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통일과 문학

북한 평양에 선전물들이 세워져 있다.
북한 평양에 선전물들이 세워져 있다. (/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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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남북문학기행의 홍알벗입니다. 한국전쟁이 멈춘지도 어느덧 70년이 됐습니다. 하지만 남북한이 함께 염원하는 통일은 언제쯤이나 이뤄질지 짐작조차 하기 어려운 때입니다. 오히려 남한의 경우 통일을 반대하는 이들도 있다고 하니, 앞으로 통일을 향한 움직임이 어떻게 전개될지 우려하는 분위기도 있습니다. 오늘은 탈북자 출신 소설가 도명학 선생님과 함께 '통일과 문학'이란 주제로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MC: 선생님, 안녕하세요.

도명학: 네, 안녕하십니까.

MC: 한국에서는 1980년대 말부터 '통일문학'이란 말이 널리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북한 바로 알기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면서 북한의 문학작품이 부분적으로 나마 해금되기 시작했기 때문인데요. 일반적으로 통일문학이라고 하면 분단을 해소하거나 극 복하고 통일을 지향하는, 또는 추구하기 위한 소설과 시를 가리기는데 말이죠. 북한에 계실 때 또는 한국에 오셔서 알게 된 '통일문학'이 선생님께 어떤 모습으로 다가왔었나요?

도명학: 통일문학이라는 용어가 북한에 등장한 것이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 발표가 있고 나서 남북교류가 활발해지면서입니다. 저도 통일문학이라는 용어를 그때 처음 접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통일문학"이라는 잡지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런 잡지가 나왔다는 사실 자체를 북한사람들이 몰랐습니다. 아마 남한에 있는 탈북민 3만 4천명 모두에게 물어봐도 그런 책을 본적 있다는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지 모르겠네요. 아마 열 명도 찾기 힘들 것입 니다. 북한에 종이사정이 긴장해 많은 부수를 찍어내지 못하는 사정도 있었겠지만 일반에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도서관에 가도 없었습니다. 비공개 도서로 일반에 배부하지도 판매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작가, 기자, 등 특정부문 종사자들만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그 부문 사람들이 전부 다 본것도 아닙니다. 부수가 그렇게 적었습니다.

MC: 그럼 누가 그 잡지를 가장 많이 봤나요? 그리고 반응은 어땠습니까?

도명학: 제일 많이 본 사람들은 작가 들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통일문학이라는 것에 대한 이해가 북한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것 과 차이가 있습니다. 북한에서의 통일문학은 곧 "연방제통일문학"이라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민족화해, 교류, 평화통일, 이 모든 것이 연방제통일이라는 범주 안에서만 해석되는 것이 북한입니다. 더 나아가 북한에서의 통일문학은 적화통일문학입니다. 왜냐면 북에서 말하는 연방제 통일은 남과 북의 제도와 이념을 그대로 두고 하는 통일이라곤 하지만 핵심내용에 있어서는 김일성 김정일의 권위를 가지고 실현해야 하는 통일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사회주의적 북한인 민이든, 자본주의적 남한국민이든 모두 김일성을 시조로, 김정일을 향도의 구심점으로 떠받드 는 국가가 통일국가를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에서 출간된 통일문학 잡지에 실린 작품들을 보면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거기엔 북한체제를 찬성하거나 김일성, 김정일을 우상화하는 내용은 없습니다. 그러나 남한작가들이 기고했다는 작품들을 보면 전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는 주인공의 슬픔, 좌절감, 불만 등이 주를 이룹니다. 나아가 남한의 군부정권시대 를 비난하거나 미국의 식민지예속국가에 사는 사람들의 무력감, 비굴함, 사대주의 근성, 등과 미국의 부당한 내정간섭 같은 것들을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자기들 체제에 대한 노골적인 선전을 하지 않는 대신 남한체제를 교묘하게 비판하는 잡지가 바로 통일문학이었습니다.

MC: 선생님께서는 당시 한국 사정을 어느정도 잘 알고 계시지 않으셨나요? 잡기에 실린 글을 보식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도명학: 물론 당시 저는 이미 남한에 대해 상당한 정도로 알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기에 쓴웃음을 지었습 니다만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더군요. 그럼에도 불구 하고 그 책을 통해 남한의 속살을 엿볼 수는 있었습니다. 또 아이러니하게도 남한사회에서 벌어지는 비정상적이고 정의롭지 못한 이야기들을 통해 "이건 뭐지? 아니 이거 우리 북조선에도 흔해빠진 현상이잖아" 하고 머리를 싸쥐게 되더군요. 얘기가 좀 길어지는 것 같지만 여담삼아 그때 통일문학잡지에서 제가 본 작품 얘기를 하나 하 겠습니다. 남한작가가 쓴 단편소설로 되어 있었는데 제목이 "살구나무 이야기"였습니다. 소설 에서는 한 시골에 사는 늙은 농부가 나옵니다. 그런데 그 마을은 "각하"의 고향입니다. "각 하"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하루는 웬 관료들이 우르르 내려와 농부의 집 앞마당에 서있는 큰 살구나무를 에워싸고 뭔가를 의논하더니 떠나갑니다. 며칠 후 다시 내려온 관리들은 농부에게 이 느티나무는 "각하"의 어린시절이 깃든 살구나무인데 잘 관리하라고 당부합니다. 그리곤 공사인부들을 불러 살구나무 주변을 포장하고 대리석 울타리도 둘러막고 "각하"의 어린시절을 기리는 비석을 세웁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나라에서 농부에게 살구나무에 깃든 이야기를 관 광객들에게 들려주는 일을 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노인은 그곳에서 태어난 "각하"가 어린시절에 어떻게 생활했는지 기억이 삭막합니다. 오로지 또렷한 기억은 남의 집 살구나무에 기어올 라 살구를 도둑질하는 것을 몇 번이고 붙잡아 혼내준 일뿐입니다. 그래서 해설원을 못하겠다고 사양합니다. 그러나 관료들이 이번에는 걱정할 것 없다면서 자기들이 써놓은 해설대본을 가져다줍니다. 억지로 시키는 일이지만 거절하면 불이익이 있겠기에 수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대본을 읽어보니 전부 "각하"의 어린 시절을 미화한 내용으로 일관되어 있습니다. 어릴 적 못된 장난만 한 "각하"와는 너무 다른, 정말 예의바르고 정의감 있고 친구들을 사랑하 고 어른들을 공경한 "각하"를 사람들에게 홍보하라는 것입니다. 어처구니 없었지만 농부는 시키는대로 합니다. 그런데 해보니 정부에서 돈도 주고 포상도 해줍니다. 이제 농사를 안 짓고 그 일만 해도 풍족하게 살만합니다. 거기에 도취된 농부는 자신의 기억이 나이 들어 잘못됐는 가보다 하고 자기체면에 빠지게 되고 결국 "각하"를 정말로 위대한 인물로 생각하게 됩니다. 농사도 그만두고 국록을 맛보게 된 노인은 더 없이 영광스러워 날마다 찾아오는 관광객들에게 "각하"의 위대한 어린시절을 열심히 해설합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각하"가 대통령자리 에서 물러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관광객들이 뚝 끊깁니다. 아침마다 정성스레 청소를 하고 늘 꽃다발도 놓이곤 하던 기념비적 살구나무는 한적해지고 지나가던 아이들도 오줌을 싸고 소와 개들도 그 옆에 똥을 싸고 갑니다. 나중엔 성난 대학생들이 몰려와 아예 살구나무를 찍어버립 니다. 그제야 농부의 기억은 다시 돌아옵니다. "각하"의 못돼먹었던 어린 시절 기억들이 하나 하나 떠오르는데 각하는 원래부터 착한 아이가 아니었고 공부도 못했고 친구들과 싸움질만 하 고 도둑질을 하고 버르장머리도 없었던 것입니다. 농부는 그런 각하를 홍보하느라 목에 핏대를 세우며 돌아간 지난 몇해가 수치스러워 괴로워 합니다. 저는 이 작품을 보고 가슴이 뛰었 습니다. 소설속의 "각하"는 내용의 맥락으로 보아 분명 한국의 전직 대통령 중 한 명을 가리키는 대명사였습니다. 이런 작품을 쓴 작가는 남한에서 무사할까하는 생각이 들고 문득 소설속의 "각하" 어린시절 이야기가 김일성의 어린 시절 이야기와 너무 닮은데 놀랐습니다. 북한의 수령우상화 모습과 다를바 없었습니다. 그 때 그 작품을 가까운 지인들과 함께 읽었는데 지인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렇듯 북한에서의 통일문학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통일문학과는 달리 남한을 교묘하게 비난하는 통일문학임을 남한에서 깨달아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지 않으 면 그들의 연방제통일의 정체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추종하게 되는 실수를 하게 됩니다.

MC: 앞서 1960년대에 민족문학의 일환으로 통일문학이 처음 등장했는데요. 당시 시인이었던 김수영 씨는 라는 작품을 통해 한반도를 분단시킨 미국과 소련 두 나라의 제국주의를 정면으로 한반도에서 측시 철수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미국과 소련이라는 외세를 배제하고 자주적으로, 그리고 미국식 자본주의와 소련식 사회주의에서 벗어나 중립화통일을 추구하자는 외침이었던 것인데요. 이 작품이 주는 메시지는 무엇이고 우리는 이 시대에 이것 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먼저 김수영의 시 '가다오 나가다오'를 잠시 들어 보시겠습니다.

“<가다오 나가다오>

김수영(1960)

이유는 없다--- 나가다오 너희들 다 나가다오

너희들 미국인 소련인은 하루바삐 나가다오

말갛게 행주질한 비어홀의 카운터에

돈을 거둬들인 카운터 위에

적막이 오듯이

혁명이 끝나고 또 시작되고

혁명이 끝나고 또 시작되는 것은

돈을 내면 또 거둬들이고

돈을 내면 또 거둬들이는 돈을 내면

또 거둬들이는

석양에 비쳐 눈부신 카운터 같기도 한 것이니

이유는 없다--- 가다오 너희들의 고장으로 소박하게 가다오

너희들 미국인과 소련인은 하루바삐 가다오

미국인과 소련인은 ‘나가다오’와 ‘가다오’의 차이가 있을 뿐

말갛게 개인 글 모르는 백성들의 마음에는

‘미국인’과 ‘소련인’도 똑같은 놈들

가다오 가다오

‘4월 혁명’이 끝나고 또 시작되고

끝나고 또 시작되고 끝나고 또 시작되는 것은

잿님이 할아버지가 상추씨, 아욱씨, 근대씨를 뿌린 다음에

호박씨, 배추씨, 무씨를 또 뿌리고

호박씨, 배추씨를 뿌린 다음에

시금치씨, 파씨를 또 뿌리는

석양에 비쳐 눈부신

일년 열두 달 쉬는 법이 없는

걸찍한 강변밭 같기도 할 것이니

지금 참외와 수박을

지나치게 풍년이 들어

오이, 호박의 손자며느리 값도 안 되게

헐값으로 넘겨버려 울화가 치받쳐서

고요해진 명수 할버이의

잿물거리는 눈이

비둘기 울음소리를 듣고 있을 동안에

나쁜 말은 안하니

가다오 가다오

지금 명수할아버이가 멍석 위에 넘어져 자고 있는 동안에

가다오 가다오

명수 할버이

잿님이 할아버지

경복이 할아버지

두붓집 할아버지는

너희들이 피지 섬을 침략했을 당시에는

그의 아버지들은 아직 젖도 떨어지기 전이었다니까

명수 할버이가 불쌍하지 않으냐

잿님이 할아버지가 불쌍하지 않으냐

두붓집 할아버지가 불쌍하지 않으냐

가다오 가다오

선잠이 들어서

그가 모르는 동안에

조용히 가다오 나가다오

서푼어치 값도 안되는 미·소인은

초콜렛, 커피, 페치코트, 군복, 수류탄

따발총…을 가지고

적막이 오듯이

적막이 오듯이

소리없이 가다오 나가다오

다녀오는 사람처럼 아주 가다오!”

도명학: 이 시를 통해 시인은 분단의 설음을 절절하게 토로하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이 원하지도 않은 분단을 강요한 강대국들에 대한 원망, 그리고 그들이 제발 한반도에서 손을 떼고 나가달라는 외침. 저도 공감이 가는 바가 없지 않습니다. 다만 분단의 모든 책임을 강대국 군대의 한반도 주둔에만 돌리는 주장은 적절하다고 보기 힘듭니다. 역사적 사실과도 좀 다른 내용이 있는데 시가 1960년에 나왔으면 그땐 북한에 소련군도 중국군도 다 철군하고 없었습니다. 그런데 소련사람 나가라고 썻네요. 그렇다면 소련군이 철군했는데도 왜 통일이 안되었습니까. 이제는 소련이란 국가 자체가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렇다면 통일이 안되는 건 미군이 안 나가서인가 요? 미군철수를 반대하는 건 한국정부입니다. 한국정부가 통일되는 것이 싫어서 미군철수를 반대하고 한반도에 묶어두려고 하는가요? 그래서 저는 이 시가 남북한 간에 이미 쌓여진 이데올로기 갈등과 체제경쟁 원인을 외면하고 쓰여진 시라고 보여 집니다.

MC: 1961년에는 소설가 최인훈 씨가 등장해 '광장'이란 중편소설을 통해 그 역시 미국과 소련을 거부했습니다. 이 작품은 한국전쟁이 미국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와 소련으로 대표되는 공산 주의 사이의 이념 갈등으로 일어났다고 주장하는 전쟁문학이다. 이와 아울러 한반도가 두 초 강대국 사이에 벌어진 무력 충돌의 희생자라고 묘사하며 미국과 소련 어느 편에도 서지 않는 중립화를 제시하는 통일문학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 작품을 보셨다면 간단하게 내용과 함께 작가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설명 좀 해 주시죠. 그리고, 이와 비슷한 작 품(예.박경리의 소설 '시장과 전장')이 또 있으면 소개 좀 해 주시죠.

도명학: 소설 '광장'은 굉장히 읽을 가치가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시간상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 내용개괄보다는 소설이 던지는 메시지에 대해서만 말씀 드리겠습니다. 최인훈 작가가 북한출신 으로 남한에 내려온 분이기 때문에 저도 공감되는 바는 큰 범위에서 같습니다. 남이나 북이나 어떤 이유에서든 분단으로 인해 오천년을 내려오며 함께 하던 모든 것이 절단 나고 그로 인해 서로를 반목질시하게 된만큼 정치 경제 군사 문화 등 모든 것이 정상적일 수 없다는 것에 대 해선 부인할 수 없습니다. 정상으로 돌아가자면 통일이 되어야 하는데 통일을 하려면 이념과 체제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또 그것을 해결하려면 서로가 용서하든 양보하든 아니면 전쟁 으로 승부를 보든 해야 합니다. 최인훈의 소설 광장은 중립사회가 되는 통일을 소망하지만 그 것이 가능할까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위에서 언급한 김수정의 시 '가다오 나가다오'와 마찬가지로 현실적 가능성을 의식하지 않고 소박한 바램을 절절하게 그린데 그쳤다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남한에서 통일문학이라고 일컫는 작품들이 대개 이런 것 같습니다.

MC: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통일문학은 어떤 것인가요?

도명학: 제가 생각하는 통일문학은 분단의 비극과 통일에 대한 소망을 그리는 것을 넘어 통일을 실현 할 수 있는 방도와 가능성까지 고려한 작품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런 점에선 북한의 통 일문학이 공세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들 입장에선 김일성가문의 권위에 의한 통일을 이루 는 것이 유일한 통일방도입니다. 연방제도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일개 수단일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에서 이야기한 '살구나무 이야기'같은 소설을 통일문학이라고 하는 겁니다. 실지 그 소설은 통일문학이라기보다 민주화운동문학이라고 하는 것이 맞죠. 진짜로 된 통일문학은 상대체제를 비난하지도 말며 찬양하지도 말고 남북한 사람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주제와 소 재들을 발굴해 다룬 작품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서로의 같음과 다름을 모두 담아내어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여 남북한 사람이 얼마든지 함께 살아갈 수 있고 함께 코리안드림을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고 봅니다.

MC: 사실 통일문학이라는 말 자체가 좀 생소하기도 한데요. 통일과 문학은 어떤 연관성이 있나요?

도명학: 한국문학에서는 통일을 어떻게 다르고 있나요? 북한과도 비교해 주시죠. 네, 한국의 통일문학이 통일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에 대해선 방금 앞에서 최인훈의 '광장 "과 김수영의 시를 논하면서 드린 말씀대로 통일에 대한 열망과 소망 필요성 등에 머물러 있 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통일과 문학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통일도 사람이 하는 것이고 문학도 사람의 이야기인만큼 서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관계라고 봅니다. 예컨대 내일 아침 갑자 기 통일이 되었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 감격과 기쁨을 시로도 쓰고 수필로도 쓸 것입니 다. 그러면 그것이 곧 통일문학일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MC: 한국 젊은이들이 통일에 관심이 있다고 보시나요? 북한의 젊은이들과 비교하면 어떤 것 같습니까?

도명학: 북한 젊은이들에 비교하면 남한 젊은이들은 통일에 대한 관심이 아주 낮습니다. 분단 상황에 살고 있음에도 자유와 풍요를 누리고 휴전상태라곤 하지만 당장은 평화로우니까, 또 통일이 되지 않았다고 해서 불편한 점을 별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근시안 적인 사고이고 지나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잠식한 탓도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북한은 다릅니다. 북한 젊은이의 거의 100퍼센트가 통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통일이 되어야 평화적 경제건설에 국력을 돌릴 수 있고 잘 살 수 있고 분단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억제되는 개인의 자유도 확대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민족주의적 사고가 강한 점도 작용합니다. 설사 통일에 관심 없는 젊은이가 있더라도 그것을 퍼센티지로 나타낼 정도 는 아닐 것입니다. 속으로 관심없고 통일이 싫다 해도 드러내고 표현하지 못합니다. 아마 그 랬다간 대번에 민족반역자, 매국노, 반동분자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주변사람들한테 사람취급 을 못 받게 될 수 있습니다. 다만 그들이 생각하는 통일이 적화통일인지, 연방제인지, 흡수통 일인지, 합의통일인지 하는 것이 문제일 것입니다.

MC: '일반 문학'과 '통일 문학'이 명백하게 달라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도명학: 일반문학은 말 그대로 그냥 작가가 그냥 자기 뜻대로 독자의 수요에 맞춰, 혹은 어떤 계몽의 도를 가지고 쓰면 되겠지만 통일문학은 방향이 정해진 문학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통일에 도움이 되는 주제와 소재를 다루는 작품만이 통일문학에 속할 것입니다. 혹은 어떤 작가가 일반문학이니 통일문학이니 하는 개념을 의식하지 못한 채 썼는데 내용이 통일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그것 역시 통일문학이 되는 거구요. 저는 구별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고 봅니다.

MC: 오늘 남북문학기행은 여기까집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홍알벗이었습니다. 도명학 선생님 고맙습니다.

도명학: 네, 수고하셨습니다.

MC: 저희는 다음 주에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진행: 홍알벗, 도명학 / 에디터: 김진국 / 웹담당: 이경하