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남북문학기행의 진행을 맡은 홍알벗입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6월은 지난 1950년에 한국전쟁이 발발했던 달입니다. 앞으로 6월 한달동안 탈북자 출신 소설가 도명학 선생님과 함께 한국전쟁과 남북한 문학에 관해 이야기 나눕니다.
MC: 선생님, 안녕하세요. 한주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도명학: 네, 안녕하십니까. 저는 잘 지냈습니다.
MC: 앞서 언급했습니다만. 이번 달은 한국전쟁이 발발했던 달로, 한반도 역사에 있어 아주 의미있는 달인 것 같습니다. 한국에 오셔서 한국전쟁과 관련된 내용의 책을 일거 보셨을텐데요. 한국 문학작품에서 묘사하는 한국전쟁,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도명학: 한국전쟁에 관한 작품은 북한에도 있고 남한에도 있는데, 남한작품이 더 진솔하게 창작된 것 같습니다. 북한에서는 전쟁물을 창작할 때 작가가 전쟁에 대한 혁명적 관점을 가지고 쓸 것을 요구합니다. 독자가 작품을 읽고 전쟁을 겁내도록 써선 안 됩니다. 인민의 자유와 해방을 위한,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을 위한 정의의 전쟁에 한목숨 서슴없이 바쳐 싸우겠다는 의지를 독려하도록 써야 합니다. 그렇다고 전쟁을 신나는 놀이처럼 여기게 써도 안 됩니다.
MC: 얘기만 들어서는 어떻게 쓰라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는데요. 남한 작품이 북한작품과 무엇이 어떻게 다르다는 말씀이신가요?
도명학: 참혹하고 힘들고 처절한 전쟁 상황을 보여주되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써야 하는데, 쉽지만은 않죠. 남한작품은 다릅니다. 전쟁물을 읽고 나면 전쟁이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 특히 동족상잔이 얼마나 비극인지를 느끼게 됩니다. 대부분 작품이 전쟁의 참상을 통한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내용입니다.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진정한 평화는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지켜질 수 있는데, 그걸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많지 않아 아쉽습니다.
MC: 남한에 와서, 한국전쟁은 북한이 6월 25일 일요일 새벽에 남한으로 치고 내려와 시작된 것이다란 사실에 대해 자세한 내용을 알았을 때, 그것이 북한에서 교육받던 것과 달라 작가로서 받아들이기 힘들지 않았습니까? 어떠셨나요?
도명학: 저의 경우 전쟁을 북에서 먼저 일으켰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남한에 왔기 때문에 충격 받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북에서 몰래 들었던 남한방송 덕이죠. 그러니 충격은 남한에 와서가 아니라 북에서 이미 받았죠. 북한이 먼저 남침을 감행했다는 사실을 라디오로 처음 들었을 때 저는 거짓방송을 한다고 치부해버렸습니다. 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습니다. 6.25 개전 초기부터 참가했던 노병들을 만나면 슬그머니 물어도 봤는데 맞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남한에 온 후 6.25전쟁에 관한 자료들과 책들을 통해 더 상세한 내용들을 알게 됐는데, 남한에 이렇게 진실을 알 수 있는 자료들이 있음에도 북한의 남침사실을 부인하며 오히려 미국이 6.25전쟁을 일으키도록 조종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MC: 선생님께서 한국전쟁을 다룬 남한의 작품을 읽어보시고,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 어떤게 있을까요?
도명학: 여러 작품을 읽어봤는데 제목과 내용을 다 기억하진 못합니다. 그럼에도 저에게 특별히 각인된 작품을 꼽으라면 소설 "산불", 그리고 "장마" 등입니다. "산불"은 전쟁이 일어난 후 마을에 인민군과 국군이 번갈아가며 차지하게 되는 과정에 마을 남자들이 이래저래 다 죽고 여자들만 남아 겨우 살아가는 이야깁니다. 특이한 캐릭터는 사월이라는 여자인데 그 와중에도 남자를 그리워하며 자식도 돌보지 않습니다. "장마" 역시 인상적이었는데 한집안에서 국군과 공산당으로 나뉘어 다투다가 나중에 화해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나온 지 꽤 오래된 작품들인데, 왜서인지 오래 된 작품들이 더 마음에 와 닿고 기억에도 남습니다. 아마 휴전된 지 오래 됐으니까 지금 창작된 작품보다는 실지 전쟁을 직접 체험한 세대의 작가들이 쓴 작품이 더 진솔하게 와 닿는 것 같습니다.
MC: 한국전쟁에 대해 선생님께서 직접 소설을 쓰신다면 무엇에 중점을 두고 어떻게 전개해 나가고 싶으신가요?
도명학: 제가 아직 전쟁 작품은 써본 적 없지만 앞으로는 쓸 생각입니다. 전쟁을 겪은 세대가 아닌 만큼 얼마나 진솔하게 그려낼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만약 쓴다면 앞에서도 말씀 드렸지만 전쟁의 참혹함과 평화의 소중함과 함께 전쟁을 두려워해선 진정한 평화를 지킬 수 없다는 이치를 신세대가 깨닫도록 하는 작품을 쓸 것입니다. 현재의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도 보여주다시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나약하고 만만하게 봤기 때문에 침공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우크라이나가 예상외로 강력하게 저항해 러시아군이 장기전의 늪에 빠져든 것 같습니다만, 러시아가 감히 침공할 엄두를 내지 못하도록 미리미리 전쟁에 대비했더라면 애초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게 진짜평화가 아니겠습니까. 물론 이제라도 평화를 얻을 방법은 있습니다. 우크라이나가 항복하면 전쟁이 끝나겠죠. 하지만 그건 가짜평화지 진짜 평화가 아니죠.
MC: 한국전쟁도 이제 사람들 사이에서 잊혀져가는 전쟁이란 말까지 돌고 있습니다. 문학가의 입장에서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도명학: 휴전된 지 올해로 69년이나 되니 잊혀져가는 전쟁이라는 말이 나올 만도 하죠. 전쟁을 겪어본 세대들 나이가 고령이고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니 전쟁을 영화나 책으로만 경험한 신세대는 전쟁에 대한 현실감각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지나간 옛이야기로만 여기고 당면한 현재 사안에 묻혀 삽니다. 앞으로 시간이 갈수록 더 그렇겠죠. 굳이 문학가의 입장에서 말씀드린다면 전쟁도 사람이 하는 행위이고, 또 인간은 망각하는 존재라는 말도 있는 만큼 잊혀져가는 전쟁이라는 표현도 틀린 말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렇게 계속 잊혀져가다가 전쟁이란 단어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 인류가 이뤄야 할 바람직한 미래상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하지만 위험한 것은 아직 세상이 전쟁을 의식하고 살지 않아도 될 만큼 평화롭지 않다는 것을 망각하는 것입니다. 또 과거를 잊어버린 민족은 미래가 없다는 말도 있죠. 저는 우리 민족도 평화를 지키려면 6.25를 절대 잊으면 안 된다고 봅니다.
MC: 보통 전쟁을 치르고 나면 세계적인 작품이 나오는데 한국 전쟁은 여러 가지 이유로 해서 문학작품이 많이 나오고 있지 않은데 무엇이 문제라고 보십니까?
도명학: 한국전쟁을 취급한 소설과 영화는 북한에 남한보다 많은 것 같습니다. 남한도 오래 전엔 꽤 많이 나왔는데 현재에 가까울수록 적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 역시 현재와 가까울수록 전쟁물이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핵무기개발과 미사일발사를 빈번하게 감행하고 기회만 있으면 도발을 일삼는 북한임에도 그렇습니다. 그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니만큼 전쟁경험이 없는 신세대 작가들이 문단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어 그런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한국 전쟁을 취급한 작품 중에 세계적인 작품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작품성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아서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 소견이지만 한국전쟁 관련 작품이 세계적인 작품으로 떠오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각광 받으려면 미소냉전이 절정에 달하던 시기에 더 가능했을 텐데 그 시기는 이미 지난지 오랩니다. 혹은 6.25가 2차 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일어난 것으로 해 2차 대전을 취급한 작품들이 한창 쏟아져 나와 주목을 독차지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 그 그늘에 가려진 탓도 있지 않았을까싶습니다. 분명 어떤 이유가 있겠으나 저로선 이
정도로밖에 짐작할 수 없네요.
MC: 네 잘 알겠습니다. 선생님, 오늘도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도명학: 네,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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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도명학 선생님께서 남한에 와서 읽으셨다는 소설 두권 ‘산불’과 ‘장마’. 이들이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기에 도명학 선생님의 머리에 각인이 됐는지 함께 살펴 보겠습니다.
먼저 산불의 줄거리를 보겠습니다.
<소백산맥의 어느 산골 마을에 사는 이장 양 씨와 과부 최 씨는 항상 싸우기만 한다. 각 집안에는 과부가 된 며느리와 딸이 있었는데, 양 씨의 며느리 점례와 최 씨의 딸 사월이었다. 6.25전쟁이 한참이었던 어느 날 밤, 공비의 소굴에서 탈출한 전직 교사 규복이 추위와 허기를 못 이겨 점례의 집 부엌으로 숨어든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그를 대밭에 숨겨 주고 음식으로 허기를 달래준다. 그 생활이 계속되자, 차츰 두 사람 사이엔 사랑의 감정이 싹튼다. 어느날, 규복과 점례가 밀회하는 장면을 사월이 우연히 보게 되고, 사월은 점례에게 자기도 규복을 돕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월은 규복을 통해 자신의 욕정을 채우게 된다. 결국 그녀는 임신을 하게 되고 점례는 사월에게 규복과 함께 이 고장을 떠나라고 권한다. 얼마 후 공비 토벌 작전이 시작된다. 양 씨 소유인 대밭에도 불을 질러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양 씨는 조상 대대로 전해진 대밭을 불사르는 데 완강히 반대한다. 점례는 규복에 관한 비밀 때문에 국군에게 사정사정하지만 결국 대밭에 불을 지르게 된다. 규복은 대밭에서 뛰쳐 나오다 국군의 총에 맞아 죽고 사월도 양잿물을 마시고 죽고 만다.>
사실 이 ’산불’은 1963년 <현대문학>에 발표된 극작가 차범석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희곡입니다. 이 작품은 민족 분단과 이념간의 갈등을 객관적인 시각에서 보고 있으며, 6.25전쟁으로 인해 희망을 상실해버린 한 젊은이와 그를 둘러싼 애착과 욕심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는 평입니다. 분단과 전쟁의 비극을 한 마을에 축약시킨 이 작품의 성격은 비극적이고, 사실적이며 고발적이며, 탈출 공비와 산골 여인들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작가 윤흥길이 1973년에 발표한 중편소설 ‘장마’는 또 어떤 내용인지 함께 보실까요?
<때는 1950년대 초. '김동만'은 친가 식구들과 같이 살았는데 6.25 전쟁으로 주인공의 외가 식구들이 주인공의 집으로 피난을 온다. 사돈댁에 신세를 지는 외할머니와 도움을 베푸는 입장인 친할머니는, 각각 아들들이 남한 국군 소위와 빨치산이 되어 서로 적대하는 상황에 있음에도, 처음에는 큰 말다툼 없이 잘 지낸다.
처음에는 친삼촌과 외삼촌은 매우 사이가 좋았다 . 외삼촌은 서울에서 고등교육을 마친 엘리트였기에, 시골에서 농사만 짓던 친삼촌은 그를 존경했다. 공산주의에 경도된 후조차 "이런 건 나처럼 못 배운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지, 형님 같은 분이 어떻게 하시겠소."라며 6.25 전쟁이 터지고 국군에 입대한 외삼촌을 북한군의 국군 사냥에서 숨겨준다. 다만 북한군의 기세가 점점 험악해지자 결국은 그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외삼촌을 고변하는데, 이미 낌새가 이상함을 눈치채고 외삼촌은 자취를 감춘 후였다. 사이 좋던 친척이 이념갈등과 전쟁으로 인해 대립하는 과정이 짧고도 강렬하게 표현된 부분이다.
지루한 장마가 계속되던 날 밤 , 외할머니는 국군 소위로 전쟁터에 나간 아들이 전사하였다는 통지를 받는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은 외할머니는 비 내리는 어느 날 건지산을 바라보며 "빨치산 따위는 다 죽어버려!"라고 한 맺힌 저주를 퍼붓는데, 같은 집에 사는 친할머니는 이 소리를 듣고 방에서 뛰쳐나와 노발대발한다. 곧 빨치산인 자신의 작은아들 또한 죽으라는 저주와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돈간 관계는 완전히 틀어져버리고 만다.
어느 날 친삼촌이 몰래 집으로 돌아오자 가족들은 그를 설득해서 자수시키려고 했는데 , 우연찮게 나타난 외할머니 때문에 친삼촌은 도망가버린다. 외할머니가 밤에 소피를 보러 나왔는데 불이 켜졌고,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가 나자 뭐 하나 싶어서 방으로 다가갔는데, 친삼촌은 발자국 소리를 듣고는 경찰이 찾아낸 줄 알고 겁에 질려 도망친 것. 결국 자수에 실패해서 아들과 헤어진 친할머니는 외할머니를 더 미워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 빨치산 대부분이 소탕되자 가족들은 친삼촌 또한 죽었으리라 여기지만 , 친할머니는 점쟁이의 예언을 근거로 작은아들이 살아 돌아오리라 굳게 믿고는 점쟁이가 말한 날짜에 맞추어 잔치 준비를 한다. 그러나 예언한 날이 되어도 작은아들은 돌아오지 않으므로 친할머니는 실망한다. 그런데 난데없이 심하게 다친 거대한 구렁이 1마리가 아이들의 돌팔매에 쫓기어 집안으로 들어온다. 이 모습을 보고 친할머니는 충격을 받아 졸도하고, 다른 가족들은 어찌해야 할지를 몰라 우왕좌왕한다.
집 안은 물론 집 밖도 구경꾼들 때문에 온통 난장판이 되는데 , 외할머니가 혼자 의연하게 아이들과 외부인들을 모두 밖으로 쫓아버리고는 사람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대문을 걸어 잠근다. 집 안의 식구들과 집 밖의 구경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외할머니는 감나무에 올라앉은 구렁이에게 다가가 아이라도 달래는 듯이 나긋나긋하게 말을 걸기 시작한다.
"에구, 이 사람아. 집안일이 못 잊어서 이렇게 먼 길을 찾어왔능가?"
친할머니는 몇 시간 뒤에아 정신을 차려서는 고모와 어머니를 통해 자초지종을 듣는다 . 그 일로 친할머니와 외할머니는 서로 화해하고 주인공은 용서를 받는다. 친할머니는 1주일 뒤 숨을 거둔다. 그리고 '정말 지루한 장마였다'라는 마지막 구절과 함께 장마가 그치며 소설이 끝난다.>
남한 평론가들은 이 작품이 이데올로기 대립의 상처를 치유하는 길의 하나로서 민족적 보편 정서의 중요성을 환기시키고 있다고 해석합니다. 분열된 민족이 합하려면 양쪽에서 공통적인 것을 회복해야 하는데, 그 공통적인 것 중의 하나가 민족적 보편정서라는 것이죠. 무속신앙이라든지 또 다른 것으로 두 할머니가 모두 피해자로서 한을 품었음을 들 수 있다. 과정은 어떻든 아들, 그것도 막내아들을 잃었음은 두 노인이 마찬가지이고, 이런 점에서 남북한은 같은 피해자라는 것을 은연중에 내비칩니다. 당시 작가가 이 소설을 발표한 시기 때 반공주의가 주류였는데 작가도 이 소설을 쓰면서 잡혀가는 게 아닐까 걱정했기 때문에, 주인공을 어린아이로 설정했다고 합니다. 다행히 1973년에 남북한 화해 분위기가 생겨서 발표했다고 하네요.
오늘 남북문학기행은 여기까지입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홍알벗이었습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끝>
진행 홍알벗 / 에디터 이진서 / 웹담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