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북한에 계신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시간입니다. 진행에 홍알벗입니다. 이 시간 탈북 소설가 도명학 선생님과 함께 남북한의 문학작품에 대해 이야기 나눕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도명학: 네, 안녕하십니까.
MC:오늘은 남과 북에서 잘 알려진 백정 임꺽정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먼저 대하소설 임꺽정을 썼던 홍명희 작가에 대해 이야기를 해봐야겠습니다. 홍명희 작가는 어떤 인물이었나요?
도명학: 네 솔직히 저는 북한에 있을 때 소설과 영화로 만들어진 임꺽정을 매력을 느꼈지만 정작 저자인 홍명희 작가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다만 그가 남한에서 북으로 넘어간 인물이고 미완성작인 소설 임꺽정을 북에서 완성했다는 것, 그리고 북한정권 수립 후 초대 내각 부수상을 했다는 것, 다만 그 직책으로 국정에 실질적으로 역할 한 것이 아니라 자문역할에 그친 일명 무임소상이었다는 것, 또 북한 작가 홍석중이 그의 손자라는 정도가 다였던 것 같습니다.
MC:북한 주민들은 홍명희 작가에 대해 알고 있을까요?

도명학: 글쎄요, 제가 이 정도밖에 모르고 있었으니까 아마 문단과 직접적 연계가 없는 일반주민들은 더 모를 겁니다. 작품 임꺽정은 높은 인기를 누렸지만 작가에 대해선 너무나 알려진 것이 없는 셈이죠. 그래서 이 기회에 북한에서 이 방송을 듣고 있을 청취자들에게 홍명희 작가에 대해 소개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홍명희 작가의 호는 벽초입니다. 벽초 홍명희의 부친은 조선시대, 즉 북에서는 이조시대라고 하는 시대에 군수를 지냈을 만큼 집안은 명문 사대부 집안이었고, 홍명희 선생은 1888년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세 살 되던 해에 어머니를 여의었습니다. 그리하여 부친이 재혼하게 되면서 이복남매들이 생겼는데 이들은 훗날 홍명희가 관여했던 3.1운동 시대일보사 경영, 신간회 운동 등 에 동참하여 홍명희를 도왔습니다.
홍명희는 열세 살 되던 1900 년 참판 민영만의 딸과 결혼하였습니다. 결혼 이듬해인 1901년 중교의숙이라는 학교에 입학하였고, 1906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도쿄 상법학교 예과에 편입하여 진학준비를 한 후 1907년 대성중학교 3학년에 편입하여 공부하는 동안 조선 문단 제일의 다독가로 손꼽힐 정도로 다양한 분야의 서적을 두루 탐독하였습니다. 특히 러시아 문학 작품과 영국 낭만주의 시인 바이런의 작품을 애독하였습니다.
MC: 그럼 이때부터 글도 쓰기 시작한 건가요?
도명학: 홍명희는 춘원 이광수, 그리고 육당 최남선과도 교분을 맺었고 『대한흥학보』에 몇 편의 글을 기고하여 최초의 사회활동과 문필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일본 유학 시절에 강제로 해체되어 가는 '나라' 조선의 실상을 똑똑히 목도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벽초는 무언가 더욱 근본적인 방향전환이 필요하다는 절박한 심정에 내몰린 끝에 학업을 중단한 채 귀국하고 말았습니다. 홍명희는 1912 년 고향을 떠나 상하이, 난징, 남양 등을 '방랑'하며 독립운동, 애국계몽운동에 관여하다 1918 년에 귀국하였습니다. 벽초는 "친일하여 자신을 욕되게 하지 말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평생 좌우명으로 삼았습니다. 홍명희는 제 1 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직후인 1914 년 11 월 상하이를 떠나 남양으로 향했습니다.

MC: 홍 작가는 그렇게 고향에 돌아와서 뭘 했나요?
도명학: 해외 망명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홍명희는 만세운동을 모의하였습니다. 한편 이때부터 홍명희는 민족해방운동의 돌파구로서 사회주의 사상에 관심을 갖고 급진적 지식인들의 사상단체인 신사상연구회 ・ 화요회 ・ 정우회에 참여하여 회원으로서 활동하였습니다. 이때 홍명희는 조선 문단에 크게 세력을 떨치고 있던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과 일정한 관계를 맺었습니다. 홍명희는 평북 정주 오산학교 교장을 지내기도 했으나 사임 후 1928년 11월부터 『조선일보』에 역사소설 『임꺽정』을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1945년 광복 뒤 홍명희는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장을 역임하다 여운형과 함께 근로인민당을 조직했고 여운형이 암살된 후 지도자가 되기도 했으나 환경과 지도력 부족으로 실패했으며 이후 월북했습니다. 이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 부수상 등으로 주요 정치 활동을 하였으며 6.25 전쟁에 반대한 인물들 중 1명으로 알려져 있다. 1948년 9월, 초대 북한 내각 부수상에 선출되었고 1968년까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다. 대부분 월북 인사들이 숙청당한 것에 비해 홍명희는 성공한 삶을 누렸다고 볼 수 있으며 김일성·김정일 부자와도 개인적으로 친하였는데 김일성은 홍명희를 존경하고 예우했습니다. 홍명희의 계모는 6.25 전쟁 중 월북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살해당했는데 북한군이 후퇴하는 급박한 와중에도 시신의 수습을 명령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김일성과 홍명희 사이에 추악한 이면도 있다고 합니다. 사연인 즉 1956년 김일성의 후처 김성애의 비서로 일하던 홍명희의 딸인 홍귀원이 김일성과 간통을 하다가 덜컥 임신을 했는데 "아버지를 볼 낯이 없다"고 죄책감에 시름시름 앓으며 아버지를 끝내 찾아보지 못하다가 아이를 낳던 중 그만 죽고 말았다는 데, 사실 이 때문에 김일성이 홍명희한테 죄책감을 느끼고 더 잘 챙겨준 면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재 홍명희의 생가는 충청북도 괴산군에서 보전하고 있습니다.
MC: 홍명희 작가가 굳이 월북을 한 이유는 뭔가요?
도명학: 월북 계기는 1948년 4월 평양에서 개최된 '남북한 제정당ㆍ사회단체 연석회의'에 김구 등과 함께 참석했다가 북한에 남았습니다. 미군정이 조선총독부가 남발한 불법 화폐를 사후 승인하는 실책을 저지른데다가 재정 적자를 조선은행권을 찍는 것으로 해결하여 미군정 치하 경제는 초인플레이션이 일어난 상태였습니다. 반면 북한은 빠르게 경제 정상화에 성공해서 적어도 당시로선 경제적으로 북한의 미래가 밝았다는 점도 그가 북에 남게 된 요인이 되었을 것이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노래: “강물처럼 흘러서”, 가수 장사익, 제목: ‘강물처럼 흘러서’ / 출처: 가을 나그네):
MC: 홍명희 작가의 임꺽정은 원래 남한의 일간지 조선일보에 연재되던 작품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임꺽정은 굉장한 인기를 끌어 모았었다고 들었습니다. 얼마큼이나 인기가 있었는지 들으신 게 좀 있으신지요?
도명학:네 당시 인기가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소설 『임꺽정』은 1928년부터 10여 년에 걸쳐 《조선일보》에 연재되어 폭넓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고, 일제 말에 초판이 간행되자 전 문단적인 찬사를 받으며 우리 근대문학의 고전이라는 정평을 얻었습니다. 해방 직후에는 『임꺽정』 재판이 간행되어, 식민지 시기 일본어로만 교육을 받다가 해방 후 처음 조선어로 교육을 받게 된 새로운 세대의 독자들에게 특히 인기를 끌며 널리 읽혔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후 작가 홍명희가 월북하여 북에서 고위직을 지낸 까닭에, 그의 소설 『임꺽정』은 남한에서 오랫동안 금서로 묶여 있었습니다. 따라서 전설적인 문호의 고전적인 걸작으로 희미하게 명성만 전해져 오던 『임꺽정』은 1985년에야 다시 출판되어 독서계에 비상한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또한 그 무렵부터 월북 문인들의 작품에 대한 출판과 연구가 허용되자, 홍명희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커지고 『임꺽정』의 문학사적 위치도 새롭게 평가받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임꺽정은 홍길동에 이어 그 이름이 관공서의 민원서류 견본에 기입되어 있을 정도로 유명한 인물이 되었지만, 홍명희가 『임꺽정』을 집필하기 전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습니다. 홍길동이 조선시대 허균의 소설로 유명해졌듯이, 임꺽정은 홍명희가 역사소설의 주인공으로 선택하여 그의 활약을 소설화함으로써 비로소 역사상의 유명 인물로 부활하게 된 것입니다.
(북한 드라마 ‘림꺽정(OST)’ “나서라 의형제여” / 출처: 유투브 ‘북한문화탐방’)
MC: 그렇다면 소설 임꺽정의 줄거리는 어떻게 되나요?
도명학: 소설 내용이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작품의 흐름을 따라가며 상세한 줄거리를 이야기 하려면 시간이 부족할 것 같습니다. 또 남북한 주민 모두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작품인 만큼 그럴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이 소설의 줄거리가 독특한 짜임새를 가진 소설이라는 점에 포거스를 맞춰 개괄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MC: 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마칠 시간이 됐습니다. 다음 주에 계속해서 소설 임꺽정에 대해 자세히 살펴 보겠습니다.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도명학: 네, 수고하셨습니다.
MC: 저희는 다음 주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기자: 홍알벗, 에디터: 이진서, 웹담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