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북한을 그릴 때 색안경을 벗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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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MC: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남북문학기행의 홍알벗입니다. 한반도가 남북으로 갈리면서 서로 다른 이념과 사상을 추구하면서 그 과정에서 상호 비방이나 비난이 있어 왔던게 사실입니다. 그러한 현상을 문학작품에서도 볼 수 있을까요? 그래서 오늘은 탈북자 출신시인이자 소설가인 도명학 선생님과 함께 '남한 문학작품에 녹아 있는 북한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MC: 선생님, 안녕하세요.

도명학: 네, 안녕하십니까.

MC: 남한 문학작품 가운데 북한을 너무 현실보다 과하게 묘사한 것을 본 적 있으신가요? 있다면 어느 작품이고, 또 어떤 부분이 그렇게 느껴지셨나요?

도명학: 제가 아직 남한에서 북한을 직접 소재로 삼은 작품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일명 탈북 문학이라고 불리는 작품들이 있지만 대개 탈북자들이 북중국경을 넘을 때의 아슬아슬하고 고통스러운 장면들과 제3국에서의 이야기들이 주를 이룹니다. 그만큼 남한작가들이 북한에 대해 잘 모른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니 북한을 묘사한 작품이 많을 수 없겠죠. 어딘가에 있기는 하겠지만 눈에 뜨이지 않아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다만 최인훈의 "광장" 같은 소설에서 북한이 나오지만 너무 옛날 북한모습입니다. 그 소설에서그려진 북한이 당시 정말 그런 모습이었는지도 제가 그 시절 직접 살아본 것이 아니어서 맞다 틀리다로 확신할 수 없습니다. 드라마나 영화도 북한을 소재로 한 작품이 별로 없는데 그래도 소설보다는 좀 있는 것 같습니다. 그걸 보면 소설이 있다고 해도 영화나 드라마에서 북한을 그려낸 수준과 별다를 바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나 소설에서 나오는 북한은 한마디로 말해 가상의 북한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실제 현실과 너무 다릅니다. 북한의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그리거나 아주 보잘 것 없고 낙후하고 북한사람들도 정상인이라고 보기 어려운 이상한 캐릭터로 나옵니다. 그래서 처음 한동안은 어처구니없어 많이 웃었습니다. 탈북자들 모두가 그랬습니다. 한국에 갓 입국하여 정착교육시설인 하나원에서 영화 "진달래 꽃 필 때까지", "국경의 남쪽" 등을 관람시키는 시간들이 있었는데 저뿐만 아니라 탈북자들모두가 너무 웃겨서 심각한 주제의 영화임에도 내내 웃다 말았습니다. 저희들 입장에선 북한을 너무 인위적으로 그린 영화라서 코미디를 보는 격이었습니다.

MC: 그 현실과 동떨어진 묘사라는게 어땠길래 그렇게 웃으셨나요?

도명학: 정확하게 그려내지 못했기에 웃은 거죠. 아니 정확하게 그려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북한에 대해 작가가 잘 알아야 어느 정도라도 그럴듯하게 그려내지 않겠습니까. 남한작가들 머릿속에 북한이라고 하면 무작정 빨갱이,악당들, 외계인 같은 사람들, 낙후한 곳 등 부정적인 이미지로만 떠오르니 부정적인 묘사가 주를 이룰 수밖에 없죠. 북한도 우리와 똑같이 피도 있고 눈물도 있고 기뻐할 줄도 아파할 줄도 아는, 사람 사는 세상인데 그 점을 간과하죠.

MC: 그렇다면 북한은 어떻습니까?

도명학: 북한에도 남한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지는 않은데 그래도 남한보다는 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영화, 드라마, 소설에 남한모습이 나옵니다. 정탐영화에도 나오고 남조선혁명을 소재로 한 소설에도 나옵니다. 그런데 북한작가들이 남한모습을 그만하면 잘 그려낸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한작가들이 북한을 잘 모르듯 북한작가들 역시 남한을 모르기는 마찬가질 텐데 그렇습니다. 실지 남한에 와서 보니 북한작가들이 그려낸 남한모습이 비록 어설픈 점은 있으나 우스꽝스러울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남북한 작가들이 서로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상대방 현실에 대해 그릴 때 차이가 나는 이유는 작가의 머릿속 관념의 차이라고 보아집니다. 남한작가들은 북한의 모든 것을 악마화하는 것이 맞는 처사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북한작가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북한에선 남조선현실을 악마화 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투쟁 선에서 그립니다. 남한의 군대, 경찰, 정보부요원, 등 관료들과 악덕기업주 등에 대해서는 아주 나쁘게 그립니다. 반면 서민들, 즉 일반인에 대해서는 사람모습 그대로를 그립니다. 이를테면 악당인 통치자들과 착한 민중을 갈라놓아 혁명을 유발케 하는 통일전선전략이 작품 속에 녹아든 거죠.

반면 남한작가들은 북한을 모두 싸잡아 악마화 한 반공교육의 영향이 머릿속에 굳어져 작품 속 북한이 부정적인 일변도로 그릴 것입니다. 물론 지금은 반공교육을 하지 않고 신세대 작가들이 많이 등장했지만 대신 그들은 반공교육마저도 들은 적 없기에 아예 북한에 대한 정보가 없습니다. 그러니 북한을 그린 작품을 써낼 자신감 자체가 없을 것이고, 혹은 어떤 기획에 따라 북한을 그린 작품을 쓴다 해도 모르니까 판타지소설 쓰듯 상상으로 막 지어낼 것입니다.

MC: 저희가 어렸을 때 만화영화에서는 북한의 지도자를 동물로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남한의 문학작품 가운데 북한 지도자를 과장되게 그리고 또 '이건 좀 심하다'라고 생각할만큼 비난한 경우를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도명학: 옛날에 김일성을 돼지로 그렸다는 것을 남한에 와서야 알았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돼지로 그렸는지 궁금합니다. 그릴 거면 늑대, 승냥이 같은 포악한 동물로 그려야 더 부정적일 텐데 말입니다. 북한사람을 그릴 때도 얼굴은 빨갛게, 이마에는 뿔이 달린 모습으로 그렸다고 하더군요.

북한 역시 남한지도자들을 동물로 묘사한 만화들이 있었는데 개로 그렸습니다. 남한지도자가 미국의 앞잡이, 식민지괴뢰라는 점을 강조한 거죠. 그러다가 김영삼 전 대통령 이후에는 남한지도자들을 동물로 그리는 현상이 사라지고 사람으로 그리되 흉한 모습으로 그렸습니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남한에서 자기 대통령을 비하하느라 그린 그림이 북한보다 더 심합니다. 저도 북에서 가끔 남한에 관한 뉴스가 나올 때 남쪽언론이 대통령을 비하해 그린 만화그림이 나타나면 혀를 차며 웃었습니다. 어쩌면 북에서보다 남한사람들이 더 자기 대통령을 저렇게 괴상한 모습으로 잘 그렸을까하고요.

소설이나 영화에 나오는 북한지도자는 앞에서 얘기했듯 북한사람들 보기에는 코미디 같은 느낌입니다. 부정적으로 그리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너무 수준 없이 그립니다. 북한작가들보다 왜 못한지 모르겠습니다. 북한 역시 남한지도자들을 부정적으로 그립니다. 그러나 좀 품격 있는 부정인물로 그립니다. 북한영화 “민족과 운명”이라는 영화에 보면 박정희가 자주 등장하는데 아주 멋있게 형상했습니다. 겉보기엔 멋있어 보이는데 그의 정보정치 같은 것이 얼마나 사회악을 빚어내는 지를 다각적으로 보여줍니다. 북에서 이런 것을 두고 흔히 하는 말이 “신사적으로 수준 높은 비판을 한다.”입니다. 그런 방법으로 주는 메시지가 더 강력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MC: 남한 문학작품에서 북한 또는 북한 지도자를 부정적으로 다룬 것들을 북한 주민들이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까요?

도명학: 사람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북한체제 모순을 깨달은 사람들 입장에선 속 시원할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웃거나 혹은 분노하겠죠. 제가 북에 있을 때 남쪽에서 풍선으로 보낸 삐라를 본 적 있습니다. 그때 거기에 김정일이 김일성광장에 운집한 군중대회에서 연설하는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그려져 있었습니다. 안경알이 얼굴 절반만큼이나 되게 크고사나운 송곳이가 쑥 드러나고 말풍선에는 "내말만 잘 들으면 항용 만사가 해결된다"라고 쓰여 있었었습니다. 군중은 만세를 외치는데 속으론 "배고파서 못살겠다"고 외칩니다. 저는 그걸 보고 우습기도 하고 속이 후련했습니다. 함께 삐라를 본 친구도 웃어댔습니다. 반면 이런 삐라를 보고 크게 분노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 삐라는 소수의 속마음은 후련하게 해줄지 모르지만 아직은 북한에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다만 그 삐라는 남한 군부에서 보낸 것이고 지금은 보내지 않은 지 오랩니다. 지금은 탈북자단체가 보내는데 내용이 적절해서 좋습니다. 문제는 남한보수단체 사람들이 보내는 삐라내용인데 북한사람들이 보면 오히려 화만 나게 하고 오히려 역효과를 부를 수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탈북자들한테 자문 좀 받아서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MC: 남한 작가들이 북한 관련 문학작품을 집필할 때 "이것만큼은 이렇게 썼으면 좋겠다"하고 생각하시는게 있나요?

도명학: 네, 있습니다. 우선 북한을 소재로 작품을 쓰려면 북한사람을 외계인처럼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가장 외계인처럼 묘사할까, 어떻게 묘사해야 가장 부정적으로 느껴질지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조언을 하고 싶습니다. 북에 사는 사람도 그냥 남한사람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공산당사상에 세뇌당해 부모가 자식을 신고하고 자식이 부모를 신고하는 그런 악당들이 사는 사회가 아닙니다. 당국은 그러라고 하지만 누가 자기 부모 자기 자식과 일가친척을 신고합니까. 그런 사람이 있다면 정신이 돌거나 인간도 아니죠. 오히려 연좌제가 두려워 더 감싸고 감춰주는 세태입니다. 그러니 북한사람을 그릴 때 그냥 보편적 인간의 내면을 그리되 그들이 가진 사상과 이념이 어떻게 굴절돼 현실적으로 드러나는지를 보여주면 됩니다. 거리와 마을, 공장과 농촌 등 객관을 묘사할 때도 가난하고 낙후한 일면만 그릴 것이 아니라 어떤 곳은 현대적이게, 어떤 곳은 낙후하게 내용에 부합되는 모습으로 그리면 될 것을 괜한 고민을 하느라 노력을 낭비할 필요 없다고 봅니다.

MC: 남한에 오신지 꽤 되셨지만 아직도 북한 고향의 모습이 눈에 선할 것 같은데요. 선생님께서 기억하시는 고향, 이웃사람들은 어떤 모습인가요?

도명학: 고향이라는 말만 들어도 마음이 훈훈해집니다. 타향살이가 오랠수록 부엌 굴뚝에 솟아오르는 나무 타는 연기냄새, 낯익은 거리와 가로수들 벌거숭이가 된 민둥산조차도 다 그립니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보고 싶습니다. 투박해보여도 진실하고 말은 적어도 가식이 없고 정이 깊고 모르는 사이에도 스스로 말을 걸고 대화를 나누고, 참 좋은 사람들이죠. 현대문명이 인간성을 파괴하는 세계이고 보면 더욱 그리운 고향사람들입니다. 특히 친구들이 보고 싶습니다.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 것을 남자의 도리로 생각하는 남자들이죠. 언제 다시 보게 될지, 죽기 전에 볼 수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빨리 통일이 돼야죠.

MC: 북한에 대해 궁금해 하거나 또는 무조건 부정적으로 생각하시는 남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도명학: 북한에 대한 궁금증은 좋은 것이라고 봅니다. 한민족 한 동포가 사는 우리의 절반 땅이 북한인데 관심이 없으면 안 되죠. 북한에 대한 자료도 보고 탈북민들과 어울리고 하다보면 많이 알게 될 것입니다. 다만 그 궁금증이 궁금증으로만 그치지 말고 어떻게 하면 북한동포를 고통에서 구해줄 것인지를 생각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북한을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는 현상도 없어야 합니다. 그곳 정치체제가 나쁜 것이지 사람이 나쁘고 풍속이 나쁘고 산천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실은 정치체제 하나만 빼면 남한보다 더 빨리 발전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이 북한입니다. 소수의 지도층이 아니라 북한주민들을 위한 북한을 염원하기를 부탁합니다.

MC: 네, 선생님 오늘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도명학: 네 수고하셨습니다.

MC: 네, 오늘 남북문학기행은 여기까지입니다. 저희는 다음 주에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기자: 홍알벗, 에디터: 이진서, 웹담당: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