해 고통, 가난하고 힘든 현실을 살면서도 양심을 지키려 하지만, 끝내 삶의 방향을 잃고 만다는 인물입니다. 따라서 송철호의 역할은 작품의 주제 해명에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어머니, 남동생, 여동생, 아내는 보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MC: 이 소설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뭘까요?

도명학: 전후 1950년대의 암울한 상황을 총체적으로 드러내어 증언해 주고 있는 소설 "오발탄"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분단의 비극, 현실과 괴리된 양심에 관한 문제, 빈곤 문제 등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 소설을 기념비적 작품이라는 평가도 있던데 저도 동감입니다.

MC: 오늘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집니다. 도명학 선생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도명학: 네, 수고하셨습니다.

MC: 오늘 남북문학기행 순서는 여기까집입니다. 저희는 다음 주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함께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기자: 홍알벗, 에디터: 이진서, 웹담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