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한국전쟁과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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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남북문학기행 진행에 홍알벗입니다. 아시다시피6월은 지난 1950년에 한국전쟁이 발발했던 달입니다. 6월 한달동안은 탈북자 출신 소설가 도명학 선생님과 함께 한국전쟁과 남북한 문학에 관해 이야기 나눕니다.

MC: 선생님, 안녕하세요. 한주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도명학: 네, 안녕하십니까. 저는 잘 지냈습니다.

MC: 아시다시피, 6월은 한국전쟁이 발발한 달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한국전쟁과 연관된 영화이야기를 해볼까 하는데요. 한국전쟁을 다룬 남한 영화를 보신 적이 있나요? 어떤 영화였었는지 설명 좀 해 주시죠.

도명학: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를 여러개 봤습니다. 그 중 제일 인상 깊었던 영화를 꼽으라면 "태극기 휘날리며"입니다. 평화롭던 일요일 새벽 갑자기 전쟁이 터지고 청장년들이 군에 징집되어 가는 장면, 고지 하나를 두고 벌어지는 치열한 전투과정에 두 형제가 마주치는 데 동생은 인민군이고 형은 국군입니다. 그래선지 더 뇌리에 새겨진 영화인 것 같습니다.

MC: 그 영화의 좋았던 점, 나빴던 점 등을 소개 좀 해 주세요.

도명학: 네. 좋았던 점은 동족상잔의 비극이 얼마나 참혹하며 다시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가 강하게 전달되도록 만들어진 점입니다. 또 전투장면을 미화하지 않고 사실적으로 형상했다고 봅니다. 나빴던 점을 얘기한다면, 아니 나빴다기보다는 좀 아쉽다고 해야 할지, 전쟁이 일어나자 국가가 청장년들을 전쟁터에 강제로 끌어가는 모습은 보기에 좋지 않았습니다. 전쟁에 참전한 군인들이 전부 강제로 끌려갔을 리도 없는데 영화를 보면 마치 그런 것처럼 느껴집니다. 물론 전쟁터에 나가기 두렵지만 징집하니 하는 수 없이 나간 사람 많을 수 있습니다. 이건 북한도 마찬가진데 북한은 전쟁영화에서 강제로 인민군에 징집되는 장면을 절대 넣지 않습니다. 전부 자원입대 한 것처럼 하는데 그건 그것대로 사실 왜곡이니 남과 북이 서로 반대방향으로 치우친 영화를 만든다고 생각됩니다.

MC: 남한의 북한 관련 영화를 보면 항상 남한 김대중 정부 이후 많이 '우리민족' '같은 동족' 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고들 합니다. 예를 들어 공동경비구역이란 영화에서는 북한군 병사와 남한군 병사가 군사분계선에서 서로 만나 인간적 우정을 나누는 장면을 묘사해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했는데요. 정권에 따라 북한을 묘사하는 방식이 많이 달라지고 진보해 간다는 것을 느낍니다. 처음 남한에 도착했을 때와 지금 제 3자적 시점에서 동의 하십니까?

도명학: 정권에 따라 대북정책이 달라지는 만큼 영화도 그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특히 김대중정부의 해볓정책과 6.15남북공동선언 등으로 남북관계에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듯한 분위기가 넘쳤던만큼 영화기획자들도 국민정서를 고려했겠죠. 관객 수가 중요하니까요. 북한도 그 당시 영화와 드라마에서 약간의 변화를 보였습니다. 그런데 남한에서 우리민족, 동족을 강조하는 것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오히려 북한에서는 계급적 원수에 대한 환상을 절대가져서는 안된다는 내용이 강조되는 영화와 드라마가 나왔습니다. 북한에서 계급적 원수라고하면 주로 민족 내부의 적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즉 사회주의 제도에 반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아무리 동족이고 혈육이라 해도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MC: 특히 미국을 다루는데 있어 어떤 점을 중점에 두고 봐야할까요?

도명학: 미국도 계급적 원수의 범주에 들어가긴 하지만 침략자임을 강조하는데 중점을 둡니다. 그런데 6.15남북공동선언 후 남북간에 교류가 많아지고 대북지원물자가 많이 들어가게 되면서 불안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북한사람들이 남한에 대한 동경심을 가질 수 있고 남한을 동족이라는 이유로 적으로 보지 않고 계급적 원칙을 망각할 것을 걱정했겠죠. 그러니 타민족인 미국보다 동족이 더 위험한 적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절실한 과제가 됐죠. 그 당시 나온 "붉은 흙"이라는 드라마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6.25전쟁 시기 국군과 유엔군이 북진했을 때 황해도 신천군에서 벌어진 동족 간 살육을 다뤘습니다. 인민군이 후퇴하자 국군과 유엔군이 들이닥치는데 이때 평소에 북한체제에 앙심을 품고 있던 사람들이 세상이 바뀌었다고 좋아하면서 같은 동네 사람들을 괴롭히고 약탈하고 죽이기까지 합니다. 설마 한동네 사람끼리 죽일내기를 하겠는가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피해를 입습니다. 결국 복수가 또 다른 복수를 부르는 악순환이 휩쓸면서 신천군 인구의 3분의 1이 목숨을 잃습니다.

MC: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도명학: 결국 드라마는 마지막에 인민군의 재진공에 때를 맞춰 피로써 각성된 인민들이 계급적 원수들을 무자비하게 징벌하는 데, 여기에 특이한 캐릭터 하나가 있는데 국군 편에서 치안대가 된 남편의 만행을 만류하다 끝내 환멸을 느낀 아내가 자기 손으로 직접 남편을 처단하는 여인이 있습니다. 이를 통해 동족이든 가족이든 사상과 이념이 다르면 원수일 뿐이라는 것을 인식케 합니다. 그런데 더 주목할 점은 그 드라마가 나오기 전까지 북한당국이 황해도 신천군 학살에 대해 한번도 동네사람들끼리 서로 죽일 내기를 했다는 말을 전혀 한 적이 없었는데 이 드라마는 그 사실을 오히려 과장하면서까지 계급교양물로 만들었습니다. 그 전에는 안 그랬습니다. 황해도 신천학살 하면 미군에 의한 양민학살이 빚어낸 참극으로 선전했습니다. 그래서 신천박물관은 미국을 잔인한 승냥이로 가르치는 가장 대표적인 반미선전장이었습니다. 그런데 6.15선언 후 갑자기 바뀌었습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요?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남한에 대한 경계심과 적대감이 사라지는 것을 방지하려는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남한에선 반대로 동족끼리를 강조하는 영화가 나오는데 북한은 그 반대였던 거죠. 그런데 여기서도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남한에서 민족을 부각하는 영화가 나오는 것을 북한당국이 좋아했다는 사실입니다. 언젠가 북한 노동당에서 파견된 중앙당 선전선동부 간부의 강연을 들은적 있습니다. 그때 현 남조선 정세가 우리혁명에 유리하게 전변되고 있다는 주제로 강연했습니다. 거기서 연설 도중 남조선에서 최근 만들어져 인기를 끌고 있는 '동막골'라는 영화를 소개하겠다면서 그 영화는 동막골이라는 산골 마을에서 우연히 만난 인민군과 국군이 마을 사람들과 힘을 합쳐 그 마을에 기어든 미군과 싸워 몰아내는 내용이라며 이것은 옛날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달라졌다, 이제는 전체 우리민족대 미국과의 대결구도로 변했다. 이렇게 정세가 우리 혁명에 유리하게 전변되고 있다. 통일이 멀지 않으니 김정일장군님만 믿으면 된다, 이런 연설을 하고 갔습니다. 훗날 제가 남한에 와서 그 때 일이 생각 나 일부러 영화 '동막골'을 찾아 봤는데 그때 그 중앙당간부의 말이 거짓말이 아니었구나 하고 놀랐습니다. "우리민족끼리"에 남한사람들이 정신무장을 해제당하고 있구나 하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MC: 지금은 덜 하다고 하지만, 북한 사람들을 악독하게 묘사하는 경우가 많았었읍니다. 어떻게생각하십니까? 남북한 사람들이 서로를 표현하는 것에 차이가 있다고 보십니까?

도명학: 남한에서 오래전에 만든 영화들을 보면 북한사람 전체를 악당으로 묘사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최근에 나온 영화들도 그런 면이 없진 않으나 많이 달라지긴 했습니다. 북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북에서는 통일전선전략 차원에서 항상 남한사람을 둘로 가르는데 영화나 소설에서도 그대로 적용합니다. 북에서는 남한소재 작품에서 노동자, 농민, 등 평민들을 절대 악당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미국과 그 앞잡이 정권, 부르주아 계급에 희생당하는, 해방시켜야 할 대상으로 그립니다. 그러나 장교, 경찰, 재벌 등은 교활하고 악랄하고 위선적이고 부도덕한 존재로 그립니다. 이들이야말로 타도해야 할 계급적 원수가 되는 거죠. 결국 사회의 상부구조와 하부토대를 갈라치기 하여 혁명이 일어나게 해야 한다는 사회주의혁명 전략, 통일전선전략에 따른 것입니다.

MC: 지금 한국에서는 어린 아이들에게 한국전쟁을 알리는 영화가 거의 없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남한과 북한 어린이 사이에도 한국전쟁을생각하는데 큰 차이가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도명학: 남한에 와서 지금까지 어린이 대상 한국전쟁 영화를 저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분명 있긴있을 겁니다. 하지만 애써 찾아야 볼 수 있는 정도라면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 그런지 잘은 모르겠지만 전쟁영화가 어린이 정서발육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까봐 일부러 만들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남한이 국가가 문학예술작품 방향을 제시하고 검열하는 체제가 아닌 점을 생각하면 그것도 아닌 것 같구요. 아무튼 잘 모르겠습니다. 북한은 어린이 대상 전쟁영화가 좀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도 많다고 할 정도는 못됩니다. 소년빨치산, 청년근위대 등 전쟁 시기 아이들이 북에 진주한 유엔군과 국군을 혼내주고 그들의 보급물자 수송로를 파괴하는 등의 활동을 보여주는 영화 몇 개 밖에 없습니다. 다만 아동영화라고 부르는 만화영화는 꽤 있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의인화된 동물들이 인민군, 국군, 미군을 상징하는 캐릭터로 나옵니다. 예컨대 승냥이는 미군, 족제비는 국군, 다람쥐나 고슴도치는 인민군을 상징합니다.

MC: 한국전쟁을 교육시키는데도 남한과 북한 어린이들 사이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도명학: 남한은 대개 현충일이나 6월25일을 계기로 한국전쟁에 관한 교육과 영상물 소개가 활발한데 평소에는 크게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지역에 따라 학교마다 차이는 있더라구요. 북한 역시 전쟁이 일어난 6월25일을 "6.25미제반대투쟁의 날"로 정해 반미행사를 합니다. 또 휴전일인 7월27일을 전승절로 기념하면서 6월과 7월을 "미제반대투쟁월간"으로 반미교육을 강화합니다. 평소에는 남한보다 좀 더 많이 하는 것 같은데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습니다.

MC: 네, 지금까지 탈북 소설가 도명학 선생님과 함께 한 '남북문학기행'이었습니다. 선생님고맙습니다.

도명학: 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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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한국전쟁을 다룬 남한의 영화는 많습니다만, 도명학 선생님은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영화가 가장 감명적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과연 어떤 영화인지 함께 살펴 보도록하겠습니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OST>

이 영화의 모티브, 즉 소재가 된 이야기는 한국의 전쟁기념관에 있는 '형제의 상'의 실화와 최승갑 일병의 유품입니다. '형제의 상'은 실제 형제였던 박규철 소위와 박용철 하전사의 이야기입니다. 황해도 평산군 신암면 출신인 형제는 이북 땅에 소련군정이 들어서면서 형만 월남하고 동생은 남은 상태에서 전쟁이 터졌다고 합니다. 결국 형은 대한민국 육군으로서, 동생은 조선인민군 육군으로 참전했고 강원도 원주 치악고개에서 전투를 벌이던 중 극적으로 만나 서로 부둥켜 안고 울었다고 합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진태’는 약혼녀 ‘영신’과의 결혼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동생 ‘진석’의 대학 진학을 위해 어려운 상황에서도 씩씩하게 생활을 해나간다. 1950년 6월의 어느 날,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났다는 호외가 배포되고, 두 형제는 평온한 일상에서 갑작스레 전쟁터로 내몰린다. 훈련받을 시간조차 없이 국군 최후의 보루인 낙동강 방어선으로 실전 투입된 ‘진태’와 ‘진석’. 동생과 같은 소대에 배치된 ‘진태’는 아직 학생인 동생의 징집 해제를 위해 대대장을 만나게 되고, 동생의 제대를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최선의 것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동생의 생존을 위해 총을 들며 영웅이 되기를 자처하게 되고, 끝내 생각지도 못한 운명의 덫이 두 형제를 기다리고 있는데…”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프로파간다, 그러니까 선전 선동 성향이 옅은 전쟁 영화라는 점에서 큰 가치가 있다는 평입니다. 전쟁을 국가 혼자만의 관점이 아니라 전쟁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의 애환을 그린 한국 최초의 영화라는 겁니다. 게다가 진석이 징집되어 열차에 탑승하고 이에 진태가 진석을 구하러 가는 과정에서 국군 대위를 주먹으로 후려패고 진석을 구출하려 시도하는 장면에서 진태도 저지당하는데 이 때 국군 대위가 너도 징집 대상이야!라고 일갈하며 진태, 진석 형제를 같이 강제로 끌고가서 억지로 입대시킵니다. 이 영화 제작진은 원래 한국 국방부 측의 제작지원을 요청했었으나 이런 장면들로 인해 국방부로부터 거절당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가 개봉된 이후 2004년부터 한국 군 장교의 각 임관별 사관후보생 과정에서 이 영화의 일부 장면을 교보재로 사용하기도 했다는 후일담입니다.

MC: 지금까지 진행에 홍알벗이었습니다. 저희는 다음 시간에 찾아 뵙겠습니다.

진행: 홍알벗, 도명학 / 에디터: 이진서 / 웹담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