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북한에 계신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입니다. 진행에 홍알벗입니다. 한국의 문학작품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눌 탈북 소설가 도명학 선생님 나오셨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도명학: 네, 안녕하십니까.
MC: 오늘은 어떤 작품을 소개해 주실 건가요?
도명학: 네, 오늘은 소설인데요. 한국의 소설가 이청준의 중편소설 "소문의 벽"을 가지고 이야기하려 합니다.
MC: 이 소설은 어떤 작품인가요? 간단하게 설명해 주시죠.
도명학: 네, 이 소설도 꽤 오래된 작품인데 1971년에 발표되었습니다. 소설은 삶의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자유가 허용되지 않는 현실적인 상황에서 작가가 글을 쓴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질문하고 있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소설가입니다. 주인공인 소설가는 억압된 상황과 작가의 사명감 사이에서 절망한 후, 정신적 병리현상을 겪고 있는 인물로 질문에 대한 일체 진술을 거부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소설은 이러한 주인공의 정신적인 병리 현상을 분석해 들어가면서 그러한 현상의 원인이 어디서 온 것인지를 분석해 찾아내는 이야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주인공의 의식 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6.25전쟁 당시의 충격에서 비롯된 공포증의 원인을 밝혀냅니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문제삼고 있는 것은 이 같은 병리적 현상의 심층적인 요인을 밝히는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러한 심층적인 요인에 의해 잠복되어 있던 증세가 왜 전쟁이 끝난 후에도 다시 나타나게 되었는가에 문제를 제기합니다.
작가 이청준은 언어의 진실성이 거부되는 전쟁의 극한상황을 그렸지만 사실 그것은 민주화 이전의 한국의 정치적 상황을 6.25전쟁 때 상황에 빗대어 비판하려 한다는 평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진실이 거부되고 거짓된 언어가 인간의 의식을 마비시키고 있는 당대적 상황, 표현의 자유가 차단되고 있는 닫힌 현실에서 볼 수 있는 사회병리적 현상을 인간의식의 병리현상을 통해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MC: 그럼 이번엔 작가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작품을 쓴 이청준은 어떤 사람인가요?
도명학: 이청준 작가는 1939년 전라남도 장흥군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나왔습니다. 1965년 잡지 '사상계' 신인 작품 모집에 단편소설 '퇴원'이 당선돼 문단에 나왔습니다. 1968년 《병신과 머저리》로 제12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계속해서 《소문의 벽》, 《등산기》 등을 발표해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갈등과 그 속에서 일어나는 심리적 고통을 묘사했습니다. 그의 작품 세계는 사물의 겉모습을 표현하기보다는 그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탐색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활발한 문학활동을 하다가 2006년 만 68세의 나이에 폐암으로 숨을 거뒀습니다. 제가 북한을 떠나 남한에 들어온 해가 2006년이니까 개인적으로 만나볼 기회는 없었죠.
MC: 이 작품의 줄거리는 어떻게 되나요?
도명학: 이 소설은 외화와 내화가 나누어져 있는 액자식 구성입니다. 외화는 1인칭 관찰자 시점을 보이고, 내화는 전지적 작가 시점을 취하고 있습니다. 보통 액자소설이라고 합니다만 일부 청취자분들에겐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문학 전문용어여서 죄송하긴 합니다. 좀 쉬운 말로 한다면 소설 속에 또 다른 소설을 품고 있는 형식이죠. 영화에서도 볼 수 있는 형식인데, 가령 어느 영화에서 장면들이 흘러가다가 어떤 계기에 등장인물이 지난날을 회상하는 장면이 아주 길게 나올 때가 있죠? 회상이 전체 내용의 거의 전부를 차지하는 경우도 있죠. 그것처럼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가 나오는 형식의 소설을 액자식 구성이라고 하죠.
소설 “소문의 벽” 줄거리는 대략 이렇습니다.
잡지사 편집장인 “나”는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던 도중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다며 도와달라고 간청하는 한 사내를 만나게 되고, 엉겁결에 그를 하숙방으로 데려온 나는 불을 끄고 잠을 청하였으나 어느새 사내에 의해 다시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불을 껐지만 다시 사내가 불을 켭니다. 그렇게 켰다 껐다 두세 번의 실랑이 끝에 잠이 들었던 “나”는 아침에 깨어나서 사내가 사라져버린 것을 발견합니다. 이상한 생각이 든 “나”는 집 가까운 곳에 있는 정신병원을 찾아갔다가 그 사내가 병원에서 도망친 환자 박준이라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랍니다. 담당 의사인 김 박사는 박준이 심한 히스테리의 일종인 진술공포증에 걸려 있다고 말합니다. 환자는 무엇으로부터인가 끊임없이 위협당하고 있다는 공포를 느끼고 진술을 거부한다는 거였습니다. 박준의 본명은 박준일로서 1, 2년 전만 해도 정력적으로 작품을 발표하던 소설가입니다. 이튿날 밤 다시 하숙집을 찾아온 박준을 정신병원에 데려다주고 난 “나”는 그가 어떻게 해서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가를 집요하게 추적합니다. 그러다가 박준이 쓴 소설 「괴상한 버릇」·「벌거벗은 사장님」, 그리고 제목이 붙어 있지 않은 중편소설 등을 읽게 됩니다. 그 소설 중에 박준이 그토록 두려워하던 전짓불의 실체가 나타납니다. 남해안의 조그만 포구가 고향인 박준은 6·25가 일어났던 해 가을, 밤중에 밀어닥쳐 전짓불을 들이대고 좌익이냐 우익이냐를 묻는 정체 모를 사내들에 대해서 그토록 공포감을 느꼈던 것입니다. 자초지종을 깨달은 “나”는 김 박사에게 찾아가서 이런 사정을 이야기합니다. 그러자 환자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만 하면 병이 치료될 것이라고 믿는 김 박사는 박준의 진술을 끌어내기 위한 방법을 고심하며 포기하지 않는데, 끝내 김 박사는 박준의 병실 불을 끄고 전짓불을 들이대는 수단을 택하고 맙니다. 그날 밤 박준은 병실을 도망쳐 나가버립니다. “나”는 박준이 다시 “내” 앞에 나타날지 말지 회의감을 느끼며 길을 걷다가 김 박사나 “내”가 박준의 병세 악화에 박차를 가했다는 생각으로 괴로워하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됩니다.
MC: 이 작품을 읽으시고 나서 어떤 느낌을 받으셨나요?

도명학: 작가라는 존재의 특별한 고민에 대해 제가 북한에 있을 때부터 경험했는데 이 소설을 통해 다시금 확인하게 된 것 같습니다. 제가 북한에 있을 때 돈키호테 같은 사람, 정신이 좀 이상한 사람이라 말을 들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할 수 없으니 은연중 그것이 어떤 행동으로 나타났겠죠. 저는 이 소설을 보면서 등장인물 박준이 저와 비슷한 것 같더군요.
MC: 소설을 읽어보면 1970년대 남한이나 북한이나 지도자가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언론검열을 심하게 했던 모습들이 나오는데 말이죠. 그런 모습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도명학: 네, 작가가 실지로 하고 싶었던 말이 표현의 자유에 관한 갈망이었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남한이 민주화 되어 달라졌지만 옛날에는 북한처럼 언론검열 등으로 문인들과 언론인들이 뭔가 할 말이 있어도 못했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시간에도 이야기 한 것 같지만 북한에 비하면 많이 양호했죠. 그 정도만으로도 얼마나 불편을 느꼈으면 이런 소설이 나왔겠습니까. 그런데 북한은 이렇게 에둘러 비판하는 소설조차 나올 수 없으니 기가 막힌 일이죠.
MC: 특히 6.25전쟁 때 북한의 인민군이 불쑥 밤에 나타나 손전등을 비추며 좌익이냐 우익이냐를 물으며 협박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부분에서는 어떤 느낌을 받으셨습니까?
도명학: 역시 북한 현실을 생각했습니니다. 북한 보위부원들과 안전원들에게 손전등은 필수품이기도 하지만 일종의 악세사리 같은 물건입니다. 저도 야밤에 전지 불빛 세례를 많이 받았죠. 전지 불은 북한 공권력의 상징 같은 것이랄지, 아무튼 소설 "소문의 벽" 등장인물 박준처럼 살고 있는 것이 북한주민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MC: 특히, 낮에는 물론이고, 밤에까지 나타나 손전등을 들이대고 단속을 하는 바람에 주인공이 트라우마에 걸린 것으로 나오는데요. 이것이 나중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그리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느낌,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도명학: 네, 충분히 그런 경험이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저의 경우 아직도 가끔 꿈속에 북한이 나오는데 제가 손전등 불빛을 피해 몸을 숨기거나 줄행랑을 치는 꿈이 나옵니다.
MC: 결국 이러한 행동, 그러니까 주민들을 시도 때도 없이 감시하는 그런 조치들은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 아닌가요?
도명학: 당연한 인권침해죠. 그렇지만 북한주민들은 그것을 인권침해라고까지 생각하진 못합니다. 인권에 대한 상식과 기준 자체를 모르니까요. 그저 공권력이니까 그래야 하는 거구나 생각할 뿐이죠. 다만 인권이란 말 자체가 사치인 사회니까 그런 표현은 쓰지 않더라도 그것에 의한 공포, 두려움, 등에 대해선 누구나 불만입니다.
MC: 작품 속에 묘사된 독재자의 검열 내지 단속에 대해, 작가로써 어떤 느낌이 들고 또 어떤 바람과 기대를 갖고 계시나요?
도명학: 물론 작품 속에 독재자의 검열 같은 직접적 내용과 표현은 없습니다. 6.25전쟁 때 입은 상처와 트라우마 중 이런 사례도 있다, 하는 정도로 썼지만 말 뒤에 말이 있다고 그것을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당시 한국의 정치상황을 깨닫게 하려고 했을 겁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북한주민들이 이 소설을 읽어볼 수 있었으면 좋겠고, 읽고 나서 북한당국의 표현의 자유 말살의 실체가 얼마나 인간을 피폐하게 만드는지를 깨달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MC: 앞서 작가를 소개할 때, 소설가 이청준은 자신의 소설에서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갈등, 그리고 그로 인한 심리적 고통'을 많이 표현했다고 하는데, 이 소설 '소문의 새벽'에도 그런 장면이나 내용이 나오나요?
도명학: 검열에 걸릴 것을 감안해 직설적으로 그것을 말하는 장면은 없습니다, 그러나 작품 전반에 걸쳐 그 고통을 에둘러 담아냈다고 봅니다. 이 부분에서 작가의 특출한 재치가 느껴집니다. 누구든 무심코 읽다 보면 어느 한순간 머리를 툭 치는 생각이 들도록 쓴 소설이 "소문의 벽"라고 생각됩니다.
MC: 그런데 소설의 제목인 '소문의 새벽'은 무슨 뜻인가요?
도명학: 글쎄요. 저도 제목만 봐서는 바로 느낌이 들진 않더군요. 소문이랑 벽이 무슨 상관이지, 이렇게요. 하지만 어느 정도 읽어 내려가 보니 딱 알겠더군요. 이건 단순히 6.25 전쟁 이야기를 하려는 작품이 아니구나. 6.25전쟁은 지금 살고 있는 사회의 현주소를 에둘러 말하기 위한 것일 뿐이구나. 이런 느낌이 금방 들었습니다.
MC: 선생님께서 보시기에는 어느 부분이 가장 감동적이었나요? 왜 그랬나요?
도명학: 저는 가장 감동적인 부분이 의사가 박준의 트라우마를 치료해주려고 온갖 방법을 다 고민하던 끝에 박준의 트라우마가 솔직한 진술을 할 때 치유될 것으로 보고 일부러 야밤에 전짓불을 들고 연기를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아마 소설 속 내용이 아니고 실화였다면 참된 의사의 자질을 갖춘 의사라고 칭찬이 자자하지 않았을까 생각 됩니다.
MC: 네, 지금까지 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이었습니다.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도명학: 네 수고하셨습니다.
MC:끝까지 함께 해주신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기자: 홍알벗, 에디터: 이진서, 웹담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