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북한에 계신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입니다. 진행에 홍알벗입니다. 탈북 소설가 도명학 선생님과 함께 남북한 문학작품에 대해 이야기 나눕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도명학 : 네, 안녕하십니까.
MC: 네 선생님. 오늘은 북한 소설을 갖고 나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작품인가요?
도명학 : 네 오늘 소개할 작품은 북한 작가 남대현의 장편소설 "청춘송가"입니다.
MC: 남북문학기행에서 북한 작품을 소개해 드리는 건 처음인데요. 이 작품을 고르신 이유가 있다면 무었일까요?
도명학 : 남한에서 출판된 첫 북한 작품이기도 하고, 꽤 인기가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남북한에 다 알려진 이 작품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MC: 이 작품은 북한 현대소설을 대표하는 남대현 작가의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도명학 선생님께서도 북한에 계셨을 때 가까이에서 남 작가를 접할 기회가 있으셨을거 같은데 어떻습니까?
도명학 : 남대현 작가와 개인적인 친분은 없습니다. 남대현 작가의 존재 자체를 인지하게 된 것이 1987년 장편소설 "청춘송가"가 나온 후였습니다. 당시로선 소설이 상당히 파격적인 주제와 구성, 깊은 묘사 등으로 주목을 받았는데, 저도 그 소설을 읽고 나서 남대현 작가를 동경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제 나이가 아직 20대 초반이었고 한창 작가 수업을 받는 문학지망생에 불과했고, 그분과는 나이 차이도 크고 사는 곳도 다르니 만날 기회가 없었습니다. 썩 훗날 제가 작가가 된 후에는 얼굴 좀 봤지만 회의나 행사장 같은 곳이었지 개별적으로 가까이 지낼 기회는 없었습니다. 더구나 제가 지방에 살고, 또 제가 작가가 된 후부턴 대량아사가 한창 빚어질 때라서 문단도 활기를 잃었고 작가들도 생활고 때문에 두문불출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더욱 기회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남대현 작가에 대한 호감이 컸던 만큼 그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알기론 남대현 작가는 원래 남한에서 태어났습니다. 경상도 어딘가가 고향이고 어린 나이에 어머니와 함께 일본에 건너가 살다가 조총련 동포 북송사업이 한창일 때 북한에 갔습니다. 말하자면 남한출신이면서 재일동포 출신인 거죠. 또 북한에서 살았으니 남대현 작가야말로 남한, 북한, 일본을 모두 경험한 인물이죠. 북한에서 김일성종합대학을 나왔고 황해제철소에 한동안 있었다고 하는데 무슨 일을 했는지는 모르겠고, 훗날 문예출판사 기자로 근무하면서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해 1980년 조선노동당 6차대회 기념 전국군중문학작품현상모집에 응모해 작품이 당선되면서 문단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남한출신이라서 그랬는지 당선작품도 광주 5.18을 내용으로 한, 제목이 “광주의 새벽”라는 단편소설이었습니다. 그 무렵 제가 열대여섯살 되었던 것 같은 데 그 작품을 감명 깊게 봤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그때까지 작품은 기억해도 작가 이름은 기억 못했는데 1987년 장편소설 ‘청춘송가’가 발표돼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도대체 이렇게 멋진 작품을 쓴 작가는 대체 어떤 인물이지? 하고 찾아봤더니 다름 아닌 “광주의 새벽”을 쓴 작가인 것을 알게 됐습니다. 아마 그분 연세가 80세 전후일 것 같은 데 생존 여부는 모르겠습니다. 북한 남자들 80까지 살면 굉장히 장수했다고 일러주는 정도이니 말입니다. 그가 1990년에 있었던 범민족대회에도 참석한 적 있습니다. 탈북자들이 통일을 간절히 바라듯 남쪽이 고향인 그도 통일을 그리는 마음은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MC: 이 작품이 북한에서 발표된 1987년 이듬해인 1988년에 남한에도 소개가 되면서 화제가 됐었는데요. 이 작품이 남한에서도 주목을 받고 인기를 얻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도명학 : 우선 북한 작품을 남한에서 볼수 있게 됐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고 호기심을 키웠을 것입니다. 거기다 1988년이면 6월민주항쟁과 6.29선언이 있은 지 얼마 안 된 시기죠. 이전에는 북한 출판물을 접한다는 것 자체가 위험한 행동이었을 텐데 세상이 좀 달라졌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거기다 "청춘송가" 자체가 북한의 기존 작품들과 많이 달랐습니다. 북한에서도 저는 이 소설을 보면서 든 생각이 이 소설이 거의 연애소설이나 같네 하는 생각을 했었으니까요. 청춘송가 이전에는 연애소설 비슷한 소설을 보지 못했습니다. 순순한 사랑만을 내용으로 한 연애소설은 창작하면 안되고, 사랑관계를 설정하는 경우에도 은유적 방식으로 해야 하는데 청춘송가는 완전히 대담한 시도를 했던 것입니다. 물론 청춘송가의 주인공들 사랑도 당과 혁명과 국가를 위한 헌신 속에서의 사랑이지 순수한 사랑을 그린 것이 아니죠. 그렇지만 그 정도라도 당시는 상당히 파격적이었습니다. 또 등장인물들의 내면세계를 파고드는 깊은 심리묘사도 파격적인 시도였습니다. 북한 작품에서 심리묘사를 서툴게 깊이 파고들었다가는 자칫 부르주아적 감성 표현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청춘송가에서는 상당히 세련된 수준으로 심리묘사를 깊이 있게 했습니다. 아마 남한 독자들 눈에 이런 점이 신기했을 것 같습니다. 왜냐면 당시까지 반공교육을 통해 북한에 대해 가진 편견으로 북에서는 연애도 하면 안되고 결혼도 국가 지시로 해야 하는 경직된 사회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청춘송가를 통해 본 북한을 보고 아 그곳도 피가 있고 열이 있고 감정이 있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저의 추상적 견해일 수도 있습니다만 적어도 당시 이 작품을 접했던 몇 사람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들의 생각도 그랬더군요.
MC: 이 작품은 북한 젊은이들의 일과 사랑을 다룬 것이어서 기존의 북한 문학작품들과 비교하면 다른 점들이 많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쓴 남대현 작가 또한 소설을 쓰면서 북한 당국이, 문학작품 속에 녹여 넣으라고 강조하는 것들을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도명학 : 맞습니다. 아마 남대현 작가는 이 소설을 쓰면서 어쩌면 자신이 모험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얼마나 고심이 깊었겠습니까. 그럼에도 높은 기교로 성공시켰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북한작가들이 정말 힘듭니다. 저는 남한에 와서 1년 혹은 반년에 장편소설 하나 뚝딱 써내는 소설가들을 보고 놀랐습니다. 북한작가들은 1년에 장편소설 한권 내는 정도면 천재 중의 천재입니다. 빨라야 2년은 걸립니다. 한권 쓰는데 8년을 고생하고 그 여파로 간복수로 사망한 소설가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북한작가들이 하는 말이 '조선문학이 세계에서 가장 힘들다'입니다.
MC: 이 작품은, 북한의 대학생 출신의 제철소 기사인 리진호가, 중유를 대신할 대체연료를 개발하기까지의 악전고투를 벌이는 가운데, 연인인 현옥과의 우여곡절 사랑과 포개놓은 이야기인데요. 주인공 커플만이 아니라 진호의 직장 내 경쟁자인 기철과 그의 연인인 정아, 그리고 진호의 든든한 친구인 태수 부부 등 80년대 북한 젊은이들의 일과 사랑을 밝고 경쾌한 문체로 그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죠. 그런데, 당시 북한 사회가 연애를 주요 소재로 한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있을만한 분위기였나요?
도명학 : 그런 분위기였던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당시 북한에 간 신상옥 감독이 한창 연애장면이 나오는 영화들을 연속 만들어내고 있을 때라 그 영향이 좀 있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그러고보니 그때부터 북한 영화와 소설들이 좀 대담해지긴 했던 것 같습니다.
MC: 이 작품은 한국에서 소개될 당시 2권의 책으로 출판될만큼 분량이 꽤 많았는데요. 줄거리 좀 설명해 주시죠.
도명학 : 네, 작품 분량이 많긴 합니다. 그런데 북한 소설이 남한 소설보다 대개 더 분량이 많습니다. 남한에 경장편이라는 좀 짧은 장편소설이 있던데 북한 중편소설보다 조금 더 길더군요. 북한은 중편소설도 단행본으로 출판할 정도로 분량이 많습니다. 그러니 장편소설 분량도 남한보다 더 두툼합니다.

소설 “청춘송가”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습니다. 주인공인 리진호는 제철소 강철직장 기사인데, 그는 제철소에서 쓰이는 중유를 대신할 대체연료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직접 제철소에서 일할 것을 결심하고 갑니다. 진호는 대학에서 한때 아이스하키 선수생활도 지낸 진취적이고 적극적일 정도로 패기만만한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그러나 대학에서 열공학을 전공한 그는 연구소에서 대체연료에 대한 연구에 헌신적으로 몰두하지만 실패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현장경험을 통해 미비한 점을 보완하여 대체연료 연구를 기어이 이루어 내고야 말리라 다짐합니다. 그의 대학동창생이면서 애인인 현옥이 또한 진호를 도우려고 함께 현장으로 떠납니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에게 진호의 행동은 무모하고 무책임한 것으로 비춰지는데, 진호는 강철직장 생활을 통해 많은 경험을 쌓아 나가는 한편 대체연료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합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진호를 못 미더워 하며 그가 하는 대체연료 연구를 비현실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현옥의 오빠이면서 연구소의 금속공업부 실장인 명식은 그를 이중인격자로 보고 누이에게 그를 경계하라고 타이르기까지 합니다. 그래도 진호는 연구를 단념하지 않고 마침내는 용광로의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용광로 속에 들어가다가 화상을 입게 됩니다. 이런 소동이 벌어진 얼마 뒤에는 책임자의 허가 없이 연료를 실험하던 도중 폭발이 일어나 더 큰 소동을 일으키게 됩니다. 여기서 주인공 진호는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며 조금씩 자신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의 동료기사 윤정아가 진호의 연구일지를 우연히 보게 되고 그 실현 가능성을 발견합니다. 윤정아가 진호의 네권짜리 연구일지를 상세히 검토한 결과 새 연료개발안이 과학성과 기술적 가능성을 지닌 작업이란 걸 알아차립니다. 그리하여 윤정아는 지친 진호를 도와 연구를 계속해 나갑니다. 윤정아를 비롯한 그의 대학시절 단짝 친구들은 제철소에서 떠났는데 여전히 남아 있었던 동료 태수는 이해와 격려로서 진호의 연구를 다시 시작하게 합니다. 이 과정에서 애인 현옥과는 틈이 생기고 자존심 때문에 서로 화해 하지 못합니다. 윤정아는 두 사람을 화해시키고자 현옥을 설득하기 위해 나섭니다.
그리하여 윤정아의 설득으로 현옥은 진호를 이해하게 되고 대체연료를 가동시키는 축열실 도면작성에 몰두합니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도 차츰 진호의 연구에 관심을 기울이고 제철소 당위원회는 실험을 공식적으로 허락하기에 이릅니다. 마침내 실험은 성공하고 그 뒤 휴일 날 야유회에서 모두 흥겹게 하루를 지냅니다. 그리고 진호의 연구를 반대했던 현옥의 오빠 명식과 정아의 애인 기철은 무사안일주의로 인해 심의회 석상에서 호된 비판을 받습니다. 대체연료 개발계획은 결실을 맺게 된 진호는 열흘 동안 특별 휴가를 부여받고. 평양행 여객선을 타기 위해 부두로 가는 중에 그동안의 일들을 회상하고 감격하는 장면에서 소설이 끝납니다.
MC: 아무래도 작품 속에서 묘사된 북한 젊은이들과, 선생님께서 한국에 오셔서 본 남한 젊은이들의 연애생활은 크게 다르게 느껴졌을거라 생각이 드는데요. 남한 젊은이들의 애정 및 연애 모습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뭐가 많이 다르던가요?
도명학 : 감정을 과감하게 표현하고, 한마디로 좀 쿨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너무 쉽게 만나고 헤어지는 것 같은데 그건 좋아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혼율도 높아지죠. 성문화가 서구화되어가는 것 같은데 서구화 된다고 무엇인든 다 선진적이고 좋은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의 것도 좋은 것은 지켜야죠. 지하철이나 버스 등 공공장소에서 지나친 애정행각을 보이는 젊은이들도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될 때가 있는데 한국인의 고유한 미풍양속이 이렇게까지 난잡해져서야 되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MC: 이렇게 남한과 북한에서 같이 인기를 누린 작품은 보기 드문 경우인거 같은데 말이죠. 앞으로 남북한 문학이 같이 발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도명학 : 남북이 문화예술교류를 활발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북한 문학이 정치적이고 선전 목적이라서 남북이 문화예술작품을 개방할 경우 남한에 부작용이 있을 것 같긴 합니다. 하지만 북한에 남한 작품이 들어가면 북한 사람들이 남한 작품만 보겠다고 할 것입니다. 정치적으로 남한보다는 북한이 엄청난 손실이죠. 김정은 정권이 바보가 아닌 이상 남북한 작품 개방에 동의할리 없습니다. 그럼에도 못이 틈이 있어 들어가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부단히 노력하다보면 틈이 생기고 점점 그 틈이 넓어지게 되리라 봅니다.
MC: 네, 도명학 선생님과 함께 한 남북문학기행, 오늘 순서는 여기까집니다. 선생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도명학 : 네 수고하셨습니다.
MC: 저희는 다음 주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함께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기자: 홍알벗, 에디터: 이진서, 웹담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