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MC: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남북문학기행의 홍알벗입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그 의미를 기리는 6월도 이제 다 지나갔습니다. RFA자유아시아방송 '남북문학기행' 코너에서도 그동안 4주동안 한국전쟁과 문학에 관한 남북한의 차이점, 그리고 특징 등을 살펴 봤는데요. 오늘은 탈북자 출신 소설가 도명학 선생님과 함께 '전쟁과 문학'이란 주제로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MC: 선생님, 안녕하세요.
도명학: 네, 안녕하십니까.
MC: 그동안 한달여에 걸쳐 한국전쟁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사실 한국전쟁은 공식적으로 아직 끝난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동안 한국전쟁 이후에 전쟁을 종식시키려는 많은 노력이 있었습니다만, 가시적인 성과는 없는게 사실인데요. 과연 전쟁이 지금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이고, 또 그 과정에서 문학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선생님, 제가 남한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땐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치다 살해된 이승복 어린이가 영웅이었고, 북한에서 날린 대남 선전 삐라를 주워 경찰서에 갖다 주면 연필도 주곤 했는데요. 이러한 과정에서 남한 주민들은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반공사상에 젖어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남한정부는 정확한 현실을 알리기 보다는 정부의 원하는 바를 주입시키거나 또는통제하는 경향도 보였는데요. 문학도 그 중 한 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보여진 남한당국의 이러한 조치와 함께 했던 남한의 문학작품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도명학: 상황에 따라서는 주민들의 생각을 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작품도 필요하리라 봅니다. 다만 이경우 저의 개인적 소견으로는 3가지 요소가 맞을 때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첫째는 작품의 주제가 시대정신에 맞는 주제여야 하고, 둘째는 작가의 생각이 그것과 일치하며 셋째는 독자가 그것에 거부감을 갖지 않을 때, 이 3가지 요소가 맞는 작품이라면 그건 사회발전과 공익에 긍정적 영향을 주게 되므로 좋은 평가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3가지 요소 중 한 가지라도 어긋나면 분명 작품을 두고 논란이 생기겠죠. 아 그리고 오래전 대남삐라를 주워 경찰서에 바치면 연필 같은 것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건 북에서도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수상한 사람이나 물건을 보면 안전부에 바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표창도 받고 간첩을 잡으면 표창 받고 공로에 따라서는 명예칭호인 “모범소년단원” 칭호나 “김일성소년영예상”, 같은 것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MC: 그렇군요. 선생님께서는 혹시 한국에 오셔서, 한국 당국이 문화예술을 정치화하고 일반 주민들을 세뇌시킨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은 있으신지요? 있다면 어떤 것이 있는지 말씀해 주세요.
도명학: 정부와 개별적인 작가나 정치인이 대놓고 그런 말 하는 경우는 보지 못했습니다. 단, 일반주민들 속에서 저 작품은 "정치적이다", "세뇌시킬 목적이다" 하고 말하는 경우는 가끔 봤습니다. 한국은 민주주의 사회인만큼 다양한 목소리가 있기 마련이고, 하나의 작품을 두고도 서로 다른 정치적 성향에 따른 반응이 나올 수 있다고 봅니다.
MC: 그런데, 남한 사람들도 문학작품 등을 통해 세뇌까지는 아니더라도 학습은 시킬 수 있을까요? 제가 대학 다닐 때만 해도 일부 학생들이 북한의 문학작품이나 영화를 몰래 보기도 했고, 한국 당국은 이러한 학습 모임이나 거기에 참여한 학생들을 강력하게 단속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한국 당국의 입장에서 볼 때 그러한 것을 무서워 하는 걸까요?
도명학: 전 국민을 상대로 한 학습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북한처럼 인구 전체가 촘촘한 정치조직체계를 이룬 것이 아닌데다 다당제 정치체제라서 국민들의 성향이 다양합니다. 이런 환경에서 특정 계층이나 지역민, 단체 등을 상대로 한 학습은 가능할 수 있습니다. 물론 문학작품을 통해 전 국민에게 영향을 줄 순 있다고 봅니다. 문학예술은 보이지 않는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 입장에서 이것이 무서운 것은 한국이 분단국가라는 점에서 만약 북한에 대한 생각이나 전쟁에 관한 입장이 작품의 영향으로 인해 잘못 인식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보다 더 무서운 건 없습니다. 월남패망과 같은 일이 한국에서 재현되지 않으려면 한국 국민이 정신무장을 제대로 하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MC: 자본주의 사회에서 특히 요즘처럼 자유로운 정보 공유가 시간과 국경을 초월하는 인터넷 세상에서 문학작품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다른 나라와 달리 현재까지 분단 상태에 있는 한반도에서 작가의 역할이 있지 않겠습니까?
도명학: 네. 방금 말씀 드린 대로 한국 국민들이 자기 나라가 분단국가이며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상태라는 것을 명심해야 하는데, 작가들 자신부터 그 역할에 충실하는 것을 의무로, 작가적 양심으로 간직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당장 평화롭고 자유롭고 경제적으로 풍족한 생활을 한다고 해서 자기 나라가 다른 나라들과 상황이 같은 줄로 착각해서는 안 되죠. 인터넷으로 전 세계가 연결된만큼 거기서 쏟아져 나오는 정보에는 진짜도 있고 가짜도 있고 옳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고 별의 별 것이 다 있습니다. 한국 작가의 역할이 여기서 고민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무작정 상업적 목적만 중시하거나 흥미위주, 자극적인 것만을 쓰려고 하면 온갖 정보들 속에 있는 부정적인 점들이 작품 속에 녹아들어 사람들을 이상하게 변질 시킬 수 있죠. 전쟁이 일어날 위험이 없는 다른 선진국 작가들이야 아무렇게나 글을 써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있지만 한국 작가들은 자신이 작가이기에 앞서 먼저 분단국의 일원임을 자각하고 글을 써야죠.
MC: 한국전쟁은 남한 사람들에게 남북한 양국이 더욱 적대시하는 계기가 될 것인가, 아니면 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인지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선생님은 어떻게 보십니까?
도명학: 한국전쟁 자체가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남북이 서로 용납할 수 없는 극도의 적대감을 가지게 한 전쟁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통해 친밀한 관계를 기획한다? 그건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다만 6.25같은 비극을 다시는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캠페인을 남북이 함께 꾸준히 한다면 어느 정도 가능성이 보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참 걱정입니다. 동서독처럼 분단은 되었더라도 적어도 동족상잔만은 겪지 않았어야 남북화해가 쉽겠는데 전쟁으로 서로에 대한 원한이 너무 쌓여 있으니 말입니다. 세월이 약이라는 말도 있듯 아마 전쟁을 겪은 세대와 그 아들, 손자 세대까지 다 늙어죽고 난 이후에나 옛 동서독 사이 정도만큼 적대감이 없어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도 듭니다.
MC: 그렇다면, 남북 양국의 관계개선을 위해 문학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일까요?
도명학: 문학은 곧 인간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문학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은 남과 북 사람들의 다름과 같음을 모두 담아낸 인간상을 형상함으로써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통일에 앞서 사람의 통일을 먼저 이뤄내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치도 군사도 경제도 궁극적으론 사람이 하는 일인 것만큼 사람의 통일이 선행돼야 모든 분야에 걸쳐 화해가 이뤄지며 신뢰가 쌓여 관계가 좋아질 거라 봅니다. 이런 의미에서 문학의 사명감이 실로 막중하다 하겠습니다.
MC: 네, 지금까지 탈북자 소설가 도명학 선생님과 함께, 지난 6월 한달동안 한국전쟁과 문학과의 관계, 그리고 전쟁을 둘러싼 남북한 문학의 차이점 등을 살펴 봤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도명학: 네, 수고하셨습니다.
MC: 저희는 다음 주에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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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북한에 계신 청취자 여러분. 혹시 남한의 이승복 어린이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도명학 선생님도 남한 정부당국이 국민들의 시각을 좁히기 위한, 다시말해 한쪽으로 몰기 위한수단으로 이승복 어린이가 당한 끔찍한 사건을 언급했는데요. 이것은 사실여부를 놓고 논쟁이 계속되는 사건입니다. 아쉽게도 이 이승복 어린이를 주제로 삼은 책을 남한 서점에서 찾기란 여간 쉽지 않았습니다. 남한에서 가장 크다는 교보문고라는 서점에서조차 제목에 ‘이승복’이란 이름이 들어간 책은 없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지난 6월 2일, 남한에서 지방선거가 실시됐는데요. 그때 당선된 신경호 강원도교육감이 강원도 평창군에 있는 이승복기념관을 찾아 참배를 시작으로 첫 행보를 시작했습니다. 이날 참배는 올해 이승복 어린이 추도행사에 참가했던 신 당선인이 교육감에 당선된다면 가장 처음으로 이곳을 다시 찾겠는 약속을 이행한 것입니다. 신 신임 교육감은 “우리 아이들에게 애국정신과 자유민주주의, 평화통일에 대한 의식을 심어줘야 한다”며 “앞으로 강원도 아이들에게 평화안보교육 및 평화통일교육을 실시하고 이승복 기념사업회를 활성화하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한국전쟁 발발 이후 한동안 사실이고 또한 당연하게 여겨져 왔던 이승복 어린이 또는 이승복 기념관 방문이 놀라운 일로 여겨져 뉴스거리가 되었던 걸까요? 앞서 탈북자 출신 소설가 도명학 선생님도 언급했습니다만, 남한 당국이 다양한 방법으로 주민들의 생각을 한방향으로 유도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었고요. 문학도 그 중 한 가지였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승복이란 사람은 누구일까요? 누구길래 이렇게 논쟁의 중심에 있게 된 것일까요? 지금 같이 하고 계신 분들 가운데 일부는 이승복 어린이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보신 분도 더러 계실거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이승복 어린이와 관련된 책 또는 문학작품을 찾아봤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한 권도 찾지 못했습니다. 학술전문지 또는 관련기사는 있었지만 문학작품은 비슷한 것조차 찾지 못했습니다. 이승복 어린이가 현대에 와설 한국, 그러니까 남한에서 갖는 인식도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렇다면,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이승복 어린이’가 누구인지 먼저 알아 보겠습니다.
자료에 따르면, 이승복 어린이는 1959년 12월 9일에 태어나 1968년 12월 9일에 숨졌습니다. 한국의 학생으로 1968년에 발생한 울진·삼척 무장 공비 침투 사건에 의해 희생당했습니다. 당시 이승복 어린이는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발언을 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요, 이에 격분한 북한의 무장 공비에 의해 어린 소년과 그 일가족이 살해당했다는 내용입니다.
좀 더 자세히 살펴 볼까요.
이승복은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도사리에서 태어났습니다. 1967년 3월 2일에 속사국민학교 계방분교에 입학했습니다. 1968년 11월 2일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 사건 때 삼척시의 바닷가를 통해서 한국으로 무단 침입한 북한의 무장간첩에 의해서 12월 9일 밤 9세의 나이에 어머니와 남동생, 여동생과 함께 살해당했고 그의 형과 아버지는 크게 부상을 입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날은 그의 생일이었다고 합니다.
12월 11일 한국언론매체인 조선일보가 3면에 이 사건을 “공산당이 싫어요” 어린 항거 입 찢어〉라는 제목의 기사로 다뤘습니다. 이 기사는 현장을 목격하고 유일하게 살아 남은 이승복의 형의 증언을 인용하여 "무장공비가 가족을 몰아 넣고 북괴의 선전을 하자 이승복이 “우리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대답하여 공비들이 이승복의 입을 찢고 가족들을 몰살시켰다"고 보도했습니다.
12월 13일에 제작된 대한뉴스 제705호 〈남침공비를 무찌른다 - 제3신〉 편 잠시 들어보시죠.
<보도내용: 공산당이 싫다고 해서 어린 젖먹이를 돌로 때리고 입을 찢어 죽인 이들의 만행은 천벌을 받고도 모자랄 것이니, 정면으로 항거하다 숨진 어린 놈 앞에서 너의 원수는 우리가 갚겠다는 어린 학우들의 울부짖음>
이후 이 사건이 국민학교 도덕 교과서에 실리고, 국민학교마다 이승복의 동상이 세워지는 등 반공정신의 상징처럼 되었습니다. 하지만, 교과서에서는 이 내용이 제6차 교육 과정에서부터 빠졌습니다. 정권을 어느 당에서 잡느냐에 따라 이 이승복 사망 사건이 문제가 되곤 했는데요. 아직도 이 문제는 지금도 계속해서 논쟁의 불씨가 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제는 이 문제를 다시 건드리려고 하는 이들도 없다는 겁니다.
<보도내용: 이제 우리는 성공 통일의 과업을 이룩하기 위해 피맺힌 각오를 굳히고 있습니다. 영하의 추위 속에서도 용사의 총칼은 원수의 심장을 겨누고 있습니다.>
MC: 일각에서는 전쟁의 역기능과 함께, 선기능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전쟁은 모든 것을파괴합니다. 그것이 의도했던 것이든, 의도하지 않은 것이든 말이죠, 전쟁의 결과물, 피해물은 너무나도 큽니다. 멈춰야 합니다. 그리고 그 멈추게 하는 역할을 문학작품도 함께 맡아서 해주면 좋겠습니다.
오늘 남북문학기행은 여기까지입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요.
진행 홍알벗, 도명학 / 에디터 이진서 /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