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북 주민에게 낯선 한국 전쟁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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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입니다. 저는 워싱턴의 홍알벗입니다. 오늘도 서울의 탈북 소설가 도명학 작가와 남북 문학작품에 대해 이야기 나눕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도명학: 네 안녕하십니까.

MC: 오늘 소개해 주실 작품은 어떤 건가요?

도명학: 오늘은 2011년 7월 20일 남한에서 개봉된 625전쟁 영화 '고지전'을 가지고 이야기 하려 합니다. 영화는 294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작품으로 6.25 전쟁 당시 여러 고지 전투를 뒤섞은 가상의 고지, 애록고지에서의 6.25 전쟁 마지막 전투를 담고 있는데 장훈 감독과 박상현 작가의 작품입니다.

MC: 제목만 들어봐도 뭔가 치열한 전투를 연상하게 되는데요. 그 배경은 어딘가요?

도명학: 강원도 철원 지역 백마고지나 화살머리고지를 의미하는 가상의 고지 애록고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실지로 백마고지, 화살머리 고지는 전쟁 마지막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것으로 기록 되어 있는 고지죠. 참고로 지리적 위치로 볼 때 북에서 351고지라고 부르는 고지가 남쪽에서 말하는 백마고지인 것 같습니다.

MC: 2012년에 개봉된 영화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반응은 어땠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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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고지전' 속 국군 장교 강은표(오른쪽)는 전쟁 초기 전사한 것으로 알았던 고향 친구 김수혁을 동부전선에서 재회합니다. 겁많던 친구는 이전과 많이 달라져 있습니다. / 연합, 쇼박스

도명학: 반응이 아주 좋았던 것 같습니다. 상으로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신인남우상을 수상한 것만 봐도 개봉 당시 반응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됩니다. 미국에서도 인기를 모았고 일본에서도 반응이 좋았다고 합니다. 다만 평가와 달리 흥행은 중박이었다고 하는데. 같은 시기에 개봉한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 2부와 퀵 등 경쟁작들이 쟁쟁해서 개봉 시기를 잘못 잡았다는 말도 있더군요. 아쉬운 부분이죠.

MC: 앞에서도 잠깐 언급을 허셨지만, 이 작품의 주요 배경이 되는 애록고지가 어떤 곳이고 왜 중요한 것인지 자세히 설명 좀 해 주시죠.

도명학: 애록고지는 6.25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화살머리고지와 백마고지를 모티브로 탄생한 가상의 장소입니다. 원래 백마고지는 알려지지 않은 지역이었지만 한국전쟁이 터지고 나서는 보급로 확보를 위해 반드시 사수해야 하는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남과 북 모두에게 결코 물러설 수 없는 고지여서 많은 피를 흘린 고지였습니다. 당시 중공군이 백마고지 위치적 중요성을 알고 열흘간에 거쳐 집요하게 이곳을 공격했던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중요한 고지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MC: 이 영화의 광고문구를 보면 '한국전쟁의 마지막 날, 기록되지 않은 그들의 마지막 전투'라고 이 영화를 소개하고 있는데요. 무슨 의미가 담겨져 있는 건가요?

도명학: 많은 의미를 함축해 표현한 광고문구라고 봅니다. 전쟁 3년간 치열한 전투가 얼마나 많았겠냐만 한국전쟁의 마지막 전투라고 할 때 평화가 동틀 무렵에 살아남아 평화를 누리게 될지, 아니면 주검이 될지 모를 전투를 치러야 했던 양측 군인들의 심리가 어떠했을지 너무도 짠하고 철학적인 숙연함마저 느껴집니다.

MC: 간단하게 전체적인 줄거리 부탁드립니다.

도명학: 영화는 한국군 방첩대원 강은표가 중대장 시신에서 아군인 국군의 총알이 발견된 동부전선 악어중대를 조사하기 위해 신임 중대장과 함께 전출되는 데 부분에서 시작됩니다.

강은표는 악어중대에서 이수혁 중위를 만나게 되는데 그는 전쟁 초기에 의정부 전투에 참전했다가 포로로 잡혀 헤어지게 된 친구였습니다. 수혁은 뺏고 뺏기는 애록고지를 향해 출정해 치열한 전투 끝에 고지를 재탈환합니다. 그런데 은표는 술에 취해있는 병사를 보게 되고, 이들은 모여앉아 북한군의 편지까지 읽고 있는 겁니다. 고지의 주인이 매번 바뀌면서 남쪽이 고향인 인민군이나 북쪽이 고향인 국군 사이에 서로 서신을 주고받고 있었고 담배나 술 등을 서로 놓아주며 교환하고 있었던 거죠.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애록고지의 국군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었지만 상부에서는 사수하라는 명령이 떨어집니다. 모두 죽으라는 말과 같은 명령에 부대원들은 혼란스러웠고 수혁은 권총을 뽑아 중대장을 죽이고 탈출 작전을 개시합니다. 수혁은 상관 살해, 적과 내통, 명령 불복종의 죄목으로 군사재판에 회부되겠지만 이것은 무사히 빠져나갔을 때에 따지고 볼 죄목이었습니다. 극소수만 살아남아 은표와 수혁의 다툼을 기다릴 틈도 없이 저격수 2초의 총알이 날아들어 국군은 또 한 명이 쓰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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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전선 애록고지에선 국군과 인민군이 뺏고 뺏기는 전투가 반복됩니다. /연합, 쇼박스 제공

어차피 모두는 살기 어렵다고 판단한 수혁은 사방으로 흩어지며 도망가게 했고 자신만 2초의 총알이 날아오는 방향으로 향하며 맞섭니다. 수많은 전우들을 죽인 2초를 이번에는 기필코 처리해야겠다는 다짐으로 2초를 잡아보려 하지만 수혁은 결국 2초의 총알에 최후를 맞습니다. 우리는 빨갱이와 싸우는 것이 아닌 전쟁과 싸우는 것이라는 신일영 대위의 대사와 함께 결국 마지막까지 목숨을 걸어야 하는 그들은 또다시 전장으로 내몰립니다. 모두가 죽은 애록고지에서 단 혼자 살아남은 은표는 허무한 표정으로 그곳을 바라보며 영화 '고지전'은 끝납니다.

MC: 영화내용을 보면, 전쟁과정이나 결과보다는 전쟁 중에 일어나는 등장인물들 간의 감정에 관한 장면이 더 많은것 같습니다. 문학적인 관점에서 이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도명학: 네, 전쟁물 영화가 자칫하면 전투 장면만 장황하게 나열되는 액션에 덮여 등장인물 개개인의 인간적 내면이 가려지거나 소홀히 취급될 수 있는 소지가 있는데, 이 영화는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깊이 있고 개성 있게 잘 그려냈다는 점이 작품성 제고를 크게 도모하고 있습니다.

MC: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인간관계를 이 영화는 어떻게 보여주고 있는지, 그리고 작가는, 또는 감독은 그런 면에서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궁금합니다.

도명학: 전쟁이라는 비인간적인 상황이 파괴하는 인간성, 한편으론 그것을 지켜내려는 본능, 다시 말하면 적아를 떠나서 인간이기에 서로가 느끼는 감정, 하지만 내가 살려면 너를 죽일 수밖에 없는 동물적 본능을 거스를 수 없고, 그것을 활용하는 이념과 이념의 결투가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특히 동족상잔으로 인한 갈등이 적군과 아군 간에는 물론 아군 내에까지 변형된 형태로 영향을 끼치는 모습을 통해 작가와 감독은 휴머니즘적 사고를 호소한 것 같습니다.

MC: 전쟁을 다룬 여러 문학작품에서 특히 고지전을 더 치열하게 묘사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고지'라는 것에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명학: 평지에 비해 지형상 높은 산 정상과 능선을 고지라고 하죠. 문자 그대로 높을 고, 땅 지 자죠. 전쟁에서 높은 위치를 차지해야 주변을 통제하기 유리하므로 고대로부터 고지를 선점하는 것은 기본적인 전술이었습니다. 높은 곳에 참호와 진지를 구축하고 기관총, 수류탄, 유탄발사기, 박격포, 대포 등 각종 화기를 날려대거나 후방 포병들에게 각종 포격들을 요청하면 밑에서 올라오는 공세를 손쉽게 감제하고 격퇴할 수 있습니다. 이런 중요성 때문에 전쟁에서 쌍방은 유리한 고지를 먼저 차지하기 위해 또는 그것을 빼앗으려고 치열한 싸움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MC: 북한 주민들이 이 영화를 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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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군 장교 현정윤은 개전 초기 "이 전쟁 일주일만에 끝난다"며 자신만만해 했지만 전쟁 막바지엔 무의미한 소모전을 펼치며 전쟁 목표마저 잊어버립니다. /연합, 쇼박스 제공

도명학: 북한에도 고지전을 소재로 한 전쟁영화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한국 영화와 달리 지나치게 이념 선전에 치우쳐 진솔하지 못한 것이 특징입니다. 전쟁을 너무 이상화하는 면이 강하죠. 북한 주민들이 이 영화를 보게 된다면 진짜 전쟁 모습을 담았다고 할 것 같고, 등장인물들의 말과 행동 인간관계를 보면서는 좀 낯설어 할 것 같은데, 다만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에 대해서는 공감하리라 봅니다. 그 생각을 함부로 발설하진 못해도 보편적인 인간 심리야 어디 가겠습니까.

MC: 6.25전쟁을 다룬 북한영화 중에도 등장인물의 심리와 인간관계 갈등 등을 중점적으로 다룬 영화가 있나요?

도명학: 네, 북한에 더 많습니다. 그렇게 만들려 시도한 역사도 더 오래구요. 영화든 소설이든 전쟁 작품에서 대포소리, 총소리에 인간이 가려지는 우를 범하지 말라고 하죠. 시나리오를 특수한 지위를 가진 문학작품으로 취급하는 것과도 관련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나리오 자체를 영화문학이라고 하니까요. 문학을 인간학이라고 정의하고 있고 전문 영화문학작가들이 시나리오를 쓰니까요. 감독이나 연출가가 영화문학을 쓰면 안 된다는 법은 없지만 쓰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그만큼 영화에서 액션보다 문학성을 더 중시하기 때문에 문학을 전공하지 않은 감독과 연출가가 시나리오를 잘 쓰기 쉽지 않습니다.

MC: 선생님께서는 이 영화를 어떻게 보셨는지요?

도명학: 참 신선한 느낌으로 봤습니다. 전쟁 작품 중에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이 영화만큼 뚜렷하고 독특하게 그려진 영화가 많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전투 장면에선 긴장도도 높고 박진감 있어 좋았습니다. 깊은 여운을 느낄 수 있었고, 특히 마지막에 전투 끝에 남북 양쪽에서 각각 혼자 살아남은 강은표 중위와 북한군 현정윤 대위가 나누는 대화가 명대사였습니다.

MC: 선생님 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도명학: 네, 수고하셨습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담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