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고난의 행군, “착하고 순진해서 다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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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북한에 계신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입니다. 진행에 홍알벗입니다.

오늘도 탈북 소설가 도명학 선생님과 함께 한국의 문학작품에 대해 이야기 나눕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도명학: 네, 안녕하십니까.

MC: 오늘은 어떤 작품을 갖고 나오셨나요?

도명학: 네, 오늘은 연극작품입니다. "사천의 선인"이라는 연극인데요. 작품을 통해 느껴지는 의미가 깊더라구요.

MC: 이 작품은 남한 작가의 것이 아닌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이걸 고르시게 된 건가요?

도명학: 네, 맞습니다. 이 작품이 한국 작품은 아닙니다. 독일의 극작가이자 시인인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대표 희곡입니다. 즉 독일작품이죠. 그렇지만 이 작품이 한국에서 한국 연극인들이 재연해 공연했습니다. 지난해 가을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 있는 극장에서 성황리에 공연됐는데 제가 지인의 소개로 관람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몇 개 본바 있는 다른 연극작품들에 비해 아주 감동적이고 예술적 측면에서도 완벽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비록 독일작가의 작품이지만 한국 연예인들이 정말 잘 형상해냈고, 한편 이 작품을 통해 북한 주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어서 골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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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바이에른 주 아우크스부르크에 위치한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생가. 브레히트는 반전과 비사회적인 가치를 담은 작품을 서술했던 시인이자 극작가이다. 아우크스부르크는 로마의 황제였던 아우구스투스의 일족이 세운 도시로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이다. /연합

MC: 이 작품을 처음 접하셨을 때의 느낌은 어땠나요?

도명학: 연극을 보는 내내 북한 생각이 났습니다. 1990년대 후반,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 대량 아사 때 착하고 순진한 사람 순서로 굶어 죽었다고 말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들이 과연 선하고 착해서 죽었을까, 그렇다면 그들은 왜 그렇게 선하고 착하게 죽을 정도의 성품을 가졌을까, 그리고 세상사가 가진 양면성과 인간이라면 어느 정도 겪을 수밖에 없는 자아분열, 누구나 가질 수밖에 없는 이중성 등등 한마디로 좀 철학적 고민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MC: 연극 <사천의 선인>이란 작품은 어떤 것인지 간략하게 설명해 주시죠.

도명학: 네, 이 작품은 1943년 독일의 취리히에서 처음 공연되었습니다. 제목 그대로 중국의 사천성을 배경으로 합니다. 착하게 살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사회의 모순과 인간성 파괴를 그리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현실에서 착함이란 무엇이 되어야 하는 가를 묻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엇이 정답인지는 알려주지 않습니다. 단지 무거운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그치죠. 답은 각자의 마음속에 따로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MC: 그렇다면 줄거리는 어떻게 되는지 설명해 주시죠

도명학: 네, 대략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무대가 밝아지면 두명의 신이 등장합니다. 더 이상 신을 믿지 않는 세상, 이를 응징하기 위해 신들이 지상으로 내려옵니다. 그들이 도착한 땅은 비가 그치지 않는 날들이 오래 계속되고 있는 중국의 사천 땅인데 세상 어느 곳보다 척박하고 가난한 곳입니다. 그곳에서 신들은 착한 사람을 찾아다닙니다. 만약 착한 사람을 찾지 못한다면 비는 그치지 않고 계속 쏟아질 것이고, 마침내 사람들은 죽고 세상은 물에 쓸려나갈 형국입니다. 신들은 물장수 왕과 만나 착한 사람을 알려달라고 합니다. 딱 한 명만 찾아도 좋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기독교 성경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신화, 전설, 만담에서 끊임없이 이야기되는 내용이죠. 신이 세상을 멸망시키려는 마지막 찰라, 멸망을 가까스로 멈추는 열쇠는 언제나 딱 "한명"이라고, 둘도 필요없다 이런 식이죠. 사천에 내려온 신들도 그 한명을 찾아 세상의 멸망을 멈추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그게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 겨우 좀 착해보이는 여인을 발견하는데 하필이면 몸 파는 여자입니다. 이름은 센테인데 신들이 몸을 파는 것은 안되는 일이라고 설득하자 오히려 항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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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극작가이자 시인인 베르톨트 브레히트. /연합

자기도 그러고 싶어 하는 짓이 아니다. 당장 집 월세를 내지 않으면 길바닥에 나앉아야 한다고. 신들은 고민한 끝에 돈이 얼마라도 있으면 이 여자가 착하게 살 수 있을지 모른다며 은화 천냥이라는 꽤 많은 돈을 건넵니다. 여자는 그 돈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작은 담배가게를 하려는데 시작부터 난항이 생깁니다. 원래 담배가게를 운영하던 부인은 이 여자 때문에 가게를 뺏긴 거라고 우깁니다. 여기에 가구를 빌려주고 돈 받는 목수가 비용을 터무니 없이 많이 요구하며 떼를 쓰고 건물주는 툭하면 월세를 올리겠다고 협박합니다. 또 부랑아들까지 가세합니다. 견디다 못한 여자는 마음을 고쳐 먹습니다. 이젠 돈이 있으므로 더 이상 자신이 불쌍한 창녀가 아니기에 변신합니다. 그리하여 자신을 희생하며 모든 것을 내주던 여자는 가공의 인물인 사촌 “슈이타”타로 변장하는데 착하기만 한 이전 모습과 달리 영리하고 실속을 차릴 줄 알며 단호합니다. 그는 선의에 기대 기생하던 부랑자들을 쫓아내고 가구 대여 비용을 터무니 없이 요구하는 목수를 혼냅니다. 돈이 없다며 담배 한 개비만 좀 달라던 사람에게도 돈을 받아냅니다. 그러다 어느 날 여자는 비행사가 될 수 없어 좌절해 자살하려던 양순이라는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다시 착한 모습으로 돌아온 거죠. 여자는 순수하게 남자를 돕습니다. 그러나 남자는 여자를 이용하려고만 합니다. 애정 없는 결혼은 좌절되고 거기에 시어머니까지 가세해 착취하려고 덤빕니다. 거기다 임신까지 하자 여자는 태어날 아이를 구하려는 생각에 다시 가공의 인물 “슈이타”로 변장합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구애하는 부자 이발사 슈프의 재산과 가난한 사람들의 노동력을 이용하여 담배 공장을 차립니다. 이렇게 되자 부랑아였거나 가난뱅이들은 자기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생계를 보장해주는 슈이타를 칭송합니다. 그렇지만 그것도 한동안이고, 슈이타가 더 많은 사람들을 구제하겠다고 공장을 확장하면서 자금난으로 임금이 밀리자 순식간에 원망과 분노로 바뀝니다. 설상가상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풀기만 하던 센테가 오래동안 보이지 않자 사람들은 슈이타가 공장을 뻿으려고 사촌 여동생을 죽였다는 혐의를 뒤집어씌워 고발하기까지 합니다. 결국 여자는 신들이 재판관으로 나온 법정에 섭니다. 그곳에서 슈이타는 자신이 센테와 같은 인물이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착하게 살아가는 게 힘들다며 재판을 거부하고 떠납니다. 신들은 재판을 판결하지 못하고 세상을 위한 어떤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합니다. 신들은 돈이 더 있으면 더 잘 살아볼 수 있겠느냐고 소리치며 돈을 마구 퍼서 뿌려대고 신들이 뿌려대는 돈다발이 속절없이 흩어지며 연극은 막을 내립니다.

MC: 이 연극을 끝까지 보시고 난 뒤의 느낌은 어떠셨는지요?

도명학: 네. 작품이 주는 메시지가 고민에 빠지게 하더군요. 착하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사람들은 누구나 착함과 선함을 좋아하면서도 그렇게 살면 바보 취급 받을 것 같고 이용만 당할 것 같아 늘 타인을 경계하는 성향이 있는데, 그러한 불신이 세상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세상은 선한 세상이 될 수 있을까. 될수 없다면 우리 모두가 악하게 살아야 한다는 건데, 그건 그것대로 법정에 서는 일이 될 것이고, 저 역시 질문에 질문을 던지는 것밖엔 할 수 있는 일이 없구나 하는 회의감이 들더군요. 이런 점에선 이 작품이 좀 세상에 대한 너무 허무하고 비관적인 느낌을 주는데, 글쎄요. 비판은 일리 있지만 그래도 저는 아직 세상에 희망이 있다고 봅니다. 주의 깊게 세상을 살펴보면 막대한 재부를 가졌어도 사회에 환원하는 갑부들도 꽤 있고, 또 남을 위해 헌신한 훈훈한 이야기들도 많지 않습니까. 어차피 선과 악이 공존하는 것이 세상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선이 없으면 악함을 이야기 할 수 없을 것이고 악함이 없으면 선이 따로 구분되겠습니까. 동전의 양면 같은 세상이죠. 밝은 달도 뒷면은 어둡지 않습니까. 그래도 달을 이중적이라고 박살 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듯 세상도 그렇게 굴러가면서 점점 더 좋은 방향으로 진화하는 거겠죠.

MC: 그런데, 이 작품이 북한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 건가요?

도명학: 제가 이 작품을 보면서 북한 생각이 든 것은 북한사람들이야말로 가장 이중적인 삶을 살지 않나 하는 거였습니다. 북한 주민들 마음속은 전체적으로 볼 때 착하고 순박합니다. 그럼에도 자기들끼리 잡아먹을 내기를 한다고 할 정도로 굉장히 싸우고 경직된 얼굴로 남을 대하기 일쑵니다. 눈에 힘을 주고 목에 힘을 주고 살지 않으면 피해를 당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 모습만 봐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죠. 하지만 진심이 통하게 되면 북한사람들처럼 화끈하고 인정 많고 예의 밝은 사람이 세계적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진심이 통하면 의리를 지켜 목숨도 내놓을 정도로 진실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워 결사생존을 해야 해서 두 얼굴로 살아가는 요령을 터득한 것 뿐이죠.

MC: 이 연극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도명학: 세상에 처음부터 악한 사람도 없고, 처음부터 선한 사람도 없으며, 환경과 조건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일 뿐이니 사람에 대한 경솔한 판단으로 누군가를 나쁜 사람, 악당이라고 규정짓는 실수를 하지 말아야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천사와 악마가 공존하면서 서로 다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천사가 이길 수 있는 환경과 조건에선 천사의 모습으로 살 것이고 악마가 이길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이 조성되면 악당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김정은을 악당이라고 하는 것도 사실 그가 태어나기를 악당으로 태어나 그렇다기보다 그가 김일성, 김정일의 핏줄로 태어나 독재권력을 승계하게끔 되어 있는 처지고 보니 악한 행위를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북한이 개혁개방을 하고 국제사회의 정상적 일원으로 거듭나야 경제발전과 사회 정상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뻔히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왜 못하겠습니까. 그걸 하게 되면 인민들은 잘살게 되겠지만 자신은 죽을 것임을 알기에 하고 싶어도 못하는 거죠. 살아남을 길은 계속 악한 짓을 하는 수밖에 없는 체제를 만들어놓은 선대의 업보를 승계한 것이 김정은의 불우한 처지라 할 수 있습니다.

MC: 북한 주민들이 이 작품을 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도명학: 아마도 북한사람들이 이 작품을 본다면 위로를 받을 것 같습니다. 왜냐면 생존을 위해선 도둑질도 하고 거짓말도 하고 뇌물도 받아내고 순진한 사람 것을 구슬려 챙기고 하는 등 수단과 방법 가릴 처지가 아니기에 비행을 많이 저지르며 삽니다. 비행을 저지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사회 환경을 북한주민들도 원망하고 있습니다. 북한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 "내가 원래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란다. 먹고 살자니 그런 거지. 세월이 사람을 자꾸 나쁜 사람 만드는 걸 낸들 어쩌라고" 이런 식입니다. 그러니 북한주민들 입장에서 이 연극은 일종의 카다르시스를 느끼게 할 수 있는 작품이 될 것입니다.

MC: 끝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해주시죠.

도명학: 궁극적으로 선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자면 사회체제가 어떻게 되어있는 지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어느 체제나 악은 다 있죠. 다만 자본주의를 악으로 보고 사회주의 혁명을 한 나라들이 오히려 자본주의보다 더 악한 사회가 되고 만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중에도 북한만큼 악이 판치는 나라는 없죠. 저는 북한이 사회주의를 버릴 용기까진 없더라도 최소한 중국만큼이라도 되었으면 합니다.

MC: 네, 도명학 선생님과 함께 한 남북문학기행, 오늘 순서는 여기까집니다. 선생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도명학: 네, 수고하셨습니다.

MC: 저희는 다음 주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함께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액트: 공연 장면 / 출처: 유튜브 채널 ‘Uncle Mapo’, 단국대 극예술연구회 공연 중>

기자: 홍알벗, 에디터: 이진서, 웹담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